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97화 (97/212)

20. 하프타임 (1)

대주천을 마친 단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트리머에게 있어서 다음 컨텐츠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웹소설 작가가 다음 에피소드를 짜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고민이다.

하인라인의 ‘천공’ 을 다음 게임으로 어느 정도 낙점지어두기는 했지만, 정식 출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는 상황.

중간 시간을 메울 컨텐츠가 필요하다.

무슨 컨텐츠로 메우느냐. 그건 의견을 구하면 된다. 의견을 구할 사람도 바로 옆방에 두 명이나 있으니.

“···그래서. 어떤 컨텐츠가 좋겠느냐고요?”

김태흠과 김진표가 눈 밑의 다크서클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동영상 편집, USB 정보 분석만으로도 이미 하루가 부족한데 컨텐츠까지 생각해 보라니.

갑질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며 소리치며 바닥에 드러눕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얼마 전에 입금된 보너스의 숫자가 너무 컸다. 하인라인에서 보내준 돈과 BJ천마가 선심쓰듯 수고비로 준 돈까지.

“···애니멀팡은 어떠십니까? 요새 제가 심심할 때마다 하는 건데.”

“이런 단순한 퍼즐 게임은 재미없다.”

“블러드문M도 재밌죠. 얼마 전에 귀걸이 강화 키트가 추가됐는데 지금 4만 9천원에 한시 할인 행사 하고 있거든요. 사면 살수록 이득인데 한 계정당 100개밖에 못 사요. 지금 시작 안하면 무조건 손해입니다.”

“···그 게임. 진짜 괜찮은 건가?”

“완전 괜찮습니다.”

고작 귀걸이를 강화하는 데 쓰는 키트가 5만원, 그것도 100개를 넘게 사야 하다니. 일단 저 블러드문M인지 뭔지 하는 게임 쪽은 쳐다도 보지 말자. 단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그다지 쓸모없는 의견들이 많이 오고가던 중.

[저. 저도 말 해도 되나요?]

작업실에서 있던 스피커에서 서유나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처음부터 듣고 있었던 거에요?”

[네. 그냥 사무실에서만 하시는 이야기인 줄 알고 안 끼어들고 있었는데, 재밌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서유나 씨는 뭔가 의견 있으십니까?”

[슬슬 저희 천마신교···도 좀 많이 커졌잖아요? 그러니까 합방이나 초대석 같은 걸 해 보면 어떨까요?]

“그것 나쁘지 않군.”

확실히. 제로콜과 풀창고를 비롯한 대형 스트리머들은 꽤 자주 초대석을 진행하고는 했다. 다른 사람과의 합방은 그 자체만으로도 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으니까.

“근데. 따로 부를 사람 있어요?”

“그야 있지.”

“누구요?”

“풀창고, 제로콜, 정유채.”

“···세 분 다 지금 일정 있어서 바빠요.”

풀창고는 다키스트 에이지 2의 엔딩을 보겠다며 낮밤을 가리지 않고 주구장창 다키스트 에이지 2의 방송만을 하고 있었고, 제로콜도 마찬가지로 레일 서바이버 티어를 올리고 있었다. 정유채는 개인 음원을 낸다는 이유로 바쁜 상황이었으니.

“그냥 오라고 하기는 그렇군. 본좌는 수하들에게 정도 이상의 충성을 강요하는 불의한 자는 아니니까.”

“···근데 왜 저희의 노동시간은 이따위입니까?”

“여러번 말했지만 너희는 본좌의 직속 수하가 아니다. 불만이 있으면 하인라인 측에 말하도록.”

“그럴 수가···.”

팔려온 노예인 강한솔과 김진표의 눈에 이슬이 대롱대롱 매달리는 사이에 단천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합방이라는 컨텐츠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합방을 한다면 메인 게임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자잘한 게임들을 하기도 편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기도 편하다.

하지만 단천 자신에게는 크게 인맥이랄 게 없었다. 단천은 그나마 자신에게 있는 인맥인 단지은을 떠올렸다.

“보통 합방의 조건은 어떻게 되지?”

“합방의 조건이요?”

[합방의 조건은 보통 세 가지에요. 꽤 유명한 사람이거나, 게임이나 특기가 있는 사람이거나, 같은 크루원이거나. 세 가지가 겹치면 더 좋고요.]

‘···일단 누나는 안 되겠군.’

깔끔하게 단지은을 포기한 단천은 다시 생각에 빠졌다. 유명하고, 특기가 있고, 같은 크루. 그러니까 천마신교에 있는 사람···.

“한수아 정도면 괜찮나?”

“그 사격 국대 한수아요? 사격 요정?”

“그래.”

“그 정도 인맥이면 충분하고도 넘치죠.”

“근데 한수아 씨 이름이 갑자기 왜 나와요?”

