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전쟁의 서막 (5)
이어지는 메시지들이 끝나자, 공중에 떠 있던 드라이오나의 몸이 바닥에 착지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신성력 +300]
[정령들과의 우호도가 최대치가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상 메시지들.
> 아니 뭔 한방에 신성력이 300이나 올라가냐
다키스트 에이지 2 내에서 퀘스트를 통해서도 신성력이 올라가기는 하지만 그 수치가 실로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단 하나의 퀘스트로 300이나 되는 수치가 올라갔다.
이미 보상을 확인하고 퀘스트를 진행했음에도 탄성이 나올만큼의 보상이었다.
물론, 이 보상이 끝은 아닐 터. 드라이오나가 다시 여왕의 자리를 되찾게 해 줬으니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또다시 주어질 것이 분명했다.
어느 새 드라이오나는 홀을 들고 덤불과 나무들로 만들어진 왕좌 위에 고고한 체하며 앉아 있었다.
“인간들의 왕이여. 그대의 노고를 치하하노라.”
드라이오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천의 검이 뽑혔다 들어갔다.
서걱!
드라이오나의 머리쪽에 있던 이파리 하나가 검격에 잘려 나풀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갑자기 무게 잡지 마라. 베이고 싶지 않다면.”
“아. 왜! 다시 여왕이 됐는데, 여왕답게 말을 해야지!”
“있는 자리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면 진짜 왕이라고 할 수 없다. 위대한 자라면 자신이 어디에 있건간에 같은 태도로 일관해야 하는 법.”
> 그건 맞음
> 설득력 무엇 ㅋㅋㅋㅋㅋ
> 천마가 말하니까 설득력 미쳤네
> ㅇㅈㅇㅈ;;
드라이오나는 초지일관 오만함을 유지하는 BJ천마를 노려보다 폭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아무튼, 우리 정령은 너희 인간과 함께 고대신들을 몰아내기 위해 싸울 것이다.”
[드라이오나가 당신에게 굳은 결속을 느낍니다.]
[정령과의 우호도가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정령과 인간은 혈맹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배신을 하지 않는 모양이군.”
혈맹이라는 것은 완전한 우군이 되었다는 뜻. 게다가 모든 힘을 다시 돌려받았는데도 배신을 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단천 자신의 추측을 완전히 빗나가다니. 신선하기 그지없는 전개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더러워진 이곳부터 정화해야겠군.”
드라이오나가 손을 휘두르자 공동에 가득차 있던 탁기가 빠르게 지워져 나갔다. 바닥을 불태우던 불꽃도, 세상을 얼릴 듯한 냉기도 지워지고, 그 자리를 다양한 종류의 정령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 오오
> 와
불꽃과 얼음, 녹읍이 함께하는 초현실적인 장면에 채팅창에서 감탄이 터져나왔다.
“저거 잡으면 경험치 주려나.”
물론 BJ천마는 그런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런 광경이야 제갈세가의 집무실에서 질리도록 봐 온 까닭이다.
> 제발 감탄할 때는 같이 감탄해 주세요
> 솔직히 너희도 다 비슷한 생각 했잖아
> 그렇긴 한데;;
채팅창의 사소한 불만을 뒤로 한 채로, 단천은 드라이오나를 바라봤다. 정령의 여왕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느껴지는 존재감 자체가 엄청나다.
‘주변에 풍겨나오는 기운도 엄청나고.’
과거의 드라이오나와 지금의 드라이오나의 차이는 말하고 걸어다니는 산삼에서 말하고 걸어다니는 만년설삼이 된 것 정도의 격차다.
이제 같은 편이 되었기에 효능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혹시 지금이라도 배신할 생각은···?”
“없어! 없다고! 배신 안 해! 안 한다고!”
단천은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드라이오나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은 장난이 아니다. 지금 정령의 안식처 전체에 그녀의 기운과 정령들의 기운이 펼쳐져 있다. 마치 이 장소가 하나의 커다란 내단이 된 것처럼.
내단이 된 것처럼···.
내단이 된 것처럼···.
“···흐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별 것 아니다.”
