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01화 (101/212)

21. 베타 테스트 (1)

“어떻게 아신 거죠?”

“그 정도도 보지 못한다면 눈에 문제가 있는 게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던데.”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요.”

“몸이 회복이 되고 있는 것과 다르게 실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느낌이겠지?”

“맞아요.”

한수아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이전과 같은 느낌이 사격할 때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격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사격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질감이 계속해서 한수아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런 이질감은 종종 치명적인 실수로 연결될 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런 실수가 없기는 했지만. 언제라도 실수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이대로라면 세계대회에 나간다고 해도 제대로 된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뭐가 문제인 거죠?”

한수아는 단천을 바라봤다. 단천이라면 아마 지금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팔, 다리의 회복이 더딘 게 문제일까요? 자세의 문제? 그게 아니면 균형의 문제? 짚이는 게 너무 많아요.”

“문제는···.”

“문제는?”

“없다.”

“네?”

단천은 말을 마친 다음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문제 없다고. 지금의 너는 자세, 사격 타이밍, 호흡, 그 어떤 것에도 문제가 없어.”

“천마 사부. 그렇게 안 봤는데, 사격 꽤 많이 해 보셨나 보네요?”

“해 본 적 없다.”

“그럼 대회같은 걸 많이 찾아보신 거에요?”

“대회도 본 적 없다.”

“······.”

한수아가 황당하다는 듯이 단천을 바라봤다.

“아니. 사격을 모르시면 제 폼에 문제가 없는 건 어떻게 아시는 건데요?”

“만류귀종이라 했다. 본좌가 총을 쥐어본 적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몸과 정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

대가大家에게는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과 호흡이 있다. 이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에 무엇이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제멋대로인 방식들 가운데서도 공통점은 있다.

지금 한수아의 자세와 단천이 검을 휘두를 자세에서의 공통점처럼.

“네 모든 호흡과 자세는 격발 한 번을 하기 위해서 오롯이 모아진다.”

대가들의 동작은 온 몸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한 번의 동작을 빚어낸다. 한 번의 검격, 한 번의 권격을 위해 온 몸과 영혼이 움직이는 것이다.

지금의 한수아의 동작도 비슷했다.

“그러니 동작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는 것은 정신 쪽이지.”

“···제 멘탈리티에 문제가 있다고요?”

“그래.”

은퇴 직전까지 한수아의 성적은 꾸준히 낙하해 왔다. 인터넷에서의 여론은 악화일로였다. 한수아는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무래도 아예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런 외면적인 문제도 존재했다. 하지만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한수아 스스로가 이전까지의 자신을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부서지는 몸과 낮아지는 성적. 서서히 스스로의 자세와 판단을 믿을 수 없게 되었겠지.”

무인으로서 ‘자신을 믿지 못한다’라는 것은 가장 커다란 심마다. 무도가는 나我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이기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온다면 언제든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이대로면 세계대회에 나간다고 해도 우승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운이 좋아서 우승한다고 해도, 그 이후의 성적들은 기대할 수 없겠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발전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글쎄.”

단천은 잠시 말을 멈췄다. 자신을 믿지 못하게 돼서 결국 다음 벽을 넘지 못하는 무인들을 단천은 수없이 많이 봐 왔다.

그 중에서는 각 문파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장문인이나 십대 고수 반열에 드는 인간도 있었다.

“천마 사부는 뭐 저랑 같은 적 없어요? 자신에 대한 의심이 생겼을 때라던가.”

“없다. 애초에 그런 의심을 왜 가지나? 본좌가 고금제일인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데.”

“···그 자아가 부럽긴 하네요. 진짜 시청자 분들 말대로 몸 안에 패기샘이 있는 거에요?”

자아가 아니라 냉철하기 그지없는 판단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었다.

“결국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네가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는 거다.”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길.”

단천의 말에도 한수아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자세를 믿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었다. 병이 남긴 상흔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 아마 향후 몇 년 간은 이 상흔을 치유하는 데 써야 할 터였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자신의 자세가 틀리지 않다는 믿음을 얻을, 다른 방법이.

자기 자신에 있는 쪼그라든 자존감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줄 방법.

“···그런 방법이 있을 리가···.”

