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55화 (55/212)

12. 시참 (3)

차량을 몰던 정유채가 속력을 줄였다.

“어떻게 하죠?”

앞에서 자신들을 막기 위해 대기하는 인원수가 너무 많다.

“어떻게 하기는. 그대로 직진. 전속력으로.”

“그냥 대기하면서 레드 존 줄어드는 걸 기다리는 게···.”

“그럼 풀창고가 죽는다.”

정유채가 끙 하는 소리를 냈다. BJ천마도 무슨 생각이 있으니 직진하자고 하는 것일 터.

정유채는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았다. 트럭이 화끈한 엔진음을 내며 앞을 향해 돌진했다.

“온다!”

“쏴!”

단천은 트럭 위에 올라갔다. 단천의 손에서 광선검이 불빛을 뿜어냈다.

파바바바박!

여러 번 단천이 보였던 기예, 총알막기가 시전됐다.

“쏴! 우리도 쏴!”

“아, 알았어!”

타다다당! 차 안에 타고 있는 제로콜의 대응사격이 시작됐다.

문제는···.

> 오늘도 한발도 안맞네 ㅋㅋㅋㅋㅋ

> 진짜 볼 때마다 기적의 에임임

> 난 제로콜이 핵 쓴다고 해도 믿을듯; 이 정도 명중률은 핵 아니면 설명이 안 돼

대응사격이 한 발도 적을 맞추지 못했다는 데 있지만.

“야! 움직이지마! 제로콜 사격은 움직이면 더 맞아!”

“그, 그래?”

“그냥 서서 계속 쏴!”

“저 새끼들이···.”

제로콜이 눈물을 흘리거나 말거나, 트럭은 앞으로 계속 질주했다.

트럭이 앞으로 가면 갈수록 쏘아지는 총알의 수가 많아진다.

트럭이 큰 만큼 지켜야 할 범위도 넓다. 트럭에 타고 있는 세 명과 트럭의 엔진까지 총알을 막아내야 했다. 지금 단천의 몸으로는 검 하나로는 모든 범위를 다 커버할 수 없다.

“어쩔 수 없군.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때로는 상황에 맞춰서 움직여야 할 때도 있는 법. 단천은 왼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허리춤에 달려 있는 것은.

또다른 광선검이었다.

지잉!

검이 두 자루면 막아낼 수 있는 공격의 수도 두 배가 된다는 이론은 일반적으로는 개소리다.

한 사람이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법칙을 역행하는 무공또한 세상에는 있다.

한 마음을 둘로 쪼개는 양의심공과, 이 양의심공을 사용하는 쌍수호박이 바로 그것이다.

파바바바박!

단천의 두 손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주변을 베어갈랐다.

검이 두 자루가 되자 차량으로 쏟아지는 총알의 갯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와우.”

“사람 맞나.”

“사람이기 전에, 저게 가능은 한 건지.”

차 안에 있는 세 명은 그저 말도 안 되는 무위를 보며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자 당황한 쪽은 시참 플레이어 쪽이었다.

“와. 미쳤다.”

“역시 천마님이야!”

“너거들 천마 시청자지! 이 새끼들아! 감탄하지 말고 막을 생각을 하라고!”

“솔직히 저 정도 하는데 그냥 죽어 주는게 예의 아닐까?”

“드립치지 말고 막을 생각이나 하라고!”

“수류탄! 수류탄 던져! 있는 대로 다 던져!”

총알로는 더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수십 개의 수류탄이 트럭을 향해 날아왔다.

단천은 날아오는 수류탄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류탄이라. 악수惡手중의 악수로군.”

조금 더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공격을 생각했건만. 하긴, 저들도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은 처음. 그러니 천라지망과 같은 수준의 공격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터다.

“그렇다면 본좌를 상대로 악수를 두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야겠지.”

서걱!

단천의 검이 날아오는 수류탄 중 몇 개를 갈라냈다. 잘려나간 수류탄은 폭발 없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 왜 안 터짐?

> 신관 잘라낸 것 같은데

> 그걸 어케함

> ‘실력’으로

물론 모든 수류탄을 잘라낸 것은 아니다. 신관을 잘라낸 것은 적절한 타이밍에 던져진 수류탄들 뿐이다.

반면 잘못 던져진 수류탄. 즉 수류탄이 터지기까지 시간이 충분한 것들은···.

“되돌려 줘야겠지.”

파바바박! 단천의 발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직전에 보여줬던 무공. 비적유성이다.

단천의 발에 맞은 수류탄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 날아갔다.

“이런 미친─!”

콰과과과광!

거대한 폭발이 길을 막고 있던 바리케이트 너머에서 터져올랐다.

“너희도 수류탄을 던질 때에는 신관이 충분히 타오른 다음에 던지도록. 그러지 않으면 이렇게 역으로 당할 수 있으니까.”

