24. 팀플이란 (3)
[미니언들이 생성됩니다.]
초반의 인베이드가 끝나자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단천은 박도를 든 채 상대 탑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처음부터 5데스라니. 게임 망했네. 버스 타서 좋겠다? 게임 시작하자마자 터져서?”
오자마자 툴툴거리는 상대방을 바라보던 단천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는 탑이 아닌가?”
“뭐. 탑 맞는데? 왜?”
“천하제일을 목표로 하는 자가 시작하자마자 게임을 못 이긴다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아니다.”
> 탑이라는데 왜 천하제일이 튀어나와?
> 탑 = TOP = 최고 = 천하제일
> 그렇구나! 완벽하게 이해했어!!
> 이해하면 안되지 ㅋㅋㅋㅋㅋㅋ
상대 탑의 표정이 구겨지거나 말거나 BJ천마의 말은 계속됐다.
“천하제일에 서기 위해 중요한 것. 그것은 무슨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인 것이다.”
“뭔 개소리야. 이건 그냥 노말게임이고, 난 천하제일 같은 건 안중에도 없···.”
“갈!”
BJ천마의 검이 흉흉한 검광을 흩뿌리며 적 탑의 목에 박혔다.
[BJ천마가 탑탑탑탑탑탑탑을 처치하였습니다.]
> 문답무용!
> 아니 뭘 잘못했다고 죽여 ㅋㅋㅋㅋㅋ
> 감히 천마님이 계시는데 탑에 오다니! 신성모독이다!!!!
> 그저 순수하게 탑에 오고 싶었을 뿐인데···
마음가짐부터가 글러먹은 적 탑을 처치한 단천은 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 미니맵을 바라봤다.
> 근데 포탑은 왜 안 침?
> 포탑은 미니언들이 알아서 부숴줌
> 천마님은 그런 잡일따위는 안한다맨이야!
미드도, 바텀도 쉴 새 없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물론 킬이 빠르게 나오지는 않았다. 킬을 5킬이나 헌납한 탓에 적 라이너들이 방어적으로 나오고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킬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물론 ‘정글러’다.
[정글! 정글러! 미드갱! 빨리 오세요! 오면 바로 킬임!]
[바텀갱부터! 정글러어어어!]
[갑니다! 가요!]
미드와 바텀에서 동시에 터져나오는 정글러 콜에 알파카파카의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쯧쯧.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낼 생각은 안 하고 남에게 힘을 받아 비겁하게 합공할 생각부터 하다니.”
단천은 혀를 찼다. 협공을 부끄러워하지 않다니.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 죄송한데 이거 팀플 게임이거든요?
> 팀플겜에서 다굴이 왜 비겁해 ㅋㅋㅋㅋㅋㅋ
[국립국어원장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비겁 : 천마님이 비겁하다고 하시는 것.]
> 국립국어원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정글러들은 비겁한 포지션이었구나!
> 굳이 따지자면 정글러가 아니라 정글 콜하는 라이너들이 비겁한 거 아닐까?
> 그냥 다 비겁한 걸로 하자
> ㅇㅋ;;
비겁과 정정당당함과 강호의 도리가 채팅창에서나마 바로잡아져가고 있었다.
***
“미드 개애애앵!”
[풀창고가 성난뱁새를 처치했습니다!]
“킬 양보 나이스입니다!”
“헤헤. 뭘요!”
정글러 알파카파카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 3킬이나 먹은 상태. 상대와의 성장격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태. 그런 상태에서 갱까지 왔으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다음 갱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넵! 바텀 갔다가 바로 다시 미드 들리겠습니다!”
“바텀은 좀···.”
“그, 그래도···.”
[바텀 갱오면 더블킬! 갱오면 더블키이일!]
“저렇게 외치시는데 안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거라서.”
“어쩔 수 없죠.”
풀창고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아니 그래도 같은 편인데 너무 과몰입하는 거 아님?
“같은 편은 무슨! 쟤를 이겨야 제가 천마 형이 시키는 운동을 안 한다고요!”
[엄살은풀창고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그거 뭐 운동 해봤자 얼마나 어렵다고]
“야. 진짜 너희가 한번 해 봐야 그 고통을 알아···.”
