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교육 방송 (5)
‘할만한데?’
풀창고는 복어충의 스킬샷을 이리저리 피해내며 생각했다. 원래의 풀창고는 다른 플레이어를 상대로 하는 게임에서는 쥐약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 왔었다.
심리전이 그나마 필요 없는 FPS에서는 그나마 나았지만 AOS는 피지컬과 심리전이 모두 필요로 하는 게임인 까닭에 무슨 AOS를 하던지 성적이 밑바닥을 기어 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훤히 보인다.’
물론 여전히 상대의 심리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상대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노림수가 보이고, 그에 맞게 몸이 반응한다.
실로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무빙.
> 잘 피하네
> 웬일임? 스킬샷을 거의 안 맞네
> 상대가 못 하는 거 아님?
채팅창에서는 풀창고가 스킬샷을 잘 피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스킬샷을 못 맞추는 게 아닌가 하는 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스킬샷을 맞는 사람이 못해서 맞는 것인가, 아니면 스킬샷을 맞히는 사람이 잘해서 맞추는 것인가는 희대의 난제.
허구한 날 실버를 맴돌던 풀창고의 실력이 갑자기 올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상대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 와 상대 더럽게 못하네 ㅋㅋㅋㅋ
> 저격인 것 같은데 저런 저격러도 있구나
> ㅋㅋㅋㅋ쪽팔린 줄 알아야지 ㅋㅋㅋㅋ
“아. 상대 분이 못하는 게 아니라 제가 잘하는 겁니다.”
> 네다실
> 현직 겜창인데 상대방이 못하는 거 맞음. 스킬샷을 심리전도 안하고 저렇게 막 쓰는게 어딨냐 ㅋㅋㅋㅋ
“파이어 월!”
콰아앙! 다시 한 번 솟구쳐 오르는 불기둥을 피하며 풀창고는 다시 한 번 여유롭게 스탭을 밟았다.
“이 새끼가! 더럽게 피하네!”
이런 상황에도 풀창고는 덤벼들지 않았다. 바닥에서 솟구쳐오르는 불기둥과 달리 저 손에서 나오는 파이어볼들은 거리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피하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냥 회피만 계속하면서 파밍만 해도 충분해.’
풀창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소리^오^가 포탑에 처치되었습니다!]
[BJ천마가 돌멩이충을 처치했습니다!]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탑에서 괴물이 된 BJ천마가 게임을 캐리할 터다.
그러니 자신은 최대한 수비적으로 하면서 묻어가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 맞다.
혹시라도 자신이 잘못해서 미드에서 스노우볼이 굴러간다면 게임이 불리해져서 질 수도 있으니까.
마음을 굳힌 풀창고는 최소한의 견제만을 하며 복어충의 스킬샷을 계속해서 피해냈다.
그렇게 계속해서 복어충의 스킬샷을 피해내고 있던 와중. 풀창고의 귀에 BJ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고 있지?]
“왜?”
[왜 킬 로그가 올라오지 않는지를 묻는 거다.]
“상대가 잘해서 킬 따기가 어렵네.”
[그러면 네가 죽는 로그라도 올라왔어야지.]
“그게 뭔 소리야?”
[상대를 죽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는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 상대를 죽이지 못할 거면 죽기라도 해라 선언
> ㄷㄷㄷ 살벌한거봐 야쿠자인줄 ㄷㄷ
BJ천마의 말에 풀창고는 머리를 긁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있어? 어차피 버티면 형이 게임 터트려버릴 거 아니야?”
[역으로 묻겠다. 어차피 본좌가 게임을 터트릴 텐데. 왜 굳이 상대와 싸우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
“···그랬다가 게임을 지면?”
[상관없다. 본좌가 있는 한 게임은 지지 않을 테니.]
> 진짜 언제 봐도 자신감은 미쳤음
> 자신감과 실력이 비례하는 남자···BJ천마···
> 근데 맞는말 아니냐? 탑이 저렇게 개박살이 나는데 게임을 어케 지누?
채팅창의 분위기도 풀창고를 과감한 플레이를 하는 쪽으로 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부추기는 BJ천마의 다음 말.
[본좌가 책임질 테니 마음껏 해 봐.]