단천은 제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 공동이 커다란 내단이라면, 그 안에서 심법을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내공이 늘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천은 눈을 감고 대주천을 빠르게 운용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잠깐 대주천을 돌렸을 뿐인데도 내공이 조금 늘어나 있었던 것이다.
“야! 너 방금 뭐 한 거야! 내 힘이 약간 사라졌잖아!”
“역시. 가능하군. 이곳에서 내공을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평소 수련의 몇백 배나 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정령들이 발하는 기운은 일종의 자연지기가 많이 모여 있는 장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내공이 증진될 수 있다니.
‘기연 중의 기연이로군.’
중원에서도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을 말로만 들어 왔었는데. 이런 장소가 실존할 줄이야.
“별 것 아니다. 여기서 심법을 운용해서 자연의 기운을 내 것으로 만들었을 뿐.”
“그 기운이 내 힘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
“왜. 아깝나? 네게는 아주 자그마한 힘에 불과할 텐데.”
“흐···흥! 이쯤이야 나한테는 코딱지만한 손해일 뿐! 우군에게 도움이 된다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
“든든한 혈맹이로군.”
“이 정도쯤 이 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
BJ천마의 말에 드라이오나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올라갔다.
> 한 마디에 헬렐레하는 거 봐 ㅋㅋㅋㅋ
> 칭찬 한마디에 입꼬리 올라가는 거 실화냐 ㅋㅋㅋ
> 칭찬양파는 실존하며 그녀의 이름은 드라이오나다 ㅋㅋㅋㅋㅋ
“그렇다는 건 얼마든지 이곳에서 수련해도 괜찮다는 말이겠지?”
“물론! 우리는 혈맹이니까!”
“일구이언은 이부지자.”
“일구이언은··· 뭐?”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면 아버지가 둘이라는 말이다.”
“흥, 나는 정령의 여왕인 몸! 결코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는다!”
“알겠다. 잠시 바깥에 다녀오지.”
“바깥에는 왜?”
BJ천마는 대답을 하는 대신 빠르게 정령의 안식처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바깥을 나갔다 돌아온 BJ천마의 곁에는, 바깥에 두고 왔던 기사들이 모조리 함께였다.
“말씀대로 신성력이 가득한 땅입니다!”
“여기서 수련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내공의 양이 빠르게 증진될 거다.”
“오오오!”
기사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기사들의 눈이 반짝이는 만큼 드라이오나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져 있었다.
“자. 한시가 급하니 수련을 시작하도록.”
“알겠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기사들이 수련을 시작했다. 동시에 드라이오나의 힘도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실시간 날강도 현장 ㅋㅋㅋㅋㅋ
> 이 장소의 신성력은 이제 제 겁니다
> ㄹㅇ 아낌없이 주는 나무
“지금 뭐 하는 거야아아!”
“얼마든지 가져가도 된다기에 실력이 부족한 기사들을 데려왔을 뿐인데.”
“얼마든지 가져가도 된다는 말이 그 말이 아니잖아!”
> 험한 말 나오기 직전 ㅋㅋㅋ
> 칭찬양파 실시간으로 비난양파로 변신중 ㅋㅋㅋㅋ
“게다가 본좌와 함께 여기까지 함께 와 준 기사들도 드라이오나 네 입장에서는 은인이지.”
“······.”
맞지. 그거야 맞지.
그런데 그걸··· 보통 자기 입으로 말하나?
“자신의 지위를 되찾게 해 준 은인들에게 이 정도야 해 줄 수 있는 호의이지. 안 그런가? 네가 그런 은혜도 모르는 천하에 다시없을 배은망덕한 버러지는 아닐 테니까.”
안 된다고 했다가는 천하에 다시없을 배은망덕한 버러지가 될 상황이다.
“···알았어. 알았다고.”
드라이오나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 몇 마디 나눴다고 순식간에 수척해짐 ㅋㅋㅋㅋ
>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 ㅠㅠㅠㅠ
> 아낌없이 주는 나무(자의 아님)
***
“으음. 오늘의 방송도 알찼군.”
단천은 VR캡슐 밖으로 나와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드라이오나의 선의의 기부 덕분에 오늘만 해도 내공을 엄청나게 불렸다.
“이 정도면 꽤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을지도.”