> 근데 진짜 찐텐인듯
> 이정도 찐텐 나오는 천마님의 교육 ㄷㄷㄷ
풀창고의 진심이 담긴 말에 시청자들이 납득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제로콜도 BJ천마와의 운동이 있을 때마다 몸은 건강해지고 영혼은 죽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봐 온 탓이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영혼이 깃든다는 거. 완전 쌩구라에요. 제로콜만 봐도 알아. 제로콜만 그런게 아니라 천마 형은 몸이 엄청 좋거든요? 근데 영혼 안에는 악마가···.”
> 방금 클립 땄다
> 바로 후원하러감 ㅋㅋㅋㅋㅋ
“안돼! 취소! 취소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 응 늦었어~~~
“악의적 편집 멈춰!”
> 대체 어디가 악의적 편집인건데 ㅋㅋㅋㅋㅋ
풀창고가 비명을 터트리거나 말거나 채팅창의 분위기는 반쯤 축제 분위기였다.
[풀창고. 네 속마음은 잘 들었다. 앞으로의 훈련에도 그 마음을 충실히 반영하도록 하지.]
“망했다···.”
이렇게 된 이상 게임이라도 이겨서 하루 훈련을 쉬어야만 했다. 풀창고는 정신을 집중해 미니언 하나하나의 막타를 챙겨나갔다.
“그래도 킬 수는 2킬대 4킬로 제가 앞서요. 그러니 이 차이를 지키기만 하면···.”
[제로콜이 라임라임을 처치했습니다!]
[제로콜이 아리아리를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텀에서 더블킬이 터져나왔다. 이제 4킬대 4킬. 동점이 돼 버렸다.
“말도 안 돼!”
> 안 되긴 뭐가 안 돼 ㅋㅋㅋㅋㅋ
> 얼굴 파리한 거 보소 ㅋㅋㅋ
> 거의 사형 당하기 직전 사형수 ㅋㅋㅋㅋ
AOS게임에서 바텀은 서포터와 원딜, 두 명이 자리한다. 그러니 죽일 수 있는 상대편 라이너의 수도 두 명.
반면 자신은 미드 라이너. 킬을 따도 한 번에 한 명밖에 죽일 수 없다.
[형! 이거 불공평해!]
[뭐가 불공평하다는 거지?]
[미드에서는 킬을 1킬밖에 못 따잖아! 근데 바텀은 2킬씩 들어간다고!]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킬 경쟁에서 내가 불리하잖아! 비겁해! 제로콜 킬은 절반으로 해서 계산해야 돼!]
[설득력이 있군.]
[역시 그렇지?]
[본좌를 납득시키고 싶다면 탑으로 찾아오도록. 본좌를 이기면 그 말을 인정해 줄 테니.]
“······.”
> 천마피셜) 꼬우면 탑빵 뜨자
> 애초에 설득이 가능한 종류의 사람이 아님
> ㅇㅈ;;
하긴 애초부터 BJ천마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저 인간을 설득시키는 것보다는 세상이 두쪽이 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더 빠르다.
풀창고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대로라면 제로콜은 빠르게 자신의 킬 수를 넘어가게 된다.
어떻게 해야 킬을 더 할 수 있는가.
‘답은 하나뿐이야.’
타닷!
풀창고의 레오니다스가 미드를 벗어나 바텀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바텀에서도 상대 진영의 포탑 사이. 적이 죽고 나서 다시 라인에 복귀하는 경로를 향해.
그렇게 모습을 숨긴 풀창고의 눈에 적의 바텀 듀오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씨. 킬만 안 줬어도 안 죽는 건데.”
“힘내서 잘 해 봐요.”
불평을 하는 원거리 딜러와 그 옆에 붙어 있는 서포터가 앞으로 자신들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대화를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있는 미니언들. 미니언의 수도 많고, 2:1, 거기에 적의 한복판이라는 단점들.
원래의 풀창고라면 절대 이 상황에서 무모한 돌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킬을 따기 위해서 눈이 돌아간 풀창고의 눈에는 더 이상 그런 상황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파아아앗!
빛살처럼 달려나간 풀창고의 몸이 적 바텀 듀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런 미친···. 저건 뭐 하는 놈이야!”
“문답무용!”