“좋습니다. 이제부터는 완전 공격적으로 할게요!”
풀창고는 가슴을 탕탕 치며 패기롭게 말했다.
> 가즈아ㅏㅏㅏ
> 풀창고도 천마님처럼 10초마다 킬로그 쌓는거임!
>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어렵지
“덤벼라아아!”
“뭐야! 왜 갑자기 덤벼!”
풀창고가 덤벼오자 복어충의 입에서 당황이 터져나왔다. 견제를 거의 안 하기에 스킬샷을 마음껏 때려박았는데, 갑작스럽게 적이 공세로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당황을 했다고 해서 해야 할 스킬샷을 늦추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복어충도 AOS의 고인물이다. 적의 공세에 당황한다면 고인물이라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적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상황. 스킬샷을 맞추기가 훨씬 쉬워진다.
“파이어 볼!”
복어충의 손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우랴! 이 정도야 가볍지!”
풀창고가 여유롭다는 표정으로 파이어볼을 피했지만. 그 자리는 바로 복어충이 파이어월을 시전한 장소였다.
소위 하나의 스킬샷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한 다음 데미지가 높은 스킬샷을 맞추는 방식.
이건 못 피한다!
“파이어 월!”
콰아앙! 불길이 바닥에서 솟구쳐올랐다. 제대로 맞춘 파이어 월은 일시적인 경직또한 포함한다. 그러니 이 때 거리를 벌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되는데.
“우랴아아아!”
달려오는 풀창고의 움직임은 경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죽어라아아아!”
“뭐야 씨발! 대체 어떻게!”
“방패로 막았지!”
그러고 보니 풀창고가 들고 있던 방패가 불길에 그을려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바닥에서 터진 불길을 방패를 밑에 깔아 막아낸 것이다.
실버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경악스러운 게임 이해도였다.
“이런 미친.”
복어충이 하고 있던 캐릭터는 전형적인 메이지(mage). 근접 전사에게 거리를 허용한 순간 도주는 불가능했다.
푸욱! 풀창고의 장창이 복어충의 심장을 관통했다.
[풀창고가 복어충을 처치했습니다!]
“우랴아아아!”
풀창고의 커다란 목소리가 미드를 가로질렀다.
***
“보아하니 잘 돼 가고 있는 모양이군.”
단천은 라인으로 걸어들어온 오소리를 적의 포탑을 향해 던지며 중얼거렸다.
> 방금 풀창고 컨트롤 개지렸음 ㅋㅋㅋㅋ
> 와 이거 진짜 주간 클립 각이었음
“잘 싸웠겠지. 풀창고의 기본기는 탄탄하니까.”
> 탄탄한 것 치고는 티어가 심각하게 낮은데요
단천은 굳이 설명을 할까 싶은 생각에 잠시 고민했다. 당장 지금 탑에서 할 것도 딱히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오소리를 포탑에 던지면서 돌멩이충을 죽이는 게 전부다.
“딱히 할 것도 없으니 간단하게 설명해주지. 풀창고의 기본기는 훌륭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키스트 에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을 리가 없지.”
> 그건 그렇지
“하지만 풀창고는 PVP에서는 그 실력이 제대로 안 나온다. 왜 그럴까?”
> 다른 게임에서는 팬티만 못 입고 다녀서?
> 무슨 크립토나이트냐 ㅋㅋㅋㅋㅋ
꽤 그럴듯한 추론이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풀창고가 실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은 너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팀 게임에서는 자신의 실수가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 위험한 플레이를 하다가 실수를 해서 죽게 되면, 아군 전체에까지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지.”
풀창고의 내면에서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평범하게만 플레이하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풀창고는 팀 게임을 하면 안정적인 플레이만을 반복해 온 것이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하는 게임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다.”
그래서 단천은 일부러 풀창고에게 자신이 죽어도 ‘괜찮은’ 상황을 만들었다.
내가 어떤 플레이를 해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 든다면 풀창고는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않고 제대로 플레이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일종의 심리적인 장벽을 무너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충 일주일 정도 반복하다 보면 위험을 감수하는 플레이도 충분히 몸에 익을 거다.”
