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다키스트 에이지 2 (7)
지하실로 발을 디디자마자 천장에 있던 야명주에 불이 들어왔다. 보물이 있는 지하실에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어마어마하기 그지없는 양의 보석들이었다.
> 돈 개많네 ㅋㅋㅋㅋㅋ
> 와 사냥 한방에 억만장자 ㄷㄷㄷㄷ
> 이 정도면 전쟁자금 다 마련된 거 아님?
[카시오폐하 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 정도면 보석 아래에서 수영도 가능할듯?]
“그런 수영따위 몸에 상처만 나고, 보석들이 짤그럭거리기만 하고, 그다지 즐겁지 않다.”
> 그걸 어케 아냐고
채팅창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BJ천마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BJ천마의 반응에 드라이오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하네. 인간들은 돈과 보석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반응이 썩 좋지 않아서.”
“보석이나 보물이란 건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게 무슨 뜻이야?”
“글자 그대로의 의미다.”
드라이오나의 눈이 잠깐 깜빡이며 BJ천마의 의중을 살피더니, 이내 의중을 알아챘다.
“···그렇구나. 인간들의 수는 지금 고작해야 성 세 개. 모든 인구를 합쳐도 몇천명에 불과해. 게다가 인간들은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지.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빛나는 보석 따위가 아닌 전쟁과 생존에 필요한 물자들일 터.”
금은보화도 거래를 할 사람이 있어야만 그 가치가 존재하는 것. 지금의 인간들에게는 더 이상 금은보화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자신의 안위보다 인간 전체의 안위를 생각하다니. 네놈은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싹이 보이는구나.”
> 그런 의미였구나
> 나는 또 싸우는 데 쓸수도 없는 보석같은 거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인 줄 알았음
> 2222
> 3333
> 444444
“보석 말고 무기들은 어디에 있지?”
“안쪽에 있을 거야.”
단천은 수없이 많은 보석들을 돌덩이라도 보는 양 지나친 다음 무기들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무기들이 있는 곳의 크기는 보석들을 모아놓는 장소의 크기보다 작았다. 물론 작다고는 해도 충분한 수의 무기와 방어구들이 쌓여 있기는 했다.
“···대부분은 낡아서 쓰지 못하는 것들이로군.”
노스페라투가 제대로 무기들을 관리했을 리가 없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으면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기들은 쉬이 녹슨다.
물론 녹이 슬어 버린다고 해서 그 가치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쓸 수 없게 된 것들은 용광로에 넣어 새로 무기를 만들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고 보니··· 새 무기는 어떻게 만들지?”
> ?
> 아니 이사람은 뭔데 아직도 무기 만드는 법을 몰라
> 생각해 보니 ㅋㅋㅋㅋㅋ지금까지 부러진 직검 하나만으로 플레이하고 있었네 ㅋㅋㅋㅋㅋ
BJ천마는 다키스트 에이지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무기를 바꾸지 않았다. 그러니 새 장비를 만드는 법에 대해서 알 리도 없었다.
> 도대체 왜 지금까지 무기 안 바꾼 거임?
“싸움이 급해서.”
> 급한 전쟁은 어쩔 수 없지;
> 싸움이 급한데 어찌 한가로이 무기나 만들고 있겠느냐!
> 음해하려고 한 놈 나와! 당장 사형이다!
채팅을 쭉 보아하니 제련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직 세상에 꽤나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풀창고의 설정집에서도 제련에 대한 이야기가 좀 나와 있었지.’
그다지 쓸모없는 정보라고 생각해서 머릿속에 쳐박아 놨었는데. 단천은 다키스트 에이지의 제련 과정에 대해 떠올렸다.
제련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디자인, 일련의 퀘스트를 하는 것. 그리고 긴 제련 시간이다.
‘굳이 제련을 할 필요가 있을까.’
장인은 무기를 탓하지 않는 법. 제련을 통해 광선검을 만들어내는 수준이 아니라면 구태여 새로이 무기를 만들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제련해서 무기들을 공급하는 것은 영지민들로 충분하다. 그러니 그 동안 나는 이 직검으로 남은 고대신들을···.”
