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87화 (87/212)

20. 모션 캡쳐 (2)

한수아가 사라진 뒤. 단천의 내공 운행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상단전의 직감이 단전의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뭔가가 있다는 건가.”

몰입이 방해받기는 했지만 불쾌하다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맛있는 음식이나 돈을 앞두고 나는 설레임이나 두근거림에 가까웠다.

문제는 단천이 그녀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다. 단천은 휴대폰을 들어 풀창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뭐 하냐?]

[풀창고 : 형 나 다에2중]

[풀창고 : 바빠서 대답 못해줄듯 미안]

예의를 좀 차리던 풀창고치고는 심하게 단문의 메시지가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천마신교의 단톡방에서도 풀창고는 부쩍 채팅이 줄어들었었다. 제로콜과 정유채의 말로는 방송을 안 하고 있을 때도 하루종일 다키스트 에이지 2를 하고 있다고 했었다.

풀창고도 나름대로 다키스트 에이지의 썩은물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다키스트 에이지 2가 나왔으니 미친 듯이 게임을 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얘한테 물어보는 건 글렀네.’

정유채도, 제로콜도 방송중이다. 둘에게는 물어본다고 해도 연락 자체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강한솔과 김진표는 어제 업무를 마치고 자고 있을 시간이다.

“알아볼 데가 없네.”

입맛을 가볍게 다신 단천은 그제서야 휴대폰의 검색엔진을 켜 ‘한수아’를 검색창에 쳤다. 인터넷의 정보라는 게 워낙 믿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한수아’ 검색 결과 11,812,977개]

[천재 사격 소녀 ‘한수아’. 목표는 세계 최고 사격수 되는 것!]

[16세 한수아. 한국 사격대회 최연소 우승]

[이번 올림픽, 기대되는 유망주, 최고 유망주는 역시 ‘한수아’]

[한수아. 올림픽 사격 2관왕!]

[올림픽 이후 CF러브콜 이어져. 주요 CF는 커피 광고와 가전제품]

검색을 하자마자 주르르 떠오르는 수많은 기사와 글들.

한수아는 단천의 생각보다 훨씬 더 유명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불과 17세의 나이로 올림픽 사격의 2관왕에 올랐다는 기사. 그리고 뒤이어 수많은 CF를 석권했다는 기사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사람을 신기해할만하긴 했네.”

보아하니 올림픽에서 사용되는 사격 뿐 아니라 자유 사격, 전투시 사격 등 총을 쏘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모션 캡쳐로 데려왔겠지만.”

게임 모션 캡쳐라면 단순히 사격을 잘 하는 것 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의 다양한 자세들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하인라인이 그녀를 모션 캡쳐를 위해서 데려왔다는 것은 그녀의 사격 실력이 얼마만큼 능숙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무 살의 나이에 매력적인 외모, 실력, 거기에 노력까지. 스포츠 스타로서 완벽한 수준의 스타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뭐, 어디까지나 평범한 수준의 몸이었다면 그랬을 거라는 말이지만.”

[한수아. 올림픽 후 3연속 대회 입상 실패.]

[한수아. 지속적인 실력 저하. 많은 CF로 인한 연습 부족?]

[사격 실력 자체에 대한 지적 이어져. 한수아. 노력 중이라는 말뿐]

[RE : ㅋㅋ연습은 안하고 CF나 찍어댈 때 알아봄]

[RE : 뽀록으로 올림픽 우승 해 놓고 자만하더니 이럴줄 암]

[RE : 생긴 것부터가 노력이랑은 거리가 멀더니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기사와, 그 기사들에 달려 있는 수많은 악플들.

그리고.

[한수아. 은퇴 선언.]

[올림픽 참가 실패로 인한 은퇴?]

은퇴 선언. 짧막한 감사하다는 인사와 어설프게 웃는 한수아의 얼굴. 기사의 작성일은 채 1달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랬구만.”

천음절맥은 오성을 타고난다. 그 까닭에 다른 사람에 비해서 어릴 때부터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천음절맥은 기가 흐르는 혈도가 모조리 끊어져 있는 탓에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서서히 몸이 망가져 나간다.

