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전쟁의 서막 (3)
[정령의 안식처로 입장하겠습니까?]
정령의 안식처의 입구는 소용돌이치는 형태의 게이트였다. 맵이 이어져 있는 형태가 아니라 소위 ‘던전’형식으로 만들어져 다른 장소로 이동되는 게이트 형태의 던전.
단천은 혼자서 발걸음을 던전 안으로 옮기려 했다. 게이트로 발을 디디려는 순간, 옆에 있던 브라딘이 물었다.
“주군. 정말로 혼자 들어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신하된 도리로서 혼자서 왕을 위험한 곳에 보내는 것이 불안한 까닭이다.
‘날 못 믿냐?’라며 대가리를 후려깔 수도 있었지만. 단천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브라딘도 BJ천마가 보여주는 믿기 힘든 수준의 신위는 계속 봐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하라는 것은 언제나 왕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서윤학이 그런 말을 했다면 머리에서 피가 날 때까지 머리를 두들겨 줬을 테지만.
“어차피 기사들은 더 이상 싸울 만한 상태도 아니잖아.”
“그어어어.”
기사단 전부가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휴식을 선언하자마자 몸에 남아있던 긴장이 완전히 풀려버린 탓이다.
한 사람도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BJ천마가 몬스터들을 사냥한 페이스는 글자 그대로 오버페이스중의 오버페이스였으니까.
“휴식을 조금만 취하면···.”
“쟤들 똑바로 움직이려면 하루 넘게 걸릴 걸?”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 애초에 오버클락 심하게 하기는 했지
> 지금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긴 해
> 인권··· 도대체···어디···?
“기사들은 언제건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 선택한 것은 본인들이지.”
> 네가 선택한 사냥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 누가 칼 들고 협박함?
> 칼으로 협박하기는 했지
> 랭킹 걸려 있는데 어케 안 하냐고 ㅋㅋㅋㅋㅋ
게다가 지금부터 가려는 곳은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장소다. BJ천마 혼자서 가는 게 신경쓸 것도 더 적고 편한 것이다.
게다가 혼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점도 컸다. 아무래도 여럿이서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것만 보여주다 보니 시청자들의 시선이 여기저기로 분산된 상태.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번 모아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겠다. 주변을 잘 지키고 있도록.”
“그어어어.”
바닥에 엎어진 채로 대답하는 꼬라지를 보니 고블린 한 마리만 나타나도 전멸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 근데 저거 냅두고 가도 괜찮냐?
> 냅뒀다가 습격당하면 그대로 전멸당할 것 같은데;;
> 브라딘 혼자만 전력이잖아. 브라딘도 마나 거의 오링났고;
혼자서 정령의 안식처로 들어가려고 하는 BJ천마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십 명이나 되는 기사들을 걱정을 하는 채팅만이 올라올 뿐.
이는 그만큼 시청자들이 BJ천마에 대한 신뢰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몬스터들의 습격은 걱정할 필요 없다. 애초에 주변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말살했으니까.”
게다가 상단전에도 딱히 위협이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니 기진맥진해 있는 기사단에게 위협이 닥쳐올 일은 없는 것이다.
“이 정도로까지 확인을 했는데도 습격당한다면 그거야 본인들의 운일 테지.”
>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의 목숨을 운에 맡기지 마라고 ㅋㅋㅋㅋ
단천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뒤 정령의 안식처로 바로 발을 내디뎠다.
[정령의 안식처에 입장합니다.]
정령의 안식처에 발을 디디는 순간 단천이 느낀 것은 불쾌감이었다.
정령의 안식처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벽과 천장 전부가 검게 착색되어 있었다.
> ㅅㅂ 정령의 안식처라며
> 분위기 왜이럼
“이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군.”
“그야 이곳에 있는 정령들도 고대신들에게 굴복했으니까.”
드라이오나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은 원래 정령들의 여왕이 거주하던 장소였다. 그녀는 고대신들과 싸우기를 바랬지만···. 내부의 배신에 의해 축출당하고 말았지.”
“그 여왕이라는 자. 어지간히 능력이 없었던 모양이군.”
“이 자식이 진짜!”
드라이오나가 손에 막대기를 만들어 단천을 콕콕 찔러댔다. 막대기라고 해 봤자 이쑤시개나 다름없는 굵기라서 타격은 전혀 없었지만.
“그보다 욕을 먹은 건 여왕인데 왜 네가 화를 내는 거지? 네가 정령들의 여왕이라도 되나?”
“그···그건···!”
드라이오나가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 딱 봐도 드라이오나가 여왕이었구만
> ㅇㅇ;
> 어째 남들한테 하대가 기본이더라니 여왕이었구나
> 천마님도 하대가 기본인데 여왕님이었던 거냐?
> 천마님은 천마님이고 ㅡㅡ
‘그랬던가.’
올바른 가치를 내걸던 가주가 축출당하는 일은 무림에서도 꽤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세상은 힘의 논리가 절대적이다. 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협俠을 부르짖는 것은 무의미할 뿐인 것이다.
그걸 몰랐으니 왕좌에서 축출당한 것일 테지.
“그럼. 네가 다시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면, 정령들은 인간의 편에서 싸우게 된다는 뜻이겠군.”
“다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확보할 수 있을··· 아니. 나는 여왕이 아니라고!”
“더 이상 속여 봐야 소용없다. 네가 정령의 여왕인 건 네가 언젠가 배신을 할 것이라는 것만큼이나 확고부동한 사실이니까.”
“이 자식이 진짜! 배신 안 해! 안 한다고!”
