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마지막 점검 (2)
깔끔하기 그지없는 헤드샷이었다. 풀창고도, 정유채도, 시청자도, 심지어 총을 쏜 제로콜마저도 당황할 만큼 깔끔한 헤드샷.
“제로콜이···.”
“총을···.”
> 맞혔어···?
이 자리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 BJ천마뿐이었다.
“예상대로군.”
역시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사격이었다.
“제로콜이 이겼으니 이번 대회에서는 제로콜의 순위가 위인 걸로 하지.”
“다시 해! 다시! 이거 완전 개 운빨···!”
“운도 실력이지. 더 할 말 있나? 일구이언은 견부지자라는 말이 있지.”
말을 이어나가던 정유채가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 이거 실화냐 ㅋㅋㅋㅋㅋ
> 여기서 크리티컬이 터지네
> 다 도망쳐!! 제로콜이 총을 맞췄다!! 세계에 종말이 도래했다!!!!
제로콜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에 있는 권총을 바라보고 있었다.
총을 맞추고 가장 놀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내가··· 총을 맞췄다고?”
눈 앞을 걸어다니는 코끼리도 못 맞추던 자신이 저 멀리에 있던 정유채의 머리를 맞췄다.
불가사의하기까지 한 일이다.
‘운이라고?’
옆에서 본 사람이라면 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쏜 사람은 안다. 자신이 정말로 운으로 맞힌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조준해서 맞힌 것인지.
‘운이··· 아니었어.’
제로콜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손에 남아있는 감각은 방금 자신의 사격이 운이 아니라 정말로 실력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다시 하라면 재현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붙잡아 볼만한 것이 생겼다.
자신의 실력은 평생 제자리가 아닌 것이다.
제로콜은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눈이 축축한데.”
“아. 뭐, 화생방 알약이라도 터졌나 봐요.”
> 총 맞혔다고 울어 ㅋㅋㅋㅋㅋㅋㅋ
> 에베베 울보래요 ㅋㅋㅋㅋㅋ
“아니. 총 맞혔다고 우는 게 아니고. 캡슐 문제인가. 아무튼, 뭔가 문제가 있어요.”
“캡슐 탓 하려고 들지 말고, 다음 경기 준비하도록.”
뒤이어 벌어진 제로콜과 풀창고의 경기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초 근접거리에서 벌어진 아이템 경합에서 제로콜이 샷건을 먼저 주워든 것이다.
피할 수 없을 정도의 거리에서 자신을 향하는 더블배럴 샷건을 바라보며 풀창고는 중얼거렸다.
“진짜 더러운 운빨겜.”
콰아아앙! 더블배럴 샷건이 불을 뿜었다.
[제로콜님이 풀창고를 처치하셨습니다!]
이전 번이 실력에 의한 승부였다면 이번은 확실히 운이 좋았다.
> 제로콜 오늘 운 뭐야 ㅋㅋㅋㅋ
> 야 다 때려치고 로또 사러 가자
물론 모든 사람들은 두 번 다 제로콜이 로또라도 맞은 것 같은 운으로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두 명. 제로콜과 BJ천마만은 알고 있었다.
첫 번째의 ‘운’이, 결코 운이 아니었음을.
“내가 제로콜에게 지다니···.”
“꿈이겠지? 이거. 꿈 맞지?”
바닥에 주저앉은 채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풀창고와 정유채의 멘탈은 상당 부분 터진 상태였다.
뭔가 간단한 조언이라도 해 주려고 했는데 저 상태여서는 조언이 들어먹힐 가능성이 희미했다.
“234위 결정은 된 모양이군. 나랑 1위 결정전은 할 생각 있나?”
“···굳이 할 필요 있을까요?”
제로콜의 거부에 단천의 눈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혈귀단 단원이라면 1위에게 망설임 없이 싸움을 걸어야 하는 법일진데.
혈귀단 단원으로서의 기본이 안 돼 있다.
‘뭐, 기세를 꺾는 것보다는 지금 그대로 놔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단천은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켰다.
제로콜은 혈귀단 단원으로 들어오겠다는 말을 하기는커녕 혈귀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아무튼 제로콜은 혈귀단원 1호인 것이다.
단천의 마음 속에서 그렇게 정했으니까.
“그럼. 실력 테스트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다음에는 대회에서 보는 걸로.”
“수고하셨습니다!”
단천이 방송을 종료했다. 뒤를 이어서 제로콜도 방송을 종료했다.
“내가··· 스톤즈한테 졌다고?”
“꿈이 왜 안 깨는 거야···.”
하지만 풀창고와 정유채의 멘탈이 돌아오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유채화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제로콜밑에풀창고밑에정유챜ㅋㅋㅋ]
[풀존못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어떻겤ㅋㅋ 사람이름이 콜밑풀ㅋㅋㅋㅋ]
물론 그만큼 수금각이 달달하게 서 있기는 했다. 아마 저 상태로 충분히 후원을 받고 나면 알아서 일어날 것이다.
