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레일 서바이버 - 1등런 (8)
금강부동신공의 두 가지 묘리는 금강. 그리고 부동이다. 중원의 사람들에게 금강과 부동 중 어느 쪽의 가르침이 더 깊은가 하면 백이면 백 금강이 금강부동신공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상대방의 공격을 무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니, 금강이야말로 금강부동신공의 모든 것이며 부동은 그저 딸려오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극에 이른 금강부동신공을 상대해 본 자라면 하나같이 말한다.
‘부동이야말로 금강부동신공의 요체다.’
단천은 소림에서 만났던 이름 없는 노승의 말이었다.
백팔나한진을 단신으로 패퇴시키고, 전대 장로들과 방장까지 합격한 십팔나한진을 홀로 돌파한 단천을 막아섰던 이름 없는 승려.
변변한 승명僧名도, 무명武名도 없는 학승에 불과했으나.
그는 소림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다.
‘자칫하면 패배할 뻔 했었지.’
금강부동신공의 부동不動은 그 묘리만으로도 능히 천하제일을 논할 수 있는 무공인 것이다.
단천은 검을 잡은 채 발도의 자세를 취했다. 이것이 금강부동신공의 요체라고 한다면 소림사의 땡중들이 길길이 날뛸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무명승만큼은 허허로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게 틀림없다.
─ 시주는 원체 자기 마음대로 사는데. 제가 말 한 마디 한다고 바뀌시겠습니까. 시주 하고 싶은 대로 다아아아~ 하십시오.
─ 좆대로 산다고 욕하다니요. 빈승은 그리 험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 물론 말의 뜻만은 같긴 합니다만. 그것이 색즉시공 아니겠습니까. 허허.
“뭐 하는 거지?”
P04. 아니, 파일로드는 BJ천마가 취하는 자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검을 들고 자신이 달려드는 것을 막으려 해도 모자랄 판에 광선검을 끄고 칼을 허리춤에 가져다 대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그럴지도.”
가볍게 대답한 BJ천마는 눈마저 감아버렸다.
> 미쳤네
>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건 또 뭐하는 짓거리임???
P04의 어처구니 없다는 헛웃음. 그리고 불만 가득한 채팅창.
하지만 단천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상단전을 열고 자신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는 P04를 관조했을 뿐.
BJ천마를 조롱하려던 P04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대응 자체를 해 주지 않겠다는 건가.’
상관없었다. 놈은 이러나저러나 그랜드마스터 티어에서 계속 큐를 돌려야만 했다. 이 구간에서는 저격을 하면 매번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BJ천마를 저격해서 매번 죽여버리면 된다. 그거면 충분했다.
놈은 자신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죽여 주마! 이 버러지 자식아!”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을 한 P04이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기괴한 웃음이 터져나오는 와중에 단천은 P04의 모든 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단천은 수없이 많은 전장에서 수없이 많은 적과 싸워왔다.
게다가 눈 앞에 있는 자의 무공은 단천이 누구보다 많이 봐 왔던 여연결의 무공인 뇌명검.
‘심지어.’
놈은 뇌명검을 제대로 수련하지조차 않았다. 그저 누군가에게 받듯이 얻은 지식을, 자신의 것인 양 으스대고 있을 뿐.
그러니 수천 가지의 수 가운데 P04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읽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P04가 단천을 향해 쓰는 초식은 뇌명검의 뇌신격. 종에서 횡으로 가로지르는 일격이었다.
적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확신한다면 수를 읽을 필요도, 대응을 생각할 필요도, 심지어 적을 볼 필요도 없다.
총알을 막아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필요한 것은 단지 하나의 검초. 그리고 이 검초를 펼칠 검 한 자루.
단천의 검날없는 검이 존재하지 않는 검집에서 느릿하게 뽑혀나오며 그 빛을 뿜어냈다.
그 뒤를 잇는 느릿하기 그지없는 검초.
“미쳤나?”
P04가 혀를 찼다. 대뜸 눈을 감더니 상대도 없는데 제 혼자 느릿하게 검을 움직인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P04가 이를 갈아붙였다. 저토록 느린 움직임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에 P04의 얼굴에 핏줄 하나가 더해졌다.
“이 새끼가!”
P04는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형태로 검을 잡고 휘둘렀다.
