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모션 캡쳐 (3)
“컷. 다음 모션.”
“와. 난이도 있는 동작들인데 그냥 물 흐르듯이 넘어가네.”
“그러게. 진짜 재능이란 게 있기는 한 모양이야.”
한수아의 동작이 이어질 때마다 탄성이 터져나왔다. 단천은 멀리서 앉아 한수아의 동작을 바라봤다.
첫 동작에서 홍삼캔디로 자세를 교정해준 다음부터는 자세를 교정해 줄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한 번에 감을 잡은 모습이다. 실제로도 한 번의 테이크만으로 고난이도의 동작들을 물 흐르듯이 주파해 나가고 있었으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동작에서 이상함을 알아채는 것이 불가능했을 터다. 그야 자세나 움직임이 워낙에 완벽하니까.
하지만 단천의 눈에는 한수아가 무리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한쪽 눈의 시력도 거의 소실된 것처럼 보이고, 청각도 둔화되었다. 상태가 그리 좋진 않군.’
몸의 상태가 최악에 가까운데도 그런 티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은 천음절맥이 기본적으로 갖게 되는 재능과 더불어, 초인적인 의지력 덕분일 터다.
물론 인간의 의지력이라는 것은 법칙 앞에 무력하다. 한수아에게는 앞으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터였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노력과 돈이 들어갈 터.
흐아암.
단천은 길게 하품을 했다. 뭐, 타인의 인생이 얼마나 남아 있건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겠다는, 소위 불가나 도가의 제세구민과 단천은 멀었기 때문이다.
나의 사람이라면 돕는다. 나의 사람이 아니라면 나에게 이득이 될 때에만 돕는다.
그것이 단천의 모토였다.
“자. 녹화 완료입니다.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수아가 땀에 흠뻑 절은 몸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엄청 빨리 끝났네.”
“죄다 원 테이크로 끝냈으니까. 잘 했어. 수아야.”
한수아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다가와 한수아의 땀을 닦아냈다.
“그럼. 이제 들어갈까?”
몸은 지금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쉬고 싶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수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여기서 다음 녹화자 하는 거 보고 들어갈래.”
“평소엔 들어가서 바로 자려고 하더니.”
“오늘은 그러고 싶어!”
“그래. 그러렴. 하여간, 변덕스러워서는.”
첫 녹화에서 자신의 자세를 교정해준 사람이 여기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여기서 앉아서 구경을 하다 보면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챌 실마리가 나올 지도 몰랐다.
한수아는 땀을 닦아내며 이온음료를 입 안에 들이부었다.
“자. 촬영 끝났으니 다음 녹화자··· 그러니까···.”
“BJ천마.”
“그래. BJ천마님 오시라고 그래.”
“여기 와 있습니다.”
아까 한수아가 VIP룸에서 봤던 남자가 촬영장으로 걸어나왔다.
BJ천마. 꽤 특이한 네임이다. BJ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스트리머인 모양이다.
‘VIP 라운지에 들어가 있었던 걸 보면 엄청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네.’
하인라인 관계자들도 엄청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한수아 자신을 대할 때보다도 훨씬 조심스러운 행동들에 한수아의 눈이 살짝 동그래졌다.
“저 사람. 대단한 사람이에요?”
“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요새 엄청 인기몰이하는 스트리머에요.”
“그렇구나.”
“요새 엄청 핫한데. 잘 모르시나 보네요.”
“저 사람도 저 모르는데. 저도 모를 수 있죠.”
한수아가 살짝 입을 삐죽였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처음 무기는 검부터 갈게요!”
모션캡쳐 촬영이 시작되었지만 한수아는 모션 캡쳐에 그다지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이 수많은 녹화인파 가운데 자신을 도와준 ‘누군가’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누굴까. 어떻게 한 걸까. 일단 저 멀리서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고 인는 VJ가 수상하다.
그렇게 한수아가 의심되는 사람을 하나씩 줄여가려고 있을 때. 시원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쉬익!
청량하기 그지없는 검이 공중을 가르는 소리였다. 한수아의 눈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BJ천마의 검격에 가 박혔다.
“오케이. 컷.”
“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한수아 자신의 사격 모션이 나왔을 때보다 배는 큰 탄성들. 하지만 질투는 생기지 않았다.
