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54화 (54/212)

12. 시참 (2)

“인원은 다 모으셨죠?”

“충분하게.”

단천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풀창고가 버튼을 몇 번 조작하자 게임이 시작된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이 시작되자 스무 개가 넘는 전기 구체가 필드에 펼쳐졌다.

이 번개 구체 하나가 하나의 스쿼드다. 플레이어들이 한 곳에 떨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함.

대부분의 스쿼드들은 모두 파밍을 하기 좋은 지역으로 제각각 흩어졌다.

물론 떨어지는 그대로 대기하고 있는 스쿼드도 있었다.

단천의 스쿼드였다.

“안 움직여요?”

“그래.”

“···뭐.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BJ천마가 첫 배치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꽤 알려진 정보였다. 크루원들도 이를 알고 있는 상태였고. 크루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큰 불만은 딱히 없었다.

파지지직!

전기 구체가 바닥에 착지했다. 단천의 스쿼드보다 한 발 앞서서 파밍을 시작한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우리보다 좀 더 빠르게 도착한 팀이 있네요.”

“총도 들고 있는데요?”

타다당! 스쿼드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총알이 쏟아져내렸다. 궤도를 읽고 몸을 비튼 탓에 단천에게는 치명타가 없었지만. 팀 스쿼드는 단천 혼자만이 아니다.

“다들 괜찮아?”

“목 쪽에 한 방 맞았어요!”

제로콜이 소리쳤다.

흘러내리는 피의 양으로 볼 때에 가만히 놔두면 꽤 위험한 상황.

빠르게 힐 팩을 얻어야만 했다.

단천의 몸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온다!”

“피해!”

이 상황에서 평범한 플레이어들이었다면 달려드는 먹잇감을 상대로 바로 사격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은 모두 시청자들. BJ천마의 믿지 못할 능력을 두 눈으로 목도한 플레이어들이다.

BJ천마가 돌진을 한다면 정면으로 달려드는 트럭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

총을 가진 플레이어가 멀치감치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꽤 하는군.”

전략과 실력이 노출되지 않은 채 할 수 있는 랜덤 매칭과 이런 사용자 지정 게임은 판도가 아예 다르다.

사용자 지정 게임에서는 상대에 대해 아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에 대항해서 플레이도 최적화되기 마련.

자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많으니 적을 상대하기가 조금 더 까다로워진다는 말이다. 물론 상대법도 있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게 많아졌다면.

“보여주지 않은 것들을 그만큼 쓰면 되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잡기술이야 수만 가지는 된다.

타아악!

단천의 발이 바닥을 굴러다니던 돌멩이를 차올렸다. 공중으로 낮게 떠오른 돌멩이를 단천은 발로 걷어찼다.

파악! 쉬이익!

아름답기까지 한 직선으로 날아간 돌멩이는 도망치던 플레이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뻐어억!

“끼엑!”

뒤통수를 맞은 플레이어가 바로 바닥에 엎어졌다.

“명중이로군.”

> 이건 또 뭔데 ㅋㅋㅋㅋㅋㅋ

> 매일 볼 때마다 뭔가 새로운 기술이 나와

> ㅈㄴ 신기하게 맞추네 ㅋㅋㅋㅋㅋ

“기술이랄 건 없다. 그냥 평범한 유성탄이다. 각법으로 걷어차면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지.”

> 방금 그 동작에 이름도 있는 거였냐

> 이름까지 있으면 기술 맞잖아 ㅋㅋㅋㅋㅋㅋㅋ

유성탄의 일곱 번째 초식. 비적유성飛賊流星을 시전한 단천은 돌멩이를 맞고 바닥에 엎어진 플레이어에게 다가가 목을 꺾었다.

“천마다!”

“튀어!”

팀원이 세 명으로 줄어들자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도망치는 상대 스쿼드. 내공이 있다면, 혹은 혼자라면 쫓아가 추살을 했겠지만 단천은 지금 혼자가 아니었다.

놈들을 죽이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도 괜찮은 것이다.

단천은 바닥에 쓰러진 플레이어가 뱉어낸 아이템들을 주워들었다.

+

【힐링 팩】

【ARMS-17】

【청바지】

+

다행스럽게도 힐링 팩이 있었다. 단 하나뿐이기는 했지만.

단천은 힐링팩을 가지고 리젠 지역으로 돌아왔다. 제로콜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서 총을 맞은 풀창고 또한 어느 정도 출혈이 있는 상태였다.

둘 모두 힐링팩을 맞지 않으면 출혈로 죽을 수 있는 상태. 차이점이 있다면 제로콜은 곧 죽고, 풀창고는 죽기까지 꽤 시간이 남았다는 것 정도.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요. 저 죽고 세 명이서 진행해야죠.”

