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특훈 (1)
“···삭제요?”
“그래. 레일 서바이버를 삭제해라.”
단천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 형. 아무리 그래도 게임 접으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그러게요. 말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풀창고와 정유채의 반발이 바로 튀어나왔다. 단천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누가 게임을 접으라고 했나?”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요.”
“나는 레일 서바이버를 삭제하라고 했지, 레일 서바이버를 접으라고 하진 않았다.”
> 무슨 개소리여
>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습니다. 뭐 그런 거냐.
채팅창도 함께 술렁였다. 실제로 말을 들은 제로콜도 많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단천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이 중원이었다면 힘으로 찍 소리도 못하게 찍어누른 다음 커리큘럼을 따라오게 하면 되는데. 아쉽게도 21세기는 문명 사회다.
검으로 싸우는 대신 말로 상대를 설득해야 되는 뒤쳐진 사회 같으니라고.
“너희는 지금 제로콜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지?”
“재능?”
“실력?”
“티어?”
“판단력?”
“에임?”
“인생?”
“모든 것?”
“진짜 너무들 하네.”
> 티키타카 지리네
> 티키타카가 아니라 십자포화 아니냐
> 죄다 맞는 말이긴 해 ㅋㅋㅋㅋㅋㅋㅋ
둘의 십자포화에 걸레짝이 된 제로콜이 비틀거렸다.
“모두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아는 게 너무 많다는 거다.”
제로콜은 하나의 게임에 몰두하면 그 게임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조사를 병행한다.
다른 프로와 스트리머들이 하는 게임을 무수히 분석하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심지어 스트리밍을 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계속.
그런 까닭에 제로콜은 레일 서바이버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는 게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가령···. 걸음을 떼는 아이가 달리기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어떨까? 팔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효율적인지, 무게중심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서 뛰기도 전에 다 생각해야 한다면?”
“···달리지도 못하고 자빠지겠죠.”
“바로 그게 문제다.”
할 수 있는 것은 적은데 머리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하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도저도 되지 않는 게 당연한 수순.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레일 서바이버와 떨어지는 게 최선이지.”
그게 단천의 해답이었다. 레일 서바이버를 당분간 하지 않는 것.
레일 서바이버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그게 제로콜의 실력을 확실하게 늘리는 것이다.
“대충 기간은···.”
“최소한 일주일. 한 달 정도는 느긋하게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싶은데, 대회가 그리 많이 남지 않았으니까.”
“···이걸로 되는 거. 맞을까요?”
사실 채팅창도 그렇고, 팀원들도 그렇고, 죄다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말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게 될 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날 믿어라. 내 말만 믿고 따른다면 일주일 뒤면··· 지금의 풀창고 정도 실력은 가지게 될 테니까.”
“아. 형. 나 플래티넘이라니까? 어디 가면 레서 못한다는 말은 안 들어!”
“올려 줄 수 있는 실력의 한계가 고작 플래티넘 정도라서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 숨쉬듯 플래멸시 ON
> 야! 플래티넘도 잘하는 거야!
“그···진짜 게임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늘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다.”
제로콜의 동공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떨렸다. 그간 스톤즈라며 얼마나 멸시를 당해 왔던가.
스트리머로서의 캐릭터성이 게임을 못 하는 것이니 괜찮은 것과 별개로 게임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은 게이머로서의 본능인 것이다.
그런데 게임을 하지 않는 것으로 실력이 늘 수 있다니.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현 랭킹 1위 BJ천마다.
‘무기라고는 광선검밖에 안 쓰고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그냥 피지컬으로 냅다 찍어누르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1위는 1위인 것이다. 어차피 몇천 판을 하고도 실력이 늘지 않았는데 며칠 게임 안 해 보는 정도야 몇 번이건 할 수 있다!
“그럼! 오늘부터 최선을 다해 레일 서바이버를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필사적으로 해 보도록. 쉽지 않겠지만. 되도록 총을 쓰는 VR게임은 모두 피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 이렇게 홀랑 넘어가도 되냐
> 야 ㅋㅋ 게임이 장난이 아니고 게임 쉰다고 실력이 늘겠냐?
