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05화 (105/212)

22. 탑 (1)

“일반 게임을 시작한다.”

[일반 게임을 검색합니다.]

[게임 검색이 완료되었습니다.]

베타 테스트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순식간에 게임 검색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눈 앞에 떠오르는 채팅창.

[베인충죽어 : 미드]

[트롤하지마 : 정글]

[우정뭐 : 원딜 갈게요]

[미네랄워터 : 서포터요]

단천은 채팅창에 올라오는 단어들을 바라봤다. 미드니, 정글이니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짧게 생각했다. 미드, 정글, 서포터는 무슨 뜻인지 확실하게 안다. 미드라고 하면 중앙. 혹은 미국 드라마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글은 글자 그대로 정글이고, 서포터는 남을 도와 주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럼 남는 것은 원딜이 무엇인가인데.

> 천마님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모르는 듯?

> 갈! 천마님이 설마 AOS의 고전적인 포지션 나눔인 탑, 정글, 미드, 원딜, 서폿을 모르신다는 음해를 하려고 하는 것이냐!

> ㄹㅇ 천마님이 AOS에서 다섯 가지로 나뉘어 있는 포지션 분배를 모르실 리가 없잖음

[설명충스피드웨건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AOS의 포지션이란? AOS의 공성을 위해서 나뉘어진 라인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방식의 라인 분배를 총칭하는 형태이며 이는 고전 AOS의 마스터피스인 도타 리그 마스터즈에서 유래된 말이다. 탑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후원 하나가 라인 분배와 라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수십 줄짜리 설명을 했다.

> 도배 쳐내

> 후원방 지 혼자 쓰나

> 고봉밥 미쳤네

물론 채 몇 초가 되지 않는 시간만 음성이 나오다 ‘도배’를 사유로 중간에 끊겨 버렸지만. 단천은 속독 능력과 경이적인 안력을 가지고 있다. 그 몇 초 만으로도 AOS의 포지션에 대한 설명을 모두 머릿속에 넣는 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요는 제각기 나뉜 라인이 있고, 그 라인을 따라 포지션별로 나뉘어서 라인을 간다는 뜻이군.’

포지션 분배란 것은 그러니까 중원에 있는 분타주 선정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 포지션 배분이 뭔지는 알고 계시죠?

“물론 알고 있다.”

단천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보다 정글, 미드, 원딜과 서포터는 나왔으니. 남는 라인은 하나뿐.

[BJ천마 : 탑.]

탑. TOP. 순서의 맨 처음. 또는, 정상이나 선두. 최고, 최상의. 이런 뜻을 가리키는 단어다.

“본좌에게 딱 어울리기 그지없는 포지션이로군.”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포지션의 이름만으로도 이미 합격점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빙의할 영웅을 선택하십시오.]

자신만만하게 탑을 외친 BJ천마는 바로 야수도 박정을 골랐다.

[빙의할 영웅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소환을 시작합니다.]

소환이 개시되자 주변의 풍경이 바로 전환됐다.

[전장 : 전쟁노래 협곡]

[1분 뒤 게임이 시작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마다의 무기를 든 플레이어들이 서로 인사를 건냈다.

“다들 천공은 처음이시죠?”

“오픈한 지 한 시간도 안 됐으니까. 다들 처음이죠.”

“그래도 AOS를 안 해 본 사람은 없지 않나요?”

AOS는 VR게임의 가장 큰 파이를 가지고 있는 게임 중 하나다. 거기에 신작 게임인 ‘천공’을 시작했을 정도라면 AOS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것이 당연한 상황.

“본좌는 AOS가 처음이다.”

“···아. 그러시구나.”

BJ천마의 대답에 정글을 선택한 수도사. ‘트롤하지마’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AOS가 뭔지는 대충 아시죠? 뭘 해야 하는지는 대충은 보신 적 있을 테니까.”

“본 적 없다.”

“···그. 아예 처음이신 건가요?”

“이런 류의 게임은 아예 처음이지.”

트롤하지마의 등 뒤에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비록 AOS가 제각기 다른 게임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이 되는 전략들은 대동소이한 면이 있었다. 일종의 장르적 유사성이라고 할까.

