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90화 (90/212)

19. 전면전 (1)

“그럼.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내가 말한 시각에 항상 이곳으로 나오도록.”

“알았어요. 아. 그리고 방송에는 언제 가면 되는지 말해 줘요. 시간 비워 놓을 테니까요.”

“···방송? 이분. 방송에도 오시는 거에요?”

말을 할 정도로는 몸을 회복한 제로콜이 물었다. 한수아가 얼굴을 다 가리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길만도 했다.

“꽤 유명한 사람인가 보더라고.”

“보더라고가 아니라 실제로 나름 유명해요.”

“그렇다고 치지.”

한수아가 불만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던지 말던지 단천은 수업을 종료했다.

“몸은 많이 괜찮나?”

“네. 이 정도면··· 시합에 참여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무리는 하지 말도록.”

“선수는 무리를 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여기서 알겠다고 대답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터였다. 한수아의 눈은 다시 선수를 할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

다음 날. 단천은 방송을 준비하며 TV를 이리저리 돌렸다. 채널을 돌리던 단천의 손이 뉴스 전문 채널에서 멈췄다.

[사격 선수 한수아. 느닷없는 재복귀 선언.]

[전 사격 선수 한수아가 오늘 새벽 다시 선수로 다시 복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한수아 선수는 곧 있을 아시아 국제 대회의 출전권이 걸린 국내 사격 경기에 참여해 우승을 거머쥐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하루 수련하자마자 재복귀를 한다니. 어지간히도 복귀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단천은 바로 휴대폰으로 한수아의 기사를 찾아봤다.

─ ㅋㅋㅋㅋ 퇴물이 복귀한다고 해서 뭐 되겠냐?

└ ㅇㅈ CF찍다가 실력 뽀록나서 은퇴해놓고

└ 딱 봐도 인지도 올리려고 복귀하는 척만 하는 거지. 제대로 연습은 안 하고 있을걸?

기사에는 복귀에 전혀 호의적인 댓글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수아도 이 댓글을 보고 있을 터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저런 댓글들은 보이지 않게 되겠지만.

이런 악성 댓글따위는 그다지 신경쓸 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악플러들은 실력 앞에서는 입을 다물기 마련이니까.

저런 것보다는. 내 상단전에나 신경쓰는 게 맞는 일이다.

어제 집에 돌아온 후, 단천은 상단전에서 느껴지는 기묘함을 느꼈다. 상단전의 크기가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단전 자체의 크기까지 늘어났다.

‘단순히 선업만을 쌓았다고 해서 커지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단천이 있던 시대의 중원에서 신화경에 들었던 인간은 단천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화경과 상단전에 대해서 전혀 배울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천은 무명승을 떠올렸다. 무명승은 신화경은 아니었을지언정 상단전의 존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한 이해도의 깊이도 남달랐다.

─ 인간으로서의 깨달음의 깊이가 바로 상단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힘의 크기일 거외다.

─ 그렇게 상단전이 완전히 완성되는 순간에 인간은 인간의 길을 끊고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외다.

─ 불도로 치면 극락왕생일 테고, 선도로 친다면 우화등선, 마교로 친다면 파천破天이라고 하는 것 말입니다.

─ 허허, 해 보지도 않고 뭔 논검을 입으로만 터냐니. 오늘도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시주로구려.

인간으로서의 깨달음이라. 단천은 인간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중원은 무의 강약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였고, 무에 파고들기만도 시간은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무명승은 무의 끝이 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길도 함께 완성시켜야만 한다고 말했다.

‘인간으로서의 길이라.’

물론 그것이 꼭 선업을 쌓는다는 것이나, 착하게 살아야 된다는 뜻은 아닐 터였다. 실제로 초대 천마가 파천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무수한 살생을 하고 나서였으니까.

인간으로서의 완성이 상단전의 완성과 깊게 결부되어 있다.

─ 시주는. 시주 스스로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그려. 혼란한 시대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외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 모른다라.”

