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교육 방송 (2)
[BJ천마 - 천공 교육방송]
> 천하
> 오늘은 교육방송이네
교육방송이라는 채팅을 보고 들어온 시청자들의 채팅을 바라보며 풀창고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반갑다. BJ천마다. 오늘은 신작 게임인 ‘천공’의 교육 방송을 하기 위해서 풀창고를 초청했다.”
“안녕하십니까··· 풀창고입니다···.”
> 근데 풀창고는 왜 데려옴?
> 풀창고 AOS 개못하잖아
> 근데 애가 왜 이렇게 죽상이냐 ㅋㅋㅋㅋ
“본좌가 풀창고를 초청한 이유는 가르치기에 적당한 플레이어라고 생각해서다.”
> ?
> 아 ㅋㅋㅋㅋ천마님이 교육하는 방송이구나 ㅋㅋㅋㅋ
> 하긴 천마가 어디서 교육을 들을 리는 없긴 하지
> 게임 하루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교육(하는)방송 ㅋㅋㅋ
채팅창에서 그제서야 분위기를 파악했다. BJ천마는 천공뿐 아니라 AOS에 입문한지 이제 겨우 하루에 불과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겨우 하루 플레이를 한 BJ천마가 교육방송을 한다면 당연히 교육 ‘받는’ 방송을 떠올렸을 터.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교육을 받는 방송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풀창고의 죽상인 얼굴이 그제서야 이해됐다.
> 천마님한테 배운다는데 인상이 좋을 수가 없긴 하지 ㅋㅋㅋㅋ
> 풀창고야 도망쳐 그러다 제로콜 2호기 돼
‘이미 도망치려고 해 봤어···.’
풀창고가 속으로 울부짖었다. 아침에 위염이 있다는 핑계로 휴방을 할 생각이었는데. 집을 나서려는 순간에 BJ천마를 만나고 만 것이다.
“일단 방송 전에 자기소개부터 하도록 하지.”
“안녕하세요. 천마신교 크루의···.”
“그냥 천마신교.”
“천마신교의 풀창고입니다. 오늘 천마 형의 방송에 오게 돼서 영광입니다.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 BJ천마 방송 오자마자 피곤 그자체
> ㄴㄴ 요새 계속 저랬음
> 다에2의 부작용;
> 다키스트 에이지 엄청 위험한 게임이었네;
> 아니 그냥 하루 20시간씩 해서 저렇게 된거임
> 하루에 20시간씩 하는데 당연히 사람이 저렇게 되지 ㅋㅋㅋㅋ
단천이 보기에도 지금 풀창고의 컨디션은 꽤 위험한 상태였다. 제대로 잠도, 휴식도 취하지 못한 상태.
원래라면 집에서 하루종일 쉬게 하는 게 맞는 상황. 하지만 단천은 그걸 알면서도 굳이 풀창고를 자신의 스튜디오로 불렀다.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 보군.”
“아니야. 완전 팔팔해.”
풀창고가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자신의 컨디션을 어필했다. 문제는 그 퍼덕임이 심하게 생기가 없다는 데 있었다.
> 거의 죽은 생선의 퍼덕거림
> 안쓰럽다 ㅠㅠ
> 그냥 집 보내서 재우면 안 됨?
시청자들의 안쓰럽다는 채팅이 이어졌다.
“괜찮다. 풀창고의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알고 부른 거니까.”
“그랬어?”
“그래.”
“너무해··· 알면 나 좀 쉬게 해 주지···.”
풀창고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단천은 준비해 놓은 약을 꺼내들었다. 잘 밀봉된 비닐 안에 검은색 액체가 찰랑거리고, 비닐 겉에는 사슴을 비롯한 약재들이 프린터되어 있다.
“마시도록.”
“이거. 한약이야? 어디서 만든 거야?”
“내가 직접 만든 거다.”
“이거. 믿을 수는 있는 거지?”
> 직접 만든 거 먹이는 거임?
> 먹여도 되냐?
> 에이 진짜 천마님이 만든 거겠냐 ㅋㅋㅋㅋㅋ 어디서 보약 지어온 거지 ㅋㅋㅋㅋ
> ㄹㅇ 포장지만 봐도 동네 약방에서 우린 약이구만 ㅋㅋㅋ
“아. 하긴. 보통 가정집에서 이런 약봉지를 구할 수 있을리가 없긴 하지.”
그제서야 풀창고가 안심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단지은과 똑같은 눈을 하는 풀창고를 향해 단천은 눈을 흘겼다. 21세기의 인간들은 왜 이리도 의심이 많은지. 단천 자신이 만든 한약들은 인체실험(대부분은 서윤학)을 통과한, 확실히 검증된 물건밖에 없거늘.