단천이 부러진 직검을 꺼내들고 말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파킨!
부러진 직검의 검신이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부러진 직검의 내구도가 다했습니다.]
[부러진 직검이 산산히 부서져내립니다.]
“······.”
단천의 눈이 부서져내린 검의 조각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 게임. 내구도같은 것도 있었나.”
> 있긴 한데 거의 의미없지
> 무기 끝까지 쓰는 경우가 잘 없으니까
> 강화만 하면 내구도 자동 리셋돼서 부러지는 일 거의 없음;
> 이제야 저 쓰레기같은 직검 버리네 ㅋㅋㅋㅋ
> 시─원 ㅋㅋㅋㅋㅋㅋ
채팅창에서 부러진 직검에 대한 성토가 줄줄히 이어졌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장점 중 하나가 다양하기 그지없는 무기인데. 지금까지 BJ천마는 처음 주는 부러진 직검으로만 플레이해왔으니. 이에 대한 불만이 꽤 쌓여 있었던 것이다.
부서진 직검을 확인한 단천이 눈을 찡그렸다. 이래서 광선검이 위대한 무기인 것이다. 광선검은 부서져내리는 일도 없고, 영구히 사용이 가능하니까.
그러니 단언컨데 광선검은 가장 완벽한 무기인 것이다.
“쓰레기같은 게임.”
보아하니 더 이상 사냥은 무리인 모양이다. 그냥 맨몸으로 진행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박투만으로 계속 싸운다는 건 영 취향이 아니다.
게다가···.
[무기러버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새 무기 만들면 10만원새 무기 만들면 10만원새 무기 만들면 10만원새 무기 만들면 10만원]
> 제발 무기만들러갑시다
> 무기 ㄱㄱㄱㄱㄱ
> 제! 발!! 새 무기좀 써!!!
새 무기를 만드는 것을 원하는 시청자들이 엄청나게 많기도 했다.
“그럼. 일단은 영지로 돌아가도록 하지.”
어차피, 이곳에 있는 무기들을 영지로 옮길 필요도 있었으니까. 결정을 내린 단천은 밖으로 걸어나와 브라딘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오셨습니까. 주군. 노스페라투는···?”
“처치했다.”
“역시 주군이십니다.”
“이 인간은 누구지? 짙은 흑마술 냄새가 나는데.”
“···그 옆에 돋아난 종양은 뭡니까?”
“이곳에서 찾은 정령. 이름은 드라이오나라고 한다.”
“정령이 아직도 살아있기는 했군요.”
“인간들도 멸종하지 않았는데. 정령이 멸종했을 리가 없지.”
브라딘과 드라이오나 사이에 가벼운 신경전이 벌어졌다.
“일단은 배신하기 전까지 우리 편이니 그렇게 막 대하지 말도록.”
“배신? 이 정령. 배신할 계획입니까?”
“아마도. 내 직감에 의하자면 그렇다.”
“배신 안 한다고!”
“안 한다고 합니다만.”
“배신한다고 말하고 배신하는 자를 본 적 있나?”
> 오늘도 기적의 논리 ㄷㄷㄷ
둘 간의 소개를 마친 단천은 지하에 있는 보물들을 브라딘에게 보였다.
“엄청난 양의 보물이긴 합니다만··· 지금의 저희에게는 쓸모 없는 물건이군요. 오히려 쓸모가 있는 것은 무기들입니다. 이 정도의 금속들이라면 무장할 수 있는 인원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날 겁니다.”
“내 의견과 같군.”
“문제는 이 무기들을 어떻게 들고 영지에 복귀하느냐입니다만···.”
이곳은 적진의 한복판이다. 육로를 통해서 무기들을 들고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스컬 윙을 써서 들고가야겠지.”
“하지만 양이 너무 많습니다. 스컬 윙이 감당할 수는 있는 무게이긴 하지만, 물건을 실을 수단이 없습니다.”
브라딘도 BJ천마도 스컬윙을 불러낼 수는 있다. 하지만 스컬 윙으로 무기들을 들고가는 것은 또 완전히 다른 문제다. 스컬 윙에 무기들을 선적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스컬 윙을 더 불러내면 안 되나?”