> 오늘도 하등 쓸모없는 팁이네

> 걍 던지셈 어차피 아무도 저렇게 플레이 못함

채팅에서 오늘도 쓸모없는 지식이 늘었다며 자조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는 동안 일행이 타고 있는 차량은 멈춰선 채였다. 이유는 별 게 없었다. 어처구니 없는 무위를 본 정유채가 운전을 하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

“뭐 하나. 빨리 운전해.”

“아. 운전!”

멍하니 방금 일어난 상황을 지켜보던 정유채가 그제서야 다시 앞을 향해 움직였다.

트럭이 바리케이트를 뚫고 시체가 쌓인 곳에 이르렀다.

“힐팩! 힐팩 있어요!”

다행히 풀창고가 죽기 직전에 힐팩을 꽂아넣을 수 있었다.

“와. 아슬아슬했는데 겨우 살았어.”

“장비를 탈취한 다음 남은 잔당을 소탕하도록 하지.”

이런 말도 안 되는 무위를 보여주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을 하는 BJ천마.

뭔가 멋진 플레이를 했다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며 자신을 치켜세우기 마련. 하지만 BJ천마는 이런 자신을 치켜세우는 말 따위는 없었다.

그저 ‘당연히 이 정도는 하는 거니까 자랑할 것도 못 된다’는 투.

“어처구니가 없네요.”

“동의.”

“천마 형 끼고 우승 못하면 그냥 한강 입수나 하러 가자.”

일행과 시청자는 직감했다.

이 시참의 승리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직감은 현실이 되었다.

***

[우승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와. 진짜 승차감이 대통령 전용기 수준이네.”

정유채는 킬 로그를 확인했다. 스쿼드의 총 킬수는 82킬. 그리고 BJ천마의 킬 수는 60킬.

혼자서 절반 이상의 플레이어를 골로 보낸 실로 파멸적인 수준의 캐리였다.

심지어 나머지 22킬도 BJ천마가 상황을 만들어내고 나머지 세 명이 주워담다시피 킬을 먹은 상황이 대다수였다.

“같이 한 번 해 보니까 자괴감 장난 아니네.”

“제로콜이 우리를 볼 때도 이런 기분이겠지.”

“말이 너무 심하네···.”

제로콜이 우울한 표정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번 게임에서 얻은 킬 수는 고작 1킬. 그것도 총이 아니라 연막탄을 던졌는데 우연히 상대가 맞아 줘서 기록한 1킬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 사실 BJ천마보다 이쪽이 더 대단한 거 아니냐

> ㄹㅇ;

> 비교체험 극과 극

한 판을 해 보자 드러나는 것이 많았다. 가장 커다란 것은 물론 BJ천마의 실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그저 피지컬만으로 찍어 누르던 BJ천마는 게임 자체에 익숙해지면서 지형지물을 활용하고 상황에 따라 전략을 달리하는 능력까지 생겨 있었다.

실로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그냥 탱크 상대하는 기분이겠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형. 그냥 그냥 칭찬하는 말이지.”

“···갑자기 이 시점에 탱크를 왜 칭찬하는 거지?”

> ??

> (나랑 비교해서 탱크가) 그 정도는 아니다

> 당연히 탱크보다 본인이 세다고 생각하네 ㅋㅋㅋㅋㅋ

> 탱크 이야기를 왜 갑자기 하지?(진짜 모름)

단천은 스스로의 무위에는 꽤나 자신이 있었다. 레일 서바이버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이 익숙해진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확실히 팀 플레이는 변수가 많다. 방금 시참 게임에서도 몇 번이나 위험한 상황을 겨우 돌파했다.

모인 시청자들이 합을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 합을 맞춰서 팀이 훨씬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돈낳대는 우승 난이도가 훨씬 올라갈 것이다.

‘그렇다고 내 무위를 올려서 돌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천이 가지고 있는 무에 대한 깨달음은 벽에 도달해 있는 상황. 실력이 한 순간에 늘어날 여지는 제한적이다.

거기에 레일 서바이버의 신체능력이 고정되어 있는 탓에 혼자서 펼칠 수 있는 무력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는 건···.

“나머지 팀원들의 실력을 늘려야 한다는 뜻이지.”

“어. 그러면 교육방송 하나요?”

교육방송. 실력이 좋은 스트리머나 고인물 플레이어가 실력이 부족한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하나하나 봐 주는 컨텐츠.

레일 서바이버의 교육 방송은 실제로도 꽤나 인기가 좋은 컨텐츠 중 하나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 레일 서바이버의 랭킹 1위인 ‘BJ천마’가 하는 교육 방송이라면 충분히 이슈가 된다.

“시참 한 번으로 실력 판단도 됐으니 한 명씩 교육방송을 해 보는 것도 좋겠군.”

실제로도 실전을 여러 번 하는 것보다는 실전이 끝나고 복기를 해 보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교육방송 이전에, 먼저 숙제부터 내 주는 게 좋을 것 같군.”

