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팀플이란 (1)
풀창고는 단천을 따라 스튜디오에서 꽤 떨어진 공터에 도착했다.
제로콜은 이미 공터에 도착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형. 스튜디오에서 3분 거리라며.”
“3분 거리 맞아요.”
풀창고의 말에 답한 것은 제로콜이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얼만데.”
“제가 직접 잰 거에요. 딱 3분 걸려요.”
“···그래?”
정확히는 스튜디오에서 공터까지 3분 내에 도착할 때까지 단천이 뜀박질을 시킨 거지만. 전력 질주이건 뭐건 아무튼 도보로 3분 거리인 것이다.
“근데. 풀창고 형은 왜 온 거에요? 아! 나 구해주러 온 거구나!”
“아니. 나도 잡혔어.”
“그럴 수가···.”
제로콜이 우울할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봤다. 하긴, 애초에 풀창고가 단천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안 했다.
“천마 형. 근데 암만 생각해 봐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몸은 확실히 건강해지는 것 같은데, 너무 고통스러워요. 아침 일찍 일어나지고, 온 몸에 활기가 돌고, 규칙적인 인생을 살고는 있는데, 인생에 낙이 없는 것 같고, 운동하는 건 너무 고통스럽고.”
“고통에 적응하도록. 이 훈련을 즐겁게 해 온 사람도 있다.”
“···그런 미친 사람이 어디 있는데요?”
단천이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천마신교 내에서 단천의 수련을 즐겁게 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가령, 뇌옥에 갇혀 있던 정신이 나갔던 마인, 창천괴제라거나. 단천 자신이라거나.
‘···생각해 보니 단 둘뿐이군.’
아무튼 예시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훈련이 천국도 지옥도 될 수 있는데, 왜 스스로 힘들다고 생각을 해서 고통을 자처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객관적으로 사람이 죽을 것 같아서 힘들다고 하는 거라고···.”
“자. 운동을 시작하도록 하지.”
단천은 풀창고의 불만을 그대로 뭉개 버리며 훈련의 시작을 알렸다.
혈귀단의 수많은 불만조차 무시하고 훈련을 시켰던 것이 단천이다. 제로콜의 사소하기 그지없는 불만이 들어먹힐 리가 없는 것이다.
***
그로부터 1시간 뒤.
“죽여줘···.”
“제발··· 안락사를 시켜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풀창고와 제로콜이 바닥에 늘어붙어 있는 것을 단천은 흥미롭게 바라봤다.
‘확실히 전반적인 신체능력 자체가 올라가 있다.’
제로콜은 단천과의 훈련을 거치며 몸이 꽤 만들어진 상태다. 반면 풀창고는 방 안에서 매일같이 VR게임만 하고 있던 상태.
그런데도 풀창고는 꽤 그럴듯하게 훈련을 따라오고 있었다.
‘확실히 게임을 통해서 능력이 향상됐다고 추측할 수 있겠군.’
심상수련을 통해서 무공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실제 무공과 비슷한 형태의 게임을 오래 지속하는 것도 신체적인 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단전을 만들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상단전에 이르는 길을 얻게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상단전을 여는 사람들의 수가 꽤 늘어날지도.’
상단전을 여는 것은 단순히 무도武道를 걷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힘은 아니다. 학자, 학사, 심지어는 농부마저도 자신의 길에 꾸준히 정진하면 열 수 있는 것이 바로 상단전이었기에.
실제로 무명승도 무공의 수련과는 큰 관련이 없던 학승이었음에도 다른 시대였다면 천하제일이라고 불리웠을 만한 무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자가 무슨 연유에서 무공을 세상에 전파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상단전에 이르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단천에게는 꽤나 희소식이었다. 상단전이 열린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싸워볼 만한 무인들의 수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었으므로.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응방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놈들이 뭐 하는 놈들인지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무를 수련하고, 덤벼오는 놈들을 베고, 베고, 또 벤다.
