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96화 (96/212)

19. 소탕전 (4)

[폭발까지 15초 남았습니다.]

동굴에 들어선 단천은 바로 검을 꺼내들었다. 그람에 세상을 모든 것을 얼릴 것 같은 한기가 맺혀들었다.

쩌저저적!

폭발을 상대하는 데에 가장 효율적인 것은 역시나 빙공이다.

얼음으로 된 벽이 동굴의 입구를 막았다.

> 이걸로 되려나?

> 택도 없을 것 같은데?

> 당연히 안 되지 ㅋㅋㅋㅋ

얼음 너머로 보이는 제이탈로스의 시체는 글자 그대로 위험한 수준까지 커져 있었다.

“어떡해!”

“괜찮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 비상 영약 아니더냐.”

“···비상약? 그런 것도 가지고 다녀?”

“그렇다.”

“근데 비상약이 어디 있는데?”

단천의 눈이 자신의 옆에 있는 드라이오나에 고정됐다.

“비상약이라는 거. 설마 나야?”

“그렇다.”

“······.”

뭐라고 입을 열려던 드라이오나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얼굴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맘대로 해라. 맘대로 해.”

“말 하지 않아도 그리 하려 했다.”

> 해탈한 얼굴 ㅋㅋㅋㅋㅋ

> 자연충전식 배터리는 어쩔 수 없지

> 애초에 죽으려던 거 데려왔으면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단천의 검이 드라이오나의 몸에 있는 자연지기를 빨아들였다.

쩌저저저정!

순식간에 얼음 벽이 이전보다 몇 배는 두꺼워졌다.

“이래야 가지고 다니는 비상 영약의 가치가 있는 게지.”

“내 존재가치는 그냥 비상 영양제일 뿐인 걸까.”

드라이오나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폭발까지 3초 남았습니다.]

“···이제. 뭘 해야 돼?”

“기도라도 해라.”

“기도? 갑자기? 이 시점에 신한테 기도하라고?”

“신은 무슨 신.”

신에게 무슨 기도를 한다는 말인가. 그 자식이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제이달로스를 죽인 것도 단천이고, 드라이오나를 끌고 온 것도 단천이고, 얼음벽을 만든 것도 단천이다.

그러니,

“기도를 할 거면 당연히 본좌에게 하는 게 옳다.”

[제이탈로스의 시체가 폭발합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터져나왔다. 동굴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었다.

거대한 열기에 휩쓸린 몬스터들의 몸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단천이 만들어낸 얼음벽도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벽이 죄다 녹아내릴 거야!”

“침착하도록.”

“뭘 침착해!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신성력은 하나도 안 남았는데!”

“그건 알고 있다.”

드라이오나의 힘을 바닥까지 빨아먹은 것이 BJ천마 자신이었으니까. 드라이오나의 힘을 더 끌어 썼다가는 드라이오나의 생명이 위험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너만 있는 게 아니다.”

단천의 눈이 뒤에서 얼음벽을 바라보는 브라딘과 기사들에게 향했다.

“···주군?”

> 내 거친 생각과

> 불안한 눈빛과

> 그걸 지켜보는 너

> └ 단합력 미쳤네

“걱정 말도록. 죽지 않을 정도로만 내력을 가져갈 테니까.”

단천의 손이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는 추가 보조 배터리들을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

폭발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도 단천이 만든 얼음벽은 견고하게 버텨내는 데 성공했다.

“살아남았군.”

단천은 짧게 중얼거렸다.

“끄어어···.”

“흐으어어···.”

단천의 뒤에서는 내공을 있는 대로 빼앗긴 기사들의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 저게 살아 있는 걸까

> 살아(만)있음

쩌저정! 더 이상의 내공을 받지 못한 얼음 벽이 무너져내렸다. 단천은 바깥을 향해 걸어나갔다. 브라딘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폭발이 끝났습니다.]

[폭발의 종료까지 생존하였습니다.]

[그 어떤 희생도 치르지 않았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 개쩔었다

> ㅇㅈ

> 나도 다에2 사러감

마지막 보스전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채팅창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누군가의 희생을 반드시 동반해야만 하는 것이 다키스트 에이지의 엔딩이었을 터.

