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하프타임 (2)
[현재 시청자 수 : 52,883명]
> 그래서 천공은 어쩔 거임?
> 베타 테스트 예약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열었네 ㅋㅋㅋㅋ
게임 ‘천공’에 대한 지대한 관심들이 터져나왔다.
이 타이밍에 하인라인에서 베타 테스팅을 열었다는 건 하인라인 쪽에서도 자신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미 : 하인라인 쪽에서 천공 이야기 조금 더 해 줬으면 좋겠다고 연락 왔어요.]
‘역시나.’
하인라인 쪽에서도 나름대로 타이밍을 보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서유나의 메시지를 확인한 단천은 입을 열었다.
“이번 하인라인 사의 신작인 ‘천공’에서의 ‘무협’세계관의 모션들은 모두 본좌의 움직임을 모토로 잡아 개발되었다. 그러니 무협 세계관의 퀄리티는 기대해도 될 거다.”
> 믿을만함?
> 천마님 겜 하는거 못 봤냐 ㅋㅋㅋㅋ
> 그거랑 모션 캡쳐는 다른 영역이니까 그렇지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에요. 사부. 그러니까 천마님 움직임 진짜 대박이었거든요. 진짜 무림 고수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말대로다.”
“그걸로 끝? 보통 이런 타이밍에서는 제 모션 캡쳐도 엄청 좋았다고 해 주는 게 맞는 순서 아닌가요?”
“본좌는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 단호박 ㅋㅋㅋㅋ
> 천마님한테 입 발린 말 기대하지 마라고 ㅋㅋㅋㅋㅋ
> 그래도 프로 선수니까 총 관련 캐릭터들도 모션 개좋을듯
> ㅇㅈㅇㅈ
“너무해요. 내가 얼굴에 금칠 해 줬는데 이러기야?”
“객관적인 말을 하는 것은 금칠이라고 하지 않는다.”
> 케미 무엇 ㅋㅋㅋㅋ
> 천마님의 패기샘은 오늘도 일한다
BJ천마와 한수아의 대화에 채팅창에서 다시 한 번 폭소가 터져나왔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천마님 너무하지 않아요?”
> 원래 저럼
> 못 바꿈 ㅋㅋㅋ
> 그냥 포기해
“평소에 다른 사람한테도 저러시는구나. 전 또 제가 음료수 빌려먹어서 저한테만 까칠하신 줄.”
“빌려 먹은 게 아니라 제 멋대로 훔쳐 먹은 게지.”
“어차피 VIP 라운지에서 나오는 건 공짜잖아요!”
보통 인터넷 방송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다. 다른 행동을 하는 동시에 채팅창을 보는 것 자체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수아는 능수능란하게 채팅창과 소통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인지도도 최상이기까지 한 덕택에 시청자 수는 계속 올라간다.
초대석으로 부른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었다.
> 둘이 알게 된 썰 좀 자세하게 풀어 주셈
“아. 어, 뭐 다 말해도 된다고 풀렸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할게요?”
“그러도록.”
“모션 캡쳐 하려고 촬영장 도착했는데, 목이 너무 마른 거에요. 아는 사람한테 물어 보니까 VIP 라운지에서 무료 음료수 준다길래. 가서 음료수 빼 먹다가 천마 사부랑 만난 거죠.”
> 근데 아까부터 왜 사부라고 계속 붙이는 거임?
“실제로 도움을 이것저것 받았으니까요. 사부라고 불러도 별 문제는 없죠.”
“본좌는 제자가 되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다.”
“뭐, 허락 하시거나 말거나 제가 그렇게 부르겠다는데. 어쩌실 건데요?”
> 엌ㅋㅋㅋ
> 당당
> 도망쳐 수아야 저 사람은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있어
> ㄱㅊ 보고 있는 눈이 몇만개임
> 천마님은 다른 사람의 눈 따위는 신경쓰지 않으신다···!
> 도망쳐 수아야!!!!
단천은 쯧 하고 혀를 가볍게 찼다. 허락한 적이 없다는 말과는 달리 한수아를 처리할 생각은 단천에게 들지 않았다.
수아에게 달마의 내공심법을 가르쳤으니 본래대로 따진다면 소림에 승적을 둬야 하겠지만. 이곳의 소림에는 제대로 된 무공이 있지 않다.
게다가···.
‘제자라.’