드라이오나의 찌르기가 다시 목을 찔러댔다. 단천은 드라이오나의 손에서 이쑤시개를 빼앗아 멀리 던져버렸다.
“아앗! 내 글레이프니르아니오스가!”
“글레이프니···뭐?”
“글레이프니르아니오스! 네놈이 방금 내던진 내 무기 말이다!”
“방금 만든 싸구려 막대기에 그런 있어 보이는 이름 붙이지 마라. 그보다, 네가 다시 여왕의 자리에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건···.”
드라이오나가 말을 하지 않고 망설였다. 완전히 BJ천마를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치.
드라이오나가 왜 정체를 숨기려고 했는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아도 훤했다. 드라이오나는 배신을 당해 여왕의 자리에서 축출당했다. 그러니 쉬이 타인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드라이오나를 완전히 믿게 만들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믿지 않게 만들더라도 설득하는 것은 가능하다.
“타인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힘의 논리를 믿도록.”
“힘의 논리?”
“네가 다시 여왕의 위에 오르는 것은. 본좌에게 도움이 된다.”
정령들은 땅을 뒤집고, 바람을 일으키는 등, 전장에서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능력들은 커다란 전략적 가치가 있다.
“타인을 믿지 않는다면, 힘의 논리를 믿으라···. 그래. 네 말이 맞다. 너는 나를 도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BJ천마의 말을 되새기던 드라이오나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서. 네가 다시 여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 힘의 대부분은 여왕의 홀에 봉인되어 있다. 그 홀은 두 개로 나뉘어 있지. 홀의 반쪽은 나를 축출했던 배신자인 홀비도와 레바테인이 가지고 있다. 그 둘만 훔쳐낸다면 내 힘은 돌아올 거다. 너를 지원해줄 수도 있겠지.”
[퀘스트 : 홀비도와 레바테인에게서 여왕의 홀을 훔쳐내십시오.]
[보상 : 드라이오나의 복위, 정령 진영과의 신뢰도 상승, 신성력 +300]
> 이렇게 되면 개이득이네
> 안 그래도 전력이 부족한데 여기서 메울 수 있네
> 여왕님 복권 가즈아ㅏㅏㅏㅏㅏㅏㅏ
채팅창의 반응이 달아올랐다. 안 그래도 대내외적으로 어떻게 몬스터들을 몰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한 상황이었다. 몬스터들의 수가 워낙에 많아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에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새롭게 정령이라는 우군이 생긴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설정충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 정도면 진짜 전면전도 해볼만할지도?]
다키스트 에이지를 깊게 판 설정충들의 입에서도 전쟁도 해 볼만하다는 이야기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열세인 부분들도 분명히 있지만. 정령이 참전한다는 것만으로도 전면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까지 상황이 반전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사이에서, 단천의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내공 300이라.’
다키스트 에이지의 신성력 수치를 내공으로 환상하면
대략 50마다 내공 10년 정도였다. 지금 단천이 가지고 있는 내공의 수치는 대략 반 갑자 정도.
300이 올라간다면 순식간에 1갑자 반의 내력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기연이로군.’
글자 그대로 기연이었다. 현실에서도 이렇게 쉽게쉽게 내공이 오른다면 좋으련만.
“수락하도록 하지.”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단천의 눈 앞에 지도 하나가 떠올랐다.
[정령의 안식처]
지도 안에 표시되어 있는 목표점 두 개. 저 찍혀 있는 목표점이 바로 여왕의 홀의 위치인 모양이다.
“홀비도와 레바테인의 힘은 정령 중에서도 최상급의 능력이다. 게다가 이곳은 정령들의 힘이 극대화되는 곳이지. 그러니까 놈들과 제대로 싸우지 말고 내 홀만 훔쳐서···.”
말을 이어나가던 드라이오나가 BJ천마의 눈을 바라봤다.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다.
“너. 지금 훔칠 생각 없지.”
“왜 굳이 그래야 하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훔치기’ 퀘스트잖아 ㅋㅋㅋㅋ
>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라 ㅋㅋㅋㅋㅋㅋ
이번에도 역시나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BJ천마의 시청자들도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BJ천마가 ‘훔친다’라거나 ‘도망친다’라는 선택지를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임을.
게다가 어렵기 그지없는 선택지만을 골라 하는 것이 BJ천마라는 것을 시청자들도 이제는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도 이제는 말리기보다는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날대로 늘어나 있는 상황.
특히나 천마신교 예비교도들의 반응은 더더욱 격렬했다.
> 천마신교! 천마신교! 천마신교! 천마신교!
> 가즈아ㅏㅏㅏㅏㅏ
> 정령들 다죽여! 죄다 죽여버려! 옆에 있는 드라이오나도 죽여 버려!
> └ 아닠ㅋㅋㅋ 퀘스트 준 NPC까지 죽이면 어떡하냐고 ㅋㅋㅋㅋ
[미션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노빠꾸로 다 쳐죽이면 100만원!]
[정령교교주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다 죽여! 죽여버려! 남자답게 빼앗는다!]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은 무엇이 됐건 파괴한다. 가져야 하는 것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무를 겨뤄 빼앗는다.
실로 천마신교의 가르침 그 자체 아니던가. 자신의 말에 호응하는 사람의 숫자가 이렇게 많다.
천마신교의 가르침에 딱 맞는 인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 이래야 천마신교지.”
단천의 입꼬리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자신이 처음 목표로 했던 대로, 천마신교의 가치관이 채팅창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니.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성과다.
“그럼. 놈들을 쳐죽이러 가 볼까.”
“···쳐죽이는 게 아니라 훔치는 거라고.”
드라이오나가 사소하게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녀의 불만은 그 어떠한 파문도 만들어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