하지만 BJ천마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대신 모두와 함께 생존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길을 완벽하게 성공해냈다. 소드아트 사가 준비해 놨던 스토리를 뛰어넘는 플레이를 보여준 것이다.

[다에뉴비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도 이 엔딩 목표로 오늘부터 달립니다. 지금 노스페라투 트라이 하고 있어요!]

> 새싹뉴비라던 놈이 언제 저기까지 고였냐

> ㅁㅊ 웬만한 구정물들도 노스페라투 도착도 못 했는데 쟤는 버럿 도착했네

> 뉴비가···뉴비가 아니게 되어 버렸어!

> 당신이 죽였어!!

“죽기는 무슨. 드디어 사는 법을 알게 된 거지.”

단천은 가볍게 대꾸했다.

[모든 고대신들을 처치했습니다.]

[엔딩 조건을 모두 클리어하셨습니다.]

[엔딩 시네마틱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마지막 엔딩 시네마틱이 시작됐다.

[인간의 시대가 저물었었다. 희망이 없는 시대. 죽음의 시대이며 종말의 시대였다.]

부서진 성벽과 시체들, 시체들을 파 먹는 까마귀들이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종말의 시대는 끝나고, 다시금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전환된 화면이 성 안 여기저기를 비추기 시작했다. 활기찬 시내의 모습,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대장간의 모습, 정령들과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 거기에 훈련하는 기사들의 용맹한 모습까지.

그렇게 온 시내를 비추던 카메라의 화면이 성의 중심에 있는 옥좌로 향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에는 단 한 사람만이 있었을 뿐.]

옥좌에 앉아 있는것은 물론 BJ천마의 모습이었다. BJ천마가 앉아 있는 옥좌 뒤에는 BJ천마를 상징하는 무기. 부러진 직검과 그람. 거대한 두 자루의 검이 꽂혀 있었다.

[무궁한 왕의 영광을 위하여.]

화면이 암전되며 마지막 문구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 크ㅡㅡㅡㅡㅡ

> 미쳤다ㅏㅏㅏㅏ

> 마지막 엔딩 시네마틱까지 지리네 ㅋㅋㅋㅋ

> 아 저거 보고 어케 플레이 참냐고 ㅋㅋㅋㅋㅋ

[미션맨 님이 5,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히든 미션 : 존나 개잘해서 다키스트 에이지 2 엔딩 보기 성공!!!]

[감자서버터졌다 님이 7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흑흑··· 너무 감동적이엇서···.]

[다에2방금샀다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엔딩 퀄리티 실화냐. 진짜 BJ천마는 전설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과 시작된 후원금은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서도 한참동안 이어져 나갔다.

> 엔딩 미쳤다

> 솔직히 이번 엔딩은 천마님도 맘에 드셨을 듯??

> ㅆㄹㅇ이지

단천은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단천의 마음에도 꽤 드는 엔딩이었으니까.

“나쁘진 않았다. 다만.”

> 다만 뭐

“고작 본좌를 왕 따위로 칭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 ㅋㅋㅋㅋㅋㅋㅋ

> 하긴 천마면 왕 위지

> 황제 위지

> 땅 위에는 하늘이 있고 하늘 위에는 옥황상제가 있고 옥황상제 위에는 천마가 있다

“엔딩도 봤으니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다.”

> 오뱅알ㄹㄹㄹㄹ

> 단 한치도 후회없는 방송이었다

> 내 인생 가장 보람찬 8시간(오늘)

> 포브스 선정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일 : BJ천마 방송 시청

평소에는 더 방송을 해 달라고 하던 시청자들이었지만 오늘은 다키스트 에이지 2를 끝내서 그런지 극도로 만족스러운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 게임이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내일 방송을 무엇을 할 지를 예고해야 했다.

“내일 방송은···.”

> 오

> 내일부터는 무슨 겜 함??

단천은 말끝을 흐렸다. 하인라인 사의 신작이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탓이다. 그렇다고 딱히 할 게임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내일 할 방송은 단 하나뿐.

