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서유나 (1)
게임을 종료한 단천은 캡슐에서 나와 가볍게 몸을 풀었다.
“꽤 괜찮은 게임이로군.”
다키스트 에이지도 꽤 만족스러웠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2에서는 ‘내공’이라는 요소를 통해 게임을 한층 더 다양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단천이 처음으로 한 최근 발매 게임이라는 점도 크다. 이런 게임의 경우에는 말랑튜브의 시청자수 증가를 매우 받기 쉽다고 했다.
‘말랑튜브 영상 조회수에 얼마나 도움이 되려나.’
그러고 보니 말랑튜브의 조회수를 체크하지 않은 지 꽤 오래 됐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 놨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중간중간 체크를 하는 것도 필요한 법.
슬슬 상태를 확인할 때가 된 것이다.
상념에 빠져 있던 단천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방에 있는 강한솔과 김진표의 목소리다.
“와. 진짜 조회수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 확실히 말랑튜브 영상이란 건 스트리머가 아니라 편집자가 만드는 거라니까?”
“절반은 서유나 편집장이 만드는 거지만요.”
“그래도 우리가 만든 영상들도 봐봐, 조회수 꽤 높잖아. 이 정도면 수입도··· 야. 그냥 다 때려치고 영상편집으로 전업해 버릴까?”
“여기서 이렇게 노예처럼 일 안 하고요?”
“그래. 자유를 찾아서.”
“자유를 위하여!”
이 자식들이.
자신만큼 그들을 대우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천 자신이 시킨 거라고는 그들의 전공이 아니라는 영상편집을 시킨 것과, 그들이 모르는 분야인 USB 해독을 맡긴 것, 그리고 그 와중에도 영상이 말랑튜브에 꼬박꼬박 올라오면서도 그 영상의 퀄리티가 이 판에서 최상급일 것 정도 말고는 바란 것도 없는데.
단천이 해 준 은혜도 모르고 자신에게서 탈출할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러니까, 지금은 BJ천마가 꽤 잘나가니까 여기서 평생···.”
달깍. 단천은 방을 나가 편집자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평생 충성을 바쳐야지!”
“그렇습니다! 충성충성!”
순식간에 태도가 바뀐다. 저런 걸 채팅에서는 뭐라고 하더라. 우디르라고 하던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본좌의 허락 없이 탈출할 생각은 꿈에도 말도록. 잡히면 지옥을 보게 될 테니까.”
‘여기가 지옥인 것 같은데요.’
두 노예의 머리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둘의 입에서는 튀어나오지 못했다.
“영상 업로드는 잘 돼 가나?”
“오늘 분량은 편집장님이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제일 조회수가 좋죠.”
단천은 모니터에 나와 있는 화면을 확인했다.
말랑튜브의 즐겨찾기 수는 이미 30만을 넘어 있었다. 즐겨찾기 수의 증가 속도도 가팔랐지만, 중요한 것은 영상당 조회수였다.
매일 영상이 두 개씩 정시에 업로드되는데도 절반이 넘는 영상들의 조회수가 100만을 왔다갔다한다.
“이게 서유나씨가 만든 영상들이겠군.”
“맞습니다. 말로는 영상편집 한 지 몇 달 안 됐다는데, 제 생각엔 아닌 것 같습니다. 영상 퀄리티나 센스가 엄청나요.”
“이런 사람이 어떻게 아무 포트폴리오도 없이 지금까지 안 보였는지.”
서유나의 영상편집 능력은 문외한인 단천이 보기에도 특출난 것이었다. 재능, 혹은 센스라고 할 수도 있는 영상 편집과 기법들.
‘그리고 가장 커다란 열정까지 가지고 있지.’
한 순간에 열정이 타오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반복이 시작되고 일이 되고 나서는 사람의 열정은 쉬이 사그라든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 하지만 서유나가 가지고 있는 열정은 지속적이었다. 당장 처음의 영상보다 지금의 영상이 눈으로만 봐도 훨씬 발전해 있었으니까.
“···근데. 요새 편집장님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어떻게?”
“영상 편집도 계속 제대로고, 시간도 칼같이 지키고, 그렇긴 한데···. 뭔가 묘합니다.”