단천의 내공뿐 아니라 기사들의 능력치도 급속도로 커졌다. 인간 측 진영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도 새로 제련이 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전면전을 치르면 아마 클리어를 향해 빠르게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뭘 한다.’
클리어를 한다면 아마 게임에 내공과 중원의 무술들을 넣은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 수 있겠지만. 그걸 찾아나가는 것과 스트리밍은 또한 별개인 것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컨텐츠들을 찾고 시청자들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도 스트리머에게는 중요한 과업인 것이다.
한 컨텐츠가 끝나기 전에 다음 컨텐츠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 이것 또한 스트리머에게는 중요한 일인 것이다.
“···문제는. 다키스트 에이지 이후의 컨텐츠로 쓸만한 게 잘 없다는 건데.”
어디서 할만한 컨텐츠 안 떨어지나. 단천은 주7일연재를 하며 소재를 찾는 웹소설 작가의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훑어봤다.
역시 새 컨텐츠라면 새 게임이 기본이다. 문제는 지금의 다키스트 에이지와 그 전에 했던 레일 서바이버가 최상급의 컨텐츠라는 데 있었다.
짧게 짧게 할 수 있는 게임들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꽤 오랜시간동안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서유나 말로는 AOS라는 게임이 괜찮다고 했는데.’
고수들도 많고, 파고들 여지도 많은 게 AOS라는 종류의 게임이라고 했다.
“FPS보다도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플레이어가 많고, 대회도 활성화되어 있는 게 AOS라고 했지.”
AOS를 검색하자 수십 종류의 AOS 게임들이 주르륵 나왔다. 단천은 위에서부터 게임 하나하나를 훑어내려갔다.
기대를 하던 단천의 눈빛이 빠르게 실망에 잠겼다.
“모션이 죄다 별로군.”
AOS는 사용하는 ‘스킬’이 존재하는 게임이라고 했다. 이 스킬의 모션은 실제 달인의 모션을 따서 만든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 달인의 모션이라는 게 단천의 눈에는 영 허접하기 그지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아무리 달인이라고 해도 그들은 무술이 거의 실전된 21세기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무가 생존 그 자체이며 목표점이던 중원의 무인들과 수준이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중원이었다면 삼류, 혹은 그 이하 수준의 모션들이다. 저런 모션을 취하는 적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당장 내가 직접 모션을 따도 저것보다는 훨씬 낫겠···.”
말을 중얼거리던 단천의 말이 중간에 멈췄다.
“···그러고 보니.”
단천은 빠르게 손을 놀려 ‘AOS’와 ‘하인라인’을 검색했다.
[하인라인 사. 신작 5:5 AOS. ‘천공’ 개발 마지막에 이르러.]
[하인라인, 모션 캡쳐. 완벽 이상의 완벽을 보게될 것. 누구인지는 비밀.]
[‘천공’의 모션 캡쳐, 베일에 쌓인 사람은 과연 누구?]
반응을 보아하니 하인라인 사 측에서 개발하던 AOS 개발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든 모양이었다.
단천은 하인라인 사에 단천 자신의 모션을 캡쳐해 보냈었다. 이후에 간단한 계약서를 쓰고, 천공이 출시되면 로열티도 받기로 해 놨었는데.
“개발이 잘 되고 있었군.”
까맣게 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시급한 일이 워낙에 많았기에 후순위로 미뤄놨던 것일 뿐.
모션은 볼 필요 없었다. 자신의 모션을 캡쳐해 만들었으니, 퀄리티 자체가 좋을 것은 확실했으니까.
“다음 게임은 이걸로 하면 되겠군.”
그렇게 결심한 단천은 메일함을 켜 혹시 하인라인 사에서 온 메시지가 없는지 확인했다. 하인라인과 자신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프로모션 메일이 오는 것은 당연했기에.
[하인라인사에서 메일이 182개 도착해 있습니다.]
“182개?”
아무리 그래도 메일이 이렇게까지 올 일은 없을 텐데. 단천은 메일함에 도착해 있는 하인라인사의 메일 하나를 켜 확인했다.
[게임의 추가 모션캡쳐를 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추가 모션이라.”
하인라인 사는 받았던 단천의 모션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