아마 지금 한수아의 몸도 겉만 멀쩡하지 몸 상태는 최악의 상태에 가까울 것이다.

사실 단천은 한수아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천음절맥을 겪고 있건 그렇지 않건, 단천 자신의 인생과는 무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단전이, 그녀를 도우면 단천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타인을 돕는 일이니 상단전이 조금 더 넓어질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이전처럼 기연을 얻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문제는 저놈의 천음절맥이라는 게 치료하기가 여간 귀찮은 질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태가 많이 나쁘다면 얻게 되는 보상보다 귀찮음이 더 클 수도 있다.

“도와준 후에 얻게되는 물건이 이 홍삼캔디만도 못한 수준의 보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

단천은 AI에게서 받아낸 홍삼캔디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물론 홍삼캔디는 나쁘지 않다. 몸에도 좋고, 홍삼의 씁쓸함과 설탕의 달달함이 서로 시너지를 내어 단맛의 중후함을 한층 높여주는 찰떡궁합 그 자체인 제품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상태를 제대로 보고 결정할까.”

결정은 한수아의 촬영을 모두 본 후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

단천은 호주머니에 홍삼 사탕을 한가득 넣은 채로 촬영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수아야. 제발 좀 엄마 걱정좀 시키지 마.”

“아, 알았어. 재밌는 사람 보이길래 잠시 구경한 거야.”

“재밌는 사람?”

“응. 자리에 다리 꼬고 앉아서 한참 명상하고 있더라. 엄청 아저씨같지?”

“···그런 사람 가까이하는 거 아냐.”

“왜애.”

한수아는 입술을 삐죽였다. 한수아 자신이 20살이 됐는데도 그녀의 엄마는 한수아를 아직도 꼬맹이로만 본다.

“나도 이제 성인이라고.”

“그런 애가 엄마 운전 시켜서 여기까지 와? 너 운전 면허증도 있잖아. 따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따더니. 운전은 한 번도 안 하고.”

“그치만.”

“그치만 뭐?”

지금 눈으로 운전하면 무조건 사고가 날 거란 말이야. 앞이 거의 안 보인다고. 귀도 잘 안 들려.

한수아는 이런 말을 구태여 하지는 않았다. 그저 배시시 웃었을 뿐이다.

“···아니야! 엄마랑 같이 오고 싶었어.”

“실없기는. 촬영팀에서 다들 너만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움직여.”

“알았습니다요! 어마마마!”

촬영장에 도착하자 수백 개의 카메라가 촬영장에 도열해 있었다.

“자. 한수아 씨. 필요한 사격 자세들은 다 외워 오셨죠?”

“물론입니닷!”

“혹시 모르니까 스크린에 필요 자세들 띄워 드릴게요. 혹시 위험한 자세들이다 싶은 것들은 스킵하셔도 상관 없어요.”

한수아는 얼마 전에 맞춘 선글라스를 꼈다. 다들 도수가 없는 패션 선글라스인 줄 알지만, 사실은 보통 사람들이 끼면 눈이 팽팽 돌 게 분명한 수준의 높은 도수가 들어 있는 선글라스다.

선글라스를 끼니 조금은 낫다. 물론 이래도 보통 사람 수준의 시력에는 못 미치지만. 자세를 잡는 데에는 충분하다.

“자. 첫 모션부터 촬영할게요.”

[모션 1 : 권총. 격발 자세 1]

스크린에 떠오른 자세에 따라 한수아의 손이 깔끔하게 총을 파지하고 격발 자세를 취했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해도 수만 번은 취해 봤던 자세다.

‘물론 실제로 사격을 한다면 아무 것도 맞출 수 없는 수준이지만.’

최소한 사격까지만의 동작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모션 캡쳐를 수락한 것이기도 하고.

“와.”

“역시긴 역시다.”

“비율도 엄청 좋고. 따로 리터칭할 필요 없겠는데?”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감탄사들. 그래도 다행이었다. 초반의 간단하기 그지없는 자세 촬영이 끝나자 그 다음부터는 조금 더 난이도가 있는 자세들이 시작됐다.

[모션 42 : 권총. 구르기 후 전방 사격]

한수아의 몸이 날렵하게 바닥을 구른 다음 전방을 향한 사격 자세를 잡았다.

