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전면전 (2)
쿵!
다섯 마리의 스컬 윙이 바닥에 착지했다. 스컬 윙의 위에 있던 기사들이 바닥에 내렸다.
“아빠. 저 사람들. 거지야?”
“거지가 아니라 기사님들이란다.”
“근데 왜 저런 거지같은 옷 입고 다녀?”
기사들의 행색은 계속해서 이어진 전투로 남루하기 그지없었다. 대부분의 갑옷은 뜯겨져 나가고, 무기도 헤질 대로 헤진 상태였다. 그야 당연했다. 죽을 듯 살 듯 위험한 사냥을 계속해 온 데다가 정령의 안식처에서 대련도 미친 듯이 했으니. 장비가 남아날 리가 없었다.
그나마 온전한 상태인 것은 사냥에서도 압도적인 능력을 보였던 BJ천마와 직접적인 전투에는 개입하지 않았던 브라딘 뿐이었다.
“거지 취급이라니. 너무하잖아.”
“어린애가 하는 말이니 마음에 두지 않도록. 개방도 거지 제군들.”
“······.”
> 말넘심
> 근데 저게 거지가 아니면 뭐냐 ㅋㅋㅋㅋ
[통치지역에 도달했습니다.]
[정령과의 우호도가 최고치입니다.]
[고대신들과의 적개치가 최고치입니다.]
[다음 시나리오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나리오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성 안에 들어오자마자 떠오른 메시지다. 앞서서 몇 번 경험한 것처럼 시나리오를 진행한다면 그대로 시간이 스킵될 터.
> 스킵 ㄱㄱ
> 뭐 딱히 할 거 남았나?
> 그대로 진행해도 될 듯?
시청자들이 스킵을 바라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전까지 계속해서 핵심 시나리오만 해 왔던 것이 BJ천마다. 그러니 본래라면 시나리오 스킵을 선택할 것이라는 추측이 타당하지만. 이번에는 할 일이 있었다.
BJ천마가 스컬 윙에서 내려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스컬 윙이 도착해 있는 곳은 카를랜드가 있는 대장간 앞이었다.
“사냥이 끝났으니. 약속했던 대로 보상을 내려야겠지.”
“보상!”
보상이라는 말에 기사들의 눈에 광채가 피어올랐다. 그러고 보니 사냥이 시작되기 이전에 BJ천마가 사냥의 성취에 따라서 무기를 순위별로 나눠 주겠다고 한 것이 기억난 까닭이다.
> 와 기억하고 있었네
> 그냥 대충 보상 안 해주고 넘길 줄 알았는데
> ㅇㅈ;;
> 뭐 어차피 스토리 진행하면 알아서 보상 나오는 거 아니냐?
“그럴지도.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 입실론.”
“넵!”
“너는 몬스터들을 척살하며 가장 많은 몬스터들을 처치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며 기사단원들의 안위까지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지. 기사들 중 가장 높은 성취를 보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으므로. 네가 1위다.”
“우오오오!”
입실론의 입에서 커다란 포효가 튀어나왔다.
“다만 적의 공격을 무시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주의하도록. 독에 당한다면 쉽게 죽을 수도 있는 전투법이니.”
“알겠습니다!”
“다음은 레이놀즈.”
“넵!”
BJ천마의 평가가 그 뒤로도 쭉 이어졌다. BJ천마가 매긴 순위에 불만은 없었다. BJ천마가 보여준 실력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그의 눈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상태인 까닭이다.
게다가 불만을 제기하는 상대도 상대인지라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
> 불만을 제기했다가는 반으로 갈라 버리겠다
> 진정한 철권통치 ㄷㄷㄷ
그러니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호명한 순서대로 대장간 안으로 한 명씩 들어오도록.”
“대장간에 말입니까?”
“그래.”
질문을 던진 입실론의 얼굴에 의문스럽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순위가 정해졌으니 그냥 무기를 받으면 될 텐데. 구태여 대장간에 들어갈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먼저 입실론부터 들어오도록.”
“···알겠습니다.”
단천은 대장간 안으로 들어왔다. 쉼 없이 터져나오는 풀뭇불과 깡깡거리는 망치 소리들.
한참 작업하고 있던 카를랜드가 BJ천마의 모습을 보고 아는체를 해 왔다.
