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마지막 점검 (1)
“1대 1?”
“그래. 1대 1.”
“레일 서바이버는 다대 다 싸움이잖아. 다대 다 연습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셋은 지금까지 꽤 오래 손발을 맞춰 왔지.”
“그건 그렇지만.”
“그러면 합격술을 연마할 필요는 없을 거다. 애초에 합격술은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훈련이기도 하고.”
단천의 말에 풀창고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합격술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까닭이었다.
맥락을 생각해 본다면 BJ천마가 방금 말한 ‘합격술’이라는 건. 아마 팀플레이를 말하는 것이리라.
“천마 형은 우리랑 손발 맞출 필요 없어? 천마 형도 우리랑 한 판밖에 안 해 봤잖아.”
“나는 세상 천지 어디에 가져다 놔도 합격술에 녹아들 수 있다. 그러니 연습도 필요없지. 실제로 지난 번에도 완벽했고.”
‘딱히 지난 번에 팀플을 한 건 아니지 않나?’
팀플레이라기보다는 혼자서 적을 다 도살해 버리기만 했던 것 같은데.
> 아무튼 적 잘 죽이면 팀플 아님?
> 말대로면 여포랑 항우도 팀플의 귀재였음
> 혼자서 캐리하면 그게 팀플이긴 하지 ㅋㅋㅋㅋ
사실 웬만한 팀플레이보다 단천이 따로 움직이는 게 더 도움이 되기는 했었다.
실제로도 BJ천마와 다른 세 명의 실력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괜히 팀플을 맞춘다면서 함께 움직이는 것은 팀의 전력을 깎아먹을 뿐.
오히려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이득인 것이다.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납득했다면 게임을 준비하도록 하지.”
[게임을 생성합니다.]
풀창고가 부활, 데미지 확인, 무기 생성 등의 실험을 할 수 있는 사설 게임을 만들었다.
“꽤 편한 모드로군.”
“아무래도 게임 편의성 개선이 많이 됐으니까. 요새는 다 이런 모드 지원해 줘.”
현대의 게임은 게임의 요소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실험하는 경우도 잦다. 총을 어디에 맞아야 전투불능이 되는가, 각 지역의 무기 리젠율은 어떠한가, 어떤 곳은 총알이 관통되고 어떤 곳은 관통되지 않는가 등등.
게임 안에는 무수한 종류의 실험할 요소들이 있다. 이런 실험들을 하기 위해서 매번 게임을 새로 파는 것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다.
그런 까닭에 게임사에서도 이런 실험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모드가 게임 안에 자체적으로 제공되어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요약하자면 논검이나 비무 모드라고 할 수 있군.’
논검을 눈으로 보면서도 할 수 있다니. 21세기도 마냥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가장 먼저 붙어볼 1:1은 풀창고와 정유채.”
“네엡.”
“우리가 적으로 싸워보는 건 두 번째인가?”
정유채와 풀창고는 같은 크루의 일원으로서 같은 팀으로만 게임을 많이 해 온 사이였다. 적으로 만날 때가 없는 것은 아니긴 했지만 FPS게임에서 적이 되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우연히 둘이 랭크에서 마주쳤을 때다. 정유채의 점수가 저점, 그리고 풀창고의 점수가 고점이던 때였다.
“첫 번째는 오빠 다이아 승급전이었지?”
“그 때는 내가 이겼었지.”
“나 잡는다고 열내다가 승급은 떨어졌잖아. 이긴 게 아니지.”
“네 다음 패배자.”
“플딱딱. 플딱.”
“내가 티어가 플래티넘이지 실력이 플래티넘은 아니거든? 내가 오늘 서열정리 제대로 한다.”
“풉. 플딱이가 서열정리는.”
둘의 눈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둘의 신경전이 살짝 거칠어진다. 거칠어진 신경전에 제로콜이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말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저대로 두면 서로 감정 상할 것 같은데.”
“왜?”
“같은 팀이니까요.”
“같은 팀끼리 싸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 이거맞지
> 나도 학교에서 팀플할 때 맨날 싸웠음
원래 무인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다.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은 스트리머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기분과 실제 느끼는 기분은 다르다. 저렇게 보여도 방송 끝나면 화기애애하게 서로 대화를 나눌 것이다.
빠득빠득.
음. 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머리에 실핏줄도 돋아나 있고.
프로 스트리머라 그런지 열 받은 연기를 하는 것도 수준급이군.
누가 보면 진짜로 감정 상한 줄 알겠다.
“룰은 어떻게?”
“단판으로 하지.”
“단판으로 하면 너무 운이 많이 개입되지 않아?”
“원래 모든 승부는 운이 개입한다. 그걸 뚫는 게 실력이지.”
“인정.”
“나도 인정이에요.”
“그리고 그냥 게임만 하면 조금 아쉬우니까 뭔가 걸까 하는데. 괜찮나?”
“그거 좋지.”
