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교육 방송 (1)
“으랴아아아!”
팬티 하나만 입은 차림의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노스페라투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노스페라투를 처치하셨습니다!]
“후아. 노스페라투 처치 완료!”
> 이걸 잡네
> 역시 고인물 미쳤다 ㅋㅋㅋㅋ
> 이게 되네 ㅋㅋㅋㅋㅋㅋ
채팅창에서 풀창고의 컨트롤에 대한 호응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물론 절대적인 속도로 치자면 엄청나게 빠른 것은 아니다. 다른 다키스트 에이지의 고인물 스트리머들은 노스페라투를 잡은 지 오래였으니까.
하지만 풀창고가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지금 풀창고가 하고 있는 다키스트 에이지 2의 버전에 있었다.
[다에단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1.0.0 버전으로 이 정도면 진짜 괴물 아니냐? ㅇㅈ?]
풀창고가 플레이하고 있는 다키스트 에이지 2의 버전은 다름 아닌 1.0.0버전이었다. 난이도가 대폭 하향된 최신 버전이 아닌, 초창기 버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뜻이다.
> 난이도 하향 버전으로 하고 있는 하남자들이랑 다르지
> ㅇㅈ
> ㅆㅇㅈ;;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른 스트리머랑은 비교하지 말아주세요! 그분들은 그분이고, 저는 저니까요!”
> 천마님은 다 하셨던 거임!
“아. 천마 형이랑은 다르죠. 규격 외인 사람이잖아요. 그 사람은.”
풀창고가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스트리머가 더 잘한다, 더 못한다는 말을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은 서로 모르는 사이에 불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
하지만 BJ천마와 풀창고의 사이는 꽤 가까운 편이다. 게다가 크루도 같은 ‘천마신교’에 들어가 있다. 이야기를 못할 것 없다.
“게임 하면 할수록 천마 형이 얼마나 말 안 되는지 배웁니다. 이걸 어떻게 원트에 깨. 그것도 제대로 스펙 업도 제대로 안 하고.”
풀창고가 혀를 내둘렀다. 풀창고 자신은 레벨도 올리고, 장비도 강화할 수 있는 데까지 강화한 다음에서야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고 있는데, BJ천마는 이 모든 과정을 스펙업 과정은 거의 없이 돌파해 버렸다.
“정말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의 실력이에요.”
> 팬티 한 장만 입고 방어구는 안 끼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 저런 옷차림을 다니는 사람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 걸까
“이 복장은 제 아이덴티티입니다. 남성성의 상징! 남자라면 풀창고 옷차림이죠!”
> 솔직히 옷차림만 강제 안 했어도 스토리 절반쯤은 왔을 듯
> ㄹㅇ;; 이 인간도 트루 광기임
> 근데 천마님은 요새 뭐함?
> 천공 하고 있던데
‘천공’이라. 그간 게임을 낼 때마다 망하던 하인라인 사에서 이를 갈면서 낸 작품이라고 했다.
다양한 맵과 특색 있는 캐릭터들, 거기에 밸런스까지 갖춰진 수작.
수작이라는 것도 게임을 낼 때마다 말아먹는 ‘그’ 하인라인 사였기에 수작이라고 불리는 것이지 실제로의 평가는 그보다 우위라고 봐야 했다.
실제로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아마 다음 세대 AOS의 주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가장 호평받는 요소는 역시 모션이라고 했던가.’
한국 게임이라면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게임 모션을 거금을 들여서 보강했다고 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호평받는 것은 ‘무협’세계관의 모션들이었다. 전문가들조차 대체 이 모션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불을 켜며 찾아다닌다고 할 정도의 모션.
“하여간. 난 사람은 난 사람이네요.”
> 풀창고는 천공 해 볼 생각 없음?
“조금씩 해 보긴 하겠죠?”
다키스트 에이지 2가 나오고붵 하루종일 다키스트 에이지 2만 잡고 있던 풀창고였다. 이전이었다면 마냥 다키스트 에이지 2만 끝날 때까지 했겠지만. 최초 버전으로 하고 있다 보니 끝이 나려면 시간을 얼마나 부어야 할 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1차적으로 목표로 삼았던 노스페라투도 처치했겠다. 내일부터는 대폭 줄여서 하루에 10시간 정도만 하는 걸로···.”