“오오! 왕께서 귀환하셨군!”
“기사들의 무기를 만들어 줄까 하는데.”
“안 그래도 돌아올 때를 대비해 질 좋은 금속들은 모조리 따로 보관하고 있는 상태였다네! 그래! 자네는 무슨 무기를 원하나?”
“저는 망치를···.”
“양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망치. 손잡이의 길이는 열 치 반, 무게 중심은 살짝 위에 있도록. 재료는 최고급으로.”
[해당 설명을 카를랜드가 듣고, 「웅혼한 마력망치」를 제련하려 합니다.]
설명을 마치자 눈앞에 BJ천마가 설명한 대로의 망치의 형태가 떠올랐다.
“호오.”
> 제련 창도 아직 남아있었네
> 없어진 줄 알았는데
> ㅇㅈ;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으로 형태와 무게중심 등, 세세한 부분들을 조정할 수 있었다.
“이런 쓸만한 기능이 도대체 왜 지금까지는 안 보였던 거지.”
> 니가 설명 안 듣고 대충 넘겼잖아 ㅋㅋㅋㅋ
> 튜토리얼에 다 나왔음;;
> 지금 들고 있는 무기도 대충 만들어달라고 해서 나온 거잖아 ㅋㅋㅋㅋㅋㅋ
이전에도 미세 설정을 할 수 있다는 허위정보를 무시한 단천은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무기의 형태를 조정해 나갔다.
몇 번의 조정이 끝나자 만족할만한 수준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대로, 만들어 줘.”
“알겠네. 자네의 무기를 만들 때와는 달리 세세하기 그지없는 요구사항들이로구만. 이유라도 있나? 역시 부하들을 아끼기 때문인 건가?”
“역시··· 주군이십니다.”
입실론이 감동받은 표정으로 BJ천마를 바라봤다. 하지만 카를랜드의 질문을 들은 단천이 무슨 말이냐는 듯 대꾸했다.
“그런 이유일 리가 없지. 내가 무기를 제대로 봐 주는 것은 장인은 붓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장인이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과 지금 상황이 무슨 관계지?”
“장인은 붓을 가리지 않지만, 실력이 낮은 자는 붓이라도 좋아야 한다. 그러니 무기 또한 신중하게 만들어야지.”
“······.”
감동에 젖어가던 입실론의 얼굴이 순식간에 불만으로 차올랐다.
“왜. 불만이라도 있나?”
“없습니다.”
“혹시 불만을 제기하고 싶다면 밖으로 나오도록. 상대해 줄 테니까.”
“불만 없습니다!”
“정말 없는 거 확실한가?”
“없습니드아아아악!”
크나큰 목소리를 보니 정말로 입실론에게는 불만이 없는 것이 확실했다.
> 진정한 철권통치(무력형)
> 불만 제기 0건의 기적의 통치체제
> 불만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이면 지상락원이 된다
> 이거 완전 북한··· 읍읍!
“자. 다음 들어오라고 하도록.”
단천의 무기 설정은 그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
> 근데 ㄹㅇ 겜잘알이긴 한듯
> 확실히 뭔가 전문적인 느낌 남
> ㅇㅈ;;;
‘예전 생각이 나는군.’
수하들의 무기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이전에도 단천이 꽤나 해 온 일이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무기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고, 천하의 모든 무공에 해박하기 그지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단천이었다.
단천이 형태를 잡아준 무기는 그 사람에게 맞는 것을 넘어서서 신체의 일부로까지 느껴질 정도의 품질을 자랑했었다.
그 까닭에 천마신교에서 단천이 직접 형태를 잡아준 무기를 받는다는 것은 최고의 포상 중 하나로까지 여겨졌었다.
단천이 형태를 잡은 무기를 받는 것과 단천에게서 1대1로 두 달간 수련을 받는 것, 두 가지 중에서 후자를 선택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그 인기는 높디높았다.
─
지존과 두 달간 밀착과외를 할 바에는 자결을 선택하는 교도들이 더 많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대던 서윤학의 허리를 거꾸로 접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단천은 무기를 만들어 나갔다.
***
“이걸로 끝인가.”
단천은 혹시라도 무기를 설계받지 못한 기사단원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뭐. 없겠지.”
