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63화 (63/212)

14. 돈낳대 (3)

[BJ천마! 설치되어 있는 트랩들을 또다시 파괴합니다!]

레일 서바이버는 결코 한 명이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게임이다.

FPS라는 게임의 특성상 한 명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팀전이라면 이런 한계는 더더욱 두드러진다. 팀원들간의 호흡과 시너지로 인해 한 명이 모든 것을 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레일 서바이버는 혼자서는 결코 캐리할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 상식이 단 한 명에게 부숴지고 있었다.

“쏴! 쏘라고!”

“후방에서 저격하는 놈들 어떻게 됐어!”

“말 할 시간에 쏘기나 해!”

거의 스무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총구를 향하고 있는 것은 단 한 명의 사람이었다.

원래라면 티밍이라는 말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이 상황을 티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잉! 빛으로 된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빛으로 된 광선이 날아오는 총알들을 당연하다는 듯 잘라냈다.

“전방 수류탄!”

던져진 수류탄. 이전의 저격에서의 애매한 타이밍과 달리 완벽한 타이밍에 던져진 수류탄이다.

검의 사거리에도 닿지 않도록 노련하게 던져졌다.

BJ천마를 사냥하기 위해서 수없이 연습을 반복한 타이밍의 수류탄이리라.

그리고 반대편에 서 있는 적의 손에 들려 있는 화염 방사기.

화아아악!

소위 ‘양각’이라고 하는 180도 방면에서의 공격. 원래라면 몇 번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BJ천마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꽤 준비를 한 모양이구나.”

노력한 상대에 대한 칭찬을 끝낸 단천의 손이 움직였다.

콰아앙! 수류탄이 터지며 수없이 많은 파편이 비산했다. 동시에 BJ천마의 왼손이 무언가를 잡아올렸다.

단천이 잡아올린 것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강판이었다.

휘리릭! 강판이 회전하며 수류탄의 파편을 막아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화염방사기를 향해 단천은 광선검을 던졌다.

파워 건틀릿으로 강화된 광선검의 투척에, 무거운 화염 방사기가 피하지도 못한 채 반으로 갈라졌다.

서걱!

“검 놨어!”

“지금 쏴!”

“누구 맘대로!”

“으어어어!”

타다다당!

BJ천마가 검을 놓았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BJ천마의 뒤에 있던 팀원들이 바로 지원사격을 시작한 덕분이다.

실로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광경에 채팅창도, 심지어 대회를 해설해야 하는 해설진들마저 멍하니 상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미친

> 이거 FPS 맞냐??

> 사실 SF겜이긴 하지

> 이 괴물!! 우리 FPS에서 나가!!!

[와···방금 그건. 정말로 말이 안 되네요.]

[허허. 뭔가 해설을 해 드리고 싶은데. 저게 어떻게 저렇게 하는 건지는 저도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그냥 보시면서 즐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각자의 감상은 다르겠지만. 이 모든 사람들이 갖는 한 가지 생각은 공통된 것이었다.

‘우승은 BJ천마의 것이다.’

그리고 이 명제가 진실이 되는 데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

폭연과 매연이 가득한 시가지. 단천은 여유롭게 검을 돌리며 마지막 남은 적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하···진짜.”

마지막 남은 스트리머인 급칠이는 플레이를 거의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십수 명이서 함께 달려들었는데도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이거 그냥 탱크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인정? 어 인정.”

“고작 탱크따위로 본좌를 이기려고 하다니. 꿈이 크군.”

> 솔직히 탱크나 전투기 줘도 못 이긴다

> ㅅㅂ;; 인정합니다;;;

서걱! 단천의 광선검이 마지막 남은 플레이어인 급칠이의 목을 베어갈랐다.

[우승하셨습니다!]

“와아아아!”

“미쳤다!”

“으어어어! 어어!”

환희에 뒤섞인 팀원들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자! 풀창고 크루의 우승입니다! 우승 크루를 지금부터 만나보시겠습니다!]