한수아의 눈도 BJ천마의 동작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
“엄청나죠?”
“그, 그러네요.”
“완벽합니다! 다음 동작!”
“다음 거!”
“다음 거 갈게요!”
그녀는 한평생 총을 다뤄왔다. 총을 잡고 쏘는 것만큼 멋있는 동작이 세상에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생각이 지금 뒤바뀌고 있었다. 깔끔하고 유려한 검의 움직임과, 검과 함께 움직이는 온 몸의 동작까지.
한 폭의 예술 그 자체였다.
“저 사람. 스트리머 말고는 뭐 했대요? 무술 사범. 뭐 그런 거 한 건가?”
“아무 것도 안 했을 걸요?”
“에이. 그럴 리가요. 소림사 그런 데서 수련하고 온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소림사라는 말에 BJ천마의 눈이 불쾌한 양 일순간 움찔거린 것 같지만··· 착각일 터였다. 그녀와 BJ천마간의 거리는 이런 소근거림이 들리지 않을 거리였으니까.
한수아는 그렇게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찾는다는 목적은 까맣게 잊은 채로 BJ천마의 움직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 다음은 창, 그 다음은 활, 수십 종류의 병기의 모션을 모두 촬영하는데도 두 번 촬영이 이어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컷! 이제 와이어 액션으로 가겠습니다!”
기본 자세들이 모두 끝나자 한수아의 때처럼 와이어 액션으로 넘어갔다.
몸에 와이어를 다는 스태프들이 다가오자 BJ천마의 입이 열렸다.
“이 와이어. 꼭 해야 합니까?”
“···와이어를 안 하시면. 공중으로 3m씩 맨몸으로 점프하시게요?”
“할 수 있으면 와이어 안 해도 되는 겁니까?”
“푸하핫. 농담 한 번 재밌게 하시네요.”
확실히 여러 모로 특이한 사람이었다. 불만스러운 얼굴로 와이어를 장착한 BJ천마의 몸이 바로 다음 모션들로 이어져 나갔다.
와이어를 차고 하는 공중 액션들도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수 미터를 뛰어올라 무술 동작을 취하는 것을 수만 번은 해 본 사람이기라도 한 것 같았다.
“금방 끝나겠네요.”
“그러게요. 안 되면 밤 새서라도 촬영했어야 했을 텐데.”
“자! 이제 마지막 동작입니다! 죄다 한 번에 끝냈으니까! 이번에도 믿고 가겠습니다!”
“···아!”
한수아는 그제서야 아차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BJ천마의 동작을 본다는 게. 순식간에 녹화가 끝나 버렸다. 이래서야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을 찾는다는 소기의 목적은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어차피 못 찾을 거. 그냥 구경이나 할까.”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도와준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숨을 길게 내쉰 한수아는 BJ천마의 마지막 움직임을 바라봤다.
박도朴刀를 들고 공중에서 회전하는 BJ천마의 모습. 이번에도 완벽했다.
툭.
그렇게 회전을 하고 있는 BJ천마의 호주머니에서 뭔가가 떨어져내렸다.
“엇.”
“뭐가 떨어졌는데요?”
“컷.”
모션 캡쳐 중 처음 나온 NG. 스태프가 달려가서 떨어진 물건을 확인했다.
“별 거 아니네요.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뭐가 떨어진 거에요?”
한수아의 물음에 스태프는 픽 웃으며 손을 펼쳐 보였다.
“사탕이요.”
“···홍삼 캔디네요.”
“그러게요. 안 그래 보이는데. 완전 아저씨 입맛인가 보네요.”
한수아는 물끄러미. 스태프의 손 위에 있는 홍삼 캔디를 바라봤다.
***
“오빠가 한 거죠?”
녹화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단천을 멈춰세운 한수아가 물었다.
“뭘.”
“녹화할 때. 제 몸 세워준 거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거 써서 저 맞힌 거잖아요.”
한수아가 홍삼 캔디를 들어 보였다.
“홍삼 캔디가 왜.”
“저 맞힌 물건. 지금 생각해 보면 딱 이 홍삼캔디 크기였거든요? 그리고 오빠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도 이 홍삼캔디였고.”