보통 충분히 많은 돈은 절망한 사람을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법이니까.
단천은 둘을 그냥 놔 두기로 했다.
그렇게 단천이 둘을 놔 두고 VR접속을 종료하려는데, 단천의 팔을 제로콜이 붙잡았다.
“천마 형. 잠시 VR챗 할 시간 돼요?”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뭔가 바쁜 일 있는 거에요?”
“누나가 오기 전에 하수오주를 한 잔 마셔야 한다.”
“난 또. 뭔가 중요한 일 있는 줄 알았네. 잠깐 이야기하면 되니까 VR챗 와 주세요.”
하루 일과를 마치는 중대차한 일을 별 것 아닌 것 취급하는 것은 기분나빴지만, 단천은 순순히 VR챗에 접속했다.
“빨리 말하도록. 누나가 오늘은 일찍 퇴근을 하는 날이다.”
“아까 그거. 제 실력 맞죠?”
“맞다. 네 실력이다.”
“진짜 이게 되네. ···근데 창고 형이랑 붙었을 때는··· 좀 이상했어요. 원래대로 돌아간 느낌?”
풀창고와 제로콜이 붙었을 때에 제로콜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는 상태였다. 실제로 에임도 쓰레기였다.
전면부 거의 전부를 커버할 수 있는 샷건인데도 아슬아슬하게 풀창고를 죽일 수 있었을 정도.
물론 이전의 제로콜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몸으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제로콜의 몸은 무아지경에서 움직이는 법에 대해서 기억을 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제로콜의 게임 실력은 점점 나아질 것이다.
아마 이 상태를 쭉 유지한다면 두어달 내로 의식을 하는 상태에서의 실력도 충분히 올라갈 터.
하지만 돈낳대까지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무아지경을 의식과 동화시키기에는 부족한 상황.
“그··· 아까 정유채 맞췄을 때에는 뭐랄까. 아무 생각 없이 쐈는데, 뭔가 다른 힘이 저를 조종하듯이 완벽하게 쐈거든요. 근데 다시 해 보려니까 안 돼요.”
“걱정하지 마라. 방법이 다 있으니까.”
“역시. 천마 형이네요. 방법이 있을 줄 알았어요!”
제로콜이 환하게 웃었다. 그 앞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에 지을 수 있는, 눈부시게 환한 미소였다.
***
돈낳대 대회 당일.
대회 시작까지 채 30분도 남지 않았는데도 풀창고 크루의 VR챗에 들어와 있는 것은 단 두 명.
풀창고와 정유채 뿐이었다.
“왜 이렇게 안 와!”
“천마 형도 제로콜도 연락이 안 되네.”
> 런한거 아니냐?
> 전화 해 봐
“천마 형 전화는 꺼져 있어요. 제로콜은 연결은 되는데 이상한 괴성이랑 신음소리만 들리고.”
> 신음소리? 이거 19금으로 바꿔야되는거 아님?
> 바꿔야되는 건 니 뇌다;
> 병원에 가시던지 숨을 5분만 참아 주세요;;
그렇게 걱정이 하늘처럼 쌓여가던 중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BJ천마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제로콜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안 늦어서 다행이군.”
“뭘 하다 이제야 와!”
정유채가 제로콜에게 화를 냈지만 제로콜의 입에서는 사과가 나오지 않았다.
“으···어···으···.”
사과 대신 제로콜의 입에서 터져나온 것은 기괴한 신음소리였다.
“뭐, 뭐야! 괜찮아?”
“으어어···.”
“괜찮다. 조금 격렬한 운동을 하고 왔을 뿐이니. 걱정하지 마라.”
> 안 괜찮은 것 같은데.
> 대체 운동을 얼마나 한 거야 ㅋㅋㅋㅋ
> 대회 직전에 운동을 하면 어떡함;;;
제로콜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반쯤 나가있는 동공,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는 의식 상태, 기묘할 정도로 혈색은 좋기는 했지만 딱 그뿐이다.
“걱정 마라. 운동은 죽지 않을 정도로 했으니. 혈색이 좋은 건 술을 먹어서 그렇다.”
> 안 죽으면 되는 게 아니잖아
> 아니 대회 직전이라고 이사람아 ㅋㅋㅋ
> 사실상 혈색 좋은 좀비ㅋㅋㅋㅋㅋ
“아니 형···. 아무리 그래도 술은···.”
“걱정 마라. 고작 한 잔만 먹었을 뿐이니까. 그렇지?”
“으어어···어어···.”
제로콜이 동의한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남에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정신머리는 남아 있는 모양이다.
화를 내려던 풀창고가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여기서 화를 냈다가는 그나마 없는 팀워크가 더 박살날 터.
대회가 곧이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 왈가왈부를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풀창고에게는 있었다.
화를 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회가 끝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생각이 있는 걸지도 모르지. 천마 형이 진짜 생각 없이 일 벌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컨디션은 괜찮나?”
“으어. 어어.”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돈낳대 대회 로비는 스트리머들로 붐비고 있었다.