그러면 자연스레 천하제일에 오르는 것이다.
“아. 그보다, 저 오늘 레일 서바이버 챌린저 승급했어요!”
바닥에서 가쁜 숨을 내뱉던 제로콜이 말했다. 그간 그랜드마스터에서 꽤 오래 머물렀는데 드디어 챌린저로 승급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단천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생이 챌린저까지 올라갔다는 소식에 풀창고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ㄷ.
“와! 역시 하니까 되는구나! 그래. 언제 가나 했다!”
“헤헤, 고마워요.”
“너무 늦었군.”
“천마 형이 그렇게 말을 해도 마음 속으로는 축하한다는 걸 잘 알아요.”
단천의 말투와 표정과 행동과 분위기 그 어디에서도 축하의 표시는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BJ천마는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이다!
그러니 쑥쓰러워서 늦었다는 타박을 하는 게 분명하다!
제로콜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사실이 어떻냐보다는 그 사람이 어떻게 믿느냐가 더 중요한 순간이 때때로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제로콜이 그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중에 단천이 입을 열었다.
“챌린저까지 올라왔으니 슬슬 천공을 시작해야 되겠군.”
“오. 저 천공 해 볼 생각이던 거 어떻게 아셨어요? 안 그래도 시작한다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네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제 의사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닌가요?”
“아니다. 네가 싫다고 하면 하고 싶어지게 만들면 될 뿐이니까.”
“궁금한 건데, 하고 싶어지게 만든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대회 경기를 보여준다거나, 멋진 플레이를 보여 준다거나. 그런 건가?”
“지금 하기 싫다고 말한다면 보여 줄 수 있다.”
“···그냥 하고 싶은 걸로 할게요.”
“대회도 참여할 테니 일정 비워 두도록.”
“거절권한은···.”
“없다.”
“역시 그렇군요.”
제로콜의 눈에서 눈물이 살짝 흘러내렸다.
***
[뉴비인데 천공 캐릭터 뭐가 좋음?]
[천공 뉴비들 왔으면 이글부터 봐라]
[└ 이거 낚시글임 절대 클릭하지마라]
[베타키 산다 제발 팔아줄 사람 없냐]
천공의 베타 테스팅과 함께 신설된 천공 게시판은 매일같이 게시판 최고 순위를 갈아치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다지 기대라고는 하고 있지 않았던 하인라인의 신작 게임이 게임성과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가 자주 나오고 있었으니까.
실제로도 게임의 흥행 순위도 매주 올라가고, AOS 관련 게임단에서 게임단 창설을 목표로 2,3군 플레이어중 진로 변경 의사가 있는 게이머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었다.
게임의 흥행지표가 상승세를 타면서 덩달아 천공을 플레이하고 있는 스트리머들에 대한 관심도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랭크 열리면 최상위권에 스트리머중에 누가 들어갈 것 같음?]
[일단 지금 게임 하고 있는 스트리머 중에서는 LOP에서 온 불꽃맨이랑 폭풍영웅에서 온 당근순, CAS프로로 한때 날리던 포포 정도쯤?]
[BJ천마 있잖음]
[BJ천마 ㅇㅈㄹ 낄데 껴라]
[ㅋㅋㅋㅋ 아 진짜 종겜스를 어디 갖다댐 ㅋㅋㅋ]
[종겜스만 보던 놈들은 AOS 프로들이 얼마나 괴물인지 모름 ㅋㅋㅋ]
[BJ천마 방송 안 보는 놈들 특) 이새끼 얼마나 괴물인지 모름]
[종겜스 누렁이들 특) 양학하는 지 주인님이 피지컬 괴물인줄 암 ]
···
“···우와아···.”
삽시간에 전쟁이 열리는 모습을 보며 한수아는 벙하니 입을 벌렸다.