한수아의 눈이 눈 앞에 있는 단천을 바라봤다.

“···있구나.”

“뭐가.”

기묘한 이야기지만 단천이 자신의 자세에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는 순간. 한수아는 정말로 자신의 자세에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한수아가 그 누구보다도. 심지어는 자신보다도 믿을 수 있는 전문가가 바로 단천이었던 것이다.

“천마 사부가 사격은 전혀 모르긴 하지만.”

“본좌는 사격에 대해서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사격 한 번도 안 해 보고, 대회도 본 적 없다면서요!”

“꼭 봐야 사격을 잘 하는 건 아니지.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는 말이 있다. 검을 극한까지 쓸 수 있는 무인이라면 그 어떤 무기도 자신의 몸처럼 다룰 수 있지.”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말대로라면 천마 사부는 전투기 조종도 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만류귀종이니 본좌는 전투기 조종도 할 수 있다. 단지 그런 하찮은 무기를 쓰지 않을 뿐이지.”

“······.”

한수아는 새삼 단천을 말싸움으로는 이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장기를 두고 있는데 장기말을 합체해서 변신로봇을 만들어서 덤벼오는 느낌이랄까.

단천을 말로 이기는 것을 포기한 한수아는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왔다.

“아무튼. 저 좀 도와줘요.”

“도와줘?”

“제 자세를 정기적으로 봐 주시는 거에요. 보고 ‘자세에는 문제가 없다.’ 한 마디씩만 해 주셔도 될 것 같아요.”

“본좌가 왜?”

“에···. 제자니까?”

한수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심각할 정도로 귀찮은 일을 떠맡는다는 표정이다.

“아, 그러지 말고요! 좀 봐 줘요! 1주일에 5분 정도면 되잖아요!”

“5분이 아니다. 자세를 봐 주려면 네가 쏘는 사격장에 직접 가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한 시진 정도는 걸리지.”

“굳이 찾아오실 필요 없이 영상만 보고 조언을 해 주셔도···.”

“그러면 네가 납득할까?”

“그건 아니죠.”

한수아는 단천의 진심어린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냥 인터넷으로 대충 영상만 보고 말하는 ‘괜찮다’라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사격 대회장은 서울 근교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스트리밍을 하는 단천에게 매주 찾아와 달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선을 넘는 부탁이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고민하던 한수아의 머리에 오늘의 방송에서 했던 게임이 떠오른 것은 그 때였다.

“VR게임!”

“VR게임 뭐.”

“VR게임에서 제가 사격하는 자세를 보고 조언을 해 주시면 되죠!”

확실히. VR게임의 자세를 봐 준다면 대회장에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다.

실제 자세와도 꽤나 흡사한 탓에 제대로 된 조언을 해 줄 수 있고. 단순 영상과는 다르게 전체적인 자세를 모두 조망해줄 수도 있다.

‘거기에. 시간이 남는다면 저따위 사격 말고 제대로 된 무기의 위대함을 가르쳐줄 수도 있겠지.’

사격장에서 검도의 위대함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 하지만 VR게임을 한수아가 하고 있다면 검, 창, 도, 박격술, 어떤 것이건 기회를 봐서 가르치기 편리하다.

“나쁘지 않군.”

“미리 말해 두는데, 저는 사격 말고 다른 무기는 절대 안 쓸 거에요.”

“제갈세가의 제갈운 녀석도 처음에는 학우선이 아니면 안 쓰겠다고 바락바락 우겨댔지.”

“제갈뭐시기? 학우선이면, 그 제갈량이 들고 다니는 부채 말하는 거에요? 그딴 걸 무슨 무기로 써요?”

“본좌도 동의하는 바다.”

“심지어 그깟 부채랑 총을 비교까지 하고!”

‘부채나 총이나 무기로서 쓸모없는 것은 비슷한 것 같은데.’

단천은 부채를 휘두르는 제갈운과 한수아가 싸우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백 번 싸우면 백 번 다 제갈운이 이길 게 분명했다.

물론 구태여 이 사실을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그 정도 시간은 내 줄 수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수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다음 날, 훈련을 마치고 온 한수아는 설치가 완료된 VR캡슐에 몸을 뉘였다.

