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14화 (114/212)

24. 팀플이란 (2)

“등골이 오싹한데요. 누가 저를 죽일 듯이 쏘아보고 있는 기분이에요.”

제로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인지 모르게 누군가 살기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거 방송해도 되려나.’

아무래도 불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시작한 방송을 무를 수도 없는 노릇.

> 천마신교 합방 떴드아ㅏㅏㅏ

> 진짜 초호화 라인업이네 ㄹㅇ ㅋㅋㅋㅋ

> 제로콜! 챌린저 입성 축하한다!!! 천공도 챌린저 가즈아ㅏㅏㅏ

당장 채팅창만 해도 시청자의 수가 벌써부터 만 단위다. 이런 상황에 기분이 이상하다고 합방을 종료했다가는 무슨 일이 나도 안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 힘내자. 직접 끌려가서 합방하는 풀창고 형보다는 내가 낫지.’

천만다행이게도 BJ천마의 스튜디오에 캡슐은 아직 2개뿐이었다. 제로콜은 풀창고를 바라보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 눈빛. 무슨 뜻이야.”

“별 의미 없어요.”

“그보다 캐릭터는 준비했나?”

“네. 튜토리얼까지 이미 끝내 놓은 상태에요.”

하루종일 다키스트 에이지에 방송시간을 모두 태운 풀창고와는 달리 제로콜은 레일 서바이버를 하면서도 다른 게임을 조금씩 찍먹을 하고 있었다.

이 찍먹 게임 중에는 물론 ‘천공’또한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기는?”

“무기가 아니라 캐릭터겠죠. 제가 고른 캐릭터는 ‘하자드’에요.”

[석양의 건맨 하자드]

제로콜이 고른 캐릭터는 ‘석양의 건맨 하자드’ 였다. 하자드는 미국 서부극에 나오는 건맨 모습을 하고 있는 캐릭터였다.

“일단 권총이라서 사거리가 짧고 연발 사격은 안 되긴 하지만, 한발 한발이 굉장히 강력한 데미지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멋있잖아요.”

“활을 써 볼 생각은?”

“···활이요?”

“활이 훨씬 좋은 무기이니. 언젠가는 바꿀 수 있도록.”

단천은 구태여 제로콜의 무기를 더 오래 지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총이 비효율적인 무기인 것과 상관없이 재미를 들리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총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무기인지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무기를 쓰게 되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음. 오랜만에 합방이고 한데, 내기라도 할까요?”

“내기?”

내기라는 말에 제로콜이 바로 반응했다. BJ천마가 없던 풀창고 크루일 때도 합방에서 자주 내기를 했었다.

결과는 제로콜의 전패. 애초에 게임 재능이 전혀 없던 제로콜이니만큼 내기를 이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로콜 자신은 이전의 제로콜이 아닌 것이다!

“나쁘지 않군.”

단천 또한 이러한 종류의 내기는 꽤나 자주 해 왔었다. 보통은 내기를 한다기보다는 내기를 주최하는 쪽이기는 했지만.

─ 지존은 빠지십시오! 어딜 또 내기에 끼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 맞습니다! 지존은 조금만 불리하다 싶으면 무공 동원해서 이기려고 드시··· 아아아아악!

─ 공명정대한 지존께서는 심판을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형은 내기에서 좀 빠져.”

“일단 규격 외니까.”

> ㅇㅈ;

> 빠른 납득 좋구요

> 아니 탑에서 10초마다 솔킬이 난다니까요??

“좋다. 본좌가 심판을 보지. 그리고 내기라면 적당한 수준의 상벌이 있어야 할 텐데···.”

“뭐, 간단하게 서해안 입수 같은 거 하면 되지 않을까?”

[면봉으로귀찌름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승자가 가져가는 후원금 지원!]

[콜vs풀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승자 상금 추가합니다!]

[미션맨 님이 999,99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승자 상금 낭낭하게 넣었습니다 ^^]

그 뒤를 잇는 수많은 후원금들. 후원금이 쌓일 때마다 방송 화면 아래에서 후원금 박스에 돈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승자 후원금은 이내 후원금 박스를 터트릴 만큼 꽂혀올랐다.

