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99화 (99/212)

20. 하프타임 (3)

> 리드미컬 세이버가 여기서 나온다고?

> 이걸 뉴비 게임으로??

채팅창에서 의문이 터져나왔다. 리듬 게임은 VR게임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꽤 괜찮은 선택지가 맞다. 하지만 리드미컬 세이버는 그 리듬 게임 중에서도 꽤나 오래 된 데다가 그 방식이 마이너한 까닭에 입문용으로는 안 좋다.

게다가 그 흉악한 난이도 때문에 오히려 다른 게임들보다도 더 안 좋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 뉴비 절단식 ONㅋㅋㅋㅋ

> 한수아 VR게임 시작하자마자 접겠네 ㅋㅋㅋㅋ

> 오늘 한 명의 VR게임 새내기가 주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채팅창에서 터져나오는 부정적인 메시지들에도 불구하고

단천은 묵묵히 리드미컬 세이버를 실행했다.

“이 게임은 본좌가 방송을 시작하면 몸풀기 게임으로 자주 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그렇구나. 몸 풀기 게임이면 쉬운 편이겠네요?”

“그렇지.”

> 속지마 거짓말이야

> (천마님 입장에서는) 쉽다

> 천마한테 어려운 게 있기는 함?

[리드미컬 세이버를 실행합니다.]

게임을 실행하자 자주 봐 온 화면이 떠올랐다. 먼저 시범을 보여 주는 게 좋을 터다. 단천은 리드미컬 세이버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해 온 음악인 ‘화양연화’를 실행했다.

“와. 노래 느낌 있네요.”

처음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듣자마자 한수아가 감탄했다. 한수아의 감탄이 흘러나오는 사이에 단천은 검을 들어올렸다.

서걱! 서걱!

단천의 검이 수없이 날아오는 노트들을 유려하게 잘라내기 시작했다.

> 아니 이걸 처음부터 보여주면 어떡하냐고 ㅋㅋㅋㅋ

> 작정하고 뉴비 없애겠단 느낌인데?

> 좌절감 MAX

채팅창에서는 BJ천마의 곡 선정에 불만이 잇따라 올라왔다. 화양연화는 곡 제작자인 유미의 곡 가운데서 최고난이도의 곡으로 악명이 자자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플레이할 곡으로 유미의 곡을 선택한 것 자체도 문제였다. 유미의 곡들 중에서 난이도가 낮은 곡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시청자들은 말도 안 되는 동작들을 본 한수아가 곧바로 리드미컬 세이버에 질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우와아. 재밌겠다.”

한수아의 반응은 시청자들의 생각과 완전히 반대였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탄성을 내지르는 한수아의 눈은 신작 게임을 보며 ‘나도 해 보고 싶어!’를 이야기하는 꼬마의 눈을 하고 있었다.

‘역시는 역시로군.’

평범한 사람에게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동작을 보여주면 으레 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수아는 오성을 타고난 천무지체인 데다가 천무지체 치고도 엄청난 수준의 오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 한수아에게 보여주는 게임의 난이도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것이다.

단천이 아무 생각 없이 당장 오늘 화양연화를 한 번 플레이하고 싶어서 고른 선택이 아니라는 뜻이다.

> 그냥 본인 하고 싶어서 화양연화 고른 거 아니냐?

> 100%지 ㅋㅋㅋㅋㅋㅋ

> 아무튼 재밌어 하니까 다행이네

단천은 대붕의 뜻을 보지 못하는 뱁새들의 말을 무시하며 화양연화의 마지막 동작을 마무리했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단천은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치는 한수아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훌륭하기 그지없는 리액션이다. 마치 처음 단천과 함께할 때의 혈귀단의 반응을 보는 것만 같다.

물론 저런 반응도 처음뿐이고 나중에 가서는 단천이 뭘 하건 심드렁히 넘겨대기는 했지만.

─ 손가락으로 산을 가르신다고요? 지존이면 뭐 당연히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 이 땅이 둥근 걸 직접 하늘에서 보셨다고요? 뭐, 지존이 그렇다면 그러시겠지요?