“아는 사람이니까.”

“···천마님이 한수아 씨를 안다고요?”

강한솔의 눈에서 강한 불신의 눈빛이 서렸다. 뭐, 혹시 납치라도 시도하다 접근금지신청이라도 당했느냐는 눈빛이다.

“아쉽게도 오늘 침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군.”

“···침으로 뭘 하실 생각이신 건데요.”

“사소한 일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말도록.”

아무튼 한수아 정도면 괜찮다는 말이다. 단천은 휴대폰을 꺼내 한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천마 사부가 웬 일로 전화를 했네요! 기사 본 거구나?]

“무슨 기사.”

[저 오늘 사격 대회 있다고 했잖아요.]

“그랬던가.”

[진짜 안 본 모양이네. 내가 그렇게까지 인기 없는 사람은 아닌데. 도대체 왜 신경도 안 써요? 결과도 안 궁금하죠?]

“당연히 우승할 대회에 굳이 신경을 써야 되나?”

[···하여간 말 하나는 잘해. 연락은 왜 하신 거에요?]

“내일. 시간 되나?”

[내일요? 으음, 으으음, 제가 원래 엄청 바쁜 사람인데. 특별히 시간 좀 내 볼게요.]

왜인지 밝아진 목소리의 한수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단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아침에 보내주는 주소로 오도록. 우리 사무실이다.”

[사무실요?]

“그래. 초대 방송을 하려면 사무실에 와야 하니까.”

[그렇군요.]

왜인지 목소리가 살짝 사무적이 된 것 같은데. 크게 문제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

[한수아 국내선수권대회 우승!!!!]

[아니 여긴 인터넷 방송 게시판이라고 너희 게시판 가서 떠들라고]

[어제부터 쟤들 다른 게시판에도 죄다 도배중임 ㅋㅋㅋㅋ]

[은퇴 선언했다가 다시 와서 우승하니까 기쁠만도 하지]

평소에 활발하기 그지없는 인터넷 방송 게시판. 하지만 오늘의 분위기는 평소에 비해서는 다소 한산했다.

근래 가장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던 BJ천마의 다키스트 에이지 2의 공략이 끝난 탓이다.

그 까닭에 평소라면 바로바로 묻히고 말 한수아의 국내선수권 대회 우승에 대한 글조차도 인기글을 먹고 있는 상황.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수아의 우승 소식만이 게시판에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천마 다음 컨텐츠 뭐 할 것 같냐?]

[일단 며칠간은 쉬어가면서 합방같은거 하지 않겠냐]

[ㅇㅇ 그렇겠지]

한수아의 소식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최근에 가장 폭발적으로 시청자가 늘어나고 있는 BJ천마에 대한 이야기, 그 중에서도 BJ천마의 다음 컨텐츠에 대한 이야기도 꽤나 많이 나오고 있었다. 비율로 따지면 거의 절반대 절반쯤이라고나 할까.

[당분간은 BJ천마 방송 좀 쉬어가지 않겠냐?]

[근데 까놓고 할 만한 신작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안정적으로 중간에 할 만한 컨텐츠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라서]

[BJ천마 방송에 한수아 출연한다고 함]

[아니 ㅋㅋㅋ 떡밥 관심도 없는 놈들이 억떡 굴리려고 주제 막 합치네 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ㅋ]

뜬금없이 BJ천마와 한수아가 함께 방송을 한다는 떡밥에 게시판이 비웃음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둘 간의 연관관계라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한 명은 사격만 해 온 사람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VR방송만 하는 인터넷 방송인이다.

그러니 BJ천마의 방송에 한수아가 나온다는 소리가 호응을 받을 리가 없는 것이다.

[여러분의 관심사와 흥미를 빅데이터로 분석하여 가장 높은 조회수를 이끌어낼 만한 제목을 도출했습니다.]

[(대충 생각하는 인공지능 로봇 짤방)]

[AI쉑 ㅋㅋㅋㅋ그냥 조회수 많은거 두개 대충 섞어놓으면 될 줄 아나]

[AI새끼들 사람 따라잡으려면 한참 걸리겠네 ㅋㅋㅋㅋ]

[지구는 인공지능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합니다! 여러분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조롱과 비웃음이 이어지던 중.

[BJ천마 방송 시작함]

스크린샷과 동영상까지 첨부된 글 하나가 올라왔다. 글 안에 있는 [초대석 : 한수아] 라고 적혀 있는 짧달막한 메시지와. 방송 시작을 알려주는 On air라는 다섯 글자까지.

[합성 아니냐?]

[가 보니까 합성 아닌데?]

[진짜 한수아 와 있는데?]

[AI가 맞았던거냐]

[이게 왜 진짜임]

그렇게 인터넷 방송 게시판의 사람들이 혼란해하고 있는 와중에도.

