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특훈 (2)
“···가볍게가··· 뭔··· 모르···?”
제로콜은 바닥에 엎어진 채 중얼거렸다. 숨을 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가볍다고 말한 단천의 아침 운동은 거의 2시간동안 이어졌다.
그냥 2시간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강도였다.
거의 전속력을 유지한 채 뜀뛰기를 하고, 한참을 움직여야만 쉬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 쉬는 시간조차 요상한 체조를 해야 했다.
못 하겠다고 바닥에 드러눕는 것도 불가능했다. 단천이 건강혈인지 뭔지를 찍어눌기 때문이다. 가만히 손가락만 가져다 대는 것 같은데도 극한의 고통을 만들어내는 건 신기할 정도였다.
더욱 신기한 건, 그 건강혈을 맞고 나면 몸이 다시 쌩쌩해졌다는 점이다. 정말로 못 뛰는 몸 상태면 어떻게든 버텨 보겠는데. 실제로 효과가 있으니 미칠 노릇.
“너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그만큼 너를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고통···없···그냥···.”
단천은 그런 고통 없이 그냥 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제로콜을 바라봤다. 수분을 몇 번 보충을 해 줬는데도 땀으로 온 몸이 젖어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더 운동을 했다가는 실신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실신한 사람을 깨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강제로 운기조식을 시켜 몸을 원 상태로 복구시켜 주는 것은 단천 입장에서도 꽤 귀찮은 일.
게다가 첫 날이고 하니 몸이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의 가벼운 트레이닝이 필요하기도 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넘침은 모자람만 못한 것.
두 시간 정도 전력질주를 했다면 운동도 하지 않던 사람의 첫 날 운동 치고는 적당할 것이다.
“이제 내 운동을 하고 올 테니 좀 쉬고 있도록.”
“···이게 운동 전부 아니었나요?”
“그럴 리가.”
제로콜은 단천을 경외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단천은 자신과 같이 옆에서 함께 뛰었다. 그러고서 하는 말이. 뭐? 이제 자신 운동을 하겠다고?
그러고 보니 몸에 땀도 거의 안 나고 있다. 여러 모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형 운동은 뭐 할건데요?”
“오늘은 절벽을 탈까 싶다.”
“농담도.”
가끔 단천을 보면 농담과 진담이 구별되지 않을 때가 있다. 설마 진짜 절벽을 타러 가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저 인간이라면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솟아오른다.
제로콜은 바닥에 누운 채 단천이 멀찍이 나가는 단천을 바라봤다.
그렇게 삼십여분 쯤 뒤. 제로콜은 돌아온 단천과 만날 수 있었다.
약간의 땀이 나는 것을 봐서는 달리는 것보다 더 격렬한 운동을 한 것은 분명했다. 손과 몸에 흙이 좀 묻어 있지만··· 진짜 절벽을 탄 것은 아닐 테고.
“아무튼. 오늘 신체훈련은 여기서 끝이죠?”
“일단은. 좀 더 근육이 붙으면 달리는 데도 익숙해 질 거다.”
“달리는 데 익숙해지면 그 다음은 뭘 하나요?”
“절벽 오르기.”
“···농담도. 뭐. 아무튼, 이젠 가 봐도 되죠?”
“아니. 함께 가 볼 데가 있다.”
“함께 가 볼 데?”
오늘분의 신체단련은 끝났고. 실력을 확인해 볼 때였다.
***
“오. 캡슐방이네요. 오랜만이다.”
“와 본 적 있나?”
“그럼요. 나오자마자부터 꽤 오래 신세 졌었죠. 아무래도 캡슐 자체가 꽤 비싼 물건이다 보니까. 처음 나왔을 때에는 줄 서서 했어야 됐다니까요.”
단천은 예전에 만들어 뒀던 아이디를 사용해 캡슐을 예약했다. 자신의 캡슐을 예약할 필요는 없었다. 확인할 것은 제로콜의 실력이었으니까.
“오! 오랜만이시네요! BJ천마님!”
캡슐방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아는 체를 했다. 아마 단천이 처음 캡슐방에 왔었을 때의 알바생인 모양이었다.
“반갑습니다.”
