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전쟁의 서막 (1)
[검 제련이 완료되었습니다.]
다키스트 에이지를 실행하자마자 떠오르는 기분좋은 메시지. 단천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신교에 있을 때에는 천마가 쓸 검 하나 받는 데에도 삼칠일의 제례와 사십구일 간의 제사를 지내고야 받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게임에서는 하루만에 무기가 만들어진다.
‘물론 그 질이 마음에 들어야겠지만.’
아무리 단천이 무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무인이다. 자신이 앞으로 꽤 오랫동안 손에 쥐게 될 무기를 새롭게 받는다는데 생각을 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단천은 가볍게 발걸음을 대장간을 향해 옮겼다.
깡! 깡! 깡! 대장간에 가까워 오자 경쾌하기 그지없는 철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이전의 비실비실하고 맥아리 없는 소리가 아닌 열정에 가득한 철 두드리는 소리다.
단천은 대장간의 문을 열었다. 후끈하기 그지없는 열기가 퍼져나왔다. 안에는 단천이 가져왔던 무기들이 바닥에 쌓여 제련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 더워!”
단천의 어깨에 올라가 있던 드라이오나가 손으로 부채질을 해 댔다. 지난 번보다 강해진 열기 때문에 식물인 드라이오나가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부채지를 몇 번 하던 드라이오나는 이파리를 펼쳐 자신만이 들어가는 풀잎으로 된 공 안에 쏙 숨어버렸다.
“어이! 거기! 더 빨리 움직여!”
“제대로 용융을 하려면 풀무를 더 부쳐야지!”
“거기! 제대로 접고 두드려! 허리 접어버리기 전에!”
카를랜드의 힘 있는 목소리가 대장간 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카를랜드의 목소리에 맞춰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 하루만에 활기 무엇 ㄷㄷ
> 용광로 하나 쓸 수 있게 된 걸로 이렇게 되나
> 확 사람사는 곳 같네
거대한 용광로가 제대로 가동된 덕분인지 카를랜드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렇게 한참 사람들을 지휘하던 카를랜드가 이내 대장간에 들어온 BJ천마를 발견했다.
“오오! 왕께서 오셨구만!”
“꽤 바빠 보이는군.”
“아아. 새롭게 대장장이들을 좀 뽑았으니까. 이제 첫 날이라 쓸만한 놈은 하나도 없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가르치고 있네.”
카를랜드의 눈이 반짝였다. 반쯤 죽어가고 있던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혼자서 작업하기에는 손이 좀 부족했나보군.”
“그것도 있고. 제자들을 좀 키워 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네.”
“제자라.”
“그래. 원래는 제자따위 키울 마음이 별로 없었거든. 이렇게 소일거리나 하면서 늙어 죽으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용광로가 제대로 돌아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 내가 이렇게 죽고 업이 이렇게 끊겨 버리는 게. 엄청나게 아쉽다는 생각 말일세.”
카를랜드의 표정은 단천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중원에서 후학을 기르던 놈들이 걸핏하면 짓던 표정이다.
단천에게는 딱히 이해가 가지 않는 감정이기는 했지만.
“용광로 하나 돌아간 것으로 많은 생각이 바뀌는군.”
“딱히. 용광로 덕분은 아니고. 자네 덕분이지.”
“내 덕분이라고?”
“왕의 목표는, 이 세계에서 모든 몬스터들을 몰아내고, 다시 인간의 영토를 수복하는 것 아니던가. 그러면··· 아마 인간의 수도 다시 늘어날 테고, 대장장이들도 이 세상에 더 많이 필요해지겠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생겼으니, 후학을 길러내겠다는 말이었다.
이 모든 것은 BJ천마가 만들어낸 길에서 희망을 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크핫! 사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왕께서 제대로 고대신들을 이겨내 줘야 하는 일이지만!”
“걱정 말도록. 고대신들은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
“말이라도 고맙네. 아! 사설이 길었구만. 왕께서 하실 일이 많을 텐데. 이 노인네가 너무 오래 붙잡아뒀구만. 검! 검을 찾으러 온 것일 테지!”
단천은 카를랜드에게서 검을 받아들었다. 검집에는 그럴싸해 보이는 장식이 보이지는 않았다.
‘마음에 드는군.’