대회에 참여한 스트리머들은 대부분 대형 네임드들이다. 심심찮게 초대형 스트리머들도 꽤 있다.
그런만큼 수없이 많은 스토리와 루머들이 오가는 것이 보통의 돈낳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BJ천마 하는 거 봤냐?”
“와. 진짜 클래스 자체가 다르던데.”
“피지컬이 선을 한참 넘어. 어떻게 그렇게 게임을 하지.”
[풀창고 크루 우승은 거의 확정 아니냐?]
[우승후보권이긴 한데 설레발 ㄴㄴ]
[팀플 되는 크루들한테 점사 당하면 지가 천마라도 뭐 어쩔 건데 ㅋㅋㅋ]
스트리머간의 대화도, 커뮤티니의 글도, 채팅창도. 온통 BJ천마의 믿을 수 없는 실력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사실상 대회의 가장 커다란 축이 처음 대회를 참가한 스트리머에게 몰려 있는 셈.
대회를 기다리고 있는 스트리머. 탐바우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 뭐 천마라는 사람. 대단하긴 하던데, 그렇다고 해서 못 이길 정도는 아니야. 지도 사람이잖아?”
“그렇죠. 무기도 광선검밖에 못 쓰고.”
“광선검은 만나면 바로 폐기하는 거. 맞지?”
> 바로 폐기해야지 ㅋㅋㅋㅋ
> 광선검만 안 쥐여 주면 이길수 있다!
탐바우의 스쿼드가 호기롭게 말했다. 실제로 탐바우를 비롯한 스트리머들은 내부적으로 BJ천마를 상대하기 위한 연합전선을 암암리에 짜 놓은 상태다.
물론 실제로 ‘BJ천마를 상대로 싸울 연합 전선을 구축하자!’ 그런 말은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스트리머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강력한 우승후보부터 함께 제거하자. 경쟁은 그 다음!’
이를테면 일본과 한국이 싸우다가도 외계인이 오면 힘을 합쳐 싸우는 것과 비슷했다.
스트리머들 내부적으로 풀창고 크루를 어떻게 공략할지에 대한 메뉴얼도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결정적으로. 돈낳대는 혼자 잘 한다고 우승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란 거지.”
‘돈낳대’의 실력 편차는 매우 크다. 챌린저에서부터 스톤즈까지 함께 존재하는 것이 바로 돈낳대의 선수 풀이다.
필연적으로 게임 밸런스도 그렇게까지 좋은 편이 아니다. 이런 대회에서 원래의 룰 대로 진행했다가는 해 먹는 한 명이 끝까지 살아남아 우승을 하는 그림이 자주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까닭에 돈낳대의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은 원래의 랭크 방식과 다소 다르다.
돈낳대의 등수 산정 방식은 점수제.
1위부터 100위까지 살아남은 사람의 등수에 따라 점수가 차등 적용되는 방식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1명이 혼자서 모든 사람을 죽여서 1위를 하더라도 나머지 3명이 바닥에 깔린다면 우승은 커녕 중위권을 겨우 하는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이 발생해서 BJ천마를 죽이지 못하더라도 다른 팀원들을 빠르게 죽일 수 있다면 BJ천마의 우승을 막을 수 있다. 이거죠.”
> 오오
> 확실히 다른 팀원들은 만만하긴 하지
> ㅇㅈㅇㅈ
BJ천마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다른 팀원들까지 무적인 건 아니다.
그 까닭에 실제로 풀창고 크루가 우승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스트리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집중 견제를 받으면 우승을 하는게 거의 불가능해지는 구조가 바로 돈낳대였으니까.
“그보다 풀창고 크루는 왜 아직도 안 오냐?”
“곧 온다고 합니다.”
[풀창고 크루가 입장했습니다.]
풀창고 크루가 입장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지막 스쿼드인 풀창고 크루가 들어오자마자 캐스터의 우렁찬 목소리가 홀에 울려퍼졌다.
[자! 방금 풀창고 크루의 입장이 완료됐습니다! 대회 시작은 3분 뒤입니다! 팀들은 마지막 준비를 완료해 주세요!]
[3:00]
3분이라는 카운터가 떠오른 순간부터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홀에 감돌기 시작했다.
숨 쉬는 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마저도 들릴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누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주겠다는 듯한 침묵.
글자 그대로 폭풍전야.
“···으어어.”
‘···근데 어디선가 좀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스트리머들의 시선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소리가 나는 곳은 풀창고 크루의 제로콜이었다.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옅은 신음을 내지르고 있는 제로콜.
‘무슨 마라톤이라도 뛰고 온 건가?’
‘술 취했나?’
‘누구한테 학대라도 당한 건가?’
‘···그럴 리가 없겠지.’
‘그럴 리가.’
‘나도 생각이 참 과하다니까.’
수없이 많은 추측들이 스트리머들의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렇게 소소한 의문들을 뒤로 한 채.
[게임이 시작됩니다.]
대망의 돈낳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