> 이게 되겠음? ㅋㅋㅋ
채팅창에서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크게 문제는 없었다. 실제로 일주일 뒤의 제로콜의 실력을 본다면 좋든 싫든 납득할 수밖에 없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도발들에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조금 더 제로콜의 실력을 확실하게 늘려줘서 반신반의하는 인간들의 코를 더욱 짓밟아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제로콜. 혹시 남는 시간 있나?”
“어···사실 시간 좀 많이 남아요. 레일 서바이버 연습하려고 시간 꽤 많이 남겨 놨는데. 그게 다 비어버려서.”
“그럼 하루에 두어 시간. 나랑 같이 훈련하도록 하지.”
“훈련이요?”
“레일 서바이버를 하지는 않을 테지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비밀 훈련이다.”
“그거 하면, 실력 늘어나요?”
“일주일 후면 풀창고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지.”
“하겠습니다.”
제로콜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그 앞에 무슨 지옥이 펼쳐져 있는 줄도 모른 채.
***
“아무리 그래도 새벽부터 나오는 건 좀 무리 아닌가.”
제로콜은 BJ천마가 말한 장소. 그러니까 BJ천마의 집 주변에 도착해 있었다.
원래의 휴방일에 맞춰서 BJ천마도 휴방일을 만들어서 온다고 했으니. 곧 단천도 집 밖으로 나올 것이다.
“···일단 도착하긴 했는데. 게임 훈련을 이런 곳에서 하는 게 맞는 걸까?”
자신이 하는 것은 VR게임이지 운동이 아닌데. 운동복을 차려 입고 오라고 하질 않나.
단천은 여러모로 좀 사짜 느낌이 심하게 난다. 리드미컬 세이버, 다키스트 에이지, 런닝돌, 레일 서바이버로 계속해서 증명을 해 오고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제로콜은 단천이 오라는 말에 딱히 호응하지 않았을 터다.
제로콜이 BJ천마의 행동들에 대해서 가벼운 의문을 품고 있는 동안, 단천이 집 밖으로 걸어나오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단천 형!”
“왔군.”
“여기가 형 집이구나. 혼자 살아요?”
“누나랑 같이. 내 집이 아니라 누나 집이다.”
“그렇구나.”
꽤 낡은 집이다. 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주인인 단천의 누나라는 사람이 꼼꼼하게 관리하는 모양으로 보였다.
“좋은 누나인 모양이네요.”
“그렇지. 갚아야 할 게 많다.”
“그보다. 왜 오라고 한 거에요?”
“일단 여기 앉도록.”
단천이 집 앞에 놓여져 있는 마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앉아요? 왜요?”
“궁금함은 나중에 들어줄 테니 내가 말하는 대로 하도록.”
“알았어요.”
“올라갔으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가부좌가 뭔데요?”
단천의 눈이 찡그려졌다. 요새 애들은 무협지도 전혀 안 읽는 것인가. 살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 상식이 가면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1근이 몇 kg인지, 1리가 몇 미터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세상이 넘쳐나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단천은 설명하는 대신 제로콜의 다리를 꼬아 강제로 가부좌를 틀어 앉혔다.
“이 자세. 엄청 불편한데요.”
“앞으로 자주 해야 되니 익숙해지도록.”
단천은 불평하는 제로콜의 말을 들으며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단천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조그마한 크기의 환약이었다.
“그거 뭐에요?”
“보급용 약선단.”
정확히 말하자면 천년하수오가 담긴 술 몇 방울과 함께 기본 재료를 사용해 빚어낸 약선단이다.
약선단을 들고 있던 단천의 손이 살짝 멈췄다.
‘이걸 주는 게 맞는 걸까.’
보급용 약선단 30알을 빚는 데 자그마치 천년하수오주가 여섯 방울이나 들어갔다.
약선단 하나에 천년하수오주 1/5방울이나 되는 양이 들어간 셈.
그 아찔한 손실에 단천은 눈을 질끈 감았다.
‘···투자라고 생각하자.’
게다가 제로콜은 자신과 함께 핵 논란을 잠재우러 같이 가 준 사이이기도 했다. 제로콜의 실력이 일취월장한다면 시청자들의 호응은 더욱 더 커다랄 터.