> 있어봤자 베어 버리면 그만이라는 투 ㄷㄷ
> 간단한 해결책이 있음 ㄹㅇ
채팅을 한 시청자는 천마신교 뱃지를 달고 있는 구독자였다. 구독자를 만든 후부터 확실히 똑똑한 시청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것이 소속감 때문인지 아니면 단천의 방송에 오래 노출되서인지는 불명확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럼. 스토리를 진행하도록 하지.”
단천은 오랫동안 놔 뒀던 시나리오 진행 버튼을 눌렀다.
[노스페라투의 죽음은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었다.]
[정령들과 인간들은 더 이상 종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나레이션의 중후한 음성과 함께. 화면이 암전했다. 이전까지의 시네마틱 화면들은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가 가득했었다.
하지만 이번의 시네마틱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수없이 도열해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있는 정령들이 화면 전체를 메우고 있었다.
> ㅗㅜㅑ
> 이 정도 숫자면 진짜 해볼만 한 것 같은데??
> 솔직히 이 정도면 충분히 싸워볼만함
그리고 채팅창에서 희망찬 이야기가 나오려는 순간. 반대쪽 지평선 너머가 클로즈업됐다.
수없이 많은 괴물들과 이물들이 지평선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언뜻 봐도 인간의 숫자와 비등하거나 그것보다 더 많아 보이는 숫자다.
> 응 아니야
> ㅈㄴ많네 ㅋㅋㅋㅋㅋㅋ
> 야 방금 생각해 봤는데 무리인 것 같다
> 그냥 튑시다 못이겨 ㅁㅊ ㅋㅋㅋㅋ
몬스터들의 수를 보자 채팅창의 여론이 급변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못 이긴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쿠구구구!
땅이 울리며 몬스터들이 지평선을 넘어 달려오기 시작했다.
> ㅅㅂ 저걸 어떻게 이겨
> 미쳤냐곸ㅋㅋㅋㅋ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채팅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 여론은 오래가지 않았다.
몬스터들의 돌진 너머에서 거대한 포효와 함께 갑주를 두른 기사들의 돌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콰드드득!
퍼어엉!
몬스터들의 무리가 기사들의 무기에 부딪혀 풍선처럼 터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채팅창의 여론이 다시 한 번 바뀌었다.
> 뭔 괴물들이 다 있네 ㅋㅋㅋㅋ
> 무기빨+수련빨+신성력빨=???
> 근데 이래도 못 이길 것 같음
[절망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새롭게 나타난 횃불이 어둠을 밝히기 시작했다.]
[인간의 운명을 건 대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그리고 기사들의 선두에서 질주하는 한 마리의 화룡火龍.
쿠과과과과과!
전장의 모든 것을 태우며 나아가는 화룡이 시작되는 곳에.
BJ천마가 서 있었다.
> 야 이건 이겼다
> 치트키네
> ㅇㅈ
> 핵무기 있는데 이겨야지 ㅋㅋㅋㅋㅋ
[소드아트미쳤다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아니 시네마틱을 만들라는데 영화를 만들어놨네 ㅋㅋㅋㅋㅋ]
실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컷씬이었다. 채팅창의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쉴 새 없이 후원금이 몰아치고 있었다.
[팬티가없어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남은 팬티가 없다고요 팬티공장 차려야 할 기세]
[글리세롤카뱅에물렸어 님이 6,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오늘 주식은 팬티회사 풀매입으로 간드아아아아아!!]
이런 종류의 컷씬들은 한 번 공개되는 순간부터 다음 번에 봤을 때의 반응은 그만큼 작아진다.
아무리 멋진 경치를 본다고 해도 그 경치를 수십 번 보고 나서는 그 감동이 덜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지금 단천이 진행하고 있는 다키스트 에이지 2의 경우에는 글자 그대로 나오는 시네마틱 모두가 ‘처음’인 상황.
당연히 반응도 열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트리머로서는 호재 그 자체인 상황.
하지만, BJ천마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았다.
“아쉽군.”
단천의 진한 아쉬움은 전장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불꽃의 용에 고정되어 있었다.
> 뭐가 아쉬운데.
> 이사람은 맨날 뭐가 아쉬워함 ㅋㅋㅋㅋ
“본좌의 무공을 고작 저 정도로 표현하는 것으로 그칠 줄이야.”
> ???
BJ천마의 말에 채팅창에 갈고리가 도배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