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소탕전 (3)
“인간 따위가 오만하기 그지없군.”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 머저리보다는 낫지.”
화아아악!
제이탈로스의 몸에서 세 종류의 기운이 BJ천마를 향해 쏘아졌다. 단천은 검을 가볍게 휘저었다.
휘릭!
파리를 쫓듯 가벼운 휘저음이었는데도 제이탈로스의 기운이 순식간에 소멸되어 버렸다.
고수들간의 싸움에서 기공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 이런 부분 때문이다. 내력 소모는 극심한데도 상대에게 그 어떤 데미지도 입힐 수 없는 것이다.
> ??
> 방금 어케한 거임?
> 미친 ㅋㅋㅋㅋㅋ
‘괜히 화룡비상이 잡기인 것이 아니지.’
“보다시피 사술이나 잡기는 결국 제대로 된 무 앞에서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천마교도들도 저런 잡술따위는 배울 생각 말고 제대로 무기를 쓰는 방법을 배우도록.”
> 아니 방금 그거 어케 한 거냐고요
> 가르쳐주고서 쓸모 없다고 해 ㅋㅋㅋㅋ
단천이 기공을 흩어버리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지만, 제이탈로스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드득!
제이탈로스의 몸통에서 두 쌍의 팔이 돋아났다. 세 쌍의 팔에는 제각각의 무기들이 들려 있었다. 금강저와 창, 그리고 창.
“그래도 뇌는 있는 모양이군. 잡기가 아니라 무기를 든 것을 보면.”
영락귀도 처음에 잡술을 써 대더니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단천에게 덤벼들었었다.
쉬이익!
세 종류의 무기들이 BJ천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세 종류의 공격 모두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토록 커다란 힘을 상대로 정면으로 맞받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천은 정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병장기들이 동시에 부딪히며 폭음이 터져나왔다.
[체력이 낮습니다.]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낸 탓에 한 순간에 체력이 바닥났다는 메시지가
“멍청하기는! 나의 힘을 정면으로 맞받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물론.”
“버러지같은 놈!”
제이탈로스의 세 무기가 엄청난 속도로 BJ천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카가가가강!
BJ천마의 검은 공격을 막아내기에만도 급급했다.
> ㅅㅂ
> 공격속도 무엇
> 아니 저걸 어케 깨냐고 ㅋㅋㅋㅋㅋ
> 막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아치는 공격들. BJ천마의 몸이 연신 뒤로 밀려났다.
> ㅈ망 ㅋㅋㅋㅋ
> 아니 패기 부리더니 이게 뭐냐고
> 난이도 미쳤네 진짜
채팅창에서도 반쯤 패닉에 빠진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천은 그저 검을 들어 몰아치는 공격을 막고, 막고, 막아냈다. 곧장이라도 공격을 허용해 쓰러질 것 같은 BJ천마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고 있었다. 실제로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BJ천마는 해일처럼 몰아치는 제이탈로스의 공격에도 단 한 번도 정타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계속 막기만 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이냐! 네놈은 죽기 전까지 내 몸을 스치지도 못할 것이다!”
> 개띠껍네
> 근데 이렇게 막기만 한다고 해서 뭐가 되냐?
> ㄹㅇ; 그냥 데미지 누적되면 뒤지는 거 아님?
가면 갈수록 회의적인 의견들이 채팅창에 올라오고 있을 때.
푸욱!
처음으로 BJ천마의 검이 제이탈로스의 옆구리에 박혀들었다.
“···!”
당혹스러워 하는 제이탈로스의 얼굴 너머로 BJ천마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왜 그러지? 죽기 전까지 몸을 스치지도 못한다며?”
“운이 좋았군. 운이 좋은 건 한 번 뿐이다!”
“운이 좋은 건지 실력이 좋은 건지는, 계속 지켜보면 알 테지.”
“뒈져라!”
제이탈로스의 거친 공세가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미친 듯한 공세가 이어지고, BJ천마는 급급히 공격을 막기만 한다.
그리고 한 순간, 반격을 허용한다.
푸슉!
“운이 두 번이나 좋았나?”
“······.”
제이탈로스의 눈에 핏줄이 곤두섰다. 다음 번도, 그 다음 번도, 제이탈로스는 미친 듯이 공세를 퍼부었지만 결국 처음 제대로 된 공격을 적중시키는 것은 BJ천마 쪽이었다.
게다가.