둘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이번 승부에서 걸 것은··· ‘명령권’으로 하지.”
“명령권?”
“대회를 대비해서 팀워크는 크게 다지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계는 필요하다.”
“그러니 이 승부에서 이긴 사람이 패배자에게 절대적인 명령권을 가지게 되는 거군.”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게임 할 때마다 좋은 총 안 내놓는거 엄청 거슬렸는데.”
“조금만 불리해져도 존버하자고 쫑알거리는 말 안 들어도 되겠다.”
빠지직!
“둘이 저렇게 승부욕이 강한 캐릭터들이었나?”
제로콜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정유채나 풀창고나 게임을 잘 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즐겜 유저에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진심으로 상대를 이겨먹으로 하는 두 명의 표정.
의문을 가지는 제로콜을 향해 단천이 답했다.
“원래 해 볼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상대로는 누구나 승부욕이 불붙게 돼 있다.”
풀창고와 정유채의 티어는 이전에는 다이아와 플래티넘으로 꽤 차이가 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풀창고는 실력이 늘어 다이아 승급전까지 도착해 있는 상태.
지난 주의 정유채와도 티어 상으로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러니 풀창고 입장에서는 정유채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구나. 창고 형 입장은 알겠고, 유채는요?”
“정유채는 그랜드마스터 승급전까지 도착했다. 유채 입장에서는 이제 승급전 하는 다딱이가 와서 덤비는데 기가 차지.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도발에 화가 나는 거다.”
“오.”
제로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확실히, 둘이 서로에게 해 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게 일리가 있다.
단판이라는 것도 교묘하다. 티어가 상대적으로 낮은 풀창고 입장에서는 운이 있는 단판전이니 더더욱 게임을 해 볼만하다고 생각할 터.
거기에 걸려 있는 것은 이번 대회에서의 절대적인 ‘명령권’.
둘이 서로에게 필사적으로 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천마 형은 이걸 다 계산하고 싸움 붙인 거에요?”
“물론이다. 본좌는 남 싸움 붙이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니까.”
‘자랑 아닌 것 같은데.’
> 학교 다닐때 보면 기가 막히게 싸움에 불 지피는 애들 있었지
> 떽! 천마님이 지금 그런 이간질같은 얍삽한 짓을 하셨단 말이냐!
> 옳소! 이간질이 아니라 반간지계라고 하거라!
> 반간지계가 이간질 아님?(진짜 모름)
단천은 둘의 싸움이 잘 보이는 자리에 가 걸터앉았다.
“제로콜 너도 목 좋은 곳에 자리잡고 앉도록.”
“저는 그냥 서서 볼게요.”
“그러던가.”
걸터앉아 둘의 싸움을 기다리는 단천의 표정은 꽤 밝았다.
“형은 둘이 싸우는 게 재밌나 봐요.”
“세상에서 불구경보다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니까.”
“그럼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는 건가요?”
“어리석은 소리를. 직접 싸우는게 천하제일. 그 다음이 싸움 구경. 그 다음이 불구경 순인 것이 당연하잖느냐.”
“······.”
> 이건 제로콜이 잘못했다
> 물어볼 걸 물어볼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그럼 준비는 다 됐나?”
“물론!”
“언제든지!”
“그럼. 비무를 시작하지.”
[플레이어 ‘풀창고’와 ‘정유채’의 무적 모드가 해제됩니다!]
둘의 무적이 해제됐다는 메시지가 뜨자마자 둘은 총알처럼 보급품들을 향해 튀어나갔다.
먼저 총을 얻은 것은 풀창고 쪽이었다. 그것도 꽤 좋은 등급의 자동소총이다.
“먹어라!”
타다당! 총 소리가 나자마자 정유채가 몸을 숨겼다. 풀창고의 시야에서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는 지역이다.
> 위치 안 보지 않았음?
> 총 소리만으로 바로 위치 알아채내 ㄷㄷㄷ;
> 확실히 실력이 엄청 늘기는 했어
정유채의 실력 향상에 놀라는 정유채의 시청자들. 풀창고의 시청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 거리 엄청 멀었는데 두발 정도 맞춘듯??
> 에임 무엇 ㄷㄷㄷㄷ
> 상대 못 잡았는데도 하나도 안 당황하네;
> 문명화 지린다. 좀만 있으면 바지도 입고 다닐듯?
> 그건 아니고
레일 서바이버는 신경써야 되는 것이 매우 많은 게임이다. 그런 까닭에 그냥 랭크 게임으로만 봐서는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반면 지금은 신경쓸 것이 매우 적은 1:1 상황.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단순히 티어가 아닌 둘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 입장에서도 보기 편하고.’
단천은 둘의 플레이를 여유롭게 바라봤다. 확실히 조언을 헛으로 듣지는 않았는지 실력이 꽤 나아져 있었다.
