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다키스트 에이지 2 (1)
환골탈태를 위해서는 임독양맥의 타통이 필요하다. 그리고 환골탈태를 위한 기본적인 수준의 내공.
‘대충 30년 정도의 내공이 최소한 있어야 하지.’
이 수준의 내공은 하수오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채운 상태다. 마냥 일 마치고 술 한잔씩 하는 게 좋아서 하수오주를 마셔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천년하수오주의 기운이 우러나와 있는 술은 마시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다 마셔 버리기는 했지만.
단천은 천년하수오를 바라봤다.
“이 몸에 좋은 걸 고작 환골탈태 하는 데 써야 하다니. 아까워 죽겠네.”
단천에게 환골탈태는 시간만 있으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반면 영약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기연이다.
그러니 고작 환골탈태를 하는 데 천년하수오를 쓴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이 말을 중원의 무림인들이 들었다면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고 따졌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최소한 단천에게는 그랬다. 단천에게 무공의 경지라는 것은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이었으니까. 운에 크게 기대야 하는 영약들을 경지를 올리는 데 쓰는 것은 아무래도 아깝다.
이를테면 포션을 최대한 아껴놓는 게이머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씁쓸해하던 단천은 천년하수오를 들고 옥상으로 움직였다. 환골탈태는 필연적으로 몸에 있는 독기를 바깥으로 빼내는 과정을 동반한다. 수십 년간 쌓여온 탁한 기운이 내뿜는 악취는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집에서 환골탈태를 했다간 단지은에게 등짝을 맞을 게 뻔하다는 이야기다.
옥상에 도착한 단천은 하수오를 병 안에서 꺼내들었다. 병 안에 갇혀 있던 하수오의 향기가 주변을 온통 메웠다.
‘누나가 없어서 다행이군.’
단지은이 있었다면 냄새를 맡고 한 입 먹겠다며 쫓아왔을 게 분명한 수준의 향기다.
단천은 주저 없이 하수오를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씹을 새도 없이 입 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하수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극상의 진미라고 할 만 했다.
역시 천년하수오는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식감이다. 실제로 천년하수오가 내공 증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신화경의 경지에 들고서도 순수하게 맛을 즐기려고 몇 번 먹기도 할 정도였으니까.
천년하수오의 맛과 향에 취해 있던 단천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자신은 신화경의 경지에 발도 들이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 맛을 오랫동안 음미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정신을 차린 단천은 바로 천단공을 운행해 하수오의 기운을 몸 안에 회전시켰다. 영약을 먹은 뒤 영약이 주는 내공을 단전에 저장하는 것이 평범한 내공 운행이라면, 환골탈태는 이와 방식이 조금 다르다.
단전을 넓히는 대신 그 커다란 힘을 그대로 임독양맥에 쏟아붓는 것이다.
정련되지 않은 천년하수오의 거대한 기운이 해일처럼 임독양맥에 부딪혔다.
단천의 입에서 조그마한 기침이 흘러나왔다. 수십 년간 꽉 막혀 있었던 탓에 임독양맥이 꽉 막혀 있었다.
하지만 천년하수오가 가지고 있는 기운은 그 꽉 막혀 있는 임독양맥을 뚫을 정도의 가공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으로 뚫리지 않자 두 번, 세 번. 몇 번이나 지속되는 공세에 막혀 있던 임독양맥의 벽이 허물어져내렸다.
그렇게 임독양맥이 완전히 뚫리자 단천의 몸이 우득거리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환골탈태가 시작된 것이다.
***
“끄으으. 개운하구만.”
단천은 가벼운 기지개를 폈다. 무아지경에 빠져서 운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단천은 내공을 확인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내공에 더해 30년 정도 분량의 내공이 더 쌓여 있었다. 모두 합하면 대략 1 갑자 정도의 내공.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천년하수오가 가지고 있던 기운의 대부분은 단천을 환골탈태하는 데 쓰여졌다. 그 까닭에 늘어난 내공의 양이 그리 많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이나 내공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은 단천이 꾸준하게 수련을 해서 몸을 깨끗이 비워낸 덕분이기는 했지만.
내공이 늘어난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환골탈태의 메인이 되는 것은 내공이 아니라 신체니까.
단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들어올려 천천히 휘저었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태극권의 묘리가 단천의 손을 따라 천천히 시전됐다.
“좋구만.”
키와 골격 자체도 꽤 변했다. 혈관도 완전히 깨끗해졌다. 단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무릎을 굽혀 뛰었다. 내공을 싣지 않았음에도 1장이 넘는 높이를 뛰어오를 수 있었다. 실로 초인적인 수준의 육체.
“역시. 최적화된 신체란 건 다르군.”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역시 신체의 반응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신체 내에 있던 탁기는 머리가 내리는 명령의 속도를 느리게 만든다. 환골탈태는 이 탁기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작업. 환골탈태를 마치고 나면 신체의 반응 속도는 이전에 비해 빨라지게 된다.
물론 반응 속도를 느리게 한다고 해 봤자 0.1초조차 되지 않는 수준의 조그마한 차이.
이는 미세한 수준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높은 수준의 무인에게 있어서는 목숨이 수십 개는 오고갈 수 있는 수준의 차이인 것이다.
그렇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체를 만끽하던 단천의 몸이 일순간 멈췄다. 기묘한 느낌 때문이다.
단천은 자신의 상단전을 확인했다. 본래 환골탈태는 상단전을 제외한 중단전과 하단전만을 변화시키는 기연이다.