제로콜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팀 큐에서는 이런 상황이 자주 나온다. 불의의 사고로 한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초반부터 죽고 시작하는 일 말이다.

이럴 때에는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 이기기 위해서는 누굴 죽이고 누굴 살리는 게 좋은가.

“역시 스톤즈인 저보다는 플딱이인 풀창고 형이 사는게 좋죠.”

> 확실히 제로콜이 게임은 잘 봄

> 게임을 못 해서 그렇지

> 본인에 대한 무한한 자기객관화

제로콜의 논리적인 판단에 채팅창에 납득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단천은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단천이 하는 일은 언제나 같았기에.

푸욱!

단천이 든 힐링팩에 담긴 용액이 제로콜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 뭐임

> 아니 거기 꼽는 거 아닌데요?

> ????

“저한테 힐팩 꽂으면 풀창고 형은 어떡해요?”

“아직 걸을 수는 있지?”

“응.”

“그러면 다음 전투에서 힐팩을 구하면 된다.”

“그걸로 되는 거에요? 힐팩을 못 구하면···.”

“우리 스쿼드의 대주는 나다. 그러니 결정권도 나에게 있다. 걱정 마라. 실패한다면 내가 책임질 테니.”

전장에서는 모든 것들이 빠르게 변화한다. 시시각각 변화는 전세와 전황. 우세와 열세. 죽고 죽이는 피의 연쇄.

모든 것이 변하는 장소가 바로 전장이다. 어떤 진리도 명확한 것도 없는 세계.

모든 것이 불명확한 전장. 하지만 이런 전장에서조차 단천이 절대 버리지 않는 원칙이 있었다.

“본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료를 전장에서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 미쳤다 ㅋㅋㅋㅋㅋㅋ

> 낭만 뭐냐고 ㅋㅋㅋㅋㅋㅋㅋ

> 메모해놨다가 여자친구한테 써먹는다 딱 대라

> 이거 쓰면 바로 오늘부터 1일이다 ㄹㅇ ㅋㅋㅋㅋ

단천은 힐팩을 뽑아낸 다음 바로 풀창고의 피를 지혈했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손놀림이었다. 시스템 상 출혈은 계속될 테지만 최소한 핏자국으로 추격당하는 일은 줄여 줄 터였다.

“근데. 문득 궁금한 건데.”

단천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풀창고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천마 형. 지난 번 나랑 런닝돌 할 때 같은 스쿼드인 나 절벽으로 내던지지 않았어?”

“출혈이 크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움직이도록 하지.”

“형이 방금 동료 안 버린다며. 근데 나는 그때 절벽으로 내던져졌···.”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는 게 가장 가까운 파밍 장소이니, 그쪽으로 움직이도록 하지.”

“절벽으로···.”

“빨리 움직이자. 아. 천마 형. 저 광선검 주웠는데 이거 쓰세요.”

“잘 쓰도록 하겠다.”

“내던져졌···.”

“아! 나 파밍하면서 트럭 봤어! 그거 타고 움직이자!”

> 듣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풀창고 원래 이런 캐릭터였냐 ㅋㅋㅋㅋㅋㅋ

> 다 천마님이 풀창고를 강하게 키우려고 그런 거임

> ㅇㅈ 사자도 절벽에서 새끼를 밀어 버린다고 하잖아

“···그런 거였군요.”

풀창고의 눈이 살짝 촉촉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했다. 출혈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 소소한 일들은 잠시 접어 둘 타이밍인 것이다.

***

부르릉!

넷은 트럭을 타고 움직였다. 1인 큐와는 다르게 다인 큐에서는 팀이 함께 이동할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탈 것들이 리젠된다.

운전을 맡은 것은 정유채였다. 다이아몬드 티어인 만큼 지리에도 밝고 상황 판단도 빠른 덕이다. 거기에 스쿼드 경기 경험도 많아서 운전도 꽤 능숙했다.

“천마 형은 운전 안 해?”

단천은 마차와 말을 몰아 본 경험이 많이 있었다. 경공이 더 빨라진 뒤에는 굳이 말을 타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말을 모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말 또한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된다.

말을 몰 줄 안다면 차를 운전할 줄 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터.

“할 줄 안다.”

“그렇구나. 스트리머들 중에 차 못 모는 사람들 꽤 있거든. 레일 서바이버 하려고 차 운전 시작하는 스트리머도 꽤 있어.”

“그렇군.”

단천은 시간나는 대로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를 산다면 최소한 경공으로 차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효율적일 테니까.

하지만 운전면허를 따게 되는 것은 나중의 일.

