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레일 서바이버 - 1등런 (7)
트인낭의 레일 서바이버 탭.
보통은 자신의 게임을 하기에만 바쁜 인방 탭이지만 오늘만큼은 수많은 스트리머들의 관심이 자신의 게임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게임에 쏠려 있었다.
[BJ천마 vs P04!! 대박 매칭 붙었다!]
[천상계 관전방송! 핵쟁이 vs 개잘핵]
[충격제보) 제가 BJ천마의 제자입니다···.]
그 게임은 바로 혜성같이 등장해서 현재까지 모든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한 ‘BJ천마’와 게임을 좀먹던 핵쟁이들의 스타트인 ‘P04’의 동시매칭.
안 그래도 언급이 많던 두 명의 매치매이킹에 수많은 인방 스트리머들이 BJ천마의 게임을 관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수많은 관전자 가운데서는 풀창고, 정유채, 제로콜이 함께하는. 소위 ‘풀창고 크루’도 끼어 있었다.
“와. 이 오빠. 며칠 됐다고 벌써 그마 매칭이래.”
“명목상으로는 사흘만이지. 실제로 핵 해명을 해야 했던 걸 생각하면 이틀만이고.”
“겨우 이틀만으로 나와 대등한 실력이군요.”
“제로콜아. 지금 길 지나다니는 할아버지 잡아다 게임 시켜도 너보단 잘해.”
“······.”
> 어디 스톤즈가 ㅋㅋㅋㅋ
> 스톤즈의 당당함
채팅창에서 제로콜을 향한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래도 어제 브론즈 승급 할뻔했다고요.”
“그러니까 아직 스톤즈란 이야기잖아.”
“브론즈 진이라고 해 주세요. 진짜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거라서···.”
““네다스.””
> 엌ㅋㅋㅋㅋ
> 스톤즈는 인권도 없냐 ㅠㅠㅠㅠ
> 응 없어
> 근데 그러고 보니 제로콜도 풀창고도 BJ천마랑 안면 있는 사이 아님?
> 어떻게 알게 된 사이임?
“아. 저도 안면 있어요.”
정유채가 손을 들며 쾌활하게 이야기했다.
채팅창에서 BJ천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언제쯤 이야기해야 되려나.’
풀창고는 BJ천마가 레일 서바이버를 시작하고부터 쭉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이미 단천에게는 언제건 이야기를 꺼내도 상관없다는 허락을 받아 놓은 상황.
BJ천마가 돈낳대에 풀창고 크루로 참여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베스트 타이밍은···.
‘이 매치가 끝난 직후.’
P04와 BJ천마가 매치에 잡혀있는 지금. 이 매치에서 BJ천마가 이긴 영입 소식을 알리면 될 터였다.
‘···그러고보니. 천마 형이 질 경우도 생각해야 했네.’
문득 그제서야 자신이 BJ천마가 질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풀창고는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 안의 BJ천마는 플레이어들은 여느 때처럼 도살하고 있었다.
BJ천마는 보기만 해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누구에게나 준다.
“···당연히 이기겠지.”
그리고 아마. 그 예측은 현실이 될 터였다.
***
지이잉! 광선검이 앞을 가로막는 적을 베어갈랐다.
[BJ천마님이 봄감자러버 처치!]
“후우.”
주변에 더 남은 적은 없다. 게임을 시작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지역 세 개를 털었다. 이전의 게임을 모두 생각해도 가장 빠른 페이스였다.
단천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스테미너에 신경쓰지 않고 다소 무리한 까닭이었다.
핵 유저들이 있으면 게임의 템포는 극도로 빨라진다. 핵 플레이어에게 당하기도 하고, 스스로 죽는 것을 선택하는 유저들이 많기 때문이다.
템포가 빠른 만큼 아이템의 가치는 동 시간대에 비해 높아진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아이템들을 확보해 둬야 했다.
그 까닭에 단천은 마을을 돌며 플레이어들을 빠른 템포로 도살해냈다.
> 뭔 다른 플레이어들 죽이는 속도가 핵 유저랑 비슷하냐 ㅋㅋㅋㅋ
> 아니 진짜 이사람 핵 맞다니까? 검사가 잘못된 거라니까?
채팅창에서 터져나오는 경악들을 뒤로한 채 단천은 자신의 몸에 힐팩을 꽂아넣었다. 체력은 거의 상하지 않았지만 부족한 스테미너가 빠르게 차올랐다.
“···킬 로그가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군.”
단천은 게임 로그를 띄웠다. 남은 플레이어의 수는 단 두 명. 게임이 시작된 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평균적인 레일 서바이버 경기시간에 비한다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시간. 심지어 핵 유저들이 끼었을 때에도 이 정도로 빠르게 플레이어의 수가 줄어든 적은 없었다.
“P04라는 놈. 위명이 아무 쓸모없는 건 아닌 모양이군.”
핵 사용을 오래한 만큼 노하우가 있기는 할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P04의 속도는 빠르다. 몇 번이고 핵을 상대해 온 자신의 판단이니 틀림없다.
