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전면전 (3)
“고작 저 정도가 본좌의 전력일 리가 없잖느냐.”
단천은 컷씬에 나오고 있는 화룡火龍을 바라보며 간단히 평가했다.
아마 컷씬의 기술은 지금 BJ천마의 몸에 있는 내력의 양에 맞는 크기의 기술을 보여준 것일 터.
‘그러니 저렇게 조그맣지.’
불평하기는 했지만 이런 것이 기술의 한계 아니던가. 단천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화룡 ㅈㄴ큰데?
> ????
> 저게 최고치가 아니라고?
전장을 뒤집어엎으며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태워죽인 기술조차 약하다고 평가하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단천이 설명을 추가로 하려는 찰나. 무수히 많은 병장기소리가 귀를 울렸다.
“우와아아아!”
컷씬이 끝나고 나자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앞뒤로 엄청난 수의 적과 아군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단천은 다수대 다수의 집단전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았다. 단천이 좋아하는 것은 난적과의 일기토. 혹은 쪽수로 밀어붙이는 다수를 맞아 홀로 하는 전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단전의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생을 전장에서 구르고 굴러 왔으니, 대다수의 무인들보다도 이러한 종류의 전쟁을 더 많이 겪었다고 할 수 있었다.
> 천마님이 보시기에 이번에 전쟁 이길 수 있어 보임?
“당연히 이긴다.”
> 이런 전쟁에서 뭐가 제일 중요함?
전쟁을 준비할 때에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닌 백병전이 시작된 상황의 한복판이다.
하지만, 일단 백병전이 된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병사들의 사기.”
승리를 확신하는 병사일수록 강해진다. 반면 패배를 확신하는 병사일수록 약해진다. 설령 패배가 눈 앞에 있더라도 승리를 확신하는 사기는 종종, 불가사의한 승리를 만들 수 있기도 하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한 법이지만.”
고고고!
단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축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땅에서 솟구쳐오른 것은 거대한 크기의 괴수였다.
[고대신 「아자젤」이 자신의 힘을 빌어 괴수를 만들었습니다.]
아니. 거대하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의 괴물.
[괴수 리바이어던]
“저게 뭐야!”
“으아아아!”
“말도···안 돼···!”
괴수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에 절망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백병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아군의 사기를 올리는 방법도 존재하지만 반대로 상대의 사기를 꺾는 것 또한 주효하다.
직전의 컷씬에 나왔던 화룡을 보고 사람들이 희망을 얻었던 것처럼. 저런 거대한 괴물을 본다면 인간은 반드시 절망에 빠져든다.
“보아하니, 저 쪽도 사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놈이 있는 모양이군.”
단천은 저런 종류의 덩치만 자랑하는 잡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에서는 저런 ‘잡기’야 말로 직접적으로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커다란 요소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단천은 리바이어던의 눈을 올려다봤다. 놈은 너무나도 거대한 몸집 덕분에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천은 그람을 뽑아들었다.
구태여 잡기를 자랑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 번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단천의 검이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멸화영심법 최후의 초식인 화룡비상.
컷씬에 나왔던 것과 완전히 동일한 초식이었다.
화르르르륵!
거대한 화룡이 검 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크기는 확연히 컷씬에서 나왔던 화룡의 크기보다 컸다.
> 와
> 크다
> 종갓집 제품이라 그런지 확실히 더 크네
> 그래봤자 리바이어던 크기보다 훨씬 작은데?
“맞는 말이다. 고작 이 정도로 크다고는 할 수 없지.”
단천은 검을 붙잡은 채 호흡을 다시 이어나갔다. 이런 잡기술은 요령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화룡의 크기를 키우는 요령이라고 한다면 역시.
‘주변의 기운을 끌어다 쓰는 것이지.’
보통의 무공들은 몸 안에서 초식이 시작되고 완성된다. 하지만 이런 기운을 발출하는 형태의 무공은 주변의 기운을 끌어다 쓰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자연지기 그 자체인 정령들이 수없이 많은 전장의 한복판.
끌어다 쓸 수 있는 자연지기의 양이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고오오오!
기운을 끌어오자마자 화룡의 크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알아챈 드라이오나가 BJ천마의 어깨에서 방방 뛰었다.
“···야! 야아아! 무슨 짓 하고 있는 거야! 우리 정령들의 힘이 빠져나가고 있잖아!”
“좀 빌리지.”
> 빌림(갚을 생각 없음)
> 지우개 좀 쓸게~~(안 돌려줌)
> 아 언제 갚는다고 안 했다고 ㅋㅋㅋㅋ
> 으윽···! 학창 시절의 악몽이···!
주변의 자연지기를 한껏 머금은 화룡의 크기는 이내 리바이던의 몸보다 커져 있었다.
“와아아아!”
인간 진영에서 환호성이 다시금 터져나왔다. 이대로 리바이어던을 불태울 수도 있지만, 관객이 많으니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을 터.
쩌저적!
거대한 화룡이 입을 벌리고 리바이던의 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화르르르륵!
집어삼켜진 리바이던의 몸이 완전히 재로 화하는 데에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실로 압도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의 무위.
“이제 본좌가 왜 화룡이 작다 했는지. 조금은 납득했나?”
[알카라인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인정···인정합니다···인정이요···.]
“신이 적의 악귀를 물리쳤다!”
“인간을 도우려 신이 나타나셨다!”
“신께서 함께 하신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인간 진영의 사기는 리바이어던이 나타나기 직전의 몇 배가 되어 있었다. 저런 존재가 함께하고 있다면, 질 리가 없다. 그런 열기가 온 전장에 넘실대고 있는 것이다.
용기백배한 병사들과 기사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수 배는 많은 몬스터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서윤학은 언제나 전쟁에서 필요한 것은 계략이라고 했었다.