“어떻게 아는 분이세요?”
“아. 제로콜님도 계시구나. 천마님의 전설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 캡슐방이거든요.”
알바생이 모니터를 돌려 영상을 보여 줬다. 영상 안에 나오는 것은 단천이 처음 플레이했던 리드미컬 세이버 영상이다.
화려하게 그지없는 모습으로 날아오는 노트들을 모조리 베어 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로콜은 연신 탄성을 터트렸다.
“이걸로 천마님이 최신형 VR캡슐을 타 가셨죠.”
“와. 방송하기 전에도 게임 엄청 잘 하셨네요. 연습 좀 하고 오신 건가요?”
“아니. VR게임 자체가 저게 처음이었다.”
“···진짜요?”
“그래. 첫 부분을 보면 다소 엉성하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지.”
‘어디가?’
단천의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바라보며 제로콜은 눈을 깜박였다. 단천의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진짜 이게 처음이었군요.”
“그래.”
“재능이란 건 대단하네요.”
제로콜은 쓰게 웃었다. 세상 모든 것들에 재능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 정도는 제로콜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재능이 없다는 것도 질릴 정도로 잘 알았다.
그렇기에 정말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임도 하는 만큼 실력이 는다면 좋을 텐데요. 뭔가를 열심히 하면 반드시 얻는 게 있다면 좋을 텐데.”
“무엇이건 하는 만큼 얻는 게 있다.”
“저는 안 그렇던데요.”
“그건 지켜 봐야 알 일이지.”
단천은 제로콜을 게임 캡슐 안에 밀어넣었다.
“그, 근데 지금 게임 해도 돼요? 몸이 완전 녹초가 됐는데. 솔직히 지금 기어서 다니고 싶을 지경이라고요. 평소 실력이 나오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요.”
“평소 실력을 보려는 게 아니니까 괜찮다. 그리고 훈련 마치고 집에 기어 가는 건 평범한 일이다.”
“그게 평범한 일이라고요?”
“평범하지.”
실제로 혈귀단 숙소는 기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진법이 펼쳐져 있다는 괴담까지 돌 지경이었다.
아쉽게도 그런 진법은 없었지만.
“그보다 무슨 게임을 해요? 레일 서바이버는 못 하잖아요. 총 게임 빼면 할만한 게 없는데?”
“리드미컬 세이버를 해 보도록.”
“저 그거 한 판도 안 해 봤는데요.”
단천은 제로콜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캡슐방의 문을 닫아버렸다.
“해 본 게임도 못 하는데. 안 해 본 게임을 해서 뭐 하냐고요.”
제로콜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축축 늘어진다. 머릿속에는 자고 싶다는 생각과 힘들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냥. 대충 한 판 하고 가서 쉬자.”
아무리 단천이라고 해도 그 이상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정 안 되면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있다. 지금 여기는 시가지니까 112에 신고하면 경찰도 빠르게 찾아와 줄 테니까.
“리드미컬 세이버 실행.”
[리드미컬 세이버를 실행합니다.]
제로콜은 검을 쥐어올렸다. 리드미컬 세이버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해야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검을 쥐는 자세, 움직이는 자세, 언제 검을 어떻게 휘둘러야 자세를 유지하기도 좋은지도.
하지만 지금 제로콜의 머릿속에는.
‘알 바냐.’
집에 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는 제로콜을 향해. 노트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서걱!
첫 번째 날아오는 노트를 제로콜의 검이 베어냈다. 그 다음, 그 다음의 노트들도 연속해서 제로콜의 검에 썰려 나갔다.
제로콜의 평소 반응 속도와 플레이 실력으로는 상상도 못 할 성과였지만.
‘자고 싶다.’
제로콜 자신은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였다.
***
알바생과 단천은 모니터 룸에서 제로콜의 플레이를 함께 보고 있었다.
“오. 와. 생각보다 잘 하시네요?”
알바생이 감탄을 터트렸다. 모니터 속에서의 제로콜은 날아오는 노트들을 꽤 잘 쳐내고 있었다. 물론 단천의 플레이만큼은 못하지만 절대 초보자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방송으로 봤을 때는 엄청 못하던데. 역시 컨셉이었나 봐요?”