“일단 제 능력으로는 세기 정도를 불러낼 수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싣고 갈 수 있는 양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렇게 고민에 빠진 순간. BJ천마의 옆에 타고 있던 드라이오딘이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후후.”
“왜 웃지?”
“그 정도야. 이 몸이 해결할 수 있으니까.”
드라이오딘이 손을 펼치자 바닥에서 덩굴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자라난 덩굴은 자루의 형태가 되어 바닥에 펼쳐졌다.
“어때? 이 정도라면 무기를 싣고 돌아갈 수 있겠지?”
“가볍고 튼튼하군요. 이 정도라면 충분히 모든 무기를 싣고 갈 수 있을 겁니다.”
드라이오딘이 칭찬해 달라는 듯 가슴을 쭉 펼쳤다.
“어때! 대단하지?”
“훌륭하군. 확실히. 배신 전에 신뢰를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
“······.”
> 배신은 왜 계속 확정인 거냐고
> 딱 봐도 반골의 상이라잖아
> 드라이오딘 배신 마려운 표정 실화냐 ㅋㅋㅋㅋㅋ
> 위연이 왜 역모 일으켰는지 알겠다 ㅋㅋㅋ
칭찬을 마친 단천은 브라딘을 시켜 무기들을 차곡차곡 덤불로 만들어진 자루에 싣기 시작했다.
무기를 싣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브라딘이 연금술에 쓸 수 있다고 말한 소수의 보석을 제외한 금은보화는 대부분 원래의 장소에 놔 둔 채였다.
“···조금은 아쉽군요. 저토록 많은 보물을 버려두고 가야 한다니.”
“아쉬워 하지 마라. 언젠가는 우리가 수복할 장소이니까.”
당연히 대륙 전체를 수복하겠다는 허황된 말이었지만. 말이라는 것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진다.
자신의 주군이 수복한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쉽지는 않군요.”
브라딘은 픽 웃으며 대답했다.
***
라단 성 상공에 거대하기 그지없는 물체 두 덩어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저게 뭐지?”
“괴물이다!”
성에 있는 사람들이 패닉에 잠기고, 경비대가 바짝 긴장한 채 창끝을 공중을 향해 겨누고 있기를 얼마쯤.
“저거. 무기들 아니야?”
“양이 엄청난데?”
“저 위에 있는 뼈로 된 매! 스컬 윙이다!”
거대한 두 개의 덩어리가 무기가 한가득 실린 주머니이며, 그것을 매고 오는 것이 왕과 브라딘이 조종하는 스컬 윙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쿠웅!
거대한 무기가 성의 중앙에 거대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내렸다.
“드디어 도착했군.”
주변을 빙 둘러싼 사람들의 경외가 어린 시선들이 쏘아졌다. 기나긴 전쟁으로 인간들이 사용할 만한 금속제 장비들이 없다는 것은 공공연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토록 많은 무기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왕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토록 많은 무기를 가져오셨다!”
거대한 함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됐다. 조용히 하도록.”
“만세! 만세!”
이런 게 싫어서 왕궁 뒤편에 착지를 하려고 한 건데. 워낙에 무기의 양이 많았던 탓에 사람들이 사는 민가에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단천은 손짓을 해 군중의 환호를 제지했다.
“그만 조용히 하도록. 대장간은 어디에···.”
“만세! 만세!”
왕명인데도 환호성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럴 때 조용히 시키려면 제일 목소리 큰 놈을 잡아다 조지는 게 직빵이다. 그러니까 서윤학을 잡아다가 허리를 꺾어 놓으면···.
‘서윤학이 있을 리 없지.’
그러면 조용히 시킬 만한 방법도 딱히 없다. 단천은 그저 자리에 주저앉아 길게 하품을 했다. 이런 환호성이 터지는 상황은 자주 겪어 왔었다.
이런 시끄러운 환호는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잦아들기 마련. 사람의 성대는 생각보다 연약하다. 몇 분 지르다 보면 목이 쉬어서 더 이상은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소리지르는 사람들의 목이 모조리 나가고 나서 대장간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보면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