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소탕전 (2)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던 BJ천마의 몸이 떨어져내린 곳은 거대한 덩치의 트윈 헤드 오우거 위였다.
부웅!
트윈 헤드 오우거의 방망이가 BJ천마의 몸을 노렸지만, BJ천마는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 가볍게 공격을 피해냈다.
공격을 피해낸 BJ천마의 검이 트윈헤드 오우거의 머리통에 떨어졌다.
촤아악!
충분한 속도로 인해 만들어진 가속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흉기가 된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져내리며, 떨어져내리던 BJ천마의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탁.
완전히 속도가 줄어든 단천의 몸이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 내가 지금 뭘 본 거임
> 진짜 플레이 할때마다 뭐 신기한 게 튀어나오네 ㅋㅋㅋ
“이런 상식도 모르는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릴 때에는 무언가를 베어서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면 착지하기 편하다.”
> 그딴 상식은 어디서 배워먹음
> 천마류 상식 ㄷㄷㄷ
> 사실 난 알고 있었음
> 나도
> 저 정도는 상식 아니냐?
> 이게 채팅창이냐 허언증 갤러리냐
> ‘천마신교’입니다만?
확실히. 천마신교의 교도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이긴 했다.
바닥에 착지한 BJ천마를 뒤이어 스컬 윙들이 바닥으로 낙하를 시작했다.
크르르륵!
카아아!
몬스터들의 입에서 거친 울음소리들이 터져나왔다.
공중을 바라보던 몬스터들의 손에 제각기 활과 투창이 들려 있다.
놈들의 무기는 떨어져 내리는 스컬 윙을 조준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표적이었던 BJ천마와는 달리 스컬 윙은 조준하기 딱 좋은 크기의 표적이니까.
“이래서 그냥 떨어지는 게 편한 것인데. 구태여 스컬 윙을 타고 내리다니.”
> 아니 그건 너만 되는 거라고
> 평범한 사람은 높은 데서 떨어지면 죽어요
> 기만 개열받네
> 어허 사람이 높은데서 떨어지면 죽는다는건 천마님한테는 상식이 아닙니다
> 상식이 아니면 모를 수 있지;
> ㅇㅈ;;;
단천은 가볍게 혀를 차며 공격을 준비하는 몬스터 무리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놈들의 시선은 이미 공중에서 강습하는 스컬 윙에게 고정되어 있는 상황.
그러니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칼로 무 베는 것보다 쉬웠다.
서걱!
한 번의 검격에 공중을 조준하던 몬스터들의 머리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뒤이어 스컬윙이 그 어떤 상처도 없이 착지했다.
그워어어어!
침입자를 확인한 몬스터들이 울부짖으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로 간담이 서늘할 만한 몬스터들의 포효.
하지만, 스컬 윙에서 내린 것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우오아아아아!”
몬스터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거대한 포효가 기사들에게서 맞서 터져나왔다. 몬스터들의 것보다 몇 배는 우렁차고 커다란 포효였다.
> 인간과 몬스터의 싸움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 그냥 몬스터vs몬스터같은데
[몬스터vs와일드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몬스터들은 포효를 통해 자신의 영역임을 다른 몬스터에게 드러냅니다(다큐멘터리 풍으로)]
> 자연스러운 다큐멘터리 침투 무엇
> 침투능력이 전성기 인자기급 ㄷㄷㄷ
> 근데 지금 하고 있는 거 잠입 아니었냐? 저렇게 소리질러도 됨?
“주군. 잠입 중에 저렇게 소리지르는 건···.”
“된다. 잠입 중에 자주 벌어지는 일이지.”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까.”
“그렇다. 정 뭣 하다면 본좌가 허가하지. 마음껏 소리지르도록.”
> 된다고 하시네요
> 천마님이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 천마님이 허락하셨다!!! 소리질르어어어어!!
“우랴아아아아!”
“으아아아아!”
“그아아아아!”