“묘하다면.”
“말로 하기는 어렵지만. 음···. 뭔가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확실히. 근래에 서유나에게서 받았던 리드미컬 세이버의 곡 퀄리티도 다소간 평범해졌었다.
“연락해 볼 필요가 있겠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유나가 만들어내는 리드미컬 세이버는 글자 그대로 보물 그 자체였으니까.
단천은 서유나가 만천화우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상태가 안 좋다면 다른 일을 제치고서라도 찾아가 볼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직원은 잘 챙기시네요.”
“그래야지.”
“그런 사람이 왜 저희한텐 이렇게 막 대하시는 건지.”
“너희는 내 직속 부하가 아니니까.”
잘 풀려서 망정이지, 둘은 단천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려고 했던 인간들이다. 그러니 제대로 대해줄 이유가 없다. 4대보험과 잔업수당, 주휴수당, 성과금, 기본적인 급여를 제공하는 수준의 밑바닥 대우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못 간 지 벌써 닷새째야···.”
“마음을 고쳐먹도록. 불행은 마음에서 온다고 내가 아는 땡중이 그랬다.”
단천은 무명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무명승의 말은 대부분이 선문답이었다. 그 중 대부분은 단천도 무슨 말인지 모호한 것들이었다.
즉. 대부분은 헛소리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꽤 쓸모있는 말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일과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여기서 보낸다면, 이곳이 집인 것이다. 너는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집에서 계속 있었던 셈이지.”
“······.”
단천은 둘에게 염화미소를 지어 보였다. 둘은 감동한 것인지 눈앞이 부얘져 있었다.
둘의 근로의욕도 꽤나 돌아온 듯하니. 서유나를 찾아가 봐야 했다.
***
“···무슨 일로 부르신 거려나.”
서유나는 BJ천마를 기다리며 커피숍에 앉아서 태블릿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블릿 안에 있는 것은 BJ천마의 영상이 올라갈 영상의 타임 테이블 1주일치였다.
이미 수백 번이나 고치고 메모하기를 반복해서 태블릿 안은 메모로 가득했지만, 서유나는 계속해서 영상에 들어갈 아이디어들을 메모해 나가고 있었다.
남을 기다리는 시간에 이런 집중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BJ천마의 편집자 일을 하고부터는 이런 일이 그녀에게는 매우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을까.
“엄청 열정적이시네요.”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상 편집하면서 항상 듣는 목소리. 단천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단천 씨. 얼굴 뵙는 건 처음··· 맞죠? 아닌가? 아, 음, 영상으로 너무 오래 봬서 그런가.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단천은 서유나의 두서 없는 말을 들으며 서유나의 안색을 살폈다. 퇴근하고 난 직후라는 것을 생각하더라도 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안색은 피로로 인해 그런 것이니 약선단을 사용한다면 치료할 수 있지만. 문제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동공이 계속 흔들리는군.’
계속해서 미세하게 떨리는 동공과 커피잔을 강하게 움켜진 손아귀.
“손목 잠시 줘 보시겠습니까?”
“네? 손목을요? 갑자기요?”
단천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유나의 손목을 붙잡고 맥을 짚었다. 당황을 했는지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이 정도야 맥박을 수만 번은 짚어온 단천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변인이다.
강하고 부정확하게 뛰는 맥박.
‘심마心魔로군.’
단천은 서유나의 손을 놓고 생각에 잠겼다. 서유나가 들어선 심마 자체는 그리 깊은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심마라는 것은 깊고 얕음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마라는 것은 단순한 병보다 훨씬 까다롭다. 신체적 불균형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심마이기 때문이다.
심마라는 것은 마음의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막말로 심마를 치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마의 상태를 만들어낸 주변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까지가 심마의 치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까다로운데.’
단천은 심마의 신체적 치료에는 정통해 있었다. 심마를 고질병으로 달고 살던 서윤학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 부교주. 교주가 청성파 비고를 털다가 청성파의 신물인 은혼창이 개박살이 났다는데요. 보상 안 해 주면 다 뒤집어 엎겠다고 길길히 날뛰고 있습니다.
─ 그르륵!