“오케이. 컷.”

“크, 어려운 자세인데 원 테이크로 되네.”

“일반 프로들은 사격 자세만 제대로 나온다던데.”

“한창 제대로 할 때에는 하루종일 총만 가지고 살았다잖아. 후반기에는 놀러 다니긴 했어도.”

한수아는 놀러 다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몸이 고장나면서부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사격을 하는 데 투자했었다. 그저 몸이 더 이상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성적이 나오지 않게 된 것 뿐.

하지만 구태여 변명하지는 않았다. 남이 들어주지도 않을 뿐더러, 프로라는 건 보여주는 자리이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한수아는 주어지는 자세들을 이를 악물고 모두 원 테이크로 이끌어나갔다.

“자. 지금부터는 궁극기 관련 액션인데. 좀 난이도가 있어요. 몸 상태 괜찮아요?”

“괜찮아요.”

“수아야. 괜찮은거 맞아?”

“어. 컨디션 완전 좋아! 지금 뛰어서 화성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수아가 과장스럽게 폴짝거리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좋아. 분위기도 한층 가벼워졌고. 이제 제대로 연기만 하면 된다.

남아 있는 건 대부분이 궁극기와 생존 스킬들이다. 회피 모션과 함께 사격을 하거나 하는 모션들.

“그럼 ‘볼트액스’ 궁극기부터 갈게요.”

[캐릭터 ‘볼트액스’ : 궁극기. ‘트라이던트’]

캐릭터 볼트액스의 궁극기인 트라이던트는 뒤로 뛰어 오르면서 3발 사격, 이후에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하는 스킬이다.

와이어 액션이라 본래라면 스턴트를 시키고 합성을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한수아는 굳이 스턴트 없이 촬영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 정도면 할 수 있어.’

애초에 남한테 맡길 거라면 모션 캡쳐를 수락하지도 않았을 거다.

“와이어 제대로 확인했지?”

“넵.”

“혹시 위험하다 싶으면 스턴트로 교체할 수 있으니까 언제든지 이야기하세요!”

“알겠습니닷!”

한수아는 경례 자세를 풀고 숨을 가다듬었다.

“자. 액션!”

휙! 한수아가 땅에서 발을 떼자 와이어가 그녀를 공중으로 띄워올렸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 사격 자세는 완벽했다. 최고점에서 뒤로 빙그르 공중제비를 돈 한수아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이제 제대로 착지만 하면···.’

착지만 하면 되는데.

바닥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제대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어제 연습할 때까지는 제대로 됐는데. 자신의 균형감각이 한층 더 무뎌진 모양이다.

찰나의 당황이 끝나기도 전에, 착지를 시작해야 하는 다리가 바닥에 닿았다.

‘망했다.’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착지가 될 리가 없다. 다리가 접질리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질 게 뻔한 상황.

퍽! 옆구리 쪽에서 뭔가가 부딪힌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한수아는 눈을 질끈 감고 그 뒤에 이어질 고통에 대비했다.

하지만, 뒤이어지는 고통은 전혀 없었다. 쓰러져서 느껴야 할 바닥의 차가운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

자신의 몸은 똑바로 서 있었다.

“착지 좋았어요.”

“와아아.”

“이것도 원 테이크를 간다고?”

그리고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탄성들.

‘···어떻게?’

자신은 분명히 착지에 실패했다. 아니, 착지에 실패해야 했다. 한수아는 그제서야 착지 직전에 느껴졌던 기묘한 충격을 떠올렸다.

‘마치 내 무너지려는 자세를 강제로 잡아주는 것 같은···.’

분명 뭔가가 날아와서 자신을 맞춘 것 같은 충격이었다.

한수아의 눈이 바닥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상한 건 하나도 없었다. 특별히 이상한 거라고 해 봤자, 누가 치우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거무죽죽한 사탕이 전부다.

‘···저거 홍삼 사탕인가?’

물론 맛이 무슨 관계겠냐만. 저 거무죽죽한 색깔은 홍삼사탕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럼, 다음 궁극기 촬영 갈게요!”

“네, 넵! 알겠습니다!”

한수아의 생각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남은 촬영이 꽤나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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