아니 무슨 고작 이형환위같은 것 가지고 자는 사람을 깨워다가 귀찮게··· 아악! 잘못했습니다! 머리카락만은 뽑지 말아 주십쇼! 아아아악!

‘괘씸한 놈의 자식들 같으니라고.’

시간 있을 때 더 자근자근 조져 놨어야 됐는데. 단천은 진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한수아에게로 다시 관심을 돌렸다.

“본 것처럼 게임 방식은 단순하다. 날아오는 노트들을 검으로 쳐 내면 된다. 한 번 해 보도록.”

“넵!”

> 전형적인 말만 쉬운 사례

> 단순하다고 쉬운 게 아님

> 룰만 따지면 바둑도 룰은 쉽지

[곡이 시작됩니다. 검을 준비해 주세요.]

한수아가 검을 들어올렸다. 처음 검을 들어보는 것이니 자세는 자연스럽게 엉성해야 할 터.

그런데. 한수아의 자세는 나름대로 그 형태가 갖춰져 있었다.

> 자세는 괜찮은데?

> 자세는 일류다

“그거야 천마 사부의 자세를 봤으니까요. 그냥 따라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 그게 그냥 본다고 되는 거냐?

> 개신기하네 ㅋㅋㅋㅋ

> 이게···재능?

한수아의 자세가 저토록 좋은 것은 그녀의 관찰력 덕분이다. 다른 사람의 동작을 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빠르게 체득하는 능력.

저런 것은 가르쳐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곡을 시작합니다.]

곡이 시작되자 한수아의 검이 움직였다.

쉭! 쉭! 쉬이익!

Miss

Miss

Miss

한수아가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는데도 날아오는 노트들은 죄다 멀쩡히 리듬 구간을 지나갔다.

> 엌ㅋㅋ

> 역시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지 ㅋㅋㅋㅋ

“우와. 어렵네.”

“괜찮다.”

단천은 윽박지르거나 화내지 않았다. 단천이 한수아에게 리드미컬 세이버를 시킨 이유는 그녀에게 있어서 무도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지금 한수아는 모든 관심사가 죄다 총을 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그깟 총 같은 것보다 검, 창, 권각술이 훨씬 재밌는데 말이지.’

VR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림에서 사용하는 십팔반 무기들이 얼마나 재밌고 위대한지를 깨닫게 될 터.

그런 점에서 리드미컬 세이버는 무림 입문자에게 첫 선택으로서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 게임은 무엇을 한다. 런닝돌이나 다키스트 에이지도 나쁘지 않지. 레일 서바이버는 총기에 비해서 검이 얼마나 좋은지 알려줄 수 있으니 괜찮고.’

단천이 그렇게 다음 게임을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한수아는 채팅창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거. 총으로는 못 해요?”

> 할 수 있음

> 설정에서 다른 무기 모드로 변환 가능함

> 공식 집계는 안 되긴 하지만

한수아는 채팅창의 가이드에 따라 무기를 바꾸었다. 순식간에 한수아의 손에 원래 들려 있던 검 대신 총이 그 자리를 채웠다.

“오. 바렐로드-D라니. 이거 꽤 구하기 힘든 총인데.”

탕! 탕! 타다당!

Good!

Good!

Perfect!

무기를 바꾸자마자 미스만 뜨던 리듬 노트들이 빠르게 처치되기 시작했다.

“속사 느낌 나서 엄청 재밌네요. 탄창 갈 필요가 없다는 건 살짝 아쉽긴 하지만!”

> 사격 무엇

> 무기 바꾸자마자 격이 달라지네

> 이게··· 재능?

“지금 뭐 하는 거지?”

총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단천이 계속해서 사격하는 한수아를 향해 물었다.

“무기 바꿔서 하고 있는데요?”

“이 게임은 검으로 하는 게임이다.”

“옵션에 총도 있던데요?”

“게임을 만든 사람이 검으로 게임하라고 만들어 놨는데. 그걸 총으로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나?”

“상관없지 않아요? 그냥 깨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거야 그렇지. 그거야 그런 건데.

> (레일 서바이버 광선검만 쓴 사람)

> (다키스트 에이지 직검만으로 클리어한 사람)

> 설득력없는 설득 중

단천과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한수아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노트들을 박살내고 있었다.

