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51화 (51/212)

11. 파일로드 (2)

“제발 살려 주세요!”

존댓말을 장착한 파일로드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단천은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단천은 이런 종류의 상황에 자주 처해 본 경험이 있었다. 병에 걸린 채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종류의 인간을 치료하는 일 말이다.

인간은 고통받을 때에는 뭐든지 다 해 줄 것처럼 말한다.

보통의 사람들조차 치료를 해 주면 감사인사를 하고 나서 치료비를 낼 때에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심지어 눈 앞에 있는 파일로드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오만하며 타인을 자신의 밑바닥으로 보다가 사악한 마공에 발을 들이기까지 한 인간.

이런 인간은 바로 치료해줬다가는 보상은커녕 사기꾼으로 몰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간단하다.

미리 비용을 받는 것이다.

“비용은 선불이다.”

“뭐? 이 새끼야! 지금 어떻게 치료비를 줘! 아파서 사람 죽겠는데!”

“말이 짧군.”

단천은 파일로드의 천극혈을 눌렀다. 천극혈은 소혼술의 부작용을 억제해주는 자리인 동시에···.

부작용으로 눌렀을 때 지랄맞게 아픈 곳이다.

“끄아아아악! 자, 잘못했습니다! 형님!”

“난 네 형님이 아니다. 단 대인大人이라 부르도록.”

“단 대인! 돈은 선불로 내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파일로드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중에도 눈 앞에 있는 인간이 대화가 통하지 않는 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파일로드는 식은땀을 흘리는 중에도 바닥을 기어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다.

파일로드는 1티어급 스트리머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모아놓은 돈은 꽤 있었다.

그러니 BJ천마가 요구하는 금액 정도는··· 요구하는 금액 정도는···.

“대, 대인! 도···돈은 얼마나 드리면 됩니까?”

“네가 감사하는 만큼.”

단천은 여름철 해운대 골목에서 가격표에 ‘싯가’를 적어놓고 선량한 여행객을 뒤통수치는 악질 횟집 주인처럼 이야기했다.

아니. 실제로는 그보다 더 악질이었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걸 넘어서서 가지고 있는 걸 다 내놓으라는 아우라를 넘실대며 뿜어낸다.

‘씨발.’

파일로드의 더 구겨질 수 없다고 생각한 표정이 한층 더 구겨졌다.

파일로드는 떨리는 손으로 단천이 말한 계좌번호에 넣을 돈을 적어나갔다.

일, 십, 백, 천, 만···. 계좌에 있는 금액을 모두 송금하고 나서야 파일로드의 손이 내려갔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계좌에 있는 금액은 파일로드가 가지고 있는 돈의 일부에 불과했으니까.

당장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이 정도로 치료받을 수 있다면 싼 거다.

“입금 됐습니다 대인! 그러니 이제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그게 끝인가.”

“네? 네! 네! 이게 답니다! 대인!”

단천은 팔짱을 끼고 앉아 파일로드를 노려봤다. 안도하는 얼굴 너머로 보이는 위화감.

‘다 내놓지 않았군.’

이런 인간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살랑살랑 간을 보면서 내놓는다.

제 목숨이 걸려 있는데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단천은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전부라면 내 치료는 불가능하겠군.”

“이런 미친 새끼가! 아아악!”

다시 두통이 시작되자 파일로드가 바닥을 또다시 데굴데굴 굴렀다.

“알겠! 알겠습니다! 대인! 제가 가지고 있는 코인까지 다 보낼 테니! 그러니 제발 치료해 주십시오!”

‘코인?’

그게 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천은 내색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놈이 말을 꺼낸 것을 보면 꽤나 진귀한 물건일 터.

“계좌를 불러 주시면 제가 가진 3국 계좌에서 코인까지 모두 보내 드리겠습니다!”

계좌라. 보아하니 코인이라는 것은 계좌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웹소설 사이트의 광고에서 코인 계좌를 개설하면 300캐쉬를 준다고 해서 계좌 개설을 했었다.

소설 세 편을 공짜로 볼 수 있다고 해서 주저없이 계좌 개설을 했었는데. 그게 이렇게 활용될 줄이야.

역시 웹소설은 삶에 도움이 되는 건전하고 활동적이며 진취적인 취미활동이 분명하다.