그래서 AOS 게이머들은 어느 한 게임에서 다른 게임으로, 그리고 그 다른 게임에서 또다른 게임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정말로 AOS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뉴비가 팀에 끼어 있으면 이기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 판은 힘들겠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탑은 게임에서 가장 영향력이 적은 라인이라는 점이다. 소위 ‘그들만의 라인’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잘 어르고 달래면 된다.

잘 어르고 달래면···.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게임은 처음일지라도 전장에서는 수만 번은 싸워온 몸이니. 본좌만 믿으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을 거다.”

“······.”

‘미친 놈이다.’

첫 판인데 저런 소리를 하다니.

식은땀 한 방울 뿐이던 트롤하지마의 등 뒤에 식은땀이 몇 방울 더 흘러내렸다. 트롤하지마는 AOS를 10년 정도를 즐겨온 고인물중의 고인물이었다.

AOS는 기이할 정도로 이상한 인간들이 많은 게임이다. 그 중에서도 ‘탑’은 AOS에서도 특별할 정도로 미친 놈들이 많은 라인이다.

탑에 가는 놈들이 탑신병자가 되는지, 아니면 탑신병자라서 탑에 가게 되는지는 아직까지도 학계의 미스테리중 하나.

하지만 확실한 건.

“탑은 어디로 가면 되지?”

“저, 저 쪽 방향으로 가시면 돼요.”

“그래. 본좌만 믿어라. 그러면 승리는 식은 죽 먹기일 테니.”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은 확실한 탑신병자였다.

트롤하지마는 저런 미친놈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건드리지 말자.’

이 생각이 네 명의 팀원들 모두의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히. 힘냅시다.”

트롤하지마는 어색하게 웃으며 소심한 파이팅을 외쳤다.

[게임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다.

***

BJ천마는 팀원이 말해준 탑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몇 개의 성채를 지나오자 적의 성채로 보이는 붉은 색의 성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적.

“저 놈이. 본좌의 상대인가 보군.”

화려하기 그지없는 장창을 든 상대였다.

[피곤H]

> 피곤H면 폭풍영웅 프로명 아니냐?

> 동일인이겠냐 ㅋㅋ

> 하긴

유명 프로명의 이름을 하고 있는 상대에 채팅창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단천은 아무 상관없었다. 눈 앞에 있는 자가 자신의 적이라는 것.

거기에.

“하늘 아래 태양 두 명은 존재할 수 없는 법. 탑에는 본좌만이 있을 수 있다.”

저 자가 오만하게도 자신만이 있어야 할 ‘탑’에 주제도 모르고 기어올라왔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 뭔 개소리야

> 아니 게임이 적 아군 있는데 당연히 탑에도 2명이 있죠

> 게임 시작하자마자 탑신병자로 전직 ㅋㅋㅋㅋ

> 게임 시작하기 전에도 이랬는데요?

> 네츄럴 본 탑신병자 ㄷㄷㄷㄷ

> 어허 네추럴 본 ‘천마’님이라고 해라

채팅창의 반응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놈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 그것뿐.

“덤벼라.”

단천의 박도朴刀가 위아래로 까딱였다.

***

“참 나. 어이가 없네.”

피곤H는 적 탑을 바라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미니언도 나오지 않았는데 도발을 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가지고 있는 무기도 박도. 투박하고 나오는 스킬들도 보잘것없는 경우가 많아 프로들이라면 결코 쓰지 않는 종류의 무기다.

거기에 AOS 게임 프로들은 대부분 ‘천공’의 스킬셋에 대해서 미리부터 꽤 아는 부분이 있었다. 밸런스 조절을 위해서 자문을 받으며 이래저래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저 박도를 차고 있는 야수도 박정은 전형적인 초보자 스킬 셋을 가지고 있는 쓰레기 캐릭터였다.

스킬 하나가 치명타까지 터지면 바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데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딱 그것뿐인 캐릭터다.

“덤벼라.”

그런데도 저 BJ천마라는 인간은 자신을 도발하고 있었다. 아이디로 보건데 스트리머가 분명했다.

스트리머라면 사실 저런 퍼포먼스가 필수적인 것이기는 하다.

그의 불행이라면 역시 자신이 지금 도발하는 사람이 프로게이머라는 것.

운이 안 좋았다. 그것도 심하게.