귀 안으로 먹먹하게 들어오는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보다 지금 만나본다니? 어떻게?”

“VR챗을 쓰면 되죠.”

[VR chat으로 화면을 이동합니다!]

화면이 전환되자 팀원들은 커다란 단상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단상 아래로 보이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팬이에요!”

“미쳤다! BJ천마! BJ천마! BJ천마!”

“날 가져요! 오빠! 덜렁덜렁!”

평소에 시청자들이 말하는 것 같은 채팅을 입으로 내뱉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단순한 더미들은 아닌 모양이다.

“저거. 실제 시청자들이에요.”

“그렇군.”

VR챗이 이렇게도 이용될 수 있을 줄이야. 이런 방식도 나쁘지는 않다. 물론 최고는 실제로 만나는 것이겠지만.

그보다 ‘날 가져요!’라고 맨날 채팅치던 놈. 남자였군.

저 놈은 다음 방송때 밴이다.

“네! 이번 우승팀인 풀창고 크루를 모셔봤습니다! 인사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크루장···이었던 풀창고입니다.”

“홍일점이자 매력포인트를 맡고 있는 정유채입니다!”

“으어어. 어어.”

“저··· 제로콜님은?”

“아. 좀 힘든 모양입니다. 며칠 전부터 특훈을 했거든요. 제 옆에 있는 이 동생은 제로콜입니다!”

크루의 팀원들 한 명 한 명이 소개될 때마다 사람들의 환호성은 더 커졌다.

“그리고 이번 대회의 ‘신’이죠? BJ천마님입니다!”

“BJ천마다. 반갑다.”

와아아아!

이전까지의 환호성도 꽤 컸지만 이번에는 그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환호성이 단상을 뒤덮었다.

실로 고막이 먹먹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환호성이었다.

“VR챗의 단상에 처음 오르신 걸로 아는데. 엄청 침착하시네요. 이유가 있나요?”

“이런 환호성은 익숙하니까.”

“이번의 우승은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내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단천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살짝 오만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장면이었으나. 이런 절대적인 실력의 플레이어가 보여주는 오만함은 오만함이라기보다는 당당함으로 비춰지기 마련이다.

“인정합니다!”

“진짜 혼자서 다 해먹음!”

그리고 겸양도 정도껏인 상황에서 떨어야 겸양이지, 실제로 혼자서 거의 다 해 먹어놓고 팀원들이나 운이 좋았다고 하는 것도 영 모양새가 좋지 않다.

“물론 다른 팀원들도 실력이 꽤 많이 늘기는 했다. 실력이 늘지 않았다면 나 혼자서면 어쩌면 힘들 지도 몰랐으니까.”

“오, 팀원들까지 챙겨 주는 모습. 정말 멋집니다!”

“물론 팀원들의 실력이 늘어난 것은 대부분이 내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형이 진짜.”

“와. 챙겨주는 줄 알고 감동받을 뻔 했는데.”

“으어어! 어어! 어어어!”

팀원들을 챙겨주는 듯 보이다가 결국 자신이 잘났다는 이야기로 틀어가는 급 커브에, 시청자들에게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그 이후로부터는 꽤나 평범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게임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내 방송을 보고 그대로만 하면 된다), 현 메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메타에 따르는 자는 결코 최정상에 설 수 없다) 따위의 이야기들.

그렇게 우승자 인터뷰가 끝나고, 준우승자 인터뷰가 그 뒤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청자들 대부분의 이목은 여전히 BJ천마에게 가 있었다.

> 오늘 방송 동영상으로 가지고 있는 놈 있냐?

> 대회 보고도 프로급이면 천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 아직 있음?

> 겜 보고도 프로 운운하면 뇌가 없던가 눈이 없던가 둘중 하나지 ㅋㅋㅋㅋ

“와. 시청자들 아직도 천마 형 이야기만 한다.”