쉬이익!
P04의 검격이 BJ천마의 허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런데 기묘했다.
분명 P04 자신의 속도는 BJ천마의 것보다 훨씬 빨랐다.
느릿한 BJ천마의 움직임을 따라 충분히 놈의 몸을 벨 수 있을 속도로 공격을 시전했다.
그런데 BJ천마의 검이. 왜 자신의 공격궤도에 놓여져 있는가.
‘검을 휘두르는 게 빨라졌어?!’
착각이 아니었다. 놀리기라도 하듯 느긋하던 검의 속도가 몇 배나 빨라져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 원래 속도로 검을 베는 것에 불과했지만 첫 속도에 맞춰 공격을 시작한 P04에게는 굼뱅이와 빛과 같은 속도의 차이였다.
이대로 간다면 놈의 검에 몸이 베이고 만다!
‘이. 이런 미친!’
파일로드는 속으로 미친 듯이 검을 내지르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막아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워낙 속도 자체가 빠른 데다가 워썬더가 이미 자신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터어엉!
단천의 검이 향해 날아든 P04의 검을 막아낸 다음.
서걱!
그대로 P04의 몸을 갈라냈다.
[생존자 : 1/100]
[우승하셨습니다!]
“후우.”
집중을 마친 단천이 호흡을 정돈했다. 오랜만에 하는 부동인데도 꽤 잘 먹혀들었다.
“간단한 우승이었군.”
역시 부동신공은 잘 먹혀든다. 하늘에 있는 무명승도 자신의 모습을 보면 흡족함을 느끼리라.
─ 시주. 방금 한 것은 그냥 늦게 움직여 상대를 도발한 다음 상대방에 맞춰 움직이는 평범한 환초이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삼류 잡배도 할 수 있습니다.
─ 그게 금강부동신공의 요결이라니요! 지금 신공을 만드신 달마를 잡배라고 우롱하는 거외까!
─ 달마를 잡배라고 한 건 본승이라니! 이 불경한 자가! 오늘 이 학승이 살계를 열겠소이다!
게거품을 물고 죽자사자 달려들던 무명승을 떠올리던 단천은 채팅을 확인했다.
> 와 ㅋㅋㅋㅋㅋ페이크 지렸다 ㅋㅋㅋㅋㅋ
> 거의 폭포수 커브 ㅋㅋㅋㅋㅋㅋ
> 잡기술로 P04를 따네 ㅋㅋㅋㅋㅋㅋㅋㅋ
> 페이크의 귀재 BJ천마! 페이크의 귀재 BJ천마! 페이크의 귀재 BJ천마!
“잡기술이나 페이크가 아니라 부동이라는 신공절학이니라.”
> 페이크 맞잖아 ㅋㅋㅋㅋㅋ
> 잡기술도 잡기술인데 도발 미쳤다 ㅋㅋㅋㅋ
> 눈앞에서 느릿~~~~하게 칼춤 추는데 어케 참냐고 ㅋㅋㅋㅋㅋㅋ
무공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놈들의 무공 보는 눈은 소림의 무명승과 전혀 다를바가 없다.
무알못이라는 말이다.
채팅창을 향해 불평을 쏟아내려던 단천의 말은 아쉽게도 시작되지 못했다.
[레서애호가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미션금 입금완료]
[미실리II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아니 잡기술로 10만원을 뜯어가네 ㅠㅠㅠㅠ]
불평을 터트리려는 찰나에 무수히 많은 미션금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돈으로 자신들의 무지를 숨기려 하다니. 실로 비겁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논검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법. 후원금 리액션은 지금말고는 할 수 없다. 단천은 논검을 뒤로 미뤄두고 후원금 리액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까딱.
팔짱을 낀 단천의 고개가 평소보다 크게 위아래로 까딱였다. 미션금이 크니 그만큼 큰 리액션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오늘은 평소보다 크게 고개가 움직이는데?
> ㅇㅇ 한 2mm정도 움직인듯? 평소엔 1mm정도인데
> 천마님이!!! 기뻐하신다!!! 공물을 바쳐라!!!
[미션맨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미션비 입금!!!]