“마셔라.”
풀창고가 약을 뜯어 입 안에 흘려넣었다. 질끈 눈을 감고 한 모금씩 마시던 풀창고의 얼굴이 금방 풀어졌다. 새까맣게 검은 약이 의외로 맛있었기 때문이다.
“오. 맛있다. 보통 한약들은 맛 없던데.”
“맛이 있어지는 배합을 찾을 때까지 수천 번 노력했으니까.”
“수천 번이나 누가 맛을 본 거야?”
서윤학. 이라는 말을 단천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저 빙긋 웃었을 뿐이다.
“그보다. 몸은 어떻지?”
“에이. 약 좀 먹었다고 몸이 바로 괜찮아지겠···어?”
풀창고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방금전까지 머리속이 빙빙 도는 것 같은 느낌이 사라졌다. 시야도 또렷하고, 머리까지 맑아졌다.
풀창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었다. 정신뿐 아니라 몸의 전반적인 상태까지 괜찮아졌다.
단순히 플라시보 효과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진짜 괜찮아졌는데?”
서윤학의 피 땀 눈물로 얼룩진 자양회복강장제의 효과는 굉장했다!
> 효과 무엇
> 뭐야 나도 한입 줘요 야근할때 먹게
> 천마류 붕붕드링크 ㅋㅋㅋㅋㅋ
> 진짜 효과있는듯? 다크서클도 사라지고 있는데?
> 여윽씨 천마님이시다 ㅋㅋㅋㅋ
> 저거 어디서 삼????
> 이거 뒷광고 아님?
채팅창에서 풀창고의 반응을 본 시청자들이 믿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뒷광고 아니다.”
애초에 남에게 팔 생각도 없는 물건이었다. 산다고 해도 귀찮아서 팔 생각도 없다.
몇 봉 남긴 했지만 남에게 팔기에는 부족한 분량이기도 하고. 애초에 고작 몇 봉지 남은 걸 살 사람이 있을 리도 없다.
“형. 나 출연료 대신 이거 몇 봉지만 주면 안돼?”
“좋다.”
···본의 아니게 출연료 대신 자양회복강장제를 사겠다는 사람이 생겨나긴 했지만. 남에게 팔 생각은 여전히 없었다.
그러니 아무튼 뒷광고가 아닌 것이다.
“자. 이제 건강도 회복됐으니. 방송을 해 볼까요!”
“아니. 아직이다.”
“?”
풀창고의 피로는 굉장히 만성적인 것이다. 단기간에 과도한 다키스트 에이지 2로 인해 그 상태가 악화된 것일 뿐.
풀창고는 방송 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방송 타임이 긴 플레이어다. 장기간의 VR캡슐 사용은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 않는 탓에 몸을 서서히 좀먹어간다.
“몸을 치료할 필요가 있다.”
단천은 말을 마친 다음 두랄루민 침을 꺼내들었다.
“···형. 그거 침이야?”
“그래.”
“···그거 몸에 놓을 건 아니지?”
> 의료법 위반인데
> 침 놓으려면 의료면허법 위반이잖음 ㅋㅋㅋㅋㅋ
BJ천마가 침을 꺼내들자 불법 의료면허에 대한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고작 침 놓는데 자격증 같은 게 필요하다니.’
중원에서는 자격증같은 것 따위는 필요없이 그냥 침 들고 쑤셔넣기만 하면 됐는데. 여러 모로 귀찮기 짝이 없는 21세기다.
단천은 시청자 수를 바라봤다. 방송을 켠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시청자 수가 이미 7만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살인멸구殺人滅口나 물리적 설득을 하기에는 귀찮은 숫자다.
‘그렇다고 국회에 가서 법을 바꾸기도 귀찮고.’
무엇보다, 구태여 진짜 침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치료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천은 침통의 뚜껑을 닫았다.
“하하. 역시 농담이었구나. 이거 하려고 침까지 사다니. 진짜 준비성 좋긴 하다.”
> 침통까지 준비하는 준비성은 ㅇㅈ이긴 해 ㅋㅋㅋ
> 천마님 표정은 농담 아니었는데
> 원래 천마 표정은 농담이랑 농담 아닐때랑 구분 잘 안됨
“그럼. 이제 진짜 교육방송 하는거지?”
“손.”
“손?”
풀창고가 손을 내밀자 BJ천마가 풀창고의 손을 눌렀다.
꾸욱.
“으아아악! 아아악!”