게임 관련된 공략이나 좀 찾으러 왔다가 순수하게 궁금증으로 스트리머 중에 누가 제일 잘 하는지를 물었을 뿐인데.
채 5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부모의 원수를 두고 싸우는 것처럼 싸움박질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 잘못은 아니겠지?”
한수아는 빠르게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쪽으로 생각을 다잡았다. 애초에 글 하나로 싸움을 할 사람들이었다면 무슨 사소한 사건으로도 싸웠을 사람들일 테니까.
“천마 사부. 생각보다 응원하는 사람이 많구나.”
BJ천마가 얼마나 잘하는지에 대한 글들이 수없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한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리머를 보는 시청자들의 수가 전체 시청자수에 비해서는 보잘것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BJ천마에 대한 옹호글들의 수는 비정상적일 정도였다.
이 정도의 화력이 나온다는 것은 BJ천마의 방송을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납득하는 수준의 실력을 BJ천마가 보여준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긴, 누구 사부인데.”
한수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아. 코치!”
“폼은 계속 괜찮아?”
“네. 계속 풀컨디션입니다요!”
“이대로만 하면 돼.”
“더 잘 해야죠.”
“야. 어제 만점 찍어 놓고 뭘 어떻게 더 잘해.”
“정중앙에서 빗나간 게 좀 있었잖아요.”
“어떻게 첫 현역 시절보다 애가 더 지독해졌냐. 그런 마인드셋은 누구한테 배운 거야?”
“있어요.”
한수아가 헤헤거리면서 웃는 것을 본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직 속단하긴 이르니까 방심만 하지 마. 그러면 대회 우승은 하는 거니까.”
“그러게요. 개인 기록도 이번에 깨고 싶네요.”
“대회 끝나고서는 일정 있어?”
“일정이요?”
한수아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약속은 안 잡았는데. 할 게 있긴 있어요.”
“커리어 내내 집순이던 애가 갑자기 무슨 일정을 잡았냐.”
“잡았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게 생긴 거라서요.”
“하고 싶은 거?”
“네.”
“그게 뭔데?”
“대회 출전?”
“무슨 대회? 내가 모르는 사격 대회가 또 있어?”
“있어요.”
“게다가 왜 확정이 아닌 것처럼 말해. 어딜 가나 시드권은 확보인 애가.”
코치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한수아의 커리어라면 유명하지 않은 대회 정도라면 시드권은 반드시 받아낼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다. 그런데도 한수아는 대회를 참여하는 게 확정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음. 시드권도 시드권이고, 팀으로 하는 거라서. 팀장이 저 안 뽑아주면 대회 참여 못 할 거에요.”
“그래?”
“이번 대회 우승하면 팀장이 뽑아주겠죠?”
“야. 니 실력인데 안 뽑아주면 그 팀장이 눈이 삔 거지.”
“어쩌면 팀장이 뽑아주는 것보다 먼저 제안이 들어오지 않을까요?”
“그렇지. 무조건이지. 야. 네가 인기가 없냐 실력이 없냐. 팀장 입장에서는 당연히 뽑고 싶지! 무조건이야 무조건!”
“그렇겠죠?”
“그래.”
“그렇겠죠오?”
“그래.”
“그렇겠죠오오?”
“······.”
코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하거나 말거나 한수아는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한수아의 휴대폰이 작게 울렸다.
[BJ천마가 스트리밍을 시작하셨습니다.]
“아. 방송 시작했다!”
한수아의 손이 빠르게 BJ천마의 방송 알람으로 향했다. 아마 오늘 방송도 풀창고와 함께하는 방송일 터였다.
한수아의 눈이 방송에 떠오른 방송제목으로 향했다.
[BJ천마 with 풀창고(미드), 제로콜(원딜)]
“···뭐?”
원딜. AOS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주포 역할을 맡는 원거리 딜러의 자리다.
“이 사람. 뭔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한수아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온 집중을 해서 사격을 할 때에나 보이던 사냥꾼의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