이런저런 장식이 있는 것은 검을 무겁게 할 뿐더러 눈에 잘 띈다. 왕에게 진상하는 물건인데도 이러한 효율을 추구한다는 것이 단천은 마음에 들었다.
“뽑아 보게.”
> 검을 놓은지 몇 년째던가···.(하루도 안 됨)
> 아아. 이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
> 이제 다시 검성으로 돌아갈 때다.
검성은 무슨. 검성이라는 이름 쓰는 놈 치고 제대로 실력 있는 놈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이름을 자신에게 가져다 대다니.
검성이라고 까불거리는 정파 놈들을 수십은 때려잡은 경험이 있는 것이 단천이었다.
채팅에 가볍게 눈살을 찌푸린 단천은 검을 천천히 뽑아들었다. 깔끔하게 뽑혀져나오는 검의 색깔은 칠흑과도 같은 검은색이었다.
“검은색이군.”
“싫나?”
“아니.”
검은색의 무기는 밤에 빛을 비추지 않아 위치를 들키지 않게 해 준다. 실용성으로 따지자면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는 검들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고 봐야 했다.
“검은색의 빛을 띄는 블랙 하르콘을 사용했지. 여기 있던 물건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재료야.”
단천은 검의 옆면을 만졌다. 가볍기 그지없는 무게감과는 달리 묵직한 느낌의 감촉이다.
단천 자신이 아는 묵철과 완전히 같은 느낌이다.
“블랙 하르콘은···.”
“사용하는 기운이 어떤 종류이건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재료지.”
“블랙 하르콘을 아나?”
“알지.”
> 어케 안거임?
> 풀창고가 줬던 노트에 있나봄
> ㄷㄷ 풀창고 미쳤따리
풀창고의 설정집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단천은 굳이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잡아올리고 조용히 내력을 끌어올렸을 뿐.
화르륵!
불멸화염심법을 사용하자 검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단천이 이전에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불길이었다.
“오. 그게 왕이 가지고 있는 신성력인 모양이구만. 거대하기 그지없는 불꽃이군!”
카를랜드가 감탄을 끝내기도 전에, 검이 이번에는 열기가 아닌 한기寒氣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쩌저정!
주변의 열기가 순식간에 줄어들며 주변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신성력을 두 개나···?”
여전히 단천의 시험은 멈추지 않았다. 수라역천혈마공을 사용하자 검이 핏빛으로 달아오르고, 천명뇌전심법에는 뇌전이, 자하신공에는 자색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다섯···개?”
> 개놀란 표정이네
> ㅉㅉ 겨우 이 정도로 놀라냐
> 사실 우리도 처음 볼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긴 함 ㅋㅋㅋㅋㅋ
> 뭐래. 지금도 놀라고 있는데 ㅡㅡ
[일하기싫어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아니 대체 어케 하는 거냐고!! 나는 하나도 못 하는데!!!]
“어떻게 하기는. 설명서를 보고 열심히 연습하면 된다.”
> 전교 1등하는 법 : 국영수를 위주로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한다
> 아 너무 열받는다
> 소드아트에서 신성력 사용하는 것도 좀 쉽게 해 준다고 했으니까 기다리자 ㅅㅂ
“확실히. 모든 신성력을 백분 잘 활용할 수 있는 검이기는 하군.”
“다섯 개의 신성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뭐. 특별할 것 없는 일이지. 꽤 마음에 드는 검이다. 잘 쓰도록 하지.”
단천이 검을 납검하려고 하자, 카를랜드가 단천의 손을 붙잡았다.
“자. 잠깐! 그··· 그람의 자랑이 아직 덜 끝났다네.”
“그람?”
“그 검의 이름이라네.”
“근데. 굳이 자랑해야 하나?”
> 쓸데없는 설명 필요하냐는 뜻
> 아니 열심히 만들었는데 자랑도 제대로 못 하게 하냐 ㅋㅋㅋ
“크흠, 흠흠, 왕께서는 명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잘 베어지는 검.”
“그야 평범한 검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건?”
“광선이 나오는 검?”
“···자네는 왜 그렇게 광선이 나오는 검에 집착하는 건가?”
> 그야 낭만이니까
> 광선검은 우주 최강의 무기이며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단천에게서 원하는 답이 절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카를랜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고로 명검이라는 것은 주인이 베고 싶을 때에만 그 힘을 보여주는 법이지. 보게.”