[스트리머 BJ천마의 시청자 수 : 33,082명]

BJ천마의 시청자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

‘꽤 많이 올라가는군.’

다키스트 에이지의 마지막 방송날의 시작 시청자수는

대략 2만 5천명 정도였다.

긴 스토리의 호흡을 가지고 있는 게임의 마지막을 봤으니 시청자수가 떨어지는 것도 어느정도는 상정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시청자가 더 늘어났다.

> 한수아 진짜냐?

> 왜 여기서 눈나가 나와??

> 다키스트 에이지 끝나자마자 한수아 초대석 ㅋㅋㅋ미쳤냐 ㅋㅋㅋㅋ

> 이거 실화냐 ㅋㅋㅋㅋ

그냥저냥 유명한 정도라고만 생각했는데. 한수아는 단천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기가 있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우와. 지금 이게 다 채팅인 거에요? 우와. 우주선 조종석 같은 느낌이네요.”

그렇게 인기있는 사람 치고는 심각할 정도로 활달하게 방송 세팅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기는 했지만.

“방송 시작했다. 자리에 앉도록.”

“아, 방송 시작했어요? 언제요?”

“방금.”

“말 해 주고 방송 시작해야 될 거 아니에요!”

“본좌는 본좌가 방송하고 싶은 순간에 방송을 켠다. 네게 알릴 이유가 없지.”

“아, 안녕하세요 시청자···.”

“천마신교 예비교도들.”

“천마신교 예비교도 분들! 저는 사격선수였다가 은퇴해서 전 사격선수가 됐다가 다시 사격선수가 된 한수아라고 합니다!”

> ㅎㅇㅎㅇㅎㅇ

> 한수아 하이

> 복귀 축하드려요!

> 우승 축하합니다!!!!

채팅창에서 수많은 호응이 터져나왔다. 한수아가 복귀를 선언하고 우승한 뒤 처음 갖는 대외 활동이었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선수들은 우승을 하게 되면 뉴스나 기사에서 첫 대외 활동을 하는데, 이런 방식의 스트리밍을 통해 대외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극도로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천마님이랑 무슨 사이임?

> 둘이 어떻게 알게 됨?

> 갑자기 합방한 이유는 뭐임??

그리고 수없이 터져나오는 질문들. 한수아 입장에서는 악플이 아닌 질문은 실로 오래간만에 받아 보는 것이었다. 선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텐션이 업 될 수밖에 없다.

질문을 본 한수아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오오. 이거 다 질문인 거죠? 대답해도 돼요? 대답해도 되죠? 대답해도 된다고 말해줘요!”

“맘대로 하도록.”

“일단 천마님이랑은 업무상 비밀스런 촬영 때문에 만났어요. 거기서 작업 하다가 친해졌고, 개인적으로 도움도 받아서 이렇게 방송에 나오게 된 거죠.”

> 모션 촬영했네

> 이거 맞는듯???

> 하인라인 신작 모션캡쳐가 BJ천마였냐 ㅋㅋㅋㅋㅋ

> 기대감 미쳤다 ㅋㅋㅋㅋㅋㅋ

“앗! 아앗!”

대답을 한 한수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원래 비밀로 되어 있던 하인라인의 모션 캡쳐가 순식간에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 엌ㅋㅋㅋㅋㅋㅋ

> 비밀엄수 어디?

> 아니 뭐 딱히 비밀엄수 안한 건 아닌데

“···아, 아닙니다! 하인라인사의 신작이랑은 아무 관계 없어요!”

> 귓볼 빨개짐 ㅋㅋㅋㅋㅋ

“뭐. 아직도 공개 안 했었나.”

단천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하인라인 사에서 모션캡쳐로 BJ천마를 사용했다는 것을 숨긴 것은 단천에게 허가를 아직 제대로 구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분명 돌아올 때 본좌로 광고해도 된다고 허락까지 해 줬다. 그러니 언제 풀려도 이상하지 않은 정보란 거지.”

게다가 단천이 한수아를 초대한 시점에서 늦든 빠르든 어떤 식으로든 알려지게 됐을 정보이기도 했었다. 한수아가 천공의 총기류 모션캡쳐를 했다는 것은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니 굳이 알려져야 한다면 자신의 방송에서 정보가 알려져 나가는 것이 이득이다.

‘오히려 좋아.’

> 처음 시작부터 초대형 떡밥 터짐 ㅋㅋㅋㅋㅋㅋ

> 천공 베타테스트 예약 방금 시작함

> 모션 캡쳐가 한수아랑 천마님?? 이걸 신청 안하고 배겨??

> 당장 신청하러 가야짘ㅋㅋㅋㅋㅋ

실제로 방금의 발언으로 시청자수와 채팅의 수도 미친 듯이 폭증하고 있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