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02화 (102/212)

21. 베타 테스트 (2)

태릉의 전문 사격 연습장. 한수아는 자세를 고쳐잡고 있었다.

몸 상태는 가면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BJ천마가 가르쳐준 호흡법과 몸 스트레칭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아의 머릿속에는 불안감이 언제나 있었다.

오랫동안 사격장을 떠나 있었다. 국내 대회에서 우승을 가져가기는 했지만. 이게 자신의 실력인 걸까? 운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들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떠돌았다.

확신 없는 연습 때문일까. 나오는 성적은 계속해서 답보 상태였다.

“곧 한수아. 네 차례다. 사격 준비하도록.”

“네. 잠깐만요.”

“그 이어폰은 뭐야? 사격장에 이어폰 가져오고 그런 적은 없었잖아.”

“새로 만든 루틴이에요.”

“루틴같은 건 미신일 뿐이라더니.”

꽤 많은 선수들에게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한수아에게는 지금까지 루틴이 없었다.

“뭐, 노래라도 트는 거야?”

“노래같은 건 아니고. 백색 소음 같은 거요.”

한수아는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에 있는 첫 번째 음성 파일을 열었다.

[네 자세에는 문제가 없다.]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 말고는 모든 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사람. 당당하고, 세상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이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는 정말로 문제가 없는 것일 터였다.

“그럼. 가 볼까요.”

첫 번째 사격 연습에서. 한수아는 근래에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대회 우승하고 나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네.”

한수아는 중얼거리다가 스스로가 우승하지 못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런 자신감도 전염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

“천공 베타 테스트 관련해서 메일 왔던데. 확인하셨습니까?”

강한솔의 질문에 단천은 그냥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니. 굳이 해야 하나?”

“그, 하인라인 쪽에서 제발 제발 제발 제때 확인 좀 해 달라고 해서.”

“무슨 내용이지?”

“천공 베타 테스팅을 시작하고 1주 뒤에 스트리머들과 전 AOS 프로들을 모아서 이벤트 매치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참석해 달라?”

“네. 아무래도 천마님의 경우에는 이번 천공 베타 테스팅의 모션 캡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셨고, 실력파 스트리머중에 손 꼽히는···.”

“손 꼽히는이 아니라 고금제일의.”

“···고금제일의 실력을 가지고 계시기도 하니까요. 여기, 계약서입니다.”

단천은 강한솔이 건낸 계약사항과 계약금을 확인했다. 이럴 때에 돈을 얼마나 받는지에 대해서는 단천이 잘 아는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인라인은 단천에게 목줄이 반쯤 잡혀 있다. 그러니 좋지 않은 조건으로 계약을 내걸었을 리는 없다.

“계약 조건은 최상급중의 최상급입니다. 말씀을 드리자면···.”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네? 하지만···.”

“만에 하나 조건이 안 좋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면 그건 그 때 가서 문초를 하면 되는 부분이니까.”

“······.”

“회사 위치도 알고, CEO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안다. 거기에 내부 사정에 훤한 사람도 두 명이나 있지.”

“그 두 명이 설마 저희입니까?”

그러면? 이라는 표정으로 단천이 강한솔을 바라봤다. 뭔가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법은 멀고 눈 앞에 있는 인간의 주먹은 시속 400km/h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천마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충성 맹세를 하는 강한솔을 향해 단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베타 테스팅 오픈은?”

“오픈일은 내일입니다.”

“빠르군. 생각보다 더 오래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부 정보를 들었는데 지금 트래픽이 천마님 덕분에 꽤 상승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겁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며칠의 최종 테스트가 더 남아 있었지만···

위쪽에서 버그가 다소 있어도 빠르게 테스팅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확실히 노를 저어야 할 때를 아는 게임사라고 할 수 있었다.

“AOS 게임이라.”

천공의 게임 장르는 AOS라고 했다. 게임 장르에 대해서 반쯤은 문외한인 단천도 몇 번은 들어본 방식이 바로 AOS 게임이다.

VR게임이 나오고 나서의 가장 큰 봉우리 두 가지가 바로 AOS게임과 MMORPG 게임이었으니까.

FPS도 나름대로 꽤 큰 시장의 크기를 구가하고 있기는 했지만 AOS와 MMORPG에 비해서는 조금씩 하락세인 것이 사실이었다.