허락이 떨어지자 기사들의 입에서 연이어 포효가 터져나왔다. 거대한 포효에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절로 뒤로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 질린 표정 ㅋㅋㅋㅋ
> 몬스터들도 표정 있구나
> 나도 처음 암 ㅋㅋㅋㅋㅋㅋㅋ
분명히 적진의 중심에 떨어져내린 탓에 완전히 포위되어 도망갈 곳이라고는 전혀 없는데도. 기사들의 안광은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패배라고는 아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모습에 되려 몬스터들이 공포심을 느낄 지경이었다.
> 천마님이 우리 편인데 질 거라고 왜 생각하냐고
> 느그집에는 천마 없제잉?
> 천마님이 같은 편에 없어?
> ···죽어야겠지?
단천은 저 멀리 보이는 내성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게임 상으로도 흉흉한 아우라가 내뿜어져 나오고 있는 장소. 왕좌가 있을, 내성의 중심지.
‘저기군.’
단천의 손가락이 내성의 중심지를 가리켰다.
“돌격.”
“우라아아아아!”
단천의 명령 한 마디에 기사들이 해일처럼 돌진해 나갔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몬스터들이 추풍낙엽처럼 흩어졌다.
단천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어진 길을 여유롭게 걸어나갔다.
“이래서 수하가 있는 게 편하지. 잡일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말이다.”
> 몬스터 잡는게 잡일이냐
> 아니 하나하나가 중간보스급 몬스터들인데 ㅋㅋㅋ 잡일 취급 ㅋㅋㅋ
> 팩트) 실제로 BJ천마에게는 잡일이 맞다
단천은 단 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왕궁의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홀로 가시는 겁니까?”
“본좌가 남은 고대신들을 죽이는 동안 바깥에서 호법을 서도록.”
“나오셨을 때.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남아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본좌가 놈들에게 패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재밌는 농담이시군요.”
킬킬대는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레헬름 협곡 왕궁」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경고 : 내부에 있는 보스들의 능력치가 매우 높습니다!]
[경고 : 부활 지점과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해당 지점에서 사망하실 경우, 게임 오버가 됩니다.]
내부의 난이도가 어렵다는 메시지와 사망했을 때 영구적인 게임 오버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메시지가 동시에 떠오른다.
> 이거 깨면 게임 클리어냐?
> ㅇㅇㅇㅇㅇ 그렇겠지
> 누구는 밸패 기다리고 있는데 누구는 엔딩 보기 직전이네
> 아 꼬우면 너도 잘하던가 ㅋㅋㅋㅋㅋ
> 근데 부활 지점이 없음?
> ㅇㅇ 1 하면서도 부활지점 거의 안 찍고 했었잖아
> 혹시 모르는데 부활 지점은 찍고 하지?
> 첫트니까 부활지점은 찍고 하자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꽤나 많이 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BJ천마가 여기서 게임오버를 당한다면 다시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모두 처음부터 해야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부활 지점을 찍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단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부활지점 따위는 필요없다.”
단천은 언제나 당연히 이긴다는 전제 하에 모든 싸움을 임해 왔다. 천마신교에서도 그렇고, 혈교와의 전쟁에서도 그렇고, 거의 모든 전투는 생사의 갈림길과 함께하는 길이었다.
무인이 가장 강한 것은 죽음이 걸려 있는 순간이다. 한 번의 생, 한 번의 검, 한 번의 무, 그리고 한 번의 죽음.
‘뭐. 진짜 죽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여기서 패배해 죽는다면 단천은 다키스트 에이지 2를 이어서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각오로 지금까지 게임을 해 왔다.
그러니 부활지점 같은 것은 어떤 의미도 없는 것이다.
단천이 손을 문에 가져다대자 다시 한 번 경고문이 터져나왔다.
[경고 : 부활 지점과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해당 지점에서 사망하실 경우, 게임 오버가 됩니다.]
“상관없다. 입장한다.”
[「레헬름 협곡 왕궁」에 입장합니다.]
***
왕궁 안은 폐허 그 자체였다. 단천은 무덤덤하게 검을 꺼내들었다.
> 왜 벌써 칼 들어올림?
“적이 지척에 있으니까.”
단천의 말이 끝나는 순간, 단천의 검격 끝자락에 남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 어케 안 거임 ㄷㄷ
“정면에서 움직이는 공기의 기류가 미묘하게 달랐으니까.”
> 그런 걸로 알 수 있냐?