상대를 기만하고, 보급을 끊고, 적들을 양분하고, 내분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이 승리를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전쟁이란 건, 모든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면 당연히 이기는 것이거늘.”
단천은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
> 또 무슨 개소리여 ㅋㅋㅋㅋ
> 이열~~~ 항우나 할법한 생각~~~
> 21세기판 초패왕
> 지력은 무력이 있으면 필요없다(항우피셜)
항우라. 물론 자신은 항우보다 뛰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칭찬이다.
***
평원 전체가 몬스터들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몇 배의 격차가 나던 전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전과였다.
이런 압도적인 전과를 만들어낸 것은 물론 단 한 사람의 힘이었다.
“흐아암.”
저기서 하품을 쩍쩍 내뱉는 왕. BJ천마 덕분이었다.
> 하품 좀 하지 마 ㅋㅋㅋㅋ
> 아니 심심했는데 어쩌라고 ㅋㅋㅋ
> 일반몹만 죽어라 베었으니 심심할 만도 해
단천의 하품은 멈추지 않았다. 평원에서의 전투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과를 만들어낸 것이 자신이긴 했지만.
‘영 심심하군.’
단천 입장에서 방금까지의 전투는 제대로 된 전투가 아니었다. 화룡비상을 통해 적들을 태워 버리고, 이후에는 수준 낮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도륙만을 계속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바로 이어지는 게 전투가 아니라 회의라니. 지루함이 배가될만도 했다.
“주군. 회의 중에 하품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브라딘이 용맹하게 BJ천마에게 충언을 해 봤지만 브라딘의 목숨을 건 충언은 BJ천마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전황 설명부터 하도록.”
“···저희가 지금 있는 레킨타스 평원에서의 전투는 아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대부분의 몬스터 대군은 몰살했고, 적들은 갈기갈기 찢어져 패주했습니다.”
브라딘이 레킨타스 평원을 가리키며 상기된 얼굴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레킨타스 평원은 최고의 곡창 지역인 동시에 대륙 중앙에 있는 교두보로서, 이곳을 점령한 지금 저희의 승기가 굳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승기가 굳혀진 건 본좌가 인간 측에 있을 때부터였고.”
다소 오만한 말이었지만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 그 누구도 부정을 하지 않았다.
그저 브라딘만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갈 뿐.
“···이 전투가 승리로 끝났으니. 잔닥와 함께 남아 있는 세 고대신들의 소탕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다만···.”
“다만?”
“세 고대신인 「아자젤」,
「리칸투스」, 「제이탈로스」셋이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원래 고대신들은 함께 묶이기는 하나 각각이 오만하기 그지없어서 함께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기묘한 일입니다. 대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 판단을···.”
“기묘할 것 없다.”
단천이 브라딘의 말을 싹둑 잘랐다.
“주군은 놈들이 왜 뭉쳐서 도망치는지 알고 계신 겁니까?”
“그야 당연하지. 놈들이 뭉쳐서 도망치는 이유는 본좌가 있기 때문이다.”
단천의 말을 듣자 그제서야 좌중들이 납득했다.
“확실히.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도래하면 힘을 합칠 수밖에 없겠지요.”
“과거에 인간들도 몬스터들이 침공했을 때, 전쟁을 멈추고 함께 연합해 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일본이랑 싸우다가도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같이 싸워야지
> ㅇㄱㄹㅇ ㅋㅋㅋㅋㅋ
자신을 괴물이나 외계인 취급하는 것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추가적인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아무튼. 놈들이 한 곳에 모여든 것은 악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도대체 왜 악재라는 거지?”
“고대신들의 힘은 강하기 그지없습니다. 놈들 셋이 함께 모여 있다면···.”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으니. 편하지. 악재가 아니라 호재라고 봐야 한다.”
“······.”
브라딘의 눈이 질끈 감겼다.
> 표정 찡그린 거 봐 ㅋㅋㅋㅋ
> 브라딘 : 맙소사
> 언제나처럼의 BJ천마인데 뭐 잘못된 거라도?
“주군! 옳은 말이십니다!”
“천마 폐하를 위해!”
“놈들을 모조리 도륙내자!”
브라딘의 참담한 표정과는 별개로 기사들은 BJ천마의 말에 하나둘씩 찬동하기 시작했다.
> 간신들 대거 입장 ㅋㅋㅋㅋ
> 진심으로 천마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은데?
> 쟤들도 골수까지 패기바이러스에 감염됨
> 저 정도면 간신들이 아니라 광신도들 아니냐???
“당장 놈들을 사냥하러 갑시다!”
“그건 안 됩니다. 고대신들과 함께 퇴각한 몬스터들은 놈들의 수하 가운데서도 가장 정예병들입니다.”
“그깟 몬스터 놈들쯤! 나는 한 손으로도 백 마리쯤은 잡을 수 있소!”
한 명의 입에서 시작된 호기로운 발언은 점점 수위에 수위를 더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 나는 손목 위만 사용해서 몬스터 천 마리쯤은 잡을 수 있다!”
“나는 눈빛만으로도 몬스터 만 마리를 심장마비에 걸리게 할 수 있다!”
목숨을 건 전투가 끝난 다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텐션이었다.
> 본격 허언 배틀
> 기사들이 아니라 허언증 갤러리 종자들이었네 ㅋㅋㅋㅋㅋ
>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 배틀
> 저러다 화성 간다 선언까지 나올듯
> 좀 말려봐 ㅋㅋㅋㅋㅋ
“왜 말려야 하지?”
단천은 굳이 말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왜 굳이 말려야 한다는 말인가. 그저 평범한 혈귀대의 평소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인데.
단천은 말싸움을
넘어가 몸싸움을 시작한 기사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자리 앞에 놓인 음료수를 홀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