─ 부교주가 또 심마로 쓰러지셨다!
─ 교주님! 교주님을 불러!
한 달에 한 번 꼴로 심마가 터지는 서윤학을 단천은 번번히 치료해야 했었다. 긴 시간이 흐른 아직까지도 서윤학의 심마는 원인미상이었다. 천하통일도 했고, 더 이상 중원에 적도 없는데, 심마가 터질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요약을 하자면 심마는 천하제이인이 되어도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다.
단천은 가지고 다니던 두랄루민 침을 꺼내들고 서유나의 혈도에 박아넣었다. 혈도에 박아넣은 침들에 내공을 집어넣자 서유나의 눈이 빠르게 돌아왔다.
신속하기 그지없는 처치였다. 수만 번을 서윤학을 치료하며 다져진 실력. 실로 심마 치료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만한 속도였다.
“이제 좀 괜찮습니까?”
“네. 엄청 신기하네요. 천마님··· 한의사였어요?”
“자격증은 없지만 한의사 수천 명보다 제가 낫습니다.”
“···그렇군요.”
서유나의 눈에 약간의 불신이 생겨났다.
“그보다. 뭔가 고민 있으십니까?”
“네? 아. 음. 고민이야 있죠. 뭐 이 세상 사는 사람들이 다 고민은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고민은 제가 알 바 아니고. 서유나 씨의 고민은 뭡니까?”
말을 하려던 서유나의 입이 잠시 멈췄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사실 생면부지의 타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놔도 되는 것일까.
사회에서 자신의 치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J천마라는 사람은 왜인지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영상으로만 봐서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일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녀가 아는 BJ천마는 자신감에 충만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그걸 흉보거나 다른 데 가서 발설할 만큼 입이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손해 볼 건 없나.’
따지자면 단천도 자신의 고민에서 완전히 떨어진 사람이 아니기도 했다.
“원래 다니던 회사의 퇴사를 고민하고 있어요. 영상 편집을 업으로 삼아볼까 하고요.”
“그렇습니까.”
“이유는 안 물어봐요?”
“하고 싶어서. 아닙니까?”
“···맞아요. BJ천마님의 영상을 보고, 편집도 하고, 사람들의 반응도 보다 보니까. 엄청 즐겁더라고요. 수입도 나쁘지 않고···.”
실제로 BJ천마의 영상 채널규모는 엄청난 속도로 커져가고 있었다. 물론 BJ천마의 화제성 자체도 컸지만 서윤하의 편집 능력도 채널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더 잘 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니까 퇴사하고 싶다. 그거겠죠. 뭐, 정식 편집자로 고용돼서 비율을 더 떼 드릴 수 있습니다.”
영상이 더 커질 것을 생각하면 수입은 결코 나쁘지 않을 터.
“음. 감사하지만 돈 문제는 아니에요. 문제는··· 부모님이 제가 퇴사하는 걸 극도로 만류한다는 거에요. 너무 불안정하다고. 미쳤대요.”
“이해는 가는군요.”
“설득을 해 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말해도 설득이 안 돼서. 요새 좀 스트레스를 받았죠.”
“큰 문제군요.”
“제가 생각하던 대답이 아니네요. 천마님이면 그냥 ‘다른 인간은 신경쓰지 말고 네가 하고싶은 대로 살아라.’ 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뭐. 가족은 다른 문제니까요.”
단천은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면. 그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문제라는 거군요.”
“그렇죠.”
“설득하는 거. 도와드리죠. 내일 아침쯤에 시간이 남습니다. 내일 쉬는 날이시죠?”
“네? 아. 쉬는 날이기는 한데···.”
“그럼 됐습니다.
단천은 고루하고 낡아빠진 사람들 설득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중원 문파의 장로나 장문인들이라고 하면 죄다 나이 지긋한 꼰대들. 그런 인간들을 설득해서 하나로 규합한 것이 바로 단천 자신이었다.
‘설득이 안 먹힌다면 나름대로 최후의 수단도 있고.’
“···왜 비장의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침을 쳐다보시는 거에요?”
“별 일 아닙니다.”
단천은 최후의 설득수단인 두랄루민 침을 품 안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