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소탕전 (1)
끼에에엑!
고블린 한 마리가 병사의 창에 맞아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어제까지는 고블린에게 사냥당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그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상황인 것이다.
구태여 손을 쓸 이유는 없었다. 병사들만으로도 패주한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 데다가, 중형 이상의 몬스터들은 기사단이 처리를 하는 까닭이다.
“수레바퀴보다 작은 몬스터들을 우선적으로 처치하도록.”
> ?? 반대 아님?
> 천마님 말씀이 이상한데요
> 수레바퀴보다 큰 몬스터들은 다 죽여야지;
> 작은 놈들을 죽이면 어떡해 ㅋㅋㅋㅋㅋ
단천의 말에 채팅창에서 갈고리가 터져나왔다.
“이상할 것 없다. 수레바퀴보다 작으면 도망치면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니 작은 놈들을 우선 사냥하고, 수레바퀴보다 큰 놈들은 그 다음에 사냥하는 것이 옳은 순서인 것이다.”
> (경악)
> 진짜 상상도 못한 논리네
> 칭기즈 칸도 경악할 발상;;
채팅창에 BJ천마의 논리력에 감탄하는 천마교도들의 채팅이 이어지는 동안, 단천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봤다. 저 멀리에 어렴풋이 협곡이 보이고 있었다.
“저곳인가?”
“그렇습니다.”
세 고대신이 도망쳐서 최후의 저항을 위해 도착한 곳이 바로 저곳에 보이는 레헬름 협곡이었다.
[레헬름 협곡은 지형적으로 최고의 방어 거점이며 과거 인간들의 시대. 마지막까지 인간들이 저항했던 최후의 요새다.]
풀창고의 설정집에 있던 내용처럼 실제로 과거에 인간들이 저항했던 성벽과 해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간의 마지막 저항이 있었던 곳에 고대신들을 섬멸하기 위해 오다니. 감개가 무량하군요.”
브라딘이 감상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협곡에 있는 성을 바라봤다.
“슬슬 끝이 다가오고 있군.”
도망친 몬스터들은 빠르게 섬멸되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중심이 되는 고대신들을 모두 처리한다면 더 이상 몬스터가 인간들을 위협하게 될 일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엔딩이겠지.’
> ㅅㅂ 이걸 며칠도 안 돼서 엔딩을 본다고?
> 밸패 되기도 전인데 혼자 독주해서 엔딩 보려고 하는 중 ㅋㅋㅋㅋ
> 오늘 밸런스 패치안 나왔더라; 이제 내일 적용임
> 지금 다에2 제대로 못 즐기고 있는 것도 죄다 BJ천마때문이잖음
소울아트 사가 다키스트 에이지 2의 밸런스 조정에 실패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내일 밸런스 패치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은 익히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왜 본좌 때문이지?”
> 다키스트 에이지 2 밸런싱할때 다키스트 에이지 1편 히든 루트 크리어자 기준으로 밸런싱했대
> BJ천마 기준으로 밸런싱을 한 거지
> 그런 거였냐?
> 어째 난이도 미쳐돌아가더라니
> 천마님이 잘못했네
> 사
> 과
> 해
> 사
> 해
> 과
다키스트 에이지 2의 난이도가 심각할 정도로 높다는 악평은 공공연연한 상황이었는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이 BJ천마였던 것.
순식간에 사과를 요구하는 채팅이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천은 똑바로 채팅창을 노려봤다.
“본좌가 왜 사과해야 하지? 애초에 너희들의 실력이 좋으면 되는 문제 아닌가?”
> 아니 난이도때문에 아예 게임을 하질 못한다고요 ㅠㅠㅠ
“그건 부족한 스스로의 실력의 문제이지 본좌의 잘못이 아니다.”
> 맞는 말이네
> 아 ㅋㅋ 잘못한 건 내 손이지 천마님이 아니긴 하지
“알았다면 사과하도록.”
[KIN텍스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zz지존zz님이 58,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단천의 당당하기 그지없는 태도와 논리에 시청자들이 스트리머에게 사과하는 진귀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하지.”
> 역시 천마님이시다
> 오대양보다 더 크나크신 은혜에 눈물이 주룩주룩 흐릅니다
> 천마재림 만마앙복!