> 근데 가면 갈수록 공격 성공시키는 시간 짧아지는 것 같지 않음?
> ㅇㅇ 첨엔 한 30초 걸렸는데
푸슉!
지금은 역공을 성공하는 데에 채 10초도 걸리지 않고 있었다. 물론 제이탈로스의 몸은 고대신의 것. 신체가 가진 재생능력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탈로스의 몸에는 희미한 상처들이 늘어나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빌어먹을 새끼가!”
“네 멍청함을 남의 탓을 하지 말도록.”
푸확!
이번에는 첫 초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BJ천마의 검이 제이탈로스의 몸을 베어갈랐다.
“···!”
“네놈이 왜 지고 있는지. 모르겠지.”
단천은 제이탈로스. 아니, 영락귀를 향해 말했다.
혈교의 교주인 영락귀는 강하디강한 무인이었다. 영락귀와 대면했을 때. 단천은 고작 절정과 화경 사이에 겨우 발을 디딘 무인이었을 뿐이다.
영락귀는 원래대로 단천과 싸웠다면 단천이 이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던 무인이었다.
하지만 놈은 더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에 다른 두 영혼을 자신의 영혼과 융합했다.
세 명의 현경의 고수의 영혼.
그러니 고작 절정의 고수를 이기는 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을 터다.
푸화아아악!
이제는 제이탈로스가 움직이기도 전에 BJ천마의 검이 움직이고 있었다.
단천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이제는 내공을 쓸 필요도 없었다.
놈의 패인은 현경의 고수들을 먹어치우면 자신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점이었다.
무학武學의 방향은 제각각의 무공이 다르다. 강함을 이야기하는 무공과 유함을 이야기하는 무공이 동시에 세상에 존재한다. 쾌속함을 답이라고 내놓는 무공과는 반대로 느림을 답이라고 내놓는 무공또한 존재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학들은 서로 모순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정답인가?
‘그건 스스로가 찾는 수밖에 없지.’
무도武道의 답은 무인 스스로가 내리는 것이다. 한 사람이 내린 답은 오롯이 그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해답이다. 설령 같은 무공을 같은 사부 아래에서 수학하더라도 서로가 얻은 해답은 미세하게 다르다.
그러니 타인의 영혼을 빼앗아 취한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타인의 해답을 그대로 취하려는 것은. 강해지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지금까지 이뤄온 모든 무학을 부정하는 길.
“도대···ㅊ···ㅔ···. 어떻게···.”
자신이 패배한 이유라도 알려 달라는 듯한 제이탈로스의 표정. 단천은 대답 대신 제이탈로스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푸화악!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한 제이탈로스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말해 봤자다. 네놈은 영원히 알지 못하는 길이니.”
[제이탈로스를 처치했습니다.]
[모든 고대신들이 처치되었습니다.]
[엔딩의 조건이 모두 성립되었습니다.]
“간단하군.”
단천은 검을 납검했다. 모든 고대신들이 처치됐으니 이제 엔딩만 보면 된다.
단천은 후련한 표정으로 엔딩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엔딩은 떠오르지 않았다.
> 엔딩 왜 안 뜸?
> 뒤에서 뭐 이상한 소리 나고 있는데요?
> 저거 뭐임
구그그극!
“···이게 무슨 소리지?”
뒤를 돌아보자 조각난 제이탈로스의 몸이 계속해서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제이탈로스가 삼켰던 고대신들의 힘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 : 3분]
단천의 눈이 계속해서 부풀어오르는 제이탈로스의 몸을 바라봤다. 1초가 지날 때마다 제이탈로스의 몸은 거의 두 배씩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저게 뭔데. 영락귀의 몸은 터지고 그런 적 없었는데.
고고고고!
한 눈에 보기에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제이탈로스의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폭발의 위혐 반경은 1km입니다.]
[폭발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피하십시오.]
단천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쳤다. 혼자서 이런 폭발에서 살아남는 정도야 몇 번이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험 반경이 1km나 된다면 기사단이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컸다. 지금의 단천에게는 기사단을 모두 지킬 정도의 내공이 없다.
“흐음. 낭패로운 얼굴이군.”
단천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들려온 목소리. 드라이오나였다.
“이 정도 폭발이라면 내 모든 힘을 동원한다면 막아낼 수 있다. 물론 나는 죽어야 하겠지만. 하지만 괘념치 마라. 정령에게는 죽음 또한 자연의 섭리이니.”
