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75화 (75/212)

18. 다키스트 에이지 2 (5)

“말도 안 돼···.”

드라이오나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나왔다. 이곳은 노스페라투의 힘이 미치는 궁정. 지나다니는 경비병조차 만만한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이 지금 타고 있는 인간은 어떠한가. 노스페라투들의 수하들을 글자 그대로 무 썰듯이 베어버렸다.

> ㅅㅂ 진짜 말도 안 되네

> 아니 이 게임 이렇게 쉬운 게임 아니라고요

이런 반응은 채팅창또한 마찬가지였다. 다키스트 에이지 2의 악의적인 게임 디자인은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나 있는 상태였다. 그냥 일반 몬스터조차 다키스트 에이지 1편의 중간보스몹 이상의 난이도라는 평가였는데, BJ천마는 이런 몬스터들조차 간단하게 베어넘겨 버렸다.

‘확실히. 상단전의 영향이 크긴 하군.’

단천은 손을 쥐었다 폈다. 환골탈태 이전이었다면 이런 기예는 아무리 단천이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 정도 무리의 적을 처리하는 데 최소한 반 시진 정도는 걸렸을 터.

“다 처리하는 데 일다경 정도 걸렸나.”

> 일다경이 얼마임?

> 15분 정도?

> 아니 뭔 무협첩자도 아니고; 1다경이 뭐야;; SI단위계 모름?

> 천마님인데 당연히 무협 단위계 쓰셔야지 ㅡㅡ

> 어허! 무협 단위계는 이 방에서 국룰인 것을! 어디 근본없는 코쟁이놈들의 단위계를 쓰려 하느냐!

SI단위계를 사용하려 하던 SI첩자가 집단린치를 당하는 동안 단천은 짧은 생각에 잠겼다. 적들의 공격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진법을 돌파할 때 보였던 ‘길’이 보인 것과 같은 느낌.

‘꽤 쓸만한 능력이로군.’

꽤 넓어지긴 했다지만 아직도 상단전으로 향하는 길은 자그마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효능이라니. 천리안에 이어서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성과였다.

“레벨도 꽤 올랐고.”

레벨이 오른 덕분에 단전에 자리하고 있던 게임 상의 내공의 크기도 꽤 올라갔다. 내공의 크기와 성능의 비율로 따져 봤을 때 이 정도라면 대충 반 갑자 정도의 크기의 내공이다.

그냥 몬스터 좀 때려잡는다고 내공이 오르는 것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준다는 것을 구태여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능력치 상승 메시지를 한참 둘러보던 단천의 손이, 올라온 메시지 하나에서 멈췄다.

[조건이 만족되어 새 스킬이 해금되었습니다!]

“스킬이라.”

> 오

> 스킬???

> 새 스킬은 언제 해금된거임

> 몬스터를 저렇게 때려잡았으니 뭘 줘도 주긴 해야지 ㅋㅋㅋㅋㅋ

단천은 화면을 전환해 스킬 화면을 확인했다.

[피닉스 블레이드]

[불꽃 속성의 신성력을 검에 둘러 공격한다. 그 공격은 마치 불사조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상태창에 떠오른 화면에는 NPC가 검을 휘두르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검격을 따라 불로 만들어진 새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 간지보소 ㄷㄷㄷㄷ

> 빨리 써봐!! 못참아!!

화면을 바라보며 피닉스 블레이드를 바라보던 단천이 픽 웃었다.

‘뭔가 했더니. 평범한 천참화봉이로군.’

천참화봉.

천하오대검수중 한 명이었던 정사후의 성명절기. 불멸화영검의 초식 중 하나다.

‘말이 성명절기지. 그냥 냅다 검에 내공 불어넣고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는 거지만.’

내공뿐 아니라 초식까지 게임 안에 구현되어 있다니.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지만. 그래도 흥미가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스킬의 강함은 신성력의 크기와 사용자의 신성력 사용이 얼마나 능숙한가에 비례해 강해집니다.]

거기에 내공의 크기뿐 아니라 내력을 사용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한지에 따라서 초식이 강해진다니. 마냥 레벨을 올리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게 설정해둔 부분 또한 마음에 들었다.

> 빨리 써봐 빨리

> ㄱㄱㄱㄱㄱㄱ

“보채지 말도록. 허공에 초식을 써 봤자 무슨 재미인가. 적이 있을 때 쓰는 게 참맛인 법이다.”

> ㅅㅂ 적 어딨냐고

> 아니 적진 한복판인데 왜 적이 없어!!!