> 하루에 10시간이 ‘대폭 줄인’거냐고 ㅋㅋㅋㅋ
> 이 인간도 제정신은 아님
“아. 왜요. 대폭 줄인 거 맞잖아.”
풀창고는 화면을 켜 다키스트 에이지 2의 플레이타임을 켰다.
[하루 평균 플레이타임 : 19.6시간]
“하루에 거의 20시간씩 했으니까 10시간이면 절반 정도나 깎은 거구만!”
> 제발 인생을 살아 주세요···
> 풀창고에게는 다키스트 에이지가 ‘인생’인데?
> 어떻게 사람이 자는 시간만 빼고 죄다 다키스트 에이지만 하고 있냐···
> 사실상 다키스트 에이지의 망령임;;
게다가 다키스트 에이지를 하는 동안 시청자들도 꽤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러니 다른 게임으로 리프레쉬를 할 타이밍이기도 하다.
[다키스트 에이지 2를 종료합니다.]
> 와 이 메시지 얼마만에 보는 거냐
> 다키스트 에이지 2가··· 종료도 할 수 있는 거였냐···!
다키스트 에이지 2를 종료하자 채팅창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면···2부 게임은···!”
> 두구두구두구
> ㄷㄱㄷㄱㄷㄱ
“다키스트 에이지 1 스피드런입니다!”
> 미쳤냐
> 돌아이냐
> 이 흐름이면 당연히 천공 하는 흐름이잖아ㅋㅋㅋㅋㅋ
[풀집자의 메시지]
[이 형 주소 뿌립니다 저랑 같이 풀창고 잡으러 갈 사람 모집해요 마취약이랑 콘크리트는 제가 준비합니다]
다키스트 에이지 1을 한다는 소리에 시청자 뿐 아니라 풀창고의 편집자까지 나서서 융단폭격을 시작했다.
“아. 용현아. 진짜 주소 뿌리려는 건 아니지?”
[풀집자의 메시지]
[지금 엔터만 누르면 팬카페에 주소 올라갑니다.]
“노, 농담이었습니다! 와하하! 내일부터는 게임 ‘천공’플레이로 찾아뵐게요! 방송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이 담긴 말에 풀창고가 빠르게 농담을 철회했다.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반응이 이 정도인 것을 보니 그간 다키스트 에이지를 너무 하기는 했나 보다.
> 풀바!!!!
> 드디어 다키스트 에이지 강점기에서 해방이다!!!!
> 끼요오오오오!!
[방송을 종료합니다.]
“후아.”
방송을 종료한 풀창고가 기진맥진한 채로 캡슐에서 기어나왔다.
옆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편집자가 얼음물과 물수건을 들고 달려왔다.
“형. 괜찮아요?”
“어. 괜찮아.”
“그러게 무리하지 마시라니까.”
“야. 그래도 내가 고인물 이미지가 있는데 노스페라투는 잡아야지.”
다키스트 에이지 2를 하며 풀창고는 꽤나 무리하고 있는 상태였다. VR캡슐을 동조율도 최대로 높인 데다가 하루종일 자는 시간만 제외한 채로 방송만 해 왔으니까.
“그렇게 재밌어요?”
“재밌기도 재밌는데. 이 게임이 뭐랄까.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고 해야 되나.”
“실력이야 게임 많이 하면 느는 거고요.”
“그거랑은 달라. 몸 전체가 나아진다고 해야 되나. 설명하기 어렵네. 아무튼, 엄청 특이하고 재밌어. 그래도 쉬긴 쉬어야겠다.”
“하루에 10시간 게임하는 걸 쉰다고 하진 않아요.”
“쉬는 시간에 게임하는 사람도 많아.”
땀을 모두 닦아낸 풀창고는 자리에 앉았다. 다음 게임으로 ‘천공’을 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다.
문제는 풀창고 자신이 AOS를 잘 못한다는 데 있다. 물론 그도 종합 스트리머이니만큼 아예 문외한은 아니지만···.
