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돈낳대 (1)
“형. 이제 시작하는데 그대로 있을 거지?”
“물론.”
단천의 단호한 대답.
“눈치를 보는 것은 약자들이나 하는 행위. 진정한 강자는 적의 행동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인다. 이것이 공자가 말했던 종심從心이라 하는 것이지.”
‘공자가 말한 의미가 그런 뜻이었던가?’
잘은 모르지만 공자가 한 말의 뜻이 자기 하고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 현직 공자입니다. 천마님 말이 다 맞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냅둬 천마님이 말린다고 해서 말려지는 것도 아니고
> └ ㅇㅈ
그렇게 이야기하는 중에도 단천 일행을 담은 번개 구체가 바닥을 향해 천천히 낙하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스쿼드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파밍하러 떠난 상태.
반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 대신 풀창고 크루의 주변에서 함께 떨어져 내리는 구체들도 있었다.
평소라면 저격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대회 중이다. 저격일 가능성은 없다.
풀창고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저격일 가능성은 없는데 왜 이렇게 기본 지역에 많이 모여드는 거지? 우리를 노리더라도 파밍을 다 하고 노리는 게 승률이 더 높지 않나?”
“이런 경우는 처음인가 보군.”
단천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또한 단천에게는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대회에서의 목표는 1위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1위가 아니더라도 유의미한 목표가 있지.”
“유의미한 목표?”
“본좌를 죽였다는 명예 말이다.”
이것이 그냥 단순한 랭크 게임이었다면, 혹은 단순한 대회였다면 BJ천마를 죽이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모여들지는 않았을 터다.
하지만 지금의 게임은 ‘돈낳대.’ 즉 스트리머들의 대회다.
대회의 목표는 물론 1등이지만, 스트리머로서의 궁극적 목표는 시청자 상승과 인지도 상승이다.
“인지도를 올리기에. 나를 죽이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지.”
BJ천마는 지금까지 레일 서바이버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죽지 않았다. 실로 비현실적일 정도의 성과.
이런 플레이어를 처음으로 죽인다는 결과물을 낸다면?
“나를 죽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될 수 있겠지. 오히려 1위를 쟁취하는 것보다 훨씬 커다란 이야깃거리가 될 거다. 시청자 폭증은 물론, 말랑튜브 조회수도 달달할 테고. 게다가···.”
“게다가?”
“한 번 이긴 다음 다시는 안 붙어주면 상황이 상당히 귀찮아진다.”
소위 ‘너 게임 개 못하잖아(최근전적 1승)’을 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만을 목표로 삼는 스트리머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아야겠지.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단천은 과거에 학사검 제갈운이 감히 자신을 상대로 바둑을 이긴 채 서역까지 도주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형. 왜 사람 죽일 것 같은 눈을 해. 무섭게.”
“사람을 왜 죽이나.”
상대를 죽이면 최근전적 1승인 채로 저승에 가게 된다. 그러니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산채로 생포한 다음 다시 게임을 하게 만들어야지.
그러려면 절대 거절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를테면 머리까지 땅 속에 묻힌 상태라거나.
“그리고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너희를 죽이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도 있겠지.”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대회에서 1등하려면 형만 살아서는 안 되니까.”
“그러니. 모두 다 살아서 게임을 끝낼 수 있도록. 목표는 완벽한 승리다.”
우승이야 단천 자신이 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니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완벽한 승리다.
목표는 1위부터 4위까지 풀창고 스쿼드가 모조리 살아서 우승하는 것.
“근데. 그게 될까? 형이야 1등 할 것 같지만.”
“너희의 실력을 믿도록.”
“···으어어.”
‘진짜 될까.’
풀창고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제로콜을 바라보며 자그마한 혼란에 빠졌다.
***
[네! 핫타임배 돈낳대! 방금 게임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각 대회 중계석. 레일 서바이버는 25개나 되는 스쿼드가 함께 대회를 치른다. 25개의 화면을 한 중계진이 모두 잡아주고 중계해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포커스를 어디에 잡느냐가 중요하다. 보통의 레일 서바이버 대회는 ‘우승권 스쿼드’들을 중심으로 해설이 되기 마련.