풀창고의 창이 원거리 딜러를 향해 날아들었다. 둘 모두를 죽이기 위해서는 역시 메인 딜러인 동시에 체력이 부실한 원거리 딜러를 노리는 것이 정석.
“안 돼!”
적 서포터가 다급하게 원거리 딜러로 달려드는 풀창고의 몸을 막아섰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풀창고가 노리고 있던 상황.
터엉!
들고 있던 방패로 적 서포터의 턱을 쳐올리고.
“어억?”
다리를 걸어 균형을 잃게 만든 다음. 창으로 목을 꿰뚫는다.
푸욱!
[풀창고가 아리아리를 처치했습니다!]
쉬잇!
그 사이에 정신을 차린 적 원딜러가 화살을 쏴 대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킬을 5개나 챙긴 데다가 솔로 라이너인 풀창고와의 성장 차이는 심각할 정도로 나 있는 상태였으니까.
팅! 팅! 팅!
화살이 허무하게 풀창고의 방패에 맞아 튕겨났다. 둘 간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이런 젠장! 내가 뭘 잘못해다고 이러는 건데!”
“용서해라. 너를 안 죽이면 내가 죽거든.”
그리고 이어지는 일격!
“젠장··· 그냥 여자친구랑 봇듀오 한판만 하고 가려고 한 건데···.”
[풀창고가 라임라임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풀창고의 눈에 안도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스코어는 4대 4에서 6대 4로 다시금 벌어졌다.
“그보다 진짜 커플이었구나.”
순식간에 미안하다는 감정이 사라졌다.
> 순식간에 미안한 감정 0으로 줄어듬
> 그냥 나올때마다 죽여 그냥
> 보일 때마다 죽여 보일 때마다
원래 커플, 그 중에서도 바텀 듀오 커플은 계속 죽여야 제맛인 것이다.
[형! 뭐야! 남의 라인에 왜 온 거야!]
뒤늦게 킬을 확인한 제로콜에게서 다급한 음성채팅이 튀어나왔다.
“형이 동생 힘들지 마라고 로밍 왔지.”
[로밍은 무슨! 오지마! 오지 마라고! 꺼져!]
[···두 분. 파티 맞죠? 원수지간인 건 아니죠?]
***
[제로콜이 성난뱁새를 처치했습니다!]
라인전이 끝나기도 전인데 원딜러인 제로콜이 적의 미드를 처치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야! 원딜이 미드에 로밍 오는 법이 어딨어!]
[어딨기는! 여깄다! 여기!]
[CS좀 먹지 마아아!]
> 개판이네
> 팀플따위는 전혀 없는 야생 그 자체인 게임 ㄷㄷㄷ
채팅창의 반응과는 달리 단천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처음 단천이 유도했던 상황이 지금 펼쳐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 천마님은 그 와중에 왜 흐뭇한 표정이야 ㅋㅋㅋㅋ
> 둘이서 싸우는 거 안 보임?
> 싸움 좀 말려봐 ㅋㅋㅋㅋ
애초에 팀플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건 없다. 같이 잘하자는 협동심보다는 내가 잘 해서 다 죽인다는 마음으로 게임을 해야 게임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풀창고와 제로콜의 상황은 이상적인 상황 그 자체였다.
서로 자신이 캐리하려고 하는 광경이라니. 바람직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진짜 팀플레이지.”
> 저딴 게 팀워크면 모래알도 팀워크의 결집체임;
“무슨 그런 말을.”
중원에서는 혈귀단은 지금 저 둘이 싸우는 것의 몇 배는 심한 수준의 경쟁심이 있었다.
─ 죽어라!
─ 아무리 그래도 같은 단원끼리 암습은 너무하잖아!
─ 너무한 게 어딨어! 죽어!
저것이 팀워크가 아니라면 단천이 오랜시간 만들어왔던 혈귀단 또한 팀워크가 존재하지 않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단천은 가볍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흘려들었다. 뭣보다 남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있던 풀창고의 물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 기꺼웠다.
단천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고 있군.”
[형. 탑에서 킬 하나만 하고 가면 안 돼?]
“안 돼.”
단천은 단칼에 풀창고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거절했다.
기쁜 건 기쁜 거고, 선을 넘는 건 선을 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