“지난 번 롤 더 레전드에서 내 티어가 어디였지?”
“실버요.”
“···이번에도 교육 방송을 하긴 해야 되겠다. 교육방송으로 괜찮은 스트리머들 좀 찾아봤어?”
“네. 벌써 전프로나 고티어 게이머들 위주로 연락처 준비해 놨죠. 형이랑 잘 맞을 것 같은 사람 순서대로 정렬해 놨어요.”
“잘 했어.”
풀창고는 편집자가 건낸 태블릿을 켜서 명단을 확인했다.
명단 가장 위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스트리머의 이름을 확인한 풀창고의 눈이 순식간에 일자가 됐다.
[BJ천마]
“천마 형이 왜 여기 있는데?”
“일단 형이랑 팀워크도 잘 맞고. 같은 크루기도 하고.”
“이 형은 AOS 해 보지도 않았잖아.”
“오늘 탑솔 플레이했는데, 첫 판 상대편 탑이 폭풍영웅 현 프로였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됐는데?”
“반쪽으로 찢어 버렸어요.”
“···안 돼. 천마 형은 안 돼.”
“가르치는 능력도 엄청나고요. ‘그’ 제로콜이 지금 그랜드마스터까지 올라가게 한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거라고. 풀창고는 제로콜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옆에서 실시간으로 봐 왔다. 사람인지 좀비인지 헷갈릴 정도가 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 지는 상상하기도 싫다.
풀창고는 죽어도 그런 꼴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게임을 못하고 말지.
“죽어도 천마 형한텐 수업 안 받아. 연락 절대 하지 마. 알겠지?”
“그게···.”
편집자가 말꼬리를 흐렸다.
“왜. 뭐. 왜. 무슨 일인데?”
“BJ천마님이 벌써 전화했어요.”
“······”
“방송 끝나면 연락 달라던데요.”
“······.”
풀창고의 안색이 간 데 없이 파리해졌다.
***
[풀창고]
전화기 액정에 떠오르는 이름을 확인한 단천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형. 바빠? 뭐 하고 있어?]
“손가락만으로 절벽 등반 중이었다.”
[제발 농담할 때는 농담 티를 좀 내. 형 모르는 사람이나 그거 농담으로 듣지. 아는 우리들은 농담으로 안 들어.]
애초에 농담이 아닌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단천은 체중을 전부 지탱하고 있는 검지손가락에 힘을 더 주며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전화한 이유는 알고 있지?”
[···천공 때문 맞지?]
“맞다.”
단천은 천공이 꽤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시청자들도 굉장히 잘 유지되는 편이니 다른 게임을 할 필요도 딱히 없고.
문제가 되는 것은 천공의 랭크가 열리기 전까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점이다.
그냥 노말 게임으로 1주일을 혼자서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랭크 점수도 안 걸린 게임을 주구장창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많다.
“교육 방송을 하고 싶다.”
그래서 단천이 내린 결론이 바로 교육방송이었다.
[교육 방송. 역시 남 가르치는 컨텐츠가 시청자가 많이 나오긴 해.]
“그래. 교육방송을 하려고 하는데. 풀창고 네가 떠오르기에 전화를 해 봤다.”
[······나야 고맙지. 근데 이미 선약이 있···.]
“합방 일정 없는 것은 이미 편집자에게 들었다.”
[다키스트 에이지 2 플레이···.]
“다키스트 에이지를 당분간 안 한다는 건 방송으로 들었고.”
[···그냥 하기 싫다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
의지라는 것은 보통 육체의 문제. 단천은 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의지를 불어넣는 방법을 30만 개는 알고 있었다.
따지자면 동기 부여의 권위자라고나 할까. 말랑튜브에 나오는 동기부여 영상 100개를 보는 것보다 단천의 동기부여법을 한 번 경험하는 것이 훨씬 더 동기부여가 된다고 단천은 자신했다.
물론 몸에 자그마한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소한 부작용도 있기는 했지만.
“선택지는 둘이다. 동기부여를 나에게 받고 교육방송을 듣거나, 아니면 그냥 교육방송을 듣거나.”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풀창고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