단천이 흐뭇하게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협곡과의 거리가 꽤 가까워져 있었다.
“이제. 어떻게 저 레헬름 성을 공략하느냐가 남았습니다.”
레헬름 성은 보기만 해도 아찔해질 정도의 깎아지를 듯한 협곡 아래에 자리잡고 있었다.
난공불락 그 자체인 성인 것이다. 단천이 성이 보이는 곳에 멀찍이 서서 레헬름 성을 바라보고 있자, 브라딘이 다가와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레헬름 성을 정면으로 공격한다면 아군의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놈들이 보급을 받을 곳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포위한 뒤 가만히 버텨 놈들이 제 발로 나오도록···.”
“정면 돌파를 해야 하겠군.”
“···주군?”
브라딘의 눈이 또 다시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동공에 7.8 지진경보 발생 ㅋㅋㅋ
> 이 새끼 또 시작이라는 눈빛
> 대충 눈으로 하는 험한 말
“놈들의 보급로가 없으니 사나흘 정도만 버틴다면 놈들이 제 풀에 지쳐서 나올 겁니다. 잠깐만 기다리면···.”
“돌파의 시작은 상공에서부터 떨어진 다음 하도록 한다. 우측 내벽이 제대로 복구가 되지 않았으니, 저 곳으로 모여서 돌파 하는 것으로 하지.”
“오오. 확실히, 저 정도의 구멍이라면 저희 기사단이 한 번에 진입할 수 있을 정도는 충분해 보입니다!”
“다른 곳으로 돌파하자는 의견, 있나?”
“주군. 돌파 자체가 아니라 적을 고사를···.”
“없습니다!”
“저희 기사단은 주군의 의견에 일백 퍼센트 동감합니다!”
“······.”
> 거의 서 있는 투명인간
> 사실상 눈 먼 자들의 도시의 유일한 정상인 ㅋㅋㅋㅋ
> 우리 모두는 BJ천마에게 눈이 멀어 있다
> 갑자기 스윗함 뭐임;;
브라딘의 의견이 살아 있는 묵살을 당하는 시간 동안 단천은 눈을 감고 상단전의 감각에 집중했다. 고대신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성의 가장 중심. 왕좌가 있는 곳에 있군.’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였다. 적의 위치를 알아챌 수 있으니 전략을 짜는 것도 수월해진다.
“본좌가 전략을 짜도록 하지.”
“하명하십시오.”
“기사단은 본좌와 함께 성의 중심지까지 돌파한다. 고대신 놈들이 숨어 있는 곳은 성의 가장 중심. 본좌가 놈들을 척살하는 동안 기사단은 남아 있는 잔당들을 소탕하도록.”
> 전략 어디???
> 그냥 들어가서 다 부숴버리겠단 거잖아
“주군.”
브라딘이 BJ천마의 전략에 딴죽을 걸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BJ천마의 입이 열리는 것이 더 빨랐다.
“우리가 주저하고 있는 순간에도, 다른 곳에서 인간들은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다. 우리가 쓰는 시간은 일 초 일 초가 다름아닌 다른 사람의 목숨인 것이다.”
“······.”
“그러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놈들을 최대한 빨리 죽이는 것이 본좌의 역할이다.”
“주군···.”
BJ천마의 말은 아주 조금의 주저도 없이 터져나왔다. 수백 번은 넘게 똑같은 말을 해 본 것처럼 단호하고 확언에 차 있는 말투는 진심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브라딘의 몸이 감동으로 바르르 딸려왔다.
“주군의 크나큰 뜻을 알지 못한 속하의 잘못입니다.”
“알면 됐다.”
> 와
> 확실히 시간이 소모되면 그만큼 다른 곳에서의 피해가 커지지
> ㅇㅈ합니다
> 천마님의 하해와 같은 마음가짐에 동서남북으로 울고 있습니다 ㅠㅠㅠㅠㅠ
방해하는 서윤학을 설득할 때마다 쓰던 탬플릿인데. 지금도 역시나 통하고 있었다.
역시 진심이라는 것은 시대불문하고 통하는 법인 것이다.
***
스컬 윙의 등 뒤에 마지막 기사단원까지 탑승하자, 스컬 윙이 창공을 향해 솟구쳐올랐다.