“일단 작전부터 세우지.”

“맞다. 움직이는 동안 작전 세워야지.”

“아마 이 팀 스쿼드가 실제 돈낳대보다는 조금 더 빡셀 거에요.”

“왜지?”

“그야 시참을 하면 티밍이 조금 더 심하니까.”

티밍. 팀이 아닌 인원이나 팀이 서로 암묵적으로 팀을 이뤄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대회 플레이를 연습한다는 명목으로 인원을 모집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청자들의 목표중 큰 부분은 스트리머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아예 전투를 하지 않는다거나 노골적인 티밍을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원래 게임보다 경쟁이 빡셀 거야.”

풀창고의 말을 듣고 생각하던 단천의 입이 열렸다.

“아니. 그건 틀렸다. 아마도 실전 돈낳대는 지금 게임보다도 난이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왜?”

“내가 있으니까.”

“형이 있으면 게임이 쉬워지는 거 아니···.”

말을 이어나가던 풀창고가 입을 다물었다.

BJ천마의 게임 실력은 심각할 정도로 규격 외다. 그러니 가장 먼저, 가장 맹렬한 견제가 들어오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

“모든 팀들이 나를 견제하려고 할 거다.”

> 그거 티밍 아니냐?

“티밍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지.”

보통의 티밍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팀을 맺는 경우에나 적용되는 일이다.

부정한 방법이 아니라 절대적인 우승 후보를 견제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연합이 구축된다면?

“그러면 티밍이라고 할 수 없지.”

“···그렇네.”

“그런데 오빠는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겪어 본 적이 있으니까.”

무림에서는 좀 평화롭다 싶으면 가끔씩 전대 거물들의 무공이 숨겨져 있다는 장보도가 나타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장보도를 얻기 위해 수많은 기인이사들이 모여든다.

단천은 이런 큰 이벤트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대외적으로 커다란 업무조차 제쳐두고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거기 가면, 모든 놈들이 나를 죽자사자 견제하니까.’

평소라면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정, 사, 외도의 합격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가 바로 장보도 쟁탈전이다.

─ 흑암혈사대! 천마부터 죽여라! 빌어먹을 정파 놈들은 그 뒤다!

─ 매화검수! 모두 힘을 합해 저 괴물부터 막아라! 나머지 악적들은 그 뒤다!

─ 죽어라! 이 괴물!

─ 지존! 북해빙궁과의 회합은 어떻게 하고 여기 오신 겁니까? 빙궁주가 막길래 뚫고 오느라 좀 늦었다고요? ···대충 알겠습니다. 평소대로군요.

보통 장보도에 담겨 있는 비급이래 봐야 그다지 단천에게는 쓸모 있는 것들이 아니었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그런 것들보다 훨씬 재밌고 유용한 경험이 장보도 쟁탈전에는 있었으니까.

때로는 결과물보다 그 결과물로 향하는 과정이 더 가치있는 법.

막말로 장보도랍시고 있는 두루마리 안에 거울이 있었어도 단천은 쟁탈전에 참여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장보도는 세상에 그리 자주 나오지 않는다. 장보도 쟁탈전은 단천도 자주 경험하지 못하는 빅 이벤트란 말이다.

거의 산에서 산삼을 발견하는 심마니와 비슷한 빈도.

이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단천은 새 장보도를 만들어 중원에 뿌리려고도 했지만.

아쉽게도 이는 실행되지 못했다.

─ 지존! 그게 뭡니까! 가짜 장보도? 가짜 장보도를 만드시면 어떡합니까!

─ 아니, 심마니가 산삼 씨앗 산에 뿌리는거랑 똑같다니! 전혀 다릅니다! 전혀 다르···! 다가오지 마십시오! 천마대! 천마대애애!

부교주인 서윤학이 죽을 각오로 단천을 막아낸 덕이다.

단천이 이 방해를 뚫고 장보도를 만든 적도 있었지만, 서윤학은 단천이 뿌린 장보도가 가짜 장보도라는 정보를 구파일방과 사흑련 전부에 뿌리기까지 했다.

부교주가 돼서는 교주가 하겠다는 걸 죽자사자 막다니.

망할 놈 같으니라고.

‘그런데 그런 경험을 또 할 수 있다니.’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다.

“아! 저기 마을 보인다!”

“대충 네다섯 팀 정도가 대치하고 있는데?”

“대치하는 게 아니라 우리 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와. 그래도 저렇게까지 티밍을 하냐.”

멀찍이 보이는 확연한 티밍. 적은 대충 스무 명 가량. 첫 사냥감 치고는 적당한 숫자다.

“사냥 시작이로군.”

단천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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