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파일로드 (1)
“···우와.”
“대박 사건.”
“미쳤네.”
풀창고 크루는 BJ천마의 방송에서 벌어진 상황을 입을 떡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 파일로드가 P04였냐 ㅋㅋㅋㅋㅋ
> 하긴 인성 개쳐박은 거 생각하면 이해됨
> 지금 파일로드 핵 의심정황들 사람들이 샅샅이 찾아내는 중 ㅋㅋㅋㅋ
소문은 빛보다 빨리 전파된다. 대형 스트리머인 파일로드가 악명높은 핵 유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지금까지의 영상들이 모조리 분석되고 있었다.
파일로드는 아마 자신이 P04가 아니었다는 듯 부정할 것이다. 물론 증거를 숨긴다면 P04와 파일로드간의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연관관계가 증명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트리머는 대중들의 인식을 먹고 사는 직업. ‘법적인 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대중들의 ‘인식’은 충분한 정황 증거만 있어도 충분히 기능하기 때문이다.
파일로드는 안 그래도 갑질 사건으로 인식이 나락을 가 있다. 여기에 레일 서바이버 시청자들이라면 이를 바득바득 가는 핵 유저였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아마 파일로드가 스트리머로 재기하는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야 될 것이다.
‘생각보다도 일이 너무 커졌는데.’
풀창고의 생각보다도 일이 커졌다. 물론 일이 커졌다는 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로 커졌다는 뜻이지만.
[시청자 수 : 40,777명]
워낙 큰 사건인 탓일까. 시청자 수가 평소의 합방보다도 훨씬 많다. 아마 BJ천마의 시청자는 이것보다도 많을 것이다.
원래 이런 초대형 사건이 터졌을 때에는 연속적으로 사건을 터트려 주는 것이 인지상정.
바로 지금이 BJ천마가 돈낳대에 참가하게 됐다는 걸 말할 타이밍이다.
“여기서 폭탄발언 하나 하겠습니다.”
“폭탄발언?”
“BJ천마 형. 우리 돈낳대 팀에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 뭐냐 이거
> 술먹음?
> ㄹㅇ임???
> 어그로 끌려고 막 던지네 ㅋㅋㅋㅋ
“어그로 아니고요, 이번 사건 전에 돈낳대 자리 난 건 아시죠? 파일로드···가 하차하면서. 한자리 비었잖아요.”
> 새끼란 말 겨우 참았다 방금 ㅋㅋㅋㅋ
> 욕참 Lv MAX ㅋㅋㅋㅋㅋ
> 진짜 역대급 갑질 줄줄히 터지면서 민폐 오지게 끼쳤지
“그렇게 자리가 비었길래 제가 BJ천마형 돈낳대 넣자고 건의했어요.”
> 파일로드 고작해봐야 그마 아님?
> 아니 저런 인간을 파일로드 자리에 넣는건 반칙이지 ㅋㅋㅋㅋ
> 미사일 무장해제하고 배치한게 핵폭탄 ㅋㅋㅋㅋㅋ
> 핵폭탄이 뭐냐 거의 수소폭탄 수준인데 밸붕이지 ㅋㅋㅋㅋㅋ
BJ천마의 실력은 지금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상황. BJ천마는 핵도 혼자서 이겨먹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그랜드마스터를 대체해서 들어온다?
밸런스 문제가 불거질 게 확실했다.
채팅창도 밸런스 문제로 이래저래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 채팅창의 분위기를 읽은 제로콜이 잽싸게 손을 들었다.
“어. 근데 제가 반대했었죠.”
“아. 맞아. 제로콜이 BJ천마 오빠 데려오면 안된다고 그렇게 뭐라고 했었어.”
> ??
> 겜알못인가?
“그게. 들어온다는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 BJ천마 형이 레일 서바이버를 시작도 안 했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낙하산으로 들어온다? 절대 안 되지. 돈낳대가 장난도 아니고 말이야. 파일로드 ㅅ···가 그래도 티어는 높았잖아요.”
> 겜 한판도 안한걸 그마 자리에 꽂으려고 한거냐 ㅋㅋㅋㅋ
> 풀창고 판단력 ㄹㅈㄷ네 ㅋㅋㅋㅋ
> 선구안 미쳤다 ㅋㅋㅋㅋ
> 풀창고 형님! 주식 추천좀 해주세요! 테슬라? 테슬라 사면 되나요???
지금의 BJ천마는 글자 그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1황’수준의 플레이어다. 하지만 그건 지금 시점에서의 이야기. 게임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던 플레이어를 영입하려고 했다는 말에 채팅창의 분위기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BJ천마 넣겠다고 이야기했더니 다른 스트리머 분들도 다들 흔쾌히 동의해 주셨죠.”