지금의 우승권 스쿼드라고 한다면 물론 BJ천마가 있는 풀창고 크루였다.
[네. 이번 대회. 역시나 가장 핫한 플레이어는 BJ천마죠?]
[맞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피지컬로 순식간에 1위를 꿰찬 괴물 중의 괴물이죠. 그것도 총은 전혀 쓰지 않고 광선검만 써서 1위를 쟁취했습니다.]
[중간에 핵 사용 의혹까지 받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피지컬을 보여줬었는데. 확실히 저격하는 팀도 많이 있겠죠?]
> 아니 난 지금도 핵 아니라는걸 못믿겠음
> 핵이 아니라서 반전이었던 스트리머
> ㄹㅇ ㅋㅋㅋㅋㅋ
돈낳대의 시청자 수는 10만명이 넘어간다. 거기에 참여하는 스트리머들 각자의 시청자 수를 생각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의 시청자들이 돈낳대를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대회에서 우승할 확률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로 언급되고 있는 플레이어가 바로 BJ천마였다.
거기에 핵 플레이어로 몰리기까지 했다가 증명을 해 버렸다는 드라마틱한 스토리까지.
실로 사람들이 주목하기에 완벽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BJ천마뿐 아니라 같은 팀에 있는 팀원들도 긍정적인 주목을 받게 되는 상황.
파지지직!
그렇게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전기구체 하나가 바닥에 착지했다.
[네! 방금 BJ천마가 있는 풀창고 크루가 착지했습니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풀창고 크루의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나뉘어서 파밍을 하는 걸 선택했네요.]
보통은 한 스쿼드가 착지하면 일정 지역을 중심으로 최대한 가깝게 모여서 파밍을 한다.
하지만 풀창고 크루는 적당한 거리를 벌린 채 파밍을 스타트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광선검’을 먹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다.
[천마 팀에서 가장 중요한 물품은 역시나 광선검이죠?]
[네. 맨몸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BJ천마지만 광선검이 그 손에 들렸을때의 파괴력은 이미 넘치도록 증명이 되었으니까요.]
[아마 다른 팀들도 이 부분은 충분히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도 화면 전환이 되는 팀마다 광선검을 폐기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맵의 거의 모든 지역에 팀들이 고르게 착지했으니, BJ천마가 다른 지역에서 광선검을 먹을 확률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는 건.
[첫 지역에서 광선검을 못 먹는다면, 게임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거거든요?]
[맞습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다른 지역에 잡혀 있던 화면이 전환됐다.
전환된 화면에 나온 것은 제로콜이었다. 제로콜의 손에 쥐여져 있는 것은 광선검이었다.
[아! 풀창고 크루의 팀원인 제로콜이 광선검을 루팅했습니다!]
“으어어.”
제로콜의 입에서 기쁨과 환희와 삶에 대한 고통이 뒤섞인 묘한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
“야! 제로콜이 광선검 먹었어!”
제로콜의 움직임을 확인한 탐바우가 소리쳤다. 탐바우의 말에 탐바우의 스쿼드의 나머지 세 명이 모여들었다.
“어디야! 어디!”
“파밍 멈추고 와 봐!”
“파밍 상태 괜찮아?”
“템 더럽게 안 떴어!”
탐바우는 빠르게 팀원의 장비 상황을 점검했다. 파밍 극초반이라 팀원 전체에 있는 무기라고 해 봤자 탐바우 자신이 들고 있는 자동소총 하나가 전부다.
이런 상황에 BJ천마가 광선검을 먹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 누구도 아닌 제로콜이다. 제로의 남자. 부정적인 의미로 에임핵 장인이라고 불리는 스트리머.
심지어 그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광선검 하나와 권총 하나.
자동소총 하나라면 이미 충분하고도 남는다.
“쏴!”
타다당! 탐바우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으어어.”