“좋았어.”

한수아는 VR캡슐을 켠 다음 촬영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꽤 가격이 나가는 추가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단천에게 사격 자세를 보내주기 위해서는 촬영이 필수적이었으니까.

촬영을 시작한 한수아는 혼자서 여러 자세를 취하며 사격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이전에 단천의 방송에서 VR게임을 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뭔가 심심하다고 해야 할지. 심심하다고 해야 할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민하던 한수아는 이내 그 이유를 찾아냈다.

“···시청자가 없구나.”

아무래도 혼자서 사격 연습을 하는 건 심심하다. 사격 연습장에서는 코치도 있고, 옆에서 사격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VR게임의 사격 연습 모드에서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

물론 사격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심심한 것은 사실이다.

“으음. 누구 대화할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시청자라던가.”

말을 하던 한수아의 말이 멈췄다. 그래. 시청자 몇 명만 있어도 대화를 할 수 있으니 무료함은 훨씬 덜할 터였다.

한수아의 손이 ‘방송 프로그램’과 ‘익명으로 방송하기’ 따위의 단어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수아는 금방 방송 세팅을 완료했다. 얼굴과 몸 전체를 적당히 가려 주는 토끼 가면의 코스튬도 샀다.

“이제 준비는 거의 다 끝난 건가.”

[방송 준비가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스트리머명을 정해 주세요.]

마지막 스트리머명만이 남았다.

“스트리머명이라.”

한수아는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스트리머명을 적어넣었다.

[익명의 제자 토끼가면]

곧 VR게임계에서 손꼽히는 사격 괴물로 불리게 되는 ‘토끼가면’의 데뷔였다.

물론.

[시청자수

: 0명]

“왜 아무도 안 오지···.”

처음부터 누구나 흥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

[천공 베타테스트 확인했냐?]

[베타테스트 신청 다들 했냐?]

[나 아이디 81개 돌림 ㅋㅋ]

[베타키 받으려고 발악을 하네 ㅋㅋㅋㅋ]

[근데 기대 안 되는건 사실 아님? 애초에 AOS 개발은 다른 나라가 ㅈㄴ 잘하는게 팩트잖아]

[ㅇㅈ 국산이라고 해 봤자 뭐 특이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하인라인 사의 사장실에서 낮은 침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침음의 주인공은 물론 이태흠이었다.

“역시. 호의적인 반응 비율이 높지는 않군.”

“그저 일시적인 현상···.”

“입 발린 말 하려고 하지 말고.”

하인라인 사는 그간 모션캡쳐 게임 시장에서 번번히 실패를 해 왔었다. 게다가 모션캡쳐가 들어가는 VR게임은 한국에서 거의 말라죽어 있는 상태.

그러니 호의적인 반응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전 게임들보다는 훨씬 검색량이 많습니다.”

“거야 BJ천마 덕이 좀 있지.”

줄줄이 게임이 망하면서 무슨 신작을 출시한다고 해도 검색량 증가가 미미했는데. 지금의 ‘천공’의 검색 트래픽은 굉장한 수준이다.

“실수로 유출되긴 했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수? 다키스트 에이지 2를 최초 클리어하자마자 사격 여제인 한수아와의 합방이 이어졌고, 그 합방에서 ‘천공’을 ‘실수로’ 유출한다? 그것도 적절하기 그지없는 타이밍에?”

이태흠이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계획되지 않은 유출이라면 지구 기후 위기도 사기일 터였다.

자신의 인지도와 인기, 그리고 호감도를 이용한 교묘하기 그지없는 바이럴 마케팅.

“그러면 이게 다···.”

“그래. BJ천마의 계획대로인 거다.”

이태흠은 눈 앞에 보이는 검색 순위를 확인하고 있었다.

BJ천마라는 초대형 스트리머의 언급에서 시작된 관심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소위 ‘물이 들어오고 있다.’라는 상황. 게임 흥행은 운적 요소도 많이 탄다.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노를 저어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물이 들어오는데도 노를 젓지 않는다면. 게임사 사장으로서 실격이겠지.”

이 정도로 떠먹여 준다면 이 쪽에서도 뭔가를 해 주는 게 인지상정.

이태흠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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