“끼야호오오!”

> 겁나 재밌어 보이네

> 걍 흥겨워하는게 눈에 보임

흥겨울만도 하다. 한수아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는 해도 아직 완전히 몸이 돌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격 연습량에도 한계가 있을 터.

VR게임에서의 신체적 부하는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것에 비해서 부하가 극도로 적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사격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하고 있지도 못할 사격을 지금 마음껏 하고 있으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저렇게 즐겁게 사격을 하고 있는 거겠지.

한창 즐겁게 사격을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던 단천이 가볍게 혀를 찼다.

‘오늘은 글렀군.’

저렇게 즐겁게 사격을 하고 있는 사람을 데려다가 무림의 세계로 발을 디디게 했다가는 역효과가 더 클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를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저 손에 들려있는 총을 언젠가는 반드시 없애 버리고 말 것이다.

단천은 총을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며 다짐했다.

[곡이 종료됩니다.]

“후와아. 재밌었다.”

> 진짜 프로는 다르긴 다르네

> 이게 진짜 재능이지

한수아의 플레이가 종료되자마자 채팅창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수아의 리드미컬 세이버의 정확도는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화려한 총 기술까지 더해져 있었으니 이목을 끄는 것은 당연지사.

[한수아팬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총겜도 한 번 가시죠?]

[레서고인물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사격선수 데리고 왔는데 레일 서바이버도 한 번 해야지 ㅋㅋㅋ]

뒤이어 후원도 쏟아져내렸다. 대부분은 한수아가 FPS게임을 하는 것을 기대하는 반응들이었다.

> 확실히 국대급 사격선수 데려왔는데 총게임 하는 거 못 참거든요 ㅋㅋㅋ

“아! 한수아팬님 후원 감사합니다! 총게임도 한 번 해 보고 싶네요! 뭐가 있는진 모르지만!”

한수아가 밝은 표정으로 후원 하나하나에 꾸벅 인사를 했다.

사실 다음 게임으로 다키스트 에이지를 해 볼까 생각했는데. 지금 한수아의 표정으로 봐서는 총 말고 다른 것을 들게 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갔다.

자고로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말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천마 사부. 총 게임? 중에 재밌는 거 뭐 있어요?”

“레일 서바이버라는 게임이 있다. 완전히 총 게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 천마피셜) 레일 서바이버는 총 게임 아니야

> 레서는 완전 순도 100%짜리 총 게임이거든요?

> 누가 들으면 진짜 총게임 아닌 줄 알겠네 ㅋㅋㅋㅋㅋ

“사람들은 총 게임이라는데요?”

“채팅창의 채팅 절반 이상은 낚시다.”

“그렇구나.”

> 낚시 아니라고

> 돌겠네 진짜

채팅창에서 진실의 아우성이 들려왔지만 한수아는 옆에 있는 단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저 총 잘 쏘니까. 총 말고 다른 무기로 덤벼도 이길 수 있거든요!”

“자신감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레일 서바이버를 실행합니다.]

BJ천마가 레일 서바이버를 실행하자 화면이 순식간에 전장으로 바뀌었다.

“우와아!”

> 진짜 반응 하나하나가 소중하네

> 뉴비 그 자체의 반응

> 뉴비 커여워 ㅋㅋㅋㅋ

한수아의 리얼하기 그지없는 반응에 BJ천마의 덤덤한 반응만을 봐 왔던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BJ천마는 무슨 상황에 닥치건 뉴비는커녕 석유 이상의 실력으로 해결해 버리는 것이 다반사였으니까.

그러니 BJ천마의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한수아의 반응은 실로 신선하기 그지없는 뉴비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천마님은 왜 저런 반응 안함??

“전장에 놀라거나 당황한다면 무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 역시 천마님이시다

>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은 어쩔 수 없지

짧게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한 단천은 게임 다음 게임 실행버튼을 눌렀다.

삐빅!

[플레이어 한 명이 플레이타임이 너무 짧습니다.]

[듀오 플레이를 위해서는 ‘한수아’ 플레이어가 10게임 이상을 실행해야 합니다.]

BJ천마의 눈에 아주 작은 당황의 눈빛이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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