평소의 제로콜이라면 어버버하다가 죽었을 것이 분명한 상황. 하지만 지금의 제로콜은 평소의 제로콜이 아니었다. 광선검을 허리춤에 넣은 제로콜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엄폐물 뒤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엄폐물 뒤에서 빼끔 나오는 권총과 제로콜의 머리.
타아아앙!
총성과 함께 탐바우의 옆에 서 있던 팀원 한 명이 풀썩 쓰러져내렸다.
[제로콜님이 파이어볼러를 처치하셨습니다.]
“뭐, 뭐야!”
“제로콜이 사람을 맞혔다고···?”
타아앙!
[제로콜님이 카누대맥심을 처치하셨습니다.]
제로콜이 권총으로 사람을 맞혔다. 그것도 두 번이나. 단 두 발로 헤드샷을 두 번이나 날렸다.
어떻게? 왜? 운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의 사격? 탐바우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일단 숨어!”
탐바우는 생각할 틈도 없이 팀원과 함께 엄폐물 뒤로 숨었다.
“저게 뭐냐고! 저거 제로콜 맞아?”
> 미친 ㅋㅋㅋㅋㅋㅋ
> 제로콜 본인 맞냐?? 대리게임 돌리는 거 아님??
> 와 샷빨 죽이네; 미쳤다 ㄷㄷㄷ
> 근데 좀비 소리는 왜 내는 거임?
> 컨셉 아님?
> 뭔 대회에서 컨셉을 잡어 ㅋㅋㅋㅋㅋ
“으어어.”
‘컨셉 한번 거지같이도 잡았네.’
저게 컨셉이건 아니건 확실한 것은 지금의 제로콜이 이전까지의 제로콜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제로콜과 BJ천마가 특훈을 했다는 사실은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BJ천마라고 해도 제로콜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BJ천마는 기어코 제로콜을 사람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니, 지금의 샷빨로 보건데 제로콜의 샷빨은 사람 이상이다. 실제로 방금의 두 발은 챌린저에서도 난다긴다하는 인간들도 할 수 있을까말까한 수준의 사격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지금의 제로콜은 글자 그대로···.
“인정도 감정도 없는 살인전차···.”
“으어어어어.”
> 감정이고 자시고 의식부터 없는 것 같은데?
원래라면 여기서 도망치는 게 맞다. 무기도 없고, 샷빨이 저런 인간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상황.
하지만 탐바우는 제로콜을 상대로 도망쳤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다.
탐바우 자신도 나름대로 그마권에 오른 실력자다. 아무리 그래도 스톤즈에게 등을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2명으로는 우승은 꿈도 못 꿔.’
초반에 팀원 두 명이 아웃된 상황에서는 어차피 우승은 꿈도 못 꾼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차라리 제로콜이라도 잡고 명예로운 죽음을 당하는 게 낫다.
탐바우는 자신의 옆에 있는 팀원 피아망상을 바라봤다. 피아망상이 장착하고 있는 3티어 헬멧.
저게 있다면 제로콜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헬멧 나 줄 수 있냐?”
동작은 빨랐다. 오랜 시간의 팀워크로 다져진 신뢰 관계였으니까. 피아망상에게서 헬멧을 넘겨받은 탐바우는 호흡을 골랐다.
‘3티어 헬멧이면 권총 헤드샷을 네다섯 발까지 막아낼 수 있지.’
그리고 그 헤드샷이 박히는 사이에 소총을 갈기면 이길 수 있다.
판단을 내린 탐바우는 바로 상체를 세웠다.
탕!
퍼억! 하고 총알이 헬멧에 박혀드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퍼졌다. 머리가 총알의 충격으로 살짝 뒤로 흔들렸다.
타아앙!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잇는 두 발째의 권총 소리.
괜찮다. 두 발 정도면 상관없다. 탐바우는 개의치 않은 채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당기려고 했다.
하지만 탐바우는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기도 이전에 화면이 사망 상태를 알리는 흑백 화면으로 변해 있었기에.
[사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사망 메시지.
“···뭔데?”
어처구니없어하는 탐바우 위로. 하나의 채팅이 떠올랐다.
> 미쳤다; 같은 자리에 총알을 두 발이나 박아넣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