단천은 중원에서 제자를 만든 적이 없었다. 시간 날 때마다 논검을 하는 고수들도 기백에 가까웠고, 거기에 이래저래 고수로 만들기 위해서 가르침을 주는 후기지수들도 수백을 넘어갔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단천은 제대로 제자를 만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젊을 때에는 계속해서 싸워야 했던 탓에 제 목숨 건사하는 데만도 시간이 부족했다.
천마의 위에 오르고 나서는 천마신교의 모든 사람이 경외의 존재로 보는 탓에 제자를 들이기 거북했다.
하늘 위의 하늘로 자신을 생각하는 인간들을 가르치는 것은 단천의 성미에 맞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다고 똥오줌도 못 가리는 꼬맹이를 키우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반면, 이곳에서 단천을 천외천의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저렇게 쉽게 제자를 자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마음대로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쌉!”
“쌉은 뭐지?”
“사부니까 싸부. 싸부를 줄이면 쌉이죠!”
“정정하지. 마음대로 부르지 말고 사부라고 부르도록.”
“싫다면요?”
“팔이 반대 쪽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시켜주는 수밖에.”
“그래도 부르겠다면요?”
“제로콜이 하는 수련을 같이 시켜 줄 수도 있지.”
“그냥 사부라고 부르겠습니다요.”
> 제로콜 고문법 ㄷㄷㄷㄷ
> 제로콜 오늘도 1패
> 제로콜은 그래도 살아간다···.
> 살아(만)간다···
그 이후에는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가 쭉 이어졌다. 대부분은 시청자 쪽에서 궁금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한수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음. 제 근황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질문들도 대부분 같은 것들이고.”
“그래 보이는군.”
단천은 시청자수를 확인했다. 아까 있었던 5만명을 넘어 8만을 바라보기 시작한 시청자 수.
“슬슬 이 정도라면 메인 컨텐츠로 들어가도 괜찮겠군.”
“네? 저희 이야기하는 게 메인 컨텐츠 아니었어요?”
“그럴 리가.”
“헐. 토크쇼 하느라 힘 다 뺐는데.”
> 엌ㅋㅋㅋㅋ
> 개커엽ㅋㅋㅋㅋ
단천은 둘을 비추고 있던 카메라의 각도를 조정해 방 전체를 비췄다.
“저게 뭔지 아나?”
“VR캡슐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래. 저게 왜 두 대나 있을까.”
“···예비용으로?”
“원래는 한 대였는데 오늘을 위해서 한 대를 추가로 받아왔지.”
“어디서요?”
“하인라인사에서 무상으로 지원해 줬다.”
> 저거 하이엔드급 VR캡슐 아님?
> 와 하인라인 통도 크네 ㅋㅋㅋ 저런거 무상으로 지원도 해 주고 ㅋㅋㅋ
> 천마님이면 무상으로 지원받은 게 아니라 수탈해 온 걸수도 있음 ㅋㅋㅋㅋ
> 엌ㅋㅋㅋㅋ
> BJ천마/논란/하인라인사 수탈 논란
> 천마님 해당 논란에 대해 한 마디 말씀 부탁드립니다
> 어떤 과정으로 빌려온 거임?
“중요한 것은 과정이 아니라 VR캡슐이 두 대가 있다는 거다. VR게임은 해 본 적 있나?”
“한 번도 없어요.”
한수아가 단천의 물음에 도리질을 쳤다. 철 들기 전부터 사격만 연습해 왔고 하루종일 운동과 사격을 지속해 왔던 그녀다. 이런 일정 가운데서 VR캡슐을 써 볼 일이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 요새도 VR캡슐 안 써 본 사람이 있네
> 친구 있으면 VR게임 한 판은 하는데 ㅋㅋㅋㅋ
“저도 친구 있거든요?”
> 네 그렇다고 합니다
> 한수아씨 이번 달 친구비 입금 부탁드립니다
“···친구비? 그거 내면 친구처럼 이야기 해 주는 거에요? 고민 같은 것도 들어주고? 힘들다는 징징거림도 들어 주고?”
“그럴 리가 없잖나. 그냥 자주 쓰이는 농담일 뿐이다.”
“나빴어 정말.”
“VR게임 해 본 적 없는 것은 확실한가?”
“네. 확실해요.”
“그거 다행이군.”