AOS게임 시장은 지금까지에 비해서 더 많은 사람이 경쟁하고, 상위권의 경쟁 또한 지금보다 훨씬 치열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싸워볼 만한 자들이 널려 있다는 뜻이지.”

단천의 입에 즐거움의 미소가 걸렸다.

***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천하

> 천마재림 만마앙복!

> 오뱅무

> 오늘의 방송은 무얼 하실 겁니까?

> 천공 나왔다는데 찍먹하쉴?

> 일단 베타키 받은사람 있음?

> 베타키 받았으면 여기서 방송 보고 있겠냐 ㅋㅋㅋㅋㅋ 게임 하고있지

방송을 켜자마자 채팅창은 ‘천공’의 이야기로 뜨거웠다. 천공 자체도 꽤 매스컴을 타고 있는 데다가 BJ천마는 이미 ‘천공’의 모션 캡쳐의 주인공이기까지 했으니까. 오히려 아무 언급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인 것이다.

물론 단천도 이런 채팅창의 반응에 호응해 줄 생각이었다.

“오늘의 방송은 하인라인 사의 신작인 ‘천공’을 한 번 해 보도록 하겠다.”

> 역시

> 가즈아ㅏㅏㅏㅏ

“하인라인 측에서 베타 키를 제공해 준 덕분에 오늘 바로 게임을 시작해 볼 수 있다. 추가로 베타 키도 꽤 증정받았다. 베타 키는 방송 종료 후 시청자들 중 추첨을 통해 지급한다.”

> 천마님 오늘 잘 생기셨어요!

> 천마 그거 거품 아니냐?

> 언빌리 ‘버블’

“공정하고 투명하기 그지없는 과정을 통해 선별할 테니 아부는 아무리 해 봤자다.”

> 시무룩

> 아 그러면 나도 채팅 안해 ㅅㄱ

> 악성채팅 ON

> 악성채팅 해도 베타키 확률은 똑같아~~~

> 천마님 못생김

단천의 눈이 악성채팅을 치는 시청자의 id를 확인했다. 저 녀석은 일단 베타 키 선정에서 제외다.

[하인라인 ‘천공’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실행한다.”

실행한다는 말을 마치자마자 아찔한 상승감이 온 몸을 잡아올렸다. 마치 온 힘을 다해서 허공답보를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 아찔한 상승감이 끝나자, 단천의 몸은 구름 위에 올라 있었다.

[비어 있는 하늘. 그 위에 서다.]

[천공天空]

“깔끔하군.”

> 깔끔하고 좋네

> ㅇㅈ

깔끔하기 그지없는 오프닝에 호평이 이어졌다. 하인라인 측은 여러 번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영업이익을 새 게임을 만드는 데 투자해 왔다.

물론 게임을 계속 말아먹어 온 것과는 별개로, 기술력은 계속해서 늘어 왔다는 말이다.

즉. ‘게임’은 몰라도 ‘맵씨’는 죽여주게 만드는 데는 꽤 소질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 그래봤자 하인라인 게임인데

> 알맹이가 중요하지

하인라인에게 꽤 당한 경험이 있는 듯 채팅창에 올라오는 부정적인 메시지들.

이 메시지들을 지우는 것은 이제 하인라인 측의 역량에 달린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새 아이디를 만드시겠습니까?]

[code : 천마]

[마스터 계정이 주어졌습니다.]

스트리머들의 홍보 효과를 위해 마스터 계정이 주어졌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통의 아이디라면 스킨과 캐릭터들이 모두 잠김 상태로 주어지는 반면, 계약된 스트리머들에게는 스킨과 캐릭터들이 모두 언락(unlock)된 상태로 주어진다.

이런 마스터 계정을 받는 것은 ‘프로’나 ‘초대형 스트리머’정도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BJ천마도 이제는 초대형 스트리머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었다.