단천은 다운받은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자신의 계좌를 불렀다.

파일로드는 엉금엉금 기어 자신의 계좌에서 코인을 BJ천마의 계좌로 이체했다.

피눈물이 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대로 있으면 자신이 죽는 것은 확실했으니까.

그렇게 파일로드가 피눈물을 흘리며 코인 이체를 하고 있는 동안, 단천은 그놈의 ‘코인’이 뭔지에 대해서 검색을 하고 있었다.

검색에 따르자면 코인이란 것은 중앙집권식이 아닌 무정부적으로 발행되는 가상 화폐인 모양이다.

‘···쓰레기잖아.’

단천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본디 경제라는 것은 강력한 중앙 집권자가 의미를 부여해야만 그 가치가 생기는 법.

누구도 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실제도 아닌 물건에 대체 어떻게 가치가 생겨난다는 말인가.

게임 아이템이라면 그걸로 자랑이라도 하지.

쯧쯧.

단천은 혀를 찼다. 보아하니 눈 앞의 파일로드는 코인인지 뭔지에 사기를 당한 게 확실했다. 자신이 중원에 가기 전에도 달이나 화성의 땅을 파는 사기꾼들이 있었다.

아마 저 코인이라는 것도 별 가치없는 물건이겠지.

그래도 놈의 입장에서는 큰 가치를 지닌 모양인지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래도 놈에게 있어서는 전 재산에 가까운 모양이니 이 정도로 치료해 주도록 할까.

그렇게 생각하던 단천의 코에 익숙한 냄새가 났다. 수없이 많은 영약을 물처럼 먹어제끼던 시절에도 가끔씩밖에 먹지 못했던 냄새.

“이 냄새는···.”

단천은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냄새의 진원지는 창고 한 구석이었다.

찬장을 열자 파일로드에게 온 선물로 보이는 수많은 물건들이 보였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서 술병 안에 들어가 있는···.

“천년하수오?”

단천의 눈이 빛났다. 최소한 천 년 이상은 먹은 것으로 보이는 하수오가 술병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런 영약이 이런 구석에서 술 안에 들어가 있다니. 단천은 천년하수오가 들어가 있는 술병을 꺼내왔다.

“코인 이체 완료했습니다. 그럼 이제···.”

“이거.”

“그, 그거? 심마니 하시던 할아버지가 주신 겁니다! 맛대가리가 없어서 안 먹습니다! 필요하시면 가져가십시오!”

가져가란 말이 떨어지자마자 단천은 천년하수오를 품 안에 꼬옥 끌어안았다.

“좋다. 절대 번복하지 말도록.”

단천은 천년하수오가 담긴 술병을 열어 술을 조금 마셨다.

은은한 향기가 나는 것이 극상의 천년하수오다. 천금을 주고서도 얻기 힘든 물건.

돈과 천년하수오라. 이 정도라면 부작용을 치료해줄만 하다. 저 코인인지 뭐시깽인지는 알 바 아니지만.

단천은 천년하수오를 최대한 몸에 가깝게 둔 다음 품에서 침을 꺼내들었다.

이전에 한약재를 사면서 한약방에서 함께 사 온 물건이었다. 우주 비행선에도 쓰이는 두랄루민인지 뭔지로 만들어서 가볍고 녹이 안 슨다던가.

이걸 인체에 써도 되는가 싶었는데 때마침 시험해 볼 기회가 생겼다.

단천이 꺼낸 손바닥만한 길이의 장침을 바라보는 파일로드의 눈이 떨렸다.

“···그거. 제 머리에 꽂으실 겁니까?”

“그러면.”

“···방금. 술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

“움직이지 말도록.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백치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

꽉 깨문 파일로드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리거나 말거나, 단천은 두랄루민으로 만들어진 침을 파일로드의 머리에 꽂아넣기 시작했다.

푹! 푹! 푸욱!

실로 거침없는 손길이다. 침이 하나씩 박힐 때마다 파일로드의 얼굴이 조금씩 편해졌다.

모든 침을 박아넣은 단천은 숨을 들이켰다. 여기까지는 ‘육체적인’ 처치다. 소혼술은 소혼술을 시행한 자의 영혼에 깊은 자상을 남긴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단전의 힘이 필요하다. 이 치료는 명백히 소혼술의 치료의 범위를 넘어가는 것. 원래라면 구태여 그 부분까지 치료할 필요는 없지만···.