“공중에서의 침입은 처음입니다.”
“그런가.”
“보통은 땅 위나 땅 아래에서 습격을 하는 법이니까요.”
평범한 전쟁에서라면 자주 일어나지 않는 방식이기는 하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결국 땅 위에서 움직이기 마련이니.
하지만 초절정의 벽을 넘고 나서는 좋든 싫든 공중을 통한 강습에도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공중을 통한 습격은 놈들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끼이이익!
스컬 윙이 성에 가까이 다가가자 가고일을 비롯한 수십 마리의 비행 몬스터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고일입니다!”
공중을 통한 강습을 놈들이 아예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가고일의 공격에 당황한 기사들이 무기를 휘저었지만 상공은 놈들의 전장이다. 가고일들은 비웃기라도 하듯 기사들의 공격을 피해냈다.
> 망했는데?
> 어쩌냐 ㄷㄷㄷ;
“어쩌기는.”
모조리 베어 버리면 되는 것이지.
단천의 몸이 스컬 윙의 등에서 도약하며 가장 가까운 가고일의 등 위에 올라탔다.
단천의 그람이 서늘한 빛을 뿜어냈다.
파삭!
가고일의 양 쪽 날개죽지가 잘렸다. 균형을 잃은 가고일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BJ천마의 몸은 그곳에 없었다. 어느 새 도약을 해 다른 가고일의 등 뒤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다.
파삭!
파사삭!
한 번의 도약에 한 마리씩의 가고일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기계적인 도약과 적을 처치하는 데 최적화된 두 번의 칼질.
> 공중인데도 이 정도 액션이 가능한 거냐?
> 봐도 봐도 경악임
화려한 BJ천마의 공중에서의 움직임에 탄성이 채팅창에서 터져나왔다.
보통의 플레이어는 공중에서의 전투에 익숙하지 않다. 사람의 움직임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전후좌우만을 상정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고일들에게는 안타깝게도, 가고일의 상대인 BJ천마는 공중전또한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해 온 공중전의 고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내공으로 허공답보를 할 줄 안답시고 까불어대는 화경의 고수들을 족쳐대는 것이 단천의 일상생활이었는데. 고작 날개만으로 비행하는 몬스터들따위는 한 끼 식사조차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단천의 검이 마지막 남은 가고일의 날개죽지를 자른 다음 도약해 스컬 윙의 위로 복귀했다.
마지막 가고일이 추락하며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콰아아앙!
추락한 가고일이 성 안의 가구 위에 추락했다.
“봐도 봐도. 주군이 인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낙하를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공중에서의 잠입인 만큼, 이목을 최대한 덜 끌 수 있도록 주의하도록.”
“···잠입?”
“잠입이라고요?”
“···잠입이었습니까. 이거?”
브라딘과 기사단의 눈이 모두 성 안에 쏠렸다.
성 안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가고일 수십 마리가 바닥에 추락하며 성 안을 온통 부숴 버린 까닭이다.
지상에 서 있는 몬스터들의 두 눈은 모조리 스컬 윙에 쏠려 있었다.
[국어대사전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잠입 潛入 : 남몰래 숨어드는 것.]
> 국어대사전 입장 ㅋㅋㅋㅋ
> 천마님 암만 그래도 어케 이게 잠입입니까???
단천은 성 아래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몬스터들을 흘깃 본 다음 무덤덤하게 말했다.
“본좌가 잠입이라고 하면 잠입인 것이다.”
> 아무튼 잠입임
> 곧 다 죽일 예정이니까 잠입 맞지
> 잠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시오
[국어대사전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잠입 潛入 : 천마님이 잠입이라고 하시는 것.]
> 국어대사전피셜로 잠입 맞네
> 완벽한 잠입이다 ㄷㄷㄷ
> 거의 미션 임파서블급 잠입액션 ㄷㄷㄷ
“본좌의 뜻을 알아주는 이가 이렇게 많다니. 기쁜 일이군.”
> 그··· 그렇습니다!(오들오들)
“그럼. 잠입을 계속해가도록 하지.”
타악!
BJ천마의 몸이 스컬 윙에서 도약해 지상을 향해 떨어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