> 오오
> 풀창고도 AOS 잘하게 되는 거 볼 수 있는 건가
> 천마님은 역시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 근데 저렇게 고함 지르는 것도 천마님의 계획에 포함돼 있는 겁니까?
[죽어라! 죽어! 으랴아아아아!]
음성 채널로 들려오는 풀창고의 기괴한 고함소리.
“저건 본좌의 잘못이 아니다.”
단천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아닌 건 아닌 거니까.
***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으아! 개운하다!”
게임을 모두 마친 풀창고가 몸을 쭉 펼쳤다. 원래 방송을 모두 마치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기 바빴는데 오늘은 달랐다.
몸 전체에 활기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심지어 어제는 철야를 해서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풀창고의 컨디션은 오랜만에 어떤 제약도 없이 게임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방송을 즐긴다고 해도 온전히 어떤 부담감도 없이 게임을 하는 스트리머는 없다.
하지만 풀창고는 오늘 BJ천마의 버스를 탄 덕분에 그 어떤 부담감도 없이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컨디션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충 이런 식으로 일주일을 한다는 거지?”
“그래.”
단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도 할 수 있겠다.”
“힘이 남아 돈다니 다행이군.”
풀창고의 컨디션으로 보아하니 랭크 게임이 열리는 날까지는 컨텐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풀창고의 실력도 늘어나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었다.
“일주일 지나고 나면 랭크 열리고··· 형은 랭크 하러 가겠지?”
“그렇지.”
“그 다음은 대회고. 와. 형 진짜 일정 빡세졌다. 처음 봤을 때에는 이 정도 규모 아니었잖아.”
“다 본좌가 잘난 덕이지.”
“···여기서는 방송 도와준 내 덕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 거 아니야?”
“네가 살짝 숟가락으로 도와 주기도 했고.”
풀창고는 단천의 말에 씩 웃었다. 처음부터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BJ천마의 시청자 수는 채 반년이 지나기도 전에 자신을 추월했다.
“그래. 이번 대회 규모 엄청 큰 것 같은데 거기서도 시청자 수 늘릴 수 있을 거야. 거기서도 하드캐리하는 모습 보여줘! 나는 옆에서 응원할게!”
“그게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이긴. 하인라인에서 형한테 연락 안 갔어?”
하인라인에서 주최하는 천공 대회가 곧 잡혀 있다는 것은 공공연연한 비밀이었다. 대회 참여자들의 라인업은 타 AOS의 최상위권의 플레이어들로 구성된다.
“본좌에게도 연락이 왔다. 팀장으로서 팀에 참여할 스트리머들을 모아 달라더군.”
“그래. 그러니까 팀원 모아야지.”
“그러니까 왜 남의 일인 것처럼 말을 하느냐는 말이다.”
단천의 말에 풀창고가 눈을 껌벅였다.
“형. 설마 우리 천마신교 크루 애들이랑 팀 짜려는 거야?”
“그러면.”
“이번 대회는 돈낳대랑은 달라. 실력 좋은 스트리머들이 우선적으로 나오는 대회라고. 우리 실력으로 하면 아무리 형이라도···.”
“그건 본좌가 걱정할 일이다. 본좌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풀창고는 잠시 고민했다. 과연 가능할까? 프로급의 스트리머들 다섯 명을 상대로 하는 대회.
중요한 건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한 홍보는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BJ천마가 우승을 자신한다면.
“···좋아. 난 할게.”
“좋은 결정이다. 이제 정유채만 설득하면 되겠군.”
“제로콜은 이미 설득해 놨던 거야?”
“아니. 제로콜은 당연히 참여하는 것이니 물어볼 필요도 없지.”
제로콜이 듣는다면 눈이 부옇게 흐려질법한 이야기였다.
물론 눈이 흐려진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풀창고는 제로콜의 슬픈 눈망울을 생각하며 작게 키득거렸다.
“자. 이제. 방송도 끝났으니.”
“끝났으니?”
“운동해야지.”
“······운동 진짜 하는 거였어?”
“물론이다. 앞으로 1주일간은 매일 운동을 할 거다.”
단호하기 그지없는 단천의 말에 풀창고의 눈이 제로콜처럼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