“무슨 게임을 할지 정하는 방송을 하지.”

> 그게 뭐냐곸ㅋㅋㅋㅋㅋㅋ

> 아니 무슨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게임 정하는 걸로 방송을 해 ㅋㅋㅋㅋ

> 열받네 ㅋㅋㅋㅋ

스트리머가 다음 방송에서 앞으로 무슨 게임을 할 지 정한다고 하면 날로 먹는다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하건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워낙 오늘의 방송 자체가 만족스럽기도 했거니와 BJ천마의 마이페이스적인 방송에 적응이 완료됐기 때문이다.

[방송을 종료합니다.]

그렇게 BJ천마의 다키스트 에이지 2의 방송이 끝났다.

***

[방송을 종료합니다.]

“흐음.”

방송은 완전히 종료했다. 하지만 단천은 VR캡슐을 종료하지는 않고 있었다. 지금 단천이 종료한 것은 방송뿐, VR캡슐과 플레이하고 있는 다키스트 에이지 2는 그대로 실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단천이 다키스트 에이지 2를 종료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엔딩 크레딧이 완전히 끝난 후. 화면의 옆에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검은 화면에 검은 글자로 쓰여져 있는. 어지간히 눈이 좋은 사람이라도 읽을 수 없을 정도의 채도 차만이 있는 글자.

[천마재림天魔再臨]

“천마재림이라.”

이런 방식으로 글자를 새긴 이유는 하나뿐이다.

“무림인에게 읽으라고 남겨 놓은 글자겠지.”

다키스트 에이지의 크레딧은 중원에서 온 무림인에게 남기는 메시지. 즉 단천에게 남기는 메시지였다.

“누굴까.”

다키스트 에이지에는 수없이 많은 신공절학이 들어가 있었다. 혈교와 구파일방의 무공들이 모조리 들어가 있는 게임.

이토록 신공절학에 해박한 무림인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더 단천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천마재림’이라는 문구였다.

구파일방, 사흑련, 새외, 혈교. 그 어떤 곳도 ‘천마재림’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단천이 있기 전까지는 척을 지지 않은 곳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바로 천마신교였으니까.

천마재림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오직 천하에 천마신교 하나뿐인 것이다.

“그렇다는 건, 천마신교의 누군가라는 뜻인데.”

머리를 아무리 뒤져 봐도 이 정도로 무공에 정통한 천마신교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단천의 머릿속에는 없었다.

그저 의심스러운 것은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나오는 무공들이 다소 옛스럽다는 느낌이 나는 것 정도.

저 문구를 쓴 인간이 천마신교의 누군가라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누구지.”

누구가 됐건. 저 글자를 새긴 자의 힘은 보통이 아니다. 저 글자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단전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머리를 울려 대고 있었으니까.

저 글을 쓴 자에게 지금의 경지로 덤벼든다면.

반드시 죽는다.

“뭐래.”

단천은 상단전과 단천 자신이 쌓아온 직감을 무시했다.

“지지 않는다. 지금 싸워도 이기는 것은 나다.”

누가 됐건, 어떤 상황이 됐건 이기는 것이 자신이므로. 저 글자 너머에 있는 놈의 자식이 생사경에 들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놈을 찾아가지 않는 것은 그저 놈이 남겨놓은 단서가 너무 빈약해서일 뿐이다.

“그보다 누구지.”

다시 한 번 저 글자를 적은 놈이 누구인지 머리 굴리던 단천은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이렇게 머리를 굴리는 것은 단천의 일이 아니었다.

“하이씨. 진짜 서윤학 이 자식이 진짜.”

서윤학 욕을 다시 한 번 시원하게 내뱉은 단천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지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저 빌어먹을 글자를 남긴 놈이 누군가가 아니다.

‘상단전이 이렇게 발광을 하는 것은 좋든 싫든 놈과는 언젠가 한 번 만나게 된다는 뜻.’

단천은 그렇게 딱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만났을 때 놈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

“···그보다 내일 방송은 뭘 한다.”

···그리고. 내일 방송에 무엇을 할 지를 고민하는 것까지.

단천은 그렇게 딱 두개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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