그렇게 순식간에 모금된 금액만 해도 거의 5백만원에 달했다.

“와. 이게 얼마야.”

“와. 형 화력 진짜 장난 아니다.”

풀창고와 제로콜이 탄성을 터트렸다. 모으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잠깐 모았을 뿐인데도 500만원이라는 상금이 모이다니.

심지어 금액은 더 불어나고 있었다. 게임 시작 전까지만 모아도 거의 천만원이 모일 것이 확실해 보이는 상황.

“와. 상금 받으려면 진짜 죽자사자 해야겠네.”

“제가 꼭 타겠습니다! 꼭!”

둘은 제각각 자신이 이기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천의 표정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열심히 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청자들이 상금을 이렇게 추가해 줬으니. 본좌도 상벌을 하나씩 줄까 싶은데.”

“상벌이요?”

“형도 뭐 상금이라도 걸게?”

“에이. 저희가 형 돈을 어떻게 뺏어요.”

“굳이 돈이 아니더라도 보상을 하는 방법은 또 있으니까.”

잠깐 고민하던 BJ천마의 입이 열렸다.

“상은, 하루 간의 운동 면제. 벌은, 면제된 운동량을 패자가 모두 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군.”

“···운동 면제···?”

하루 간의 운동 면제라는 말에 풀창고와 제로콜의 눈이 동시에 돌아갔다.

하루가 머다하고 죽음을 왔다갔다하게 하는 것이 바로 BJ천마의 운동 스케쥴이다. 풀창고는 그저 하루만 운동을 했을 뿐인데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잘못하면 죽는다.

그런데. 그 지옥같은 운동을 하루 쉴 수 있다?

“어떤가?”

“죽어도 이긴다. 아니, 죽어서라도 이긴다!”

“형은 이제 시작이잖아. 나는 죽음과 삶 사이에서 산 지가 한참이라고!”

“너는 젊잖아! 나는 몸이 이제 삐그덕거린다고!”

“늙은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이 살아야 될 거 아냐!”

> ㅋㅋㅋㅋㅋㅋㅋ

> 와 운동을 어떻게 시키길래 반응이 저러냐

> 상금<<<<<하루 운동면제 ㅋㅋㅋㅋㅋ

보아하니 동기 부여는 확실하게 된 모양이다. 제로콜도 풀창고도 죽자사자 게임에 임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럼.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지.”

BJ천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방에 희생자들 가둬놓은 살인자의 미소인데

> 나 이거 그 연쇄살인 영화에서 봤어 ㄷㄷㄷ;

***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이 시작되자 BJ천마는 이전과 다름없이 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제로콜과 풀창고는 지체 없이 정글을 향해 달려들었다.

게임이 시작되고 미니언이 나오기 전에, 상대 진영에 침입해 킬을 따는 ‘인베이드’를 하기 위함이었다.

“다 모여! 인베갑니다!”

“저, 탑솔러님이 안 오시는데요?”

“저 사람은 알아서 하게 놔두고! 빨리 와요!”

팀의 정글러. 알파카파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애초에 초반 게임에서의 인베이드는 5명이 모여서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극초반 게임의 특성상 1명이라도 없으면 그 전력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드라이너와 원딜은 인베이드를 가자고 하고 있다. 가만히 보면 내버려뒀다간 혼자서라도 갈 기세다.

눈에 충혈까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안 가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알파카파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갑시다. 가요.”

알파카파카가 건성건성 대답했다. 적의 숫자가 많다 싶으면 싸우지 않고 되돌아오면 된다.

“자. 조심해서 갑시다.”

그렇게 얼마나 전진했을까. 아군 진영과 상대 진영의 정확히 중점 지역에서 적과 마주쳤다.

적도 자신들처럼 인베이드를 준비한 탓에 중간에서 딱 마주친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는 빠진 사람이 한 명도 없이 5명이 모조리 도착했다는 점 정도.

“뺍시다!”

“잡아!”

뒤로 도망치려는 순간에 사슬낫이 알파카파카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그랩류 스킬을 맞았으니 남은 것은 5명에게 두들겨맞는 것 뿐.

“아이씨! 다들 튀어요!”