저 스트리머에게는 미안하지만. 피곤H는 저런 도발을 당하고도 방송을 위해 져 줄 수 있을 정도로 착한 인간이 못 됐다.

“좋아. 일기토 한 판 붙어 주지.”

일기토. 미니언이 나오기 전에 1대1로 싸움을 붙는 것을 칭하는 말이다.

피곤H는 창을 들고 박정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성창]

쉬쉬쉬쉭! 완벽하기 그지없는 창술이 박정의 몸을 향해 찔러들어갔다.

‘역시. 모션 하나는 기가 막히네.’

피곤H도 꽤 여러 AOS를 해 왔지만 천공의 모션. 그 중에서도 특히 무협 세계관의 모션은 기가 막히게 쫄깃했다.

기대해도 좋을 정도의 프로를 썼다더니. 현존하는 AOS게임 중에서도 비할 바가 없을 정도로 몸에 착 감기는 모션이다.

이 무림 세계관의 모션 캡쳐를 했던 사람이 누구라더라.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었는데.

BJ천마였던가.

‘···BJ천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니.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무인지경이라도 되는 것처럼 유성처럼 쏟아지는 창을 피하며 유유히 다가오는 적.

그리고 그 머리 위에 떠 있는 ID.

[BJ천마]

“어?”

푸확!

[퍼스트 블러드!]

***

[퍼스트 블러드!]

“아이씨.”

트롤하지마의 입에서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게임이 시작한 지 몇 초가 됐다고 벌써 퍼스트 블러드란 말인가.

트롤하지마는 다급하게 맵을 확인했다. 퍼스트 블러드가 터진 곳은 다름아닌 탑이다.

그럴 줄 알았다.

미니언이 나오기도 전에 처음부터 적 탑에 죽어 주다니. 벌써부터 앞날이 캄캄하다.

아니.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벌써 보이지 않는다.

트롤하지마는 마이크를 켰다.

“아이씨. 벌써 죽으면 어떡해요.”

[무슨 말이지.]

“아니. 미니언 나오기 전에는 성채 주변에 박혀서 기다려야 돼요. AOS 기본이라고요.”

[왜 그래야 하지?]

빠직. 참고 참던 트롤하지마의 인내심에 드디어 한계가 도래했다.

“그래야 안 죽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야이! 퍼블 적한테 줘 놓고 무슨 모르겠다는 듯이 말을 하고 있어!”

[저, 참으세요. 왜 트롤하지마님이 화내시는지···.]

서포터 역할을 맡았던 플레이어, 미네랄워터가 중재에 나섰다.

“뭐? 왜 화내는 지 몰라? 너 쟤랑 듀오냐? 왜 쉴드를 쳐!”

[실드가 아니라, 잘 했다고 해 주셔야 되는 상황이잖아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킬 로그 올려 보세요.]

“무슨 킬 로그! 이딴 걸 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트롤하지마는 버럭버럭 화를 내며 킬 로그창을 띄웠다.

[BJ천마가 졸려H를 처치하셨습니다!]

“봐! 우리 쪽 탑! BJ천마가 뒈졌잖아!”

[반대에요.]

“뭐?”

[그 반대라고요. 천마님이 졸려님을 죽인 거라고요.]

“···뭐?”

트롤하지마의 눈이 킬 로그를 찬찬히 다시 훑었다. 말대로다. BJ천마 ‘가’ 졸려H를 처치한 것이다.

“···아.”

뭐지. 왜 이긴 거지. 당연히 BJ천마가 죽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컨셉만 미친 놈처럼 잡았을 뿐, 의외로 고수였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상대 탑도 초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고.

어느 상황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지금 트롤하지마가 해야 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그··· 죄송. 죄송합니다.”

[이미 입에서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그··· 저··· 혹시 버프 몬스터 드실래요?”

[아니. 필요없다.]

“제 사과를 받아 주시려면 어떻게 하셔야 될지···.”

[사소한 말 실수에 불과하니 금자 천만 냥 정도면 사과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

트롤하지마의 등에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러내렸다.

적이 못한 것인지, BJ천마가 잘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저 새끼는 진짜 진짜 건드리지 말자.’

자신 팀의 탑솔러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놈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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