왜 타인을 도울 때마다 상단전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고민해 봤지만 딱히 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무명승의 말로는 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완성할 수 있는 길이라던데. 인간과의 관계라니.

방송을 열심히 하기라도 하라는 뜻인가.

“···뭐. 이것저것 시험해 볼 여지는 있겠지.”

생각이 막혔을 때에는 초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여유를 두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법.

툭하면 숨 쉴 틈 없이 싸우러 나가야만 했던 중원과 달리 지금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러니 천천히 가 봐도 괜찮을 터였다.

단천은 가볍게 몸을 푼 다음 VR캡슐에 몸을 뉘였다.

[VR캡슐을 기동합니다.]

[방송을 시작합니다.]

동시에 들려오는 방송 시작 음성.

> 어제왜휴방했어어제왜휴방했어어제왜휴방했어어제왜휴방했어

> 어제 하루. 나는 죽어 있었다. ‘BJ천마’의 방송이 없었기 때문이다

> 어제 뭐했음?? 보니까 모션 캡쳐 스튜디오에서 봤다는 소문도 있던데

“개인적인 일로 인한 휴방이었다.”

단천은 짧게 대답했다. 모션캡쳐는 대외비라고 하기도 했었고. 단천도 이제는 슬슬 방송에 익숙해졌다. 이런 파급력 있는 사건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남이 말해줄 때 훨씬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 어제 썰 좀 풀어주셈

> ㅇㅇ 어제 뭐하고 놀았음?

물론 어제 뭘 하고 있었는지를 물어보는 채팅도 있지만. 이런 것쯤 해결하는 것은 간단하다.

“썰을 푸는 것이 좋나. 아니면 지금 당장 다키스트 에이지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이 좋나?”

> 스토리 진행

> 닥치고 스토리지

> 222222222222

> 어제 썰이 뭐가 중요해ㅐㅐㅐㅐㅐㅐㅐㅐ

[새싹뉴비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지금당장스토리진행해 안그러면 똥싼다진짜로]

> 뉴비 흑화했누

> 게임 스토리 보려면 천마님 방송밖에 없으니 흑화할 만하지 ㅋㅋㅋㅋㅋ

채팅창의 반응은 물론 ‘다키스트 에이지 스토리 진행’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었다. 덕분에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영약을 천마비고에서 꺼내 먹은 다음 혈교 간자를 잡아내는 것으로 무마하는, 일종의 성동격서.

서윤학도 번번히 걸려든 단천의 노련한 계책에 시청자들이 걸려들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다키스트 에이지 2를 실행합니다.]

다키스트 에이지를 실행하자마자 익숙한 정령의 안식처가 보였다.

더 이상 고대신에게 영혼을 팔아넘기지 않아도 돼서 생동감 있는 정령들이 가득한 공간.

···이어야 했는데.

“우오오오!”

“흐아아아압!”

“그랴아아아!”

땀내나는 기사들의 함성들만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반쯤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나머지 절반은 서로 전투를 하며 싸우고 있다.

“제발··· 이제 좀 나가···.”

눈에 띄게 수척해진 드라이오나가 애처롭게 중얼거렸다. 상황은 일목요연했다. 정령의 안식처는 약간의 수련만으로도 내공이 늘어나는 천혜의 수련처.

이런 장소에서 무인이라면 당연히 침식을 잊고 수련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변에는 대련을 할 수 있는 같은 기사들이 넘쳐난다. 내공 수련을 하다가 심심하면 서로 대련을 하고, 대련을 하다 지치면 내공수련을 하는. 실로 최적의 수련처.

> 하루종일 싸움박질이랑 수련만 한 것 같은데?

“바람직하기 그지없군.”

> 바람직하기는 개뿔 ㅋㅋㅋㅋ

> 하루종일 쌈박질하는게 어디가 바람직해

> 이거 인간으로서 괜찮은 거냐 ㅋㅋㅋㅋ

> 제발 인생을 살아주세요···

단천은 빠른 눈으로 기사들을 훑어봤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기도가 남달라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공이 엄청나게 오른 것이다.