사태를 파악한 알파카파카가 소리를 질렀지만, 그의 말을 듣는 것은 서포터 한 명 뿐이었다. 제로콜과 풀창고가 알파카파카가 끌려가는 것보다 빠르게 적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으랴아아아!”

풀창고의 창이 거칠게 적을 향해 날아들었다.

“피해!”

일시적으로 창을 피해 움직인 적들의 사이로, 풀창고의 몸이 낙하했다.

“뭐야? 저 미친 놈은!”

“죽여!”

떨어진 풀창고를 향해 적들의 스킬샷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풀창고는 날아드는 스킬샷을 방패와 무빙을 통해 모조리 받아냈다.

실로 멋지기 그지없는 무빙이었다.

“···무빙 뭐야.”

뒤에서 기묘한 탄성음을 내뱉는 서포터의 말을 뒤로 한 채.

“이번에는 내 차례다!”

풀창고의 발이 가장 가까운 적의 몸으로 날아들었다. 뻐억! 발로 걷어차 균형을 무너트린 풀창고의 창이 적의 목을 꿰뚫었다.

[퍼스트 블러드!]

푹! 푹! 퍽!

다섯 명에게 둘러쌓여 있는 상황인데도 전혀 기죽지 않는 용맹한 모습.

하지만 뒤에 있던 제로콜은 되려 화를 냈다.

“도대체 뭐해!”

“그, 그래도 1킬 땄는데 화를 내시면 안 되죠.”

“아니! 상대한테 화 낸 거에요! 저런 허접한 공격에 당하면 어떡해! 내 킬이 줄어들잖아!”

‘미친 놈들인가.’

알파카파카가 침을 삼켰다. 보아하니 두 명은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저런 사이코들과 같은 게임이 잡히다니. 운도 없지.

“죽어!”

탕! 탕! 탕! 권총 세 발의 격발음이 연이어 들렸다.

[크리티컬!]

[크리티컬!]

[크리티컬!]

뒤이어 터져나오는 세 번의 크리티컬 메시지.

[제로콜이 층간소음해결은야구배트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킬 로그가 떠올랐다.

‘뭐지. 꿈인가.’

총기류 무기들은 사격 자체가 쉬운 만큼 크리티컬 데미지를 내는 것이 굉장히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 가만히 서 있는 상대를 쏴도 100발중에 1발이 크리티컬이 날까 말까한 정도.

그런데 눈 앞의 원딜러는 숨쉬듯이 세 발을 모조리 크리티컬로 박아넣었다.

“죽여!”

“죽지 마! 내가 죽일 때까지 살아!”

상대편이 모조리 전멸하는 데에는 그로부터 채 30초가 걸리지 않았다.

[마무리!]

인베이드의 결과 제로콜이 2킬, 풀창고가 3킬을 가져갔다. 순식간에 떠오른 적 올킬 메시지이니 화이팅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와. 인베이드 미쳤네요.”

“아이씨. 한 것도 없는데 3킬이나 들고가네.”

“뒤에서 총만 쏘고 2킬. 이거 맞냐?”

파지직!

근데 무언가. 이 금방이라도 싸움박질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는.

“두 분. 같은 파티 아니에요?”

“같은 파티에요.”

심지어 같은 파티라고 이야기한다.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이 알파카파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튼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다.

“미드갱 무한으로 와 주세요.”

“바텀 갱만 계속 찔러주면 하드캐리 갈게요.”

“그. 죄송합니다. 몸이 하나라서.”

알파카파카는 일단 사과부터 했다. 미친놈들과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상책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미드와 바텀이 갱을 저렇게 오라고 하소연을 하는 상황인데, 탑마저 미친 놈이면 게임이 심각해진다.

알파카파카는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탑이 정상인이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끝나는 순간, BJ천마에게서 팀 보이스가 들려왔다.

[탑은 절대, 절대, 절대 오지 말도록.]

[그, 그래도 되나요?]

[오지 마라. 절대로.]

미드과 바텀이 정신나간 놈들이니 탑에는 갱을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다니.

‘그나마 탑솔러는 정상인이라 다행이다.’

알파카파카는 탑이 정상인 것을 하늘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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