“당연한 일이지.”

단천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형. 레일 서바이버 프로 해 볼 생각은 없어?”

“프로라.”

“어. 프로. 형 실력이면 그냥 프로판도 다 쓸어담을 것 같은데.”

레일 서바이버는 커다란 규모의 대회를 운영한다. 총 상금의 액수도 어마어마하고, 시청자들의 수도 꽤 많은 편이다.

단천의 실력이라면 프로들도 학살하다시피 할 수 있을 테고.

하지만 단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프로는 할 생각 없다.”

“왜?”

“게임을 하나밖에 못 하니까.”

레일 서바이버 프로는 국가를 옮겨 다니며 대회를 치룬다. 대회 일정도 매우 빡빡하게 설정되어 있다.

프로게이머로 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대부분의 시간을 고정적으로 레일 서바이버를 위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게임들을 더 많이 해 보고 싶다.”

레일 서바이버에 질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레일 서바이버에 시간과 인생을 걸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게임들이 있고. 자신은 종합 게임 스트리머인 ‘BJ천마’니까.

BJ천마는 스트리머다.

“나는 스트리밍을 시작하며 방송의 정점을 찍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프로는 하지 않아.”

“그렇구나. 형답네.”

풀창고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선뜻 이해가 될 만한 결정은 아니다. 남이 이해할만한 선택도 아니고.

하지만 BJ천마는 남이 이해할만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었다.

“꼭 방송계의 정점에 서면 좋겠네.”

“물론. 본좌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BJ천마가 하고 싶은 것이 방송의 정점에 서는 것이라면. 그것이 언제가 됐건 이뤄질 일이었다.

“그 다음은 세계 정복이지만. 일단은 인터넷 방송의 정점에 서야겠지.”

“···형. 진짜 농담이랑 진담이랑 말할 때 톤 좀 다르게 하면 안 돼? 톤이 다 똑같으니까 진담으로 들린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BJ천마의 표정을 바라보며 풀창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대회가 끝났다.

***

대회 다음 날. 휴일.

[이번대회 BJ천마 매드무비 1]

[이번대회 BJ천마 매드무비 2]

···

[이번대회 BJ천마 매드무비 13]

[대회 한 번에 뭔 매드무비가 13개나 나오누]

[매드무비가 복사가 된다고 ㅋㅋㅋㅋ]

단천은 소파에 드러누운 채 커뮤니티의 인기글을 읽고 있었다.

어제 있었던 단천의 엄청난 활약은 스트리밍 커뮤니티 뿐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요새 천마 수준.gjf]

[SF겜에서 무협 찍는 미친놈 ㅋㅋㅋㅋ]

“말뽄새하고는.”

자신을 향해 미친놈이라고 칭한 자의 아이디를 기억한 단천은 화면을 전환했다.

[뒤풀이 합방 장소 확정됐어요]

[시간 맞춰서 오세요!]

휴대폰의 메시지란에 도착해 있는 메시지들. 대회가 끝나고 나서의 뒤풀이 합방 이야기였다.

대회 중에는 후원이 잘 터져나오지 않는다. 게임 딜레이도 걸려 있는 데다가 스트리머도 대회에 집중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원이 제대로 터져나오는 것은 대회가 끝나고서의 뒤풀이 합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돈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뒤풀이 합방은 순위가 높은 팀일수록 이득이다. 대회를 시청한 시청자들이 몰리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1등을 차지한 풀창고 크루의 경우에는 이 시청자 규모가 천문학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일 것이다.

자신의 방송을 재밌게 봐 준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도 할 수 있고, 게임 내에서 있었던 부분의 뒷 이야기도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레일 서바이버 이후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도 언급해야 하지.”

그러니 여러 모로 뒤풀이 합방은 이득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함께 해 준 팀원인 풀창고 크루에게 물어볼 것도 있었다.

“슬슬 천마신교를 창단할 때가 됐지.”

단천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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