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66화 (66/212)

15. 뒤풀이 합방 (3)

천마신교. 그 이름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아마 단천이 지금 천마신교를 다른 지역에서 만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면 천마신교의 장로들이 게거품을 물었을 터.

하지만 단천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본좌가 있는 곳이 곧 천마신교다.”

애초에 천마신교란 것은 단천 자신이 있는 곳이다. 그러니 장소나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단천은 천마신교의 창립을 선언한 다음 좌중을 돌아봤다. 분명히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덤덤한 반응들이었다.

“확실히 슬슬 할 때가 되기는 했지.”

“그러게. 오히려 늦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야.”

“뭐, 요새 구독은 스트리머 시작하자마자 만드는 사람도 많으니까.”

‘···구독?’

구독이라. 그러고 보면 웹소설 사이트 어딘가도 구독이 가능했었다. 첫 달에는 1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단천도 이용하는 중이기도 했다.

아무튼 구독이 무엇인지는 알겠고. 지금 이 상황과 구독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 드디어 구독 열리는구나 ㅋㅋㅋㅋ

> 하긴 ㅅㅂ 시청자가 1만이 넘어가는데 구독이 없다는 게 말이나 되냐

> 바로 휴대폰 결제 드간다ㅏㅏㅏㅏㅏㅏ

단천의 눈이 빠르게 채팅창을 읽었다. 보아하니 인터넷 방송에도 구독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 모든 사람들은 ‘천마신교’라는 것이 ‘구독자’를 부르는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근데 구독자 뱃지는? 준비해놓은 거 있어?”

“구독자 뱃지는···.”

말끝을 흐리던 단천의 눈에 BJ천마 방의 매니저 채팅이 올라왔다.

[유미 : 구독자 뱃지 만들어둔 거 있어요. 먼저 말 꺼낼까 했는데 부담드리는 것 같아서 천마님이 말 꺼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유미 : 그럼 지금 신청 넣어놓을게요. 준비는 다 해 놨으니까 1분쯤 후면 열릴 거에요.]

단천 자신의 뜻을 알고 미리 구독자 뱃지도 준비해두다니. 역시 서유나는 능력 있는 참모다. 서윤학이였다면 준비는 커녕 허둥거리면서 단천에게 잘못의 화살을 돌렸겠지. 버릇없는 놈 같으니라고.

“물론 뱃지 또한 준비되어 있다. 곧 예비교도 가입을 받을 테니 천마신교에 입교를 원하는 자들은 준비해놓도록.”

“첫 달 들어오는 사람들은 예비교도야? 정식교도는 그럼 언제 돼?”

“정식교도는 본좌의 마음에 들어야 되는 것이지 시간이 찬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 돈내고 되는게 예비교도 ㅋㅋㅋㅋㅋ

> 예비교도고 뭐고 제 돈 받으시라고요

> 아 열렸다

> 열림 ㄱㄱㄱㄱㄱ

[만마앙복 님이 구독자가 되셨습니다.]

[하루우라라 님이 구독자가 되셨습니다.]

[낙융개사기 님이 구독자가 되셨습니다.]

[손톱밑샤프심 님이 구독자가 되셨습니다.]

···

[침대밑리모콘 님이 구독자가 되셨습니다.]

BJ천마의 구독이 가능해졌다는 글이 올라오자마자 화면 전체를 채울 정도로 빠르게 올라오는 구독자 메시지.

“와. 저게 다 몇 명이야.”

구독은 후원과는 다르다. 후원이 스트리머에게 주는 응원이라면 구독권은 좋아하는 방송에서 여러 가지 소소한 혜택들을 받을 수 있다. 중간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된다거나, 채팅할 때에 구독 뱃지를 달고 있을 수 있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를테면 스트리머에게 쓴다는 느낌보다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무언가를 위해 쓴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심리적 허들도 낮고, 구독을 신청하는 사람의 숫자도 많다.

“아무리 그래도 신청자수가 심하게 많은데?”

> 천마신교니까··· 이건 가입할 수밖에 없지···

> 제로콜아 미안해 형도 이제 천마신교 가입했어

> 아 ㅋㅋㅋ 천마신교 입교는 못참지 ㅋㅋㅋ

> 오늘부로 나도 당당한 천마신교의 한 명이다!

BJ천마가 가지고 있는 ‘천마’라는 기믹. 그리고 구독을 하게 되면 얻게 되는 천마신교에 입교하게 된다는 특별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

당연히 구독을 신청하는 사람의 비율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천마 형은 이 소식을 합방 중에 터트리는 걸 선택했지.’