> 방금 BJ천마가 다 죽였음 ㅅㅂ

> 이 살인자!!

단천은 주변을 둘러봤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타나면 나타나는 대로 다 베어넘긴 탓이다. 주변에 있는 베어버릴만한 존재가 아무 것도 없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벨 만한 맛이 있는 존재가 있기는 하다.

“아, 지금 정면에 있는 으리으리한 저택이 바로 노스페라투가 있는 왕궁이야!”

단천은 자신의 옆에서 쫑알거리기 시작한 드라이오나를 바라봤다.

“뭘 그렇게 바라보는 거야?”

“잠깐 사람 형태로 돌아갈 수 있나? 아주 잠깐이면 되는데.”

“네 눈이 심하게 섬뜩하니까 싫어.”

쉽게 넘어오진 않는군. 단천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 아니 ㅋㅋㅋㅋ그거 우리편이라고 ㅋㅋㅋ

> 같은 편을 스킬 허수아비로 쓰려고 하지 마 ㅋㅋㅋㅋ

어쩔 수 없다. 노스페라투의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단천은 거대하기 그지없는 왕궁을 향해 걸어갔다.

단천이 다가서자 왕궁의 문이 열렸다.

끼기긱!

“잘 오셨습니다.”

문을 열고 자신을 맞이하는 집사 모양을 한 남자. 사람은 아니다. 핏기 한 줌 없는 기괴한 모습. 그리고 비쳐보이지 않는 그림자.

‘인간이 아니라 피로 만들어진 인형이로군.’

섬뜩하기 그지없는 집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노스페라투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십니다.”

“그냥 네놈과 대화하면 되는 것 아닌가? 보아하니 네가 들으면 바로 노스페라투도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는 있지만. 높으신 분들에게는 법도란 게 있으시니까요. 노스페라투님께서는 당신과 같은 미물조차도 제대로 된 순서를 지켜 맞이하고 싶어하십니다.”

집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천의 직검이 집사의 몸을 반으로 갈라냈다.

화르르륵!

화염이 깃든 직검에 직격당한 집사의 몸이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집사의 몸이 증발하자마자 바닥에서 똑같은 형태의 집사가 다시금 솟아올랐다.

“왜 저를 갑자기 베신 겁니까?”

“마음에 들지 않기에.”

“···예의라고는 전혀 없으시군요.”

“힘이 있다면 굳이 예의같은 게 필요한가?”

집사가 눈을 흘긴 다음 아무 말 없이 왕궁의 홀 안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단천도 홀의 중심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주변은 수없이 많은 인간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느릿한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단, 피가 담긴 와인잔을 서빙하는 수많은 하인들, 그리고 고귀한 척 대화를 나누며 춤을 추고 있는 귀족들까지.

진짜는 단 하나도 없다. 모조리 피로 만들어진 인형들뿐이다.

단천은 집사의 안내에 따라 홀의 중앙에 도착했다. 잔 안에 있던 피들이 솟구쳐올라 순식간에 사람의 형태로 변화했다.

노스페라투였다.

“도착했군. 버러지.”

“이게 누군가. 발린 다음 꼬랑지 말고 도망쳤던 놈 아니신가.”

으득. 노스페라투가 이를 가볍게 갈았다.

“고작 인간 따위가 콧대가 높구나.”

“혼자서 인형극 따위를 하는 놈보다는 콧대가 높은 게 당연한 것 아닐지.”

> 말싸움 한 마디를 안 지네 ㅋㅋㅋㅋ

단천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이런 말싸움이야 강호에서는 심심하면 오가는 일이었다. 단천은 굳이 말로 상대를 도발하기보다는 상대의 목젖을 잘라내는 게 더 편하다는 쪽이었지만. 그래도 서윤학이 옆에서 상대를 도발하는 것을 평생 봐 왔었다.

그러니 이런 말싸움에서 질 리가 없는 것이다.

느릿하던 음악이 더 느려지더니, 이내 완전히 멈춰섰다.

“말싸움에 졌으면, 빨리 선수를 치도록.”

노스페라투의 목에서 핏줄이 돋아났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네놈이 여기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촤아아아악!

바닥에서 피로 만들어진 창이 솟아올랐다. 단천은 검을 들어 창을 막아냈다.

카아앙! 환영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육중한 중량감이 느껴졌다. 이전보다도 훨씬 단단하다.

단천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단천은 공중에서 자세를 잡고 바닥에 낙법을 사용해 착지했다.

“하! 당황했나? 내 환영따위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일격이겠지?”