한수아가 VR게임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말에 단천의 고개가 만족스럽게 끄덕여졌다.
“오늘의 메인 컨텐츠는 VR게임이다.”
“VR게임이요? 저 해 본 적 없다니까요?”
“그래. 오늘의 메인 컨텐츠는 VR게임의 고이고 고인 본좌가 새내기에게 VR게임은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무슨 게임을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 ? VR게임 고인물?
> 천마님 VR게임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셨잖아요
> 근데 고인물은 맞음
> 아 ㅋㅋㅋ 무슨 게임이건 1초만 하면 고인물과 동등한 실력을 가지게 된다고 ㅋㅋㅋ
> VR게임 고인물(1년 안 됨)
> (공포, 실화) 게임을 시작하기만 해도 고인물이 되는 게이머가 있다???
단천은 능숙한 손으로 VR캡슐을 조정한 다음 한수아를 불렀다.
“자. 누워 보도록.”
“오오. 딱딱할 줄 알았는데 완전 폭신하네요.”
“하이엔드급 캡슐이니까.”
> 캡슐을 대여해준 하인라인에게 감사하십시오
“하인라인이 아니라 본좌에게 감사하도록.”
“천마 사부. 감사합니다.”
> 캡슐 빌려준 하인라인 피눈물 ㅋㅋㅋㅋ
“헤드셋 쓰고, 전원 켠 다음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오오오! 오오! 주변에 뭐가 막 생겼어!”
> 진짜 쌩처음인가 보네 ㅋㅋㅋ
> 뉴비의 신선하기 그지없는 반응 ㅋㅋㅋㅋㅋ
> 천마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 천마 방송 처음부터 봤는데 처음 숨 쉴 때부터 고인물이었음
단천은 호들갑을 떨어대는 한수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캡슐에 몸을 뉘였다.
[캡슐을 실행합니다.]
[미리 지정되어 있는 VR chat으로 진입합니다.]
보통은 캡슐을 실행하면 단순한 검은 화면이 나오고 게임 실행을 하지만, 지금은 함께 게임을 해야 할 한수아가 있는 탓에 VR챗을 시작 프로그램으로 설정해 놨다.
옆에서 호들갑을 떨어대는 한수아도 VR 챗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VR chat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와아!”
VR 챗에 진입하자마자 한수아가 폴짝폴짝 뛰며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봐요! 나비에요!”
“본좌도 안다.”
“진짜 나비같다! 완전 신기해! 이게 VR 게임이구나!”
“VR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게 VR게임 아니에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이곳은 일종의 교차로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무슨 게임을 할 지 정해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오오. 사부! 완전 전문가!”
> 반응 신선한거 봐
> 저게 뉴비지 ㅠㅠㅠ
단천은 손가락을 들어 미리 준비했던 게임들을 쭉 훑었다.
“그래서. 처음 할 게임은 뭔가요?”
> 무슨 게임 함?
> 퍼플 헤이즈 커플겜으로 좋음
> 포탈건즈 듀오 플레이 어떰? 머리 쓰고 괜찮은데
> 요새 제일 핫한게 쿠킹룸임 쿠킹룸 ㄱㄱㄱㄱㄱ
채팅창에서 무슨 게임을 할 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기 시작했다.
무슨 게임을 해야 할 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 첫 게임은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단천은 오늘을 위해서 여러 게임들을 준비해 놨었다. 단천은 강한솔과 김진표가 날밤을 새서 준비해 놓은 게임 목록들을 주르륵 훑었다.
준비한 게임 목록에는 인기가 있었던 게임과 2인용 게임, 난이도 있는 게임부터 신작 게임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는 종류의 게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수아의 VR게임 실력이 명확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수아는 전혀 게임을 모르는 뉴비 그 자체인 상태. 복잡한 게임을 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자칫 알아야 될 게 많은 게임을 시킨다면 재미도 없고, 더 나아가서는 VR게임에 대한 흥미까지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간단하면서도 재밌고, 그러면서도 VR 게임. 더 나아가서는 무기에까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게임.
“역시. 뉴비라면 이것부터 시작해야겠지.”
단천의 손이 설치되어 있는 게임 하나를 바로 실행했다. 단천 자신이 처음 했던 게임이자, 자신있게 뉴비용 게임이라고 추천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
[리드미컬 세이버를 실행합니다.]
리드미컬 세이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