돈낳대의 뒤풀이 자리.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이목은 10만 명이 넘어간다. 이 자리에서의 말 한 마디가 초대형 광고라고도 볼 수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 신규 구독에 대해서 선포하는 것은 커다랗다는 말로도 부족한 광고 효과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구독자를 만들지 않았던 게 다 계산된 거였다니.’

시청자가 만 명이 넘도록 구독자를 안 만들길래 구독에 대해서 전혀 모르나 싶었는데.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던 거야.’

풀창고의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올랐다.

“이, 일단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연히 따지면 저희 방 구독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마 형이 잘 된다면 좋죠!”

“천마신교 입교를 축하한다. 정식 천마신교 교도가 될 수 있도록 정진정명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비록 제대로 된 입교가 아니라 가입교자들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저들이 패악질을 부리는 것을 묵과할 수는 없었다.

‘간단히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군.’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원에서의 법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테니.

“말할 것은 세 가지다. 하나. 천마신교 안에서는 힘이 있는 자가 위에 선다. 신교 내에서 분쟁이 있다면 말이 아닌 싸움으로 해결하도록.”

> 요컨데 PVP로 맞다이 까라는 거죠?

> PVP 종목은 상관 없음?

> 진짜 진성 겜악귀네 ㅋㅋㅋㅋㅋ

“둘. 힘이 최우선인 것은 신교 내에서 뿐이다. 이유 없이 신교와 관련없는 자들에게 패악질을 부리다 걸리면 그대로 참형斬刑이다.”

> 다른 방에 가서 티 내서 피해 입히지 말라 그런 말인가?

> ㅇㅇ 당연하지

> 참형은 뭐임? 목 자르는거 맞냐?

> 영구밴 이야기겠지 진짜 목 자르겠냐

“그리고 마지막. 신교 안에서 본좌의 말은 곧 법이니라. 본좌의 말에 토를 달다가 본좌의 눈 밖에 걸리지 않을 수 있도록.”

> 아니 뭘 새삼스레 ㅋㅋㅋㅋ

> 원래도 법이였습니다 천마님

이 세가지만 지키면 최소한 어디 가서 천마신교를 욕먹일 일은 없을 것이다.

채팅창의 반응에서도 대체로 납득할 만한 원칙이라는 평가였다. 다른 방에 가서 패악질을 부리지 않는 것과 스트리머가 자신의 방에서 왕인 것 정도야 대부분의 방에서도 적용되는 룰이었으니까.

“자. 예비교도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 이제 정식 교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도록 할까.”

“정식 교도요? 그런 것도 있어요? 방금 구독 시작했잖아요.”

“천마신교에 정식 입교를 하기 위해서는 나의 허가가 필요하다.”

단천은 풀창고와 정유채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그 천마신교란 거. 단순하게 구독자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크루 역할도 한다는 거야?”

“근데 굳이 크루를 다시 만들 필요가 있어? 그냥 풀창고 크루에 천마 오빠가 오면 되는 거 아니야?”

“본좌는 어떤 자의 아래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랬었지.”

풀창고가 머리를 긁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BJ천마가 대회에 같이 참여했던 것도 게스트 역할이었다.

게스트 치고는 심하게 게임을 캐리하고, 심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서 그렇지.

“형. 나 천마신교 입교한다면 받아줄 거야?”

“우리는 생사를 함께한 동료다. 받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오빠. 나도 받아줘요?”

“물론이다.”

“천마 형. 그래도 저는 풀창고 크루가 더 좋은데요··· 어감도 그쪽이 더 괜찮고. 운동도 딱히 안 시키고.”

제로콜의 말에 단천의 고개가 살짝 모로 꺾였다.

“무슨 소리 하는 거지? 제로콜 너는 이미 천마신교의 일원이다.”

“···네?”

“본좌에게 그렇게 수련을 받았고, 앞으로도 수련을 받을 예정이다. 그러면 당연히 너는 천마신교의 일원인 것이다.”

“······”

“와! 제로콜! 크루 바꿔달라고 그러더니 소원 성취했네!”

“축하한다. 형은 네 앞길을 응원하마.”

> 본인 의사와 상관없는 입교완료 ㅋㅋㅋㅋㅋ

> 이정도면 거의 납치 아니냐?

납치는 무슨. 납치같은 불의한 일을 단천 자신이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고작 이 정도가 납치라면 과거에 제갈운을 천마신교에 입교시킨 것도 납치였을 것이다.