> 죄송한데 박쥐세요???
이 정도 모습을 숨기는 은신은 상단전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왔는가.”
[폭식의 왕 제이탈로스]
제이탈로스의 모델링을 본 단천의 눈이 가볍게 꿈틀댔다. 오만하고 방탕한 눈빛과 몸을 치장하고 있는 인간의 뼈와 해골들까지.
‘닮았군.’
제이탈로스의 모습은 단천이 기억하는 혈교의 교주. 영세지존 영락귀와 완전히 같았다.
놈에게서 퍼져나오는 극도로 흉흉한 살기殺氣까지 제대로 표현되고 있었으니까.
“···무서워.”
부르르.
단천의 어깨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드라이오나였다.
“아직 도망 안 갔었나.”
“나는 정령의 여왕이다. 증오스러운 고대신들의 마지막을 당당하게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어.”
“당당하고 싶다면 몸이나 떨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시끄···러워···.”
자신이 있는 곳은 영락귀의 살기가 그대로 꽂히는 장소다. 자연지기인 드라이오나는 당연히 질릴 수밖에 없는 위치.
그런데도 불구하고 드라이오나는 도망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 나름대로의 긍지인 것이리라.
단천은 어깨에서 바르르 떠는 드라이오나를 떼어내 저 멀리 던졌다.
“거기서 구경이나 하도록.”
“내 걱정은 해 줄 필요 없···.”
“몸을 그렇게 떨어대면 검 움직임에 방해가 된다. 그러니 찌부러져 있어.”
“······.”
> 배신자에 이어서 짐짝 취급 ㅋㅋㅋㅋ
> 배신자에서 짐짝이면 취급 엄청 올라간 거 아니냐?
> 경) 드라이오나의 짐짝 승급을 축하합니다 (축
드라이오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단천은 드라이오나의 떨림이 멎은 것을 확인한 다음 제이탈로스에게 물었다.
“나머지 두 마리는?”
“아아. 이 쓰레기들 말인가?”
바닥에서 솟아오른 뼈에 두 구의 시체가 매달려 있었다.
[악몽의 끝 아자젤]
[이미 사망한 몬스터입니다.]
[역병의 신 리칸투스]
[이미 사망한 몬스터입니다.]
> 뭐임
> 둘은 왜 벌써 죽어있는 거임?
“놈들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서인가?”
“잘 아는군.”
“그런 놈을 이미 본 적 있거든.”
혈귀대와 혈교의 전쟁의 마지막도 이랬다. 단천의 압도적인 무위와 귀계신산 서윤학의 형세 판단으로 혈교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무너져가는 혈교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세 명의 고수가 바로 혈교의 교주였던 영락귀와 두 호법이었다.
영세지존 영락귀는 혈교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랬듯이 피에 미친 괴물이었다. 자신을 평생을 보필해 온 두 호법을 죽이고, 그 영혼을 자신의 머릿속에 쳐박아넣을 만큼.
우드득! 드득!
제이탈로스의 몸이 이리저리 뒤틀려올랐다. 세 종류의 흉악하기 그지없는 사기邪氣가 한 덩어리가 되어 온 주변을 휩쓸어올렸다.
> ㅅㅂ
> 망했는데?
> 아니 한 마리씩 상대해야지 왜 갑자기 합체를 하냐고
“크큭. 전부 네놈 덕분이다. 그리도 의심 많던 두 놈의 힘을 네 덕분에 취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제이탈로스의 광소가 왕궁 전체를 메아리쳤다.
현경에 오른 고수 두 명의 힘을 취한 현경의 고수. 영락귀는 세 현경의 고수의 힘을 얻은 자신이야말로 신화경에 올랐다며 광소를 터트렸었다.
“나의 힘은 이제 신의 영역에 올랐느니라! 인간인 네놈 따위는 범접할 수 없다! 이 세계는 나의 것이다!”
“어떻게 하는 말조차도 이리도 똑같은지.”
“그게 무슨 소리지?”
“이런 쉬운 말도 못 알아듣나.”
제이탈로스의 질문에 단천은 무표정하게 검을 고쳐잡으며 답했다.
“고작 신의 힘 따위로는 본좌를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