> 와 역시 천마님이라 그런가 대형 스트리머 취급이네

> 당장 지금 시청자만 해도 8만명 넘어갔는데 당연히 대형 스트리머지 ㅋㅋㅋ

> 진짜 성장세 ㄹㅈㄷ네;;

채팅창에서는 딱히 불만은 없었다. AOS 게임의 경우에는 과금을 아무리 많이 해 봤자 캐릭터의 강함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스트리머에게 주어지는 이런 어드벤티지정도로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 일단 캐릭터들부터 구경하러 가자 ㄱㄱㄱㄱ

> 뭔 캐릭터 있는지 둘러보기나 합시다

> ㄱㄱㄱㄱㄱㄱ

“캐릭터 창으로.”

[캐릭터 창으로 이동합니다.]

캐릭터 창으로 이동하자 주변에 백 명이 넘는 캐릭터들이 자세를 취한 채 자신의 무기를 뽐내고 있었다.

실로 만신전萬神殿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모습이다.

물론 단천의 눈에는 캐릭터들이 쥐고 있는 무기들만이 눈에 보일 뿐이었지만.

> 캐릭터 개많네 ㅋㅋㅋㅋ

> 아니 이제 베타인데 캐릭터가 100개 넘어간다고?

> 진짜 칼 갈고 준비한다더니 ㅋㅋㅋㅋ 레전드다 ㅋㅋㅋ

AOS의 다양성은 캐릭터의 다양성에서부터 비롯된다. 캐릭터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배워야할 진입 장벽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의 다양성을 늘려 준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총도 있고, 모닝스타? 방패 같은 것도 있는데?

> 기술 구경부터 합시다

> 진짜 하인라인 여기에 생사를 다 걸었다 ㄹㅇ ㅋㅋㅋㅋ

> 회사 명운을 건 게임 런칭 ㅋㅋㅋㅋ

동서고금의 모든 무기들이 죄다 모여 있는 글자 그대로의 만신전의 중앙에 서서 단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쓰잘데기 없는 무기들이 너무 많군.’

“검색 설정을 활성화할 수도 있나?”

[검색 설정을 활성화합니다.]

활성화된 검색 엔진에는 다양한 검색 조건들이 있었다. 캐릭터의 성별, 스킬, 사거리 등등.

단천이 우선적으로 설정한 것은 물론 무기의 종류와 캐릭터의 세계관이었다.

[냉병기만을 확인합니다.]

[‘무림’세계관으로 캐릭터들을 압축합니다.]

‘천공’에는 캐릭터의 무기뿐 아니라 세계관 또한 존재한다. 단천이 선택하는 것은 물론 ‘무림’세계관이었다.

> 아니 마법도 있고 화기도 있고 신체 변형도 있는데 왜 또 무림임

> 천마님이니까 당연히 냉병기 써야지

> 어허, 냉병기가 아니라 그냥 ‘병기’다

> ㄹㅇ 쇠로 만들어지지 않은 무기들이 근본없는 무기인 것을 ㅉㅉ

채팅창의 반응은 사실 어느 정도는 당연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이제 와서 BJ천마가 다른 무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단천은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훑어갔다.

> 꽤 고민하네

> 평소 천마님이면 바로 그냥 대충 골랐을 것 같은데

> ㄹㅇ 이렇게 고민하는 천마님은 처음 봄

‘고민할 수밖에 없지.’

[플레이어는 고른 캐릭터에 빙의해 한 게임을 치르게 됩니다.]

‘한 게임에서는 고른 캐릭터를 변경할 수 없다. 그리고 ‘빙의’해서 게임을 진행한다.’

즉, 전투에 적합한 몸을 골라야만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

단천은 꼼꼼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캐릭터들 하나하나의 몸을 품평해 나갔다.

“이 자는 팔 길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군.”

“다리에 붙은 근육이 적어.”

“부채 같은 무기를 쓰다니. 사마외도 그 자체로군.”

> 아니 스킬을 보라고 ㅋㅋㅋㅋㅋ

> 세계최초 스킬은 안 보고 몸 평가하는 방송 ㅋㅋㅋㅋ

그렇게 몇십 개의 캐릭터를 지나친 단천은 마음에 쏙 드는 캐릭터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팔의 길이도 좋고, 몸에 붙어있는 근육들도 매우 균형감 있게 잡혀 있다.

“나쁘지 않군.”

[야수도野獸刀 박정]

[무기 : 박도]

우직하기 그지없는 무기를 들고 있는 캐릭터가. 단천의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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