물론 무림인이 이 정도 성과였다면 절벽에서 밀어 버렸겠지만. 지금 둘은 아직까지는 일반인인 상황.
‘이 정도면 쓸만은 하겠군.’
그 사이에 정유채도 총을 얻었다. 이어지는 총격전. 이 이후부터는 얼마나 상대방을 잘 맞히느냐의 싸움이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의 영역에 있는 승부.
승부는 금방 났다.
“끼요오오오!”
팬티만 달랑 입은 풀창고의 포효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아슬아슬한 승부였지만 더 빨리 총을 얻어서 두 발이나 먼저 맞혔던 것이 주효했다.
“···저런 변태에게 지다니.”
다시 부활해서 일어난 정유채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자. 이걸로 일단 두 명의 위계는 정해졌군.”
“일단이라뇨?”
“순위를 정해야지. 이제 제로콜과 정유채. 둘이 비무를 할 테니 준비하도록.”
“제로콜이랑도 해요? 패널티는 뭐죠? 체력 50%? 이동속도 50%? 둘 다?”
“노 패널티로.”
“···진심이에요. 오빠?”
자존심이 상했는지 정유채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 제가 진짜 너무 운 없어서 운빨 원툴인 풀창고 오빠한테 지기는 했는데. 그래도 저 곧 그랜드마스터거든요? 게임 잘 하거든요?”
“그랜드마스터면 게임 못 하는 거 아닌가?”
“······.”
단천의 순수하기까지 한 질문에 정유채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잠시 말을 잃었던 정유채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BJ천마 입장에서는 저 하늘 꼭대기에서 보고 있으니 제로콜과 자신의 실력차가 어느 정도나 나는지 모를만도 했다.
“알았어요. 한 판 해 주지 뭐. 대신 이거 이기면 풀창고 오빠한테 설욕할 기회 주세요.”
“마음대로.”
“좋아.”
“그··· 근데 저 진짜 해요?”
제로콜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정유채와 제로콜 자신 사이의 티어 차이는 수십 단계가 나는 탓이다.
“저. 총도 1주일간 안 쥐었는데. 하다 못해 몇 번 연습이라도···.”
“경기 준비하도록.”
“아니, 연습 한 판만···!”
“5초 뒤에 시작하도록 하지.”
제로콜의 부탁은 그대로 묵살당했다. 제로콜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뭔가 조언이라도 하나 해 주면 안 돼요?”
“조언?”
“이길 수 있는 조언이요.”
제로콜이 간절한 얼굴로 단천에게 부탁했다. 단천은 턱을 쓰다듬더니.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어떤 총이건 쥐고 있는 상태에서, 정유채가 시야에 보인다면 망설임 없이 쏘도록.”
“그게 조언이에요?”
> 이딴 게 조언이냐 ㅋㅋㅋㅋ
> 제로콜이 뭐 잘못함? ㅋㅋㅋㅋㅋ
> ‘게임 하지 마라’에 이은 ‘눈에 보이면 쏴라’ 조언 ㅋㅋㅋㅋ
> 제로콜아 뭔가 천마님한테 잘못한 거 없는지 생각해보자
> 혹시 닭다리라도 뺏어먹었니?
BJ천마의 말도 안 되는 조언에 멍하니 서 있던 제로콜은 한참 뒤에야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도 모르겠다. 알았어요. 형 말대로 해 볼게요.”
어차피 자신이 못 해도 욕 먹는건 자신이 아닌 BJ천마 아니던가. 그러니 그냥 별 생각 없이 하면 된다. 별 생각 없이.
‘될 대로 되라지.’
“비무 시작.”
[플레이어 ‘제로콜’과 ‘정유채’의 무적 모드가 해제됩니다!]
제로콜은 무적이 해제되자마자 자신의 뒤에 있는 보급박스로 달려갔다.
+
【데저트 폭스】
+
박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데저트 폭스, 권총이었다. 안 그래도 명중률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는 권총.
> 그래도 총은 나왔네
> 나오면 뭐함 거리 멀어서 쏘지도 못하는데
> 바로 다음 보급품으로 가자
다음 보급품으로 움직이자는 채근. 제로콜은 저 멀리 보이는 정유채를 향해 권총을 조준했다.
천마가 해 준 조언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뭐하냐! 그게 맞겠냐?”
정유채가 제로콜을 도발했다. 제로콜이 총을 먹었는데도 피할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럴만도 했다. 지금 정유채와 제로콜의 거리는 50m가 넘어간다. 권총으로 맞히는 것은 어려운 거리. 거기에 총을 쓰는 사람은 그 제로콜인 것이다.
총이 맞을 리가 없다.
정유채도, 시청자도, 심지어 제로콜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제로콜은 아무 생각 없이 총을 들어올리고, 아무 생각 없이 정유채를 조준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단 한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어?”
“어?”
> 어????
[제로콜님이 정유채를 처치하셨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킬 로그가 제로콜의 눈 앞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