> 그사람들 입장에서도 돈낳대 안 열리는건 좀 싫었을 테니까
> 거기에 겜 한판도 안 한 스트리머를 팀에 넣는다? 이거 완전 황금고블린 ㅋㅋㅋ
> 안 받을 이유가 없지
“아무튼 그래서. BJ천마 형이 우리 팀에 들어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팀에 들어오는 게 확정은 아니죠.”
“···왜?”
“그게. 미션이 있으니까요.”
> 미션?
> 무슨 미션
“팀에 들어오려면 최소 그마는 찍어라. 그렇게 이야기가 됐거든요. 그마 찍으면 시청자 분들도 실력은 납득할 거니까.”
“사실 그마도 어렵잖아. 이 재능덩어리 정유채도 매번 그마 입구에서 미끄러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근데. 그 오빠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말을 이어나가는 정유채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랜드마스터는 너무 쉽고, 1위를 찍으면 들어가겠다. 그러는 거야.”
> 돌아이네 ㅋㅋㅋㅋ
> 아니 한판도 안 해 본 게임을 1위 하겠다 ㅋㅋㅋㅋ
>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지금 기세로는 1등 못 찍는게 더 이상하지
채팅창의 반응은 BJ천마가 1위를 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쪽이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BJ천마가 계속 이야기하던 '1위 런'이 단순히 어그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1위를 노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 1위런이란게 진짜 1위한다는 거였냐
> 첫날부터 진심이었네 ㅋㅋㅋ
“그 형 보면 알겠지만 뱉는 말 99%는 진심이에요.”
탄력을 받은 풀창고가 빠르게 BJ천마와의 썰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BJ천마와의 일화에 대한 썰을 풀창고 크루가 끌어나가던 중. 풀창고의 전화기가 울려퍼졌다.
[발신자 : BJ천마형]
“천마형한테 전화 왔네요. 연결 한 번 해 보겠습니다.”
***
“여보세요.”
[아. 천마 형! 안그래도 형 이야기 엄청 하고 있었는데. 방종했어?]
“어.”
[형 우리 팀 들어온다는 거. 밝혔는데. 괜찮지?]
“뭐. 네가 하고싶을 때 밝히면 된다.”
[역시 쿨하네. 시간 있어요? 시간 있으면 여기 와서 합방이나···.]
“할 일이 있어서. 파일로드···.”
[형. 잠시만.]
파일로드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탈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 마이크 껐어요. 파일로드 그 사람 왜요?]
풀창고가 단천의 말을 듣고 방송용으로 내보낼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모양이다.
“파일로드 어디 사는지 아냐?”
[그건 왜요? 형. 암만 그래도 찾아가서 현피는···.]
“현피를 할 생각은 없어. 만나서 확인해야 될 일이 있는 것 뿐이다.”
[형 제가 암만 그래도 지인 사는 데를 말해 주는 건 좀···.]
“파일로드. 상태 별로 안 좋아 보이던 거. 봤냐?”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풀창고도 파일로드의 상태를 봤을 것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 분명한 상태.
“그러니까. 무슨 일 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찾아가려는 거구나. 미안. 나는 그냥 찾아가서 뭔가 일이라도 벌일 생각인 줄 알고. 그냥 걱정해서 도와주려고 찾아가려는 거였구나.]
‘딱히 걱정하진 않은 데다가 도울 생각도 없긴 하지만.’
일을 벌일 생각은 맞았다. 파일로드에게 무슨 일이 났을 거라는 말도 맞았고.
하지만 단천은 파일로드를 딱히 도울 생각이 없었다. 자고로 스스로가 벌인 일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단천의 평생 지론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않은 자들까지 챙겨줄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에 맞는 대가와 정보를 내놓는다면 조금은 도와줄 생각이 있지만.
[메시지로 주소랑 연락처 보내줄게. 나도 도와주러 가고 싶은데 이게 방송 중이라.]
“괜찮다. 안 와도 된다. 오지 마라.”
‘목격자가 있으면 귀찮아지니까.’ 란 말을 삼킨 채 단천은 통화를 끊었다.
통화를 끊고 나자 풀창고에게서 파일로드의 주소가 담긴 메시지가 도착했다. 단천의 집에서 꽤 가까운 곳이었다.
“···택시를 타는 것보다 경공을 쓰는 게 빠르겠군.”
마차나 인력거는 단천의 취향이 아니기도 했다. 겸사겸사 이럴 때도 경공을 쓰는 것도 일종의 수련이 된다.
단천의 몸이 달동네 옥탑방 위로 솟구쳐올랐다.
***
“이런 씨바아아알!”
파일로드의 절규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아이디를 확인하지 않은 채 도네이션을 해 버렸다.