팔랑! 검을 쥔 카를랜드가 검을 향해 종이를 낙하시키자 종이가 반으로 조각났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팔랑! 이번에 떨어진 종이는 이전과 거의 같은 속도로 떨어졌는데도 검에 베이지 않은 채 검날을 스쳐지나갔다.
“멋지지?”
> 오
> 개신기하네
> 저게 되네 ㅋㅋㅋㅋ
신기하기 그지없는 기예였지만, 단천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예전에도 본 건데.’
저놈의 ‘주인이 베고 싶을 때만 베어지는 검’ 운운은 장인들이면 꼭 하는 이야기였다. 장인뿐만 아니라 좋은 검 좀 구했다 하는 놈들이 검 자랑할 때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자신이 바랄 때에만 검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검을 들고 뭔가를 벨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한다는 건지.’
저런 걸 신기해할 바에는 휘두르면 일곱조각으로 분해가 가능한 칠성도 쪽이 훨씬 더 신기하다.
아무튼. 잘 들고 내공 잘 통하고, 흑철으로 만들었으니 웬만해서는 부러지지도 않을 터. 이 정도의 검이라면 다른 고대신들을 모두 처치할 때까지는 검을 바꿀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천은 그람을 허리에 찼다.
이걸로 무기도 다시 생겼으니. 다시 고대신들을 사냥하러 가 볼 때가 된 것이다
***
“노스페라투가 죽었다고?”
“어떻게?”
“갑자기?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이던가?”
“왜들 이리 시끄러워.”
궁으로 환궁하자 한창 궁은 시끄러운 와중이었다. 노스페라투가 도륙됐다는 믿지 못할 소문.
“주군. 정말로 노스페라투를 사냥하신 겁니까?”
“브라딘이 말 안 했나?”
“그, 듣기는 했습니다만 원체 믿지 못할 소문이라.”
“노스페라투는 죽었다.”
신하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애초에 고대신이라는 것이, 이렇게 동네 마실 나가듯이 한 번 나가서 한 마리씩 썰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었던가.
그렇게 좌중이 모두 경악에 빠져있는 동안, 단천은 옥좌에 앉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있어서야.
“브라딘은?”
“여기 있습니다. 폐하.”
승전을 하고 왔으니 쉴 만도 할 텐데 브라딘의 눈에는 피로가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생각이 있기는 한 모양이군.’
노스페라투를 처치하고 왔다고 해서 그대로 뻗어서 쉬고 있지 않았다는 뜻.
노스페라투라는 머리가 떨어져 내린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주군. 노스페라투가 죽었으니.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알려야겠지.”
“그러면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축제 준비를···.”
쉬익!
말을 하던 신하의 볼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단검 한 자루가 말을 하던 신하의 머리카락 몇 올을 자른 다음 벽에 박혀 있었다.
단검의 주인은 물론 단천이었다.
“축제는 무슨 축제.”
“하지만 노스페라투는···!”
“인간의 숙적이자 죽여야 될 네 마리의 머리 중 하나였지. 놈이 죽었다면. 몬스터들은 어떻게 될까?”
“···내분이 일어날 겁니다. 약체화된 노스페라투의 수하들을 사냥하겠지요.”
“자연스럽게 인간 진형인 우리쪽에 쏠리는 압력 또한 줄어들 거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 몬스터들의 습격이 줄어들었으니 기뻐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축제를 벌인다. 둘. 놈들이 내분을 벌이는 틈을 타 몰살을 위한 전쟁에 나선다.”
전쟁. 한 마디에 여기저기서 전율이 퍼져나갔다. 인간이 몬스터들을 상대로 쓰인지 꽤 오래 된 말이었다.
좌중에서 퍼져 나가는 전율을 보며 단천은 입술을 씰룩였다. 원래의 생각대로라면 그냥 고대신 놈들만 다 쳐 죽이고 말려고 했는데.
몬스터놈들이 인간을 괴롭히는 꼴을 보고 난 지금의 단천은 심기가 꽤 불편했다.
몬스터놈들이 하는 짓이 혈교 놈들이 하는 짓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놈들이 혈교와 같다면 단천이 내릴 결론또한 단 하나뿐.
“본좌는 이 전쟁에서, 대륙에 몬스터가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