> 미션맨 너는 미션 50만원이었잖아ㅋㅋㅋㅋ
> 심지어 선입금했음ㅋㅋㅋㅋ
> 미션맨 : 아몰라!!! 주모 샷따내려!!! 나오늘 집에 안가!!!
그렇게 수없이 많은 후원 메시지의 비 위로. 하나의 후원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일로드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ㅅㅂ 꼼수로 쳐 이겨놓고 개같이 수금하네 더러운 핵쟁이 새끼]
[파일로드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진짜 죽여버림 한번 운으로 이긴거지]
[파일로드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니가 뭐라도 되는 줄 암?]
천원이란 후원 하한 금액으로 여러 번 쏟아지는 메시지. 적나라한 욕설과 함께 쏟아지는 핵쟁이라는 비난.
후원자가 P04라는 것은 거의 확실했다.
하지만 찍혀 있는 이름은 P04가 아닌··· ‘파일로드’의 것이었다.
> 저거 찐 파일로드임?
> ???
> 뭐임 저거
> 다음 번에도 만나? 저새끼가 P04였냐???
채팅창의 시청자들이 후원자의 계정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결론이 나오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아이디 확인해보니까 찐 파일로드인데?
> ???
> 파일로드가 P04였음? 이새끼 핵임?
욕설을 한 후원자의 정체가 진짜 파일로드였다.
다른 익명의 아이디로 욕설 섞인 도네이션을 하려고 하던 ‘파일로드’가 ID를 바꾸는 것을 잊은 채 원 계정으로 후원을 하고 만 것이다.
> 와 인생 레전드네 ㅋㅋㅋㅋㅋㅋ
> 갑질도 하고 익명 아이디로 타 스트리머 욕도 하고 ㅋㅋㅋ
> 거기에 핵까지 씀 ㅋㅋㅋㅋㅋ
채팅창이 파일로드에 대한 비난으로 미친 듯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파일로드. 파일로드. 파일로드···.”
채팅창에 수없이 올라오는 ‘파일로드’라는 닉네임을 바라보던 단천의 입이 열렸다.
“···그게 누구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 ??????
> 파일로드도 몰라???
> 하긴 이사람 파일로드 사건 터지고 유입됐지ㅋㅋㅋㅋ
> 최근에 갑질하다 터진 스트리머 있잖음 ㅋㅋㅋ
“···아.”
채팅을 보던 그제서야 단천은 ‘파일로드’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P04가 파일로드라는 놈이었군.’
파일로드. 풀창고에게도, 이태흠에게도 들었던 이름이다. 이태흠의 말로는 핵 사용자가 거의 확실하다고 했는데. 그 정체가 유명 핵쟁이 P04였을 줄이야.
‘P04를 직접 찾는 수고를 덜었군.’
파일로드는 풀창고와도 안면이 있다. P04를 어떻게 찾을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정체가 알려질 대로 알려진 파일로드라니.
방송을 끈 후 파일로드를 만나면 파일로드에게서 소혼술의 부작용이 터지기 전에 궁금함을 풀 수 있으리라.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징글징글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진짜 왜 그러고 사냐 파일로드 저건 ㅋㅋㅋ]
“···여기까지···.”
[복면의유니콘 님이 7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갑질해서 반성하고 있는 중에 저러다 걸리네 ㅋㅋㅋㅋㅋ]
“···여기까지···.”
[낭만쿠키 님이 15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새끼 복귀하면 쏘려던 돈 여기 쏘고 갑니다. 수고하세요.]
> 방송은 여기까지 뭐?
> 왜 하다 말이 끊김 ㅋㅋㅋㅋㅋㅋㅋ
> 아 후원이 계속 쏟아지는데 후원은 받고 가야지 ㅋㅋㅋㅋㅋ
> 천마수금신공 ㅋㅋㅋㅋㅋ
“···흠. 흐흠.”
파일로드를 욕하는 수없이 많은 후원을 본 단천이 헛기침을 했다.
딱히 후원금이 엄청나게 중요한 건 아니다. 돈은 벌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가만 있는 파일로드가 딱히 도망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후원자들의 메시지들을 보고 가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BJ천마의 방송이 종료된 것은 BJ천마가 방송을 종료하겠다는 말을 꺼내고부터 30분 뒤.
파일로드를 욕하는 후원들의 행렬이 완전히 끝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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