익명1 : P04가 파일로드였냐 ㅋㅋㅋㅋㅋㅋ
익명2 : ‘그 새끼’ 망했으면 개추 ㅋㅋㅋㅋㅋ 일단 나부터 ㅋㅋㅋㅋ
익명3 : 익명으로 여기서 P04 어록들 긁어놓은거 뿌리고 왔음 ㅎ
익명4 : 익3 진짜 올렸네ㅋㅋㅋㅋ미친놈인가ㅋㅋㅋㅋ
익명3 : 나만 아니면 돼애애애애!!!
채팅창의 반응은 물론이고 어둠의 단톡방까지 난리가 났다. 어둠의 단톡방을 보던 파일로드가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이 버러지 새끼들이!”
콰창! 휴대폰이 깨지는 소리가 나며 바닥에 박혀들었다.
휴대폰을 박살을 냈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파일로드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부서뜨리기 시작했다.
꽝! 꽝! 주먹이 벽에 몇 번이나 꽂혔다. 운동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던 파일로드의 주먹이 콘크리트 벽을 부서뜨렸지만 파일로드는 이상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분노도 분노지만 심각한 두통또한 파일로드를 괴롭혔다.
머릿속에 벌레가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분노를 뿜어내고, 정상적인 인지를 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무언가’가.
“끄아아악!”
“역시. 내 생각대로군.”
그렇게 한참을 분노하며 주변을 박살내던 파일로드의 귀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번 들어온 목소리.
“BJ천마.”
“그냥 단천이라고 불러도 된다.”
“이 개새끼가. 너 어떻게 들어왔어.”
“저 구멍으로.”
단천의 손이 창문을 향했다. 잠가 놨던 창문은 열려 있었다. 창에 나 있는 조그마한 구멍으로 창문을 열어젖힌 것이리라.
그런데 창문에 구멍을 낸 도구가 단천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가!”
파일로드의 주먹질이 단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콘크리트 벽도 부술 정도의 근력이 단천을 덮쳤다.
하지만 단천의 몸은 파일로드의 공격을 우습게 피해버렸다.
“쯧. 핵을 끼고 가상현실에서도 못 이겼는데. 현실에서 어찌 본좌를 이긴단 말이냐.”
비웃듯이 공격을 피한 단천의 손이 파일로드의 경맥을 두들겼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손속.
파바바바박!
“흐어어억!”
피가 몰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파일로드의 얼굴이 한층 펴졌다.
머리를 옭아매던 고통이 잠시간 잦아들었다.
“으···으윽.”
“정신이 살짝 드나? 오래가진 못할 테지만.”
“BJ천마···?”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그걸 내가 왜 대답해야 하지?”
“그러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테니까.”
“큰 문제?”
큰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기도 전에 파일로드의 몸에 격렬한 통증이 찾아왔다.
“으악! 으아아아아악!”
“벌써 시작된 건가.”
바닥에서 몸을 떨어대는 파일로드를 바라보며 단천은 무심하게 팔을 움직였다. 통증을 줄여 주는 혈도를 건드리자 파일로드의 발작이 멈췄다.
“이, 이게 뭐야!”
“네가 받은 소혼···핵 프로그램의 부작용이다.”
“핵? 핵에 무슨 부작용이야! 119 불러! 119!”
파일로드는 바닥을 기어 자신의 휴대폰으로 향했지만 휴대폰은 자신이 내던진 까닭에 산산히 부서져 있는 상태였다.
“119 불러 줘! 119! 제기랄!”
“부를 수는 있지만··· 그 사람들이 너를 치료할 수는 없을 텐데.”
파일로드의 눈이 떨렸다.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결코 과학적인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과학적인 뭔가가 있더라도 그걸 응급실의 의사가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게 분명했다.
반면 눈 앞에 있는 BJ천마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이 고통이 무엇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파바바박!
단천의 손이 다시 한 번 파일로드의 몸을 쓸어내렸다. 다시 한 번 줄어드는 격통.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이렇게 손짓만으로 고통을 줄이는 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놈이 무슨 조화를 부리는진 몰라도 파일로드 자신의 생사는 지금 눈 앞의 인간. 단천에게 달린 상태였다.
파일로드의 떨리는 눈이 단천을 바라봤다.
“대···대체 뭘 원해? 도와줘! 살려줘! 뭐든지 줄게! 뭐든지!”
“이제 협상할 생각이 좀 생긴 모양이군. 참고로 다음 시술부터는 유료다.”
“유, 유료? 아, 알았어! 뭘 원해! 뭐든지 줄게! 뭐든지!”
바락바락 소리지르는 파일로드와 달리 단천은 여유롭게 파일로드의 방의 의자에 걸터앉은 다음 말했다.
“일단. 말이 심하게 짧다. 새파랗게 젊은 놈아.”
교육의 시작은 원래 존댓말부터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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