시청자 향상에도 좋고 돈낳대의 결과를 위해서도 좋다.
그러니 이 정도 출혈은··· 이 정도 출혈은···.
“천마 형. 왜 약을 반으로 쪼개려고 하는 거에요? 설마 그거 반만 주려는 생각은 아니죠?”
“아니다.”
단천의 손이 슬로우 모션이라도 튼 것처럼 느릿하게 제로콜의 손에 올라갔다.
제로콜은 단천의 구겨진 손을 양 손으로 펴서야 겨우 약선단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먹도록.”
제로콜이 한입에 약선단을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단지은과는 다르게 모범적인 투약자라고 할 수 있었다.
“잘 먹는군.”
“우리 할아버지가 한의사셨거든요. 제가 어릴 적부터 몸이 별로 안 좋아서 이래저래 한약을 많이 먹었죠. 그보다 이거 향 좋네요. 좋은 약인가 봐요?”
“그래. 지금부터 움직이지 마라.”
단천은 제로콜의 목을 잡고 내력을 흘려보냈다. 약선단은 몸을 가볍게 만들고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을 치워 주는 물건. 약선단의 약효에 단천의 내공이 섞여들어가며 제로콜의 몸을 일주했다.
그렇게 내공을 일주시키던 단천의 눈이 살짝 커졌다.
‘몸에 영약의 기운이 꽤 있는데?’
한의사였던 할아버지한테 약을 이래저래 얻었다더니. 영약의 기운이 몸에 다 녹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약의 기운이 너무 많으니 신체 반응이 안 좋지.’
단천은 제로콜의 몸에 있는 영약의 기운을 적당히 회수했다.
그 결과 운행을 하기 전보다 운행을 하고 나서의 단천의 내공은 조금 늘어나기까지 했다.
굳이 따지자면 제로콜에게 준 약선단의 효능보다 약간 더 큰 이득이다.
‘···아니지.’
제로콜에게 약선단을 주지 않았으면 내공 증진이 지금의 두 배였을 테니, 굳이 따지자면 손해였다.
상황에 휩쓸려 하마터면 남한테 퍼 주는 게 이득이라고 착각할 뻔하다니.
단천은 겨우 정신을 바로잡았다.
“뭔가 몸이 기분 좋게 달아오르네요. 몸이 좀 가벼워진 기분도 들고.”
“잘 느껴진다니 다행이군.”
“엄청 신기하네요. 형은 한의학 공부 어디서 하신 거에요?”
“책 읽어서 독학을 했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으러 다니고.”
여기저기서 책들을 찾아보고, 모르는 게 있으면 약선문에 가서 물어보고. 안 가르쳐주면 가르쳐 줄 때까지 끈기 있게 물리력을 동원한 질문도 하고.
이 모든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 지금의 단천이 가지고 있는 의학적 지식인 것이다.
“아무튼 엄청 좋은 약 감사해요. 일 다 끝났으니 이제 가 보면 되는···.”
“어딜 가려고?”
“약 먹이는 게 끝 아니었나요?”
“아니. 이게 시작이다.”
겨우 약선단 좀 먹이고 내공 좀 돌리려고 제로콜을 불렀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이제 뭘 해요?”
“운동.”
“운동이요?”
“약선단의 효능은 신체의 노폐물을 빼 주는 것이다. 운동을 해야만 그 효능이 극대화되지.”
운동을 시켰다간 무슨 일이 날 게 분명한 단지은에게는 운동을 하자는 말도 아직 못 꺼내 봤지만.
제로콜은 상황이 다르다. 스트리머는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유동적인 직업. 거기에 제로콜은 자신의 입으로 하루에 두어 시간을 내어 놓는다고 하기까지 했다.
운동이라는 말에 잠시 흠칫거린 제로콜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건강해지면 그만큼 플레이도 좋아질 거다! 뭐, 그런 말인 거죠? 확실히 가벼운 운동은 플레이에 도움이 되겠죠!”
“맞다. 운동은 가볍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그래요. 가볍게.”
“가.볍.게.”
둘의 ‘가볍게’의 의미가 왜인지 다르게 들렸지만,
주변에 이 사실을 지목해 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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