“그래서.”
“홍삼캔디 좋아하는 특이 취향의 인간이 녹화장에 두 명이나 있을 리가 없다고요.”
세상에 홍삼캔디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5천만 한국 인구중 홍삼캔디를 좋아하는 사람의 비율은 최소 3천만 이상이라고 단천은 확신했다.
하지만, 한수아는 이미 자신을 범인으로 확정해 놓은 눈빛이다. 뒤로 빼 봤자 오히려 더 귀찮아진다.
이럴 때는 그냥 빠르게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본좌가 자세를 교정해 준 게 맞다면?”
“맞다면? 어, 그러니까···.”
대답을 듣자마자 한수아가 눈을 뱅글뱅글 돌렸다. 막상 자신을 잡고 나서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게 분명했다.
“···어··· 도와줘서 고마워요?”
한참 고민한 끝에 나온 감사인사에 단천이 픽 웃었다.
“그래. 감사를 할 줄 아는 것이 협의의 시작이지.”
“근데. 고작 사탕으로 사람 자세를 잡을 수 있는 거에요?”
“실력만 충분하다면 사탕으로 자세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이고 비비탄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
얼마 전 웹소설을 읽고 벽에 쏴 보고 내린 결론이니 확실했다. 무적비비탄이라는 별호를 가진 주인공이라니. 단언컨데 천마 다음으로 멋진 별호라고 할 수 있었다.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야 쉽다. 결정적인 곳에 조금의 힘만 주는 것으로도 쉽게 자세를 무너트리고 고칠 수 있지.”
“그게 된다고요?”
“어렵진 않다.”
한수아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수아의 표정을 보니 말을 해 놓고도 실제로 믿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멍한 표정도 잠시. 한수아가 재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는 건··· 진짜 그 무공인가 뭔가 하는 게 존재하는 거에요?”
“그렇다.”
“그거. 저한테 좀 가르쳐주시면 안 돼요?”
“왜?”
“그걸 배우면··· 제 몸상태가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틀린 생각은 아니다.”
실제로 천음절맥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내가기공의 수련이 필수적이었다. 내공이 전혀 없는 한수아가 내가기공을 수련하도록 만드는 것은 치료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내가기공의 수련만으로는 진행을 다소 느리게 하는 것 뿐이고, 추후에는 결국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하게 되겠지만.
“하지만. 그건 네가 배워야 할 이유고. 내가 가르쳐 줄 이유는 되지 않지.”
“네?”
“내가 너를 가르칠 이유를 말해 보란 말이다.”
“어···. 제가 예쁘니까?”
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고 있어.
단천의 단호한 눈을 본 한수아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단천은 혀를 쯧 찼다. 단천이 한수아를 도울 이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수아가 가지고 있는 무에 대한 재능은 출중하다. 천음절맥은 타고난 무공광이다. 그러니 제대로 잘 가르친다면 꽤 짧은 시간동안에 대련을 해 볼 수도 있을만큼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한수아가 보여줬던 일련의 모습들 때문에 단천의 마음은 이미 ‘돕는다’ 쪽으로 살짝 기울어 있었다.
물론 돕는건 돕는 거고. 비용은 또 따로지만.
“저. CF 찍으면서 돈 꽤 많이 모았거든요? 수업료로 원하시는 만큼은 드릴 수 있어요.”
“흐음.”
불만족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이자마자 한수아가 마른침을 삼킨다.
“수업 시간도 바라시는 시간 맞출게요. 연습도 열심히 하고요.”
“그··· 오빠 스트리머잖아요. 제가 몇 번 출연해 드리는 건 어때요? 저 이래봬도 인지도 꽤 좋거든요. 좋아해 주는 분들도 많고.”
“어··· 그리고 또··· 또···.”
수업료 인상, 수업 단위시간은 전적으로 단천에게 일임한다. 불평, 불만따위는 절대 없도록 하고 불만족스러우면 단천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물론 수업료는 돌려주지 않는다.
한수아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각종 독소조항을 모조리 달고 나서야 단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럼. 오늘부터 시작하지.”
“오늘부터요?”
“그래.”
단천은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타이밍이 좋다. 슬슬 제로콜과의 수업을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