‘여연결의 기억까지 남겨둘 수는 없지.’

파일로드야 죽건 말건 단천이 알 바 아니지만  여연걸의 무공을 파일로드의 뇌에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다.

단천은 손을 파일로드의 정수리에 가져다 댄 다음 천단공을 운용했다. 상단전의 내공으로 화한 단천의 내공이 파일로드의 머릿속을 움직였다.

‘확실히 머릿속에 무공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

내공이 지나갔다고 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분명히 무공을 아는 자의 손속이다.

본래 머릿속의 상처나 영혼에 난 상처들을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상단전이 가지고 있는 힘은 전능全能에 가까운 것. 지금 단천이 쓸 수 있는 힘의 크기는 적지만, 저 상처들을 치유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단천은 머릿속을 할퀴고 나간 흔적들을 상단전의 힘을 가지고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파일로드의 뇌를 청소하던 단천의 눈썹이 가늘게 움찔거렸다.

‘상단전이··· 늘어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단전 자체가 늘어났다기보다는 상단전에 이르는 길이 다소 넓어진 것에 가까웠지만.

‘신묘한 일이군.’

상단전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무학을 정립하기는 커녕 상단전을 쓸 수 있는 경지에 들었던 괴물들이 손에 꼽히는 까닭이다.

상단전은 세계 전부와도 이어진 힘. 상단전은 물질적인 것만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수행뿐 아니라 그 사람이 행하는 업業을 통해서도 강해지고 약해질 수 있었다.

‘선행을 행한 덕분에 힘이 늘어났단 건가.’

물론 이 양은 극히 미소한 정도이기는 했다. 칠대천마인 채로였다면 이딴 거 받으려고 굳이 선행을 하진 않았을 정도의 미미함.

하지만 지금의 단천에게 있어서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기연이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되는 법인 모양이다.

‘저기는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뇌가 터질 수도 있는데. 치료하면 상단전의 길이 조금 더 커지겠지?’

단천은 원래라면 내버려뒀을 구간까지도 책임감을 가지고 말끔히 청소를 끝마쳤다.

실로 책임감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청소를 마친 단천은 목을 좌우로 풀었다.

“자. 이제 치료가 끝났는데. 어떤가?”

파일로드는 자신의 몸을 샅샅이 확인했다. 머리를 잘라내는 것 같은 격통도, 모든 인간을 죽이고 싶던 살의도 온데간데없다.

완전히 치유된 것이다. 자신의 몸이 제대로 치유됐으니 할 일은 하나뿐.

파일로드는 주먹을 들어 BJ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뒈져! 이 개새끼야!”

“와.”

단천의 입에서 실로 오랜만에 경탄에 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소혼술로 무공을 얻고도 한 순간에 제압을 당한 기억이 분명히 있을 텐데도 이렇게 깡다구 좋게 달려들 수 있다니.

이 정도로 천지분간 못 하는 인간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실로 신기할 지경.

물론 신기한 것과 제압하는 것은 별개다.

단천은 깔끔하게 파일로드의 공격을 피한 다음 파일로드의 턱에 손날을 날렸다.

퍼어억!

손날이 격중한 파일로드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져내렸다.

“자. 2라운드도 끝.”

“끄흐억. 이 새끼가···.”

또 말이 짧다.

단천의 손이 파일로드의 곡지혈을 눌렀다. 편두통이나 정신 이상의 치료에 매우 도움이 되는 혈도인 동시에.

잡히면 더럽게 아픈 혈도다.

“아아아아악! 대인! 단 대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바로 존댓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정신이상이 바로 나은 모양이다.

역시 곡지혈이야. 효과 확실하다니까.

이제 파일로드가 맨 정신이 됐으니 중요한 정보들을 들을 시간이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한다면 건강하게 이 방을 걸어나갈 수 있을 거다.”

“대답하지 않으면요?”

“···더욱 건강해진 채 방을 걸어나갈 수 있겠지.”

어둠 속에서 BJ천마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자신이 모든 것을 뱉어낼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하겠다는 확고한 광인의 눈동자.

'그냥 다 불자.'

BJ천마의 눈빛을 본 파일로드는 모든 걸 곧이곧대로 대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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