단천은 그저 완강히 거부하면서 칼을 휘두르는 제갈운을 제압해 십만태산의 천마신교로 데려가서 입교할 때까지 함께 수련을 했을 뿐.

납치나 협박은 단 한 번도 행한 적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천마신교 탈교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간단하다. 목을 스스로 잘라낸 다음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음을 똑바로 걸으면 된다.”

“······.”

사실상 종신직이라는 말이다. 아니, 죽고서도 탈퇴가 불가능하니 종신직이 아닌 영구직이라고 봐야 했다.

“그러면 제로콜은 이미 입교 완료고. 풀창고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천마신교 들어가는 거?”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풀창고 크루라고 해 봤자 우리 세 명이 전부였잖아.”

BJ천마와 함께하는 것은 여러 모로 둘에게 이득이었다. 이전까지는 낙수효과를 주는 입장이었다면 BJ천마의 덩치가 지금은 자신들보다도 더 커져버린 상황이라고나 할까.

게임 실력에서도 BJ천마의 실력은 넘치도록 검증됐으니, 도움을 받기에도 좋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밌을 것 같아.’

재미. 이 사람과 함께 컨텐츠를 만들고 방송을 종종 한다면 방송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

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합방을 제의했고, 실제로도 즐겁기 그지없는 대회였다. 스트리머란 것은 이런저런 계산에 의해서 방송을 시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트리머 자신이 방송을 재밌어해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방송이 나오는 법이니까.

그리고 흥미롭고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데, BJ천마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 분명했다.

“···입교를 안 할 이유가 없네. 난 입교할게.”

“나도 입교할게요. 나 혼자만 남기도 뭣하고. 제로콜이 나 없으면 누나 사라졌다고 울 것 같기도 하니까.”

“천마신교는 둘의 입교를 환영한다.”

단천이 입꼬리를 올리며 둘의 입교를 환영했다.

후원도 엄청나게 나오고, 천마신교도 제대로 창단되고, 정식 교도도 두 명이나 늘었다.

여러 모로 성공적인 뒤풀이 합방이었다.

***

다음 날. 단천은 평소처럼 운동을 마무리한 다음 집에 돌아왔다.

단천은 게임 준비를 하는 대신 간단하게 깔끔한 옷을 차려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방송이 없는 날이었으니까.

오늘은 합방 다음으로 단천이 잡아 놓은 휴방일이었다. 휴방일을 오늘로 잡은 이유는 합방 다음 날이라서 쉬어가기 좋은 날이라는 점. 단천 자신의 누나인 단지은이 쉬는 날이라는 것. 거기에 결정적으로···.

‘오늘이 정산일이지.’

오늘이 트인낭 후원금의 정산일이라는 점이었다. 단천은 휴대폰 어플을 켜 정산금을 확인했다.

[잔액 : 89,008,872원]

거의 9천만원 가까운 금액이 단천의 통장에 들어와 있었다. 돈낳대의 상금과 후원금 정산, 거기에 하인라인사에서 추적되지 않는 방법으로 나눠서 보내주기로 한 돈까지.

웬만한 회사원의 연봉을 한참 넘는 돈이 한 달만에 들어온 셈이다.

“천아. 일어났어?”

“어.”

단지은이 방에서 걸어나왔다. 한참 더 잘 줄 알았는데 꽤 일찍 일어났다.

“더 자고 일어나도 되는데.”

“음. 오랜만에 동생이 같이 놀자고 하는데 늦잠 잘 수야 없지.”

그래도 안색은 이전에 비해서 훨씬 좋다. 역시 약선단의 효과가 출중하기는 한 모양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짭퉁 약 다 떨어졌어.”

“다시 만들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짭퉁 아니라니까.

단지은은 그렇게 커다란 효능을 봐 놓고도 심심하면 약선단을 짭퉁 약이라고 불렀다. 식약처의 허가가 없으니 원칙적으로 불법이며 효능이 과학적, 한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니까 짭퉁 약이라는 논리였다. 논리상으로 빈틈이 전혀 없어서 더 열받는 논리다. 변호사가 되더니 억지만 늘어가지고는.

“가 볼 데 있으니까 준비해서 나와.”

“녜이. 잠깐만 기다려. 금방 준비할 테니까.”

단지은이 부산스럽게 준비하는 동안 단천은 다시 한 번 통장을 확인했다.

9천만원이라는 돈. 이 정도라면 돌아오고 나서 처음 단지은에게 말했던 것처럼 집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을 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