그런데.
‘상단전으로 향하는 길이 더 커졌다.’
이전에는 바늘구멍만하던 크기의 길이 그 몇 배는 넓어져 있었다. 상단전에서 내어다 쓸 수 있는 단천의 기운의 양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내공으로 치환할 수 있는 상단전의 기운의 양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상단전을 꾸준히 사용해 온 탓이로군.’
평범한 무인이 환골탈태 이전에 상단전부터 사용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단전을 사용하는 무인이 됐다는 것은 이미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환골탈태를 이미 거친 무인이기 때문이다.
반면 단천은 상단전을 이미 환골탈태 이전에도 몇 번이고 활용해 왔다. 이 까닭에 몸이 상단전또한 이미 자신의 몸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신체를 재구성하면서 상단전을 향한 혈도가 넓어졌다. 이것이겠군.”
여러 모로 운이 좋았다. 상단전을 사용하는 무리를 했던 덕분에 이런 뜻밖의 이득이 생길 줄이야.
아직 자유자재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상단전이 이렇게 넓어졌다면, 3차원으로 바라보는 천리안을 넘어선 사용또한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런 능력이 있다고 해서 현대사회에서는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무력집단이라고 해 봤자 별 게 없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깡패들이야 환골탈태 이전에도 상대가 안 되었고, 남는 무력 집단이라고 하면 군부대 정도뿐.
“군대를 상대하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있지.”
단천은 아무리 그래도 관무불가침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의 현대사회에는 동창도 없고 황실이 양성하는 절대고수도 없다. 구태여 힘을 써 가면서 군대와 싸워 봤자 얻을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얻을 게 하나도 없이 싸움을 걸 정도로 단천은 멍청한 인간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동창의 절대고수들과 싸우기 위해서라는 적법한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군대와 싸울 만한 가치가 없다.
“···결국. 게임뿐이라는 건가.”
신체의 경지가 올라가면 갈수록 중원과 현대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단천은 새삼스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떠올렸다. 무인으로의 단천. 혹은 지구인으로의 단천. 둘 다 자신이기는 하지만 무인으로서의 단천이 가지는 욕망은 이 세계에서는 쉬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은 즐길 것이 있으니 다행인 걸지도.”
단천은 쓰게 웃음을 지었다. 언제부터 자신이 미래에 대해서 걱정했던가. 지금 즐길 것이 있다. 자신이 돌봐줘야 할 문파의 사람들도 생겼고, 새로운 인연도 생겼다.
“당장 다키스트 에이지 2도 있는 마당이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내일 할 일이 없는 것은 내일이 왔을 때 걱정하면 될 터였다. 눈 앞의 것들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
[다키스트 에이지 2 난이도 어떰?]
[유출판 해 봤는데 미친 것 같던데. 1 이상임.]
[이걸 사람하라고 만든 거 맞냐?]
[소드아트 죽어 이 쓰레기 새끼들]
인터넷의 게시판은 다키스트 에이지2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신작이 나올 때면 으레 기대감을 가득 담은 이야기가 나오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였다.
다키스트 에이지 2가 발매되기 직전인데도 인터넷은 악평과 불만이 뒤덮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불법 유출된 챕터의 난이도가 말 그대로 지랄 맞게 높았던 것.
악명 높은 난이도로 인해 대중성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듣는 것이 다키스트 에이지 1이었다. 물론 다키스트 에이지의 매력이라는 것이 그 어려움에서 나오는 것이긴 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다키스트 에이지 2의 난이도는 다키스트 에이지 1에 비해서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소드아트 사는 난이도를 낮추지는 못할 망정 그 난이도를 훨씬 높혀서 들고온 상태였다.
새롭게 만들어진 ‘신성력’ 시스템을 사용하는데도 극도로 어려운 난이도.
[무슨 기본 몹도 패턴이 더러움]
[첫 몹 잡는거 30트했다. 질문 받는다.]
[└와 30트만에 잡음? 개고수네 ㄷㄷ]
[ └잡긴 뭘잡아 30트하고 못잡아서 껐는데 ㅅㅂ]
[내가볼때 소드아트 이새끼들은 그냥 마조임.]
다키스트 에이지 1의 난다긴다하는 플레이어들도 고생을 한참 해야 몬스터 하나를 잡아낼 수 있을 정도의 극한의 난이도.
보아하니 이번에도 밸런스 조절은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이거 게임 받는게 맞냐]
[환불 겁나 많이 할 것 같긴 함]
극도로 높은 난이도라는 게 밝혀지자, 사람들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 게임을 누가 처음으로 클리어할 것인가’라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 영역에 있어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물론 BJ천마였다.
[일단 BJ천마 공략 보고 나서 생각해야겠음]
[222]
[33333]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이 BJ천마의 공략 방송에 모여들고 있었다.
당장 레일 서바이버에서도 꽤 많은 실전적인 공략을 남긴 것이 BJ천마 아니었던가.
물론 그 공략이라고 하는 것들 중 절반 이상이 BJ천마 본인만 할 수 있는 공략이라는 게 문제긴 했지만, 바꿔 말하면 절반 정도는 실제로 게임을 하면서 쓸 수 있는 공략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솔직히 다키스트 에이지 1에서도 이것저것 쓸만한 공략들 많이 남겼잖아.]
[ㅇㅈ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음]
그렇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송의 알람이 울려퍼졌다.
[BJ천마. On 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