“가만히 있어.”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풀창고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봤지만 단천의 손아귀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단천은 잡고 있는 풀창고의 혈도에 기를 흘려넣었다.
본디 침이라는 것은 혈도를 자극하기 위한 것. 기를 사용한다면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침을 쓴다면 그만큼 더 효과가 좋지만. 의료법 때문에 침을 쓸 수가 없으니 아쉽게 됐지.”
“···이거. 침 쓰면 덜 아픈 거야?”
“아니. 아픈 건 더 아프지.”
풀창고는 진심으로 한국에 의료법이 존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와줘요! 누가 경찰에 신고해···! 읍읍! 으으읍!”
> ㅋㅋㅋㅋㅋㅋㅋ
> 합방 시작부터 레전드 ㅋㅋㅋㅋ
풀창고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닿지 못했다.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BJ천마가 고작 손가락으로 풀창고의 손가락을 누르고 있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모니터 너머로 풀창고가 느끼는 고통을 체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로 군중 속의 고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
풀창고의 치료가 충분히 된 후. 풀창고는 바닥에 앉아서 훌쩍였다.
> 엄살왕 풀창고
> 엄살 진짜 심했어
“엄살 아니었어요. 진짜 죽을 것 같았다니까요?”
> 응 6살짜리 우리 조카도 그정도로 엄살 안피워~
“괜찮나?”
“괜찮겠어! 그렇게 아팠는데!”
“네 고통은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 안 쓰는 거야?”
“고통은 잠시뿐이니까. 고통은 됐고, 몸 상태가 어떻느냐는 말이다.”
> 고통은 신경 안 쓰는거냐
잠시 멈칫거린 풀창고가 눈을 깜빡였다. 확실히,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잊고 있었는데 몸의 컨디션이 눈에 띌 정도로 좋아져 있었다.
“몸에 쌓인 피로를 치료해주는 혈도를 순서대로 자극했다.”
“와. 진짜. 신기하긴 하다. 이거 어디서 배운 거야?”
“배운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거지.”
“아까 한약 맛 본 사람이랑 동일인이야?”
“눈치가 빠르군. 맞다.”
풀창고는 쓴 한약을 수없이 들이키고, BJ천마에게 손을 죽어라 쥐어짜인 익명의 인간에게 한없는 동정의 마음을 보냈다.
“부디 성불하셨기를···.”
> 모두 눈을 감고 익명의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합시다
> 감사합니다··· 당신의 노력과 헌신 덕분에 한의학이 한층 더 발전했습니다···
> (묵념)
단천은 실눈을 뜨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채팅창과 풀창고를 바라봤다. 침술법과 한약을 만든 것은 자신인데 왜 엉뚱한 서윤학이 감사의 인사를 받는단 말인가.
서윤학이 한 것이라고는 수천 포의 약을 매 끼니마다 마신 것과 수지침을 최적의 효율이 될 때까지 경험한 것밖에 없거늘.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놈이 단천 자신의 공로를 가로채다니. 여러 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튼! 이제 컨디션이 완전히 돌아왔어! 이제 천공하러 가 보자고!”
“효과가 좋아 보여 다행이로군. 일주일동안만 매일 하면 되니까 힘내도록.”
“···일주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앞으로 일주일간 매일 건강혈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일주일이면 그래도 몸이 꽤 괜찮아질 거다.”
일주일동안 이 극한의 고문을 당해야 한다는 말에 풀창고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 형. 그냥 운동하면 안 될까? 열심히 운동할게! 하루에 게임도 15시간만 할게!”
“안 된다. 지금 풀창고 너는 장기간의 노동으로 피로가 뼈에 배겨 있다. 피로가 뼈에 배이게 되면 신체 자체가 연약해지기 마련.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
“그리고 운동은 걱정 말도록. 몸이 낫고 나면 운동도 제로콜과 함께 할 테니까.”
“······.”
풀창고는 이 모든 것들이 그저 끔찍한 악몽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자신의 팔을 꼬집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애초에 꿈이었으면 그렇게나 아팠을 때 꿈에서 깨어났겠지.
> 이렇게 게임이 해롭습니다
> 충격) 20시간 이상 한 달 동안 게임을 하면 안 되는 이유
“자. 이제 함께 천공을 시작해 보도록 하지.”
“야호··· 신난다···.”
풀창고가 죽은 눈으로 기계적인 호응을 보내왔다. 시청자들도 즐거워하고, 시청자들의 수도 역대급.
성공적이기 그지없는 방송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딱 하나. 풀창고의 눈에서 뜻 모를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