물론 그 내공은 모조리 드라이오나의 몸에서 빠져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원래 우군 간에는 상부상조가 기본인 법이지.”

[날강도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상부상조(일방적으로 받기만 함)]

> 어허 팩트 밴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영원히 수련이라도 시키고 싶지만. 드라이오나의 상태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 며칠간 물 못 먹은 풀 느낌인데 ㅋㅋㅋ

> 애가 왜 저렇게 바싹 말랐어 ㅋㅋㅋㅋㅋㅋ

“돌아갈 준비를 하도록.”

“주군. 하지만 더 수련을 하고 싶···!”

“자고로 농사라는 것은 지력을 생각해서 지어야 하는 법. 땅이 좋다고 마냥 지력을 빨아먹기만 한다면 지력이 완전히 고갈되고, 다시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

“···주군의 말씀이 맞습니다.”

“날 그냥 빨아먹을 먹잇감 정도로만 말하지 마! 나에게도 인격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인격이 있다는 착각을하는 드라이오나를 놔둔 채, 기사들은 정령의 쉼터를 나갈 채비를 마쳤다.

“이제 가 보도록 하지.”

“···벌써 가려고?”

언제는 당장 안 가냐고 닦달하더니. 간다고 하니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뭐. 어쩔 수 없지. 너희도 전쟁을 준비해야 할 테니까.”

“의외로 쉽게 이해해 주는군.”

“헤어지는 게 아니니까.”

딱. 드라이오나가 손가락을 튕기자 단천의 어깨에 순식간에 이파리가 피어올랐다.

이전에 작아졌던 드라이오나와 완전히 같은 모습의 드라이오나가 단천의 어깨에 피어올랐다.

“귀여운 인형이군.”

““인형이 아니야.””

드라이오나의 말과 동시에 단천의 어깨에 피어오른 드라이오나가 말했다.

“호오. 빙의술인가.”

강시를 직접적으로 조종하는 것과 비슷한 술수에 단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빙의?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네 어깨에 있는 아름다운 정령은 나의 일부이자 나야. 나와 생각이 연결되어 있고, 대화도 할 수 있지.”

“신기한 술수로군.”

둘 간의 의식이 이어져 있다면 빙의보다는 분신에 가깝다. 이런 방식으로 연락할 수 있다면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편할 터다.

‘게다가 정령의 안식처의 내공이 얼마나 충전됐는지도 즉각적으로 알 수 있고.’

단천은 어깨에 피어 있는 드라이오나의 이파리를 바라봤다. 비실대며 죽어가고 있는 이파리들이 보인다.

드라이오나의 머리에 피어나 있는 이파리들이 비실대는 것은 드라이오나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일 터. 저 이파리가 파릇파릇해진다면 다시 기사들을 이끌고 와서 내공을 충전해 가면 될 터였다.

“장거리에서 충전상황을 알 수 있다니. 쓸만한 기물이군.”

> 신성력 약탈해 갈 생각 충만한거 봐 ㅋㅋㅋㅋ

> 양아치 그 자체 ㅋㅋㅋㅋ

어깨에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드라이오나의 분신을 얹은 채. 단천과 기사단은 정령의 안식처를 떠나 본영을 향해 움직였다. 갈 때에는 사냥을 해야 했으니 스컬 윙을 쓸 수 없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스컬 윙을 타고 돌아오기만 하면 됐다.

스컬 윙을 타고 돌아가는 기사들의 얼굴은 꽤 상기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얼굴들.

물론 일차적으로는 내공량이 늘어나고, 새 무기를 얻게 됐으니 기쁠만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있는 기대감의 원천은 그런 것 이상이었다.

곧 있을 전쟁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는 곧 채워질 것이었다.

[메인 스토리 : 종족전쟁이 곧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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