“일 초.”

“···뭐?”

“약자에게 강자는 삼 초를 양보하는 법. 평소에는 그런 강호의 도리따윈 안 지키지만, 네놈에게는 삼 초 정도는 양보해 주지. 방금 첫 초식이 지났으니. 앞으로 이 초 남았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 아니 보스전이라고요 ㅋㅋㅋㅋ

노스페라투의 분노와 함께 수없이 많은 혈창이 단천을 향해 날아들어왔다. 하지만 훨씬 탄속이 빠른 레일 서바이버에서조차 이런 공격들을 수없이 대처해온 단천이다.

단천의 발이 팔선보의 길을 밟아나가며 혈창들을 요리조리 피해냈다.

“이걸로 이 초.”

“이 쥐새끼같은 놈! 이 성에 발을 디딘 것 자체가 실수다!”

거대한 떨림과 함께 왕궁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귀족들도, 하인들도, 심지어 그들이 들고 있던 물건이나 옷까지도 모조리 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 ㅅㅂ 뭐임

> 미쳤다;;; 이거 뭐 어쩌냐

“크하하! 이제야 깨달았겠지 이 성은 모조리···!”

“뭐. 이 성 전체가 네놈이 모은 피로 만들어져 있다고?”

“···어?”

“나를 이곳으로 불러온 것이 책략이었고, 내가 네놈이 조종할 수 있는 피의 성 안에 들어왔다고?”

“······!”

“이를 어쩌지.”

단천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단천의 표정을 보고 당황한 쪽은 노스페라투 쪽이었다.

“어떻게···?”

“어떻게기는.”

혈교에서 단천과 비교할만한 고수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교주였던 영세지존 영락귀와 부교주, 그리고 과거의 괴물이던 사대호법들.

지금 노스페라투가 쓰고 있는 모든 계략들은, 이미 사대호법중 한 명이었던 혈천제 피천류를 상대하며 이미 겪었던 계략들이었다.

“네놈들 같은 종자들이 하는 계략이란 뻔하디 뻔하니까.”

─ 단주. 저 성.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않소? 인적이라곤 전혀 안 느껴지는데.

─ ···그래. 단주의 추측이 맞소. 함정이 분명하지. 아마도 혈천제가 만들어 놓은 함정이 분명하외다. 그러니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서 화공을 사용해서 태워 버리는 게···.

─ 그냥 들어가다니! 도대체 왜! 단주! 재밌어 보인다니! 지금 생사가 오가는 상황인 걸 망각···! 야! 가지마! 가지 마라고 이 미친 자식아아아!

한 번 경험했던 계략이라면두 번째는 훨씬 더 편한 마음으로 상대할 수 있다. 심지어 단천은 첫 번째의 계략도 자신의 지모를 통해 돌파하지 않았던가. 두 번째인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돌파하면 됐다.

“내 계략을 알아챘다 한들! 네놈이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변함없다!”

“어떻게 하는 소리도 이렇게 천편일률적인지.”

단천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주변이 모조리 피로 변화했다. 강물처럼 변화한 피가 온 세상을 뒤덮고, 이내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떨어져내렸다.

피로 만들어진 거대한 용이 지상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혈룡강림이라. 이 또한 뻔한 초식이로고.’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갓 배운 초식을 써 볼 적이 이렇게 적당하게 나와줄 줄이야.”

역시 자신은 운이 좋다.

단천의 몸이 위로 도약했다. 단천의 검에서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검에서 솟아오른 불길이 봉황의 형태로 변화했다.

화르르륵!

불길로 만들어진 봉황이 피로 만들어진 용의 목을 물어뜯었다. 혈룡의 몸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증발하기 시작했다.

의기양양하게 위에 서 있던 노스페라투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게 대체···!”

“간단한 음양의 상성이라는 것이지.”

어느 새 BJ천마가 노스페라투의 옆에 도달해 있었다. 부서져 내리는 혈룡의 몸을 밟고 재차 도약해서 노스페라투의 옆에 도착한 것이다.

“이런 미친···!”

“패배자의 헛소리까지 다시 듣고 싶지는 않군.”

원래라면 조금 더 놀아주며 천참화봉을 여러 번 시험해보고 싶은 맘도 있지만, 단천은 노스페라투가 여러 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다른 인간을 무시해도 마땅한 자격이 있는 존재는, 본좌 말고는 없느니라.”

서걱!

불꽃을 한껏 머금은 단천의 검이 노스페라투의 몸을 양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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