[드라이오나와의 호감수치가 높습니다.]
[드라이오나가 자신을 희생한다고 말합니다.]
> 오
> 뭐야
> 희생정신 ㅁㅊㄷ
> 드라이오나 눈나ㅠㅠㅠㅠ
드라이오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제이탈로스의 시체에 손을 올리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아니, 불어넣으려고 했다.
퍽!
단천의 발이 드라이오나의 손을 걷어차지 않았으면 그랬을 것이다.
“아악! 뭐야! 뭐 하는 짓이야! 왜 남 팔을 걷어차!”
“헛소리 하지 말고 도망칠 준비나 하도록.”
“뭘 도망쳐! 내가 희생하면 제이탈로스의 시체가 터질 수 없게···!”
단천은 드라이오나의 말을 무시한 채 드라이오나를 어깨 위에 걸치고 왕궁의 출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아니 본인이 희생하겠다는데 납치 무엇
> 이거 맞냐 ㅋㅋㅋㅋㅋ
“야! 뭐 하는 거야!”
“희생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는 본좌의 수하가 아니다. 본좌의 수하라면 희생같은 너절한 선택지따위는 없다. 오로지 모조리 함께 사는 선택지 뿐이다.”
“난 원래부터 네놈 수하가 아니야!”
“그건 네 선택이 아니다.”
“무슨 개소리야! 놔아아아! 난 네놈 수하가 아니라고오오오!”
> 제로콜 2호기 ㅋㅋㅋㅋㅋㅋ
> 그게 선택이 되는 거였으면 제로콜도 천마신교 안 들어갔지 ㅋㅋㅋㅋ
단천은 빠르게 왕성의 입구를 향해 달렸다.
혼자라면 물론 다른 선택을 했었을 수도 있었다. 단천은 신화경에 오른 뒤에 핵폭탄과 싸울 방법을 찾아 헤메였으니까.
하지만 타인의 목숨까지 건 채로 폭탄과 싸우는 것은 사양이다.
‘그보다. 지구에서는 핵폭탄이랑 싸워 볼 기회가 있으려나.’
아쉽게도 신화경을 이뤘던 중원에서는 핵폭탄과 싸워보지 못했었다.
─ 지존. 이 핵폭탄이라는 물건. 대체 뭡니까?
─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원자란 게 있는데, 그걸 잘라내면 엄청난 힘을 낸다고 하신 겁니까? 허허, 허풍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십니다그려. 아무튼, 이걸 왜 저한테 보여 주시는 겝니까?
─ ···지금 이걸 저보고 만들라고 하신 겁니까? 제가 그딴 허무맹랑한 물건을 어찌 만듭니까! 안 되면 되게 하라니! 사이비에 넘어가셔서 뭘 만들라 하셔도···! 아아악! 천마대! 천마대애애액!
서윤학이 조금만 더 성실했더라면 핵폭탄을 어떻게 상대할지도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서윤학의 나태 탓에 단천의 호기심은 결국 해결되지 못했었다.
단천은 임무방기와 근무태만의 화신 그 자체인 서윤학을 떠올리며 제이탈로스가 있는 왕궁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야! 놔아악! 놓으라고오오!”
왕궁을 벗어나자 기사들이 몬스터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싸우고 있었다.
“사망자는?”
“없습니다. 그보다 고대신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모두 처치했다. 곧 이 주변이 모조리 폭발에 휩쓸릴 테니 이탈하도록.”
“갑자기 폭발이요? 무슨 폭발···.”
구구구구궁! 콰득!
질문을 이어나가던 브라딘의 얼굴이 왕궁을 비집고 나오는 시체의 크기를 보더니 파랗게 질렸다.
“모두 성을 벗어나라! 곧 폭발이 시작된다!”
“뛰어! 뛰어라!”
거대한 제이달로스의 시체를 확인한 기사단 전체가 너나할 것 없이 성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복잡한 성 내부의 상태와 길을 가로막는 몬스터들과 뒤엉켜서 퇴각이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폭발까지 30초 남았습니다.]
지금 이토록 많은 짐덩이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막돼먹은 놈아! 처음부터 내가 폭발을 막게 놔 뒀으면 이럴 일 없잖아!”
드라이오나의 근거라고는 조금도 없는 남 탓을 무시한 채 단천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가까운 곳에 수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동굴이 보였다.
“저 동굴로 들어간다.”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맞서 싸우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