“컨셉이 아니라 진짜 실력이었습니다.”
“근데 지금 리드미컬 세이버는 엄청 잘 하는데요?”
아르바이트의 의문도 당연했다. 제로콜은 수없이 많은 방송 시간을 통해 어떤 게임에서든 파멸적으로 재능이 없다는 걸 여러 차례 보여왔던 상황.
그런데 굳이 리드미컬 세이버만 갑자기 잘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원래라면 말이 되지 않지.’
단천은 영상 안의 제로콜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봤다. 깔끔한 움직임이다.
제로콜의 실력이 늘어난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단천이 줬던 약선단의 효능. 스트리머들은 불규칙한 생활과 좋지 않은 식생활이 패시브로 장착되어 있다.
이런 불규칙한 생활은 신체에 노폐물을 쌓고, 자연스럽게 컨디션의 저하를 불러온다.
약선단은 이런 컨디션 저하를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물건이다. 거기에 의학 지식이 중원에서도 손에 꼽히던 단천의 시술까지 더해졌으니. 당분간 제로콜의 컨디션은 하늘을 찌를 터였다.
물론 운동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가 있기는 하지만 약선단과 단천의 시술은 그 이상의 효능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단천은 제로콜의 몸 안에 있던 약 기운을 제거해 주기까지 했다.
제로콜의 몸에서 충돌하고 있던 약의 기운을 단천이 제거하면서 제로콜의 움직임을 방해하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것.
‘신체 능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지.’
물론 VR기기가 신체 능력을 직접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를 사용하는 능력은 VR게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여기까지가 제로콜의 실력이 늘어난 것 중 한 가지 축. 그러니까 신체적 이유다.
신체적 이유를 제외한 나머지 한 가지의 이유는. 마음의 상태다.
단천은 제로콜의 표정을 바라봤다. 언뜻 본다면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달관한 듯한 표정.
‘무아無我에 들었구만.’
제로콜의 문제는 머릿속에 지식만 많다는 것이었다. 뭔가를 할 때마다 오만 가지 잡생각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플레이만을 하는 상황. 하지만 지금의 제로콜은 앞서서의 운동 때문에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무아의 경지에 들기에 최적의 상태.
무아는 단순히 아무 방향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으로 수없이 생각해오고 배워온 ‘지식’들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바로 발현되는 상태가 바로 무아의 경지지.’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행하려면 늦어진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필연적으로 앞뒤가 막히고 허둥대게 된다.
하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 없다. 그저 정신의 깊히 박혀 있는 정보들을 꺼내서 즉각적으로 쓸 뿐.
그리고 제로콜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은 방대하기 그지없다. 그 지식을 꺼내 쓰는 방법을 모를 뿐이지.
“역시. 닮았단 말이야.”
중원에도 저런 인간이 있었다.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지식뿐이라던 조롱을 당했던 무인이자.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이후 천하제이검을 논할 정도로 강해져 제갈세가의 가주의 지위까지 올라간 인간.
학사검學士劍 제갈운.
제갈운 스스로는 제가 스스로 모든 걸 깨친 양 떠들어댔지만 사실 제갈운을 키운 것은 절반쯤은 단천의 공이었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달리기를 시키고, 절벽을 오르게 만들고, 절벽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절벽에서 떨어진 다음 스스로 치료하는 법도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주고.
생각해 보니 단천의 몫이 절반은 확실히 넘는다. 육 할도 넘고, 칠 할도 넘고.
‘···역시 내가 십 할 다 키웠지.’
단천은 제갈운이 들었다면 십 할이 아니라 그와 발음이 거의 똑같은 욕설을 내뱉었을 게 분명하지만 아쉽게도 제갈운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튼, 제갈운이 다 크고 나서는 제갈세가는 여러 모로 심심할 때마다 찾아갈 만한 맛이 나는 곳이 됐다.
그리고 지금, 그런 제갈운의 어릴 때의 맛이 나는 사람이 자신 앞에 있다.
‘요것도 키워 볼 만 하겠군.’
단천의 눈이 제로콜의 움직임에 고정되었다.
부르르.
무아에 빠져 있는 게 분명할 제로콜의 몸이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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