합방 이전에 BJ천마가 1위 런 방송을 한지라 방종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숙제를 내 주고, 다음 합방때 숙제를 해 왔는지를 테스트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면 일단. 정유채부터.”

“뭐! 나는 다이아몬드라 딱히 부족한 부분은 없을 테지만!”

“양쪽에서 적이 사격을 시작했을 때 우왕좌왕하는 버릇을 줄이도록.”

“앗.”

정유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튀어나왔다. 실제로도 정유채는 양각이 나올 때마다 판단이 늦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 심심하면 정유채의 방송에서 나오는 말이 ‘또양각’일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정유채의 방송을 보는 사람들만이 아는 약점이다. 게임 한 판을 한다고 보일 만한 약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 한 판 돌렸는데 약점 지적 바로 나오네 ㅋㅋㅋㅋㅋ

> 사실 정유채 방송 보는 거 아님?

> 랭킹 1위 앞인데 어딜 약점 숨기려고 ㅋㅋㅋㅋ

“정 판단이 늦는다면 원칙을 정해 놓도록. 좌에서 우로 대응한다. 이런 원칙만 정해 놔도 어버버하다가 위험에 처하는 일은 적을 거다.”

“···알았어요.”

“그래. 지렁이도 할 수 있는 조언이니 다음 번에는 그러지 않기를 믿지.”

“······.”

BJ천마의 지적은 계속 이어졌다. 하나하나가 죄다 치명적이고 정유채의 약점이라고 계속 말이 나왔던 것들. 단천은 정유채에게 플레이에 있어서의 약점뿐 아니라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세세하게 알려줬다.

> 가르치는 것도 잘 하네

> ㅇㅈ;

> 근데 너무 후려패서 정신 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맞는 조언이라고 해도 너무 많이 쏟아지면 멘탈이 조금씩 부서져나가기 마련.

좋은 스승이라면 여기서 적당히 달래 주는 법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스승은 가르침을 내리는 학생을 믿는 법이지.’

요는 멘탈이 깨지거나 말거나 팩트만 주구장창 꽂아넣는 게 정말 좋은 스승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단천이 혈귀단의 단주로 있을 때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 실려온 단원들을 복기해주는 일도 자주 했었다.

그것도 단원들이 완전히 나아서 임무에 투입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계속.

커다란 약점들부터 아주 세세한 약점들까지 모조리 알려주고 나면 혈귀단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기 마련이었다.

─ 이번 임무에서도 다치지 않을 수 있도록. 특히 전치 4주 이상이면 단주와의 독대가 기다리고 있다.

─ ···그래. 전치 7주 이상이면 단주의 설교를 7주 동안 들어야 하는 거지.

─ 차라리 죽고 말겠다니. 단주가 단원들 죽게 놔두는 거 본 적 있나? 거기! 혀 깨물지 마! 저 새끼! 치료해서 단주실로 옮겨 놔!

단천은 서윤학의 연설을 떠올리며 정유채에 대한 피드백과 개선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내가 말해준 방식대로 게임을 돌린 다음 검사받도록.”

“알겠···습니다.”

반쯤 혼이 빠져나간 채 정유채가 대답했다. 혼이 빠진 정유채를 보며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는 풀창고와 제로콜. 정유채는 툭하면 둘을 티어로 후려패는 게 일상이었다. 반면 정유채의 티어는 다이아몬드. 나름 실력이 있는 게이머인 탓에 정유채가 역으로 당하는 상황은 보기 쉽지 않았다.

> 둘 입꼬리 보소 ㅋㅋㅋㅋ

> 아 일단 나중은 모르겠고 지금 재밌다고 ㅋㅋㅋㅋ

물론 그 다음 희생자는 자신들이었지만. 어쨌거나 고소한 건 고소한 거니까.

“자. 다음은 풀창고.”

“살살. 살살 해 줘 형.”

“역날검이 뭔지 아나?”

“역날검? 칼에 날이 역으로 달려 있는 거 말하는 거야?”

“맞다. 적을 살살 후려패려고 만들어진 검인데, 그걸로 맞아도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

요약하자면 살살 패 봤자 어차피 결과는 같다는 뜻이다.

풀창고는 음울해진 채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풀창고 또한 영혼이 반쯤 나간 상태가 됐다.

그리고 마지막 차례.

제로콜.

> 큰거 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진짜 재능’

> 지옥에서 춤추듯 올라온 천재

> 얘는 피드백 해줘봤자임 ㅋㅋㅋㅋㅋ

제로콜의 실력이라고 하면 이 바닥에서 유명했다. 수없이 많은 스트리머들이 개선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그 막 나가던 파일로드조차 교정에 실패한 최악의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

게임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있는 스톤즈 티어에서 수천 판을 박고도 올라가지 못하는 밑바닥 실력의 보유자.

단천은 제로콜의 앞에 선 채 제로콜을 아래에서 위로 훑어봤다.

제로콜이 가진 실력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단천은 입을 연 다음 짧게 말했다.

“일단. 레일 서바이버를 삭제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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