그렇다는 건 P04가 사용하는 버전이 1.5버전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아마 닷 헬퍼인가 뭔가 하는 게 2버전이 나온 모양이다.”
> 아니 1.5도 거지같은데 2가 나온다고?
> 하인라인 빨리 나오라고 이대로면 게임 망한다고
> 레일 서바이버는 망했어! 이제부터 이곳은 우리 캬루단이 접수한다!
> 망조의 짐승 ON
걱정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채팅창. 1.5버전으로도 상대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데 나오는 게 2.0 버전이 존재한다니. 레일 서바이버의 유저들이 절망에 잠기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단천은 별 생각이 없었다. 아니, 별 생각이 없다기보다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자신의 오감 하나하나를 곤두세우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기에.
천단공이 자리잡기 시작해 민감해진 감각은, 거미줄처럼 주변의 반응을 증폭시켜 받아들였다.
그 길다란 거미줄의 끝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먹잇감이 도착했다는 신호다.
“놈이 오고 있군.”
>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스피드핵이 자연스럽게 동반하는 모래폭풍이 보이지 않았기에 채팅창은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하지만 시청자들도 확인할 수 있는 모래폭풍이 보이기 시작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콰드드드드!
벼락과 같은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한 플레이어. 놈이 P04라는 것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둘의 간격이 줄어들었다.
“반갑군. 핵쟁이 나으리?”
“나는 핵 유저가 아니다. 네놈과는 다르게.”
“어련하시겠어.”
P04의 목소리는 가벼운 변조가 들어 있었다. 모델링된 얼굴의 형태도 부자연스러웠다. 아마 둘 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리라.
‘인피면구 정도야 특이할 일도 아니지.’
천마신교에서 임무를 하다 보면 인피면구를 써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던 탓에 단천은 저런 자연스럽지 못한 얼굴을 읽어낼 수 있었다.
물론 갑갑해 보인다는 이유로 단천이 인피면구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보다.’
P04의 얼굴과 혈색이 이상했다. 붉게 꿈틀거리는 얼굴의 핏줄들. 충혈된 눈. 흘러내리는 침까지.
> 으 ㅅㅂ 저거 도대체 뭐임
> 얼굴 왜저럼? 병 걸린 거임?
> 약 한 것 같은데;;
> 진짜 가지가지 하네
모델링이 저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단천이 알아챘을 테니까.
그렇다는 건, 저런 비정상적인 모습이 모니터 너머의 P04에게도 펼쳐지고 있다는 뜻.
뭔가 불법적인 약물을 도핑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단천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약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소혼술.’
혈교血敎의 소혼술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단천의 정수리에서 찌릿함이 느껴졌다.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원초의 망령을 상대할 때도 비슷하게 느꼈던 그 느낌.
다른 것이 있다면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만났던 ‘원초의 망령’이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면 지금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P04의 경우에는 사람이라는 것.
‘···제대로 수련을 하지 않고 소혼술을 받으면 저 모양이 되는데.’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을 그냥 집어넘기기에 상단전을 뚫은 단천의 감은 심각할 정도로 좋은 편이었다.
단천이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동안 P04는 품 안에서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지잉.
단천의 것과 같은 광선검이었다.
슈확!
P04가 만들어내는 광선검의 궤적이 단천을 향해 쏘아졌다.
단천의 몸은 즉각 반응했지만. 단천의 몸이 만들어낼 수 있는 속도는 너무나도 느렸다.
서걱!
단천의 팔에 자그마한 상처가 만들어졌다. 놀라움에 단천의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
“어때? 내 워 썬더는? 죽여주지?”
“···워 썬더가 아니라 뇌명검.”
“뭐?”
“···아니다.”
단순하고, 빠르면서도, 상대로 하여금 피하기 괴롭도록 하는 곳을 점하고 들어오는 일격.
한 초식만을 봤을 뿐이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P04가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뇌명검의 검식劍式이다.
촤자자자작!
뒤이어지는 뇌명검의 초식이 단천의 몸을 베어 가르기 시작했다.
단천의 눈은 P04의 공격을 눈으로 좇을 수 있었다. 반응또한 전혀 느리지 않다. 하지만 몸은 아니다. 자신의 몸은 칠대천마의 몸이 아니라 레일 서바이버에서 주어지는 속도가 정해져 있는 느린 몸일 뿐이다.
단천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몸을 비틀어 치명상을 입지 않는 것 정도뿐이었다.
> 쟤는 뭔데 계속 핵쓴데?
> 뭐 눈엔 뭐만 보임
> 직원 모니터링 안함? 제재 바로 안 됨?
‘확실히 위험하군.’
뇌명공은 본래 반쪽짜리 무공이었다. 그저 빠르게 움직여 무기를 흔들어대기만 하는 무공.
하지만 이 무공은 이 무공에 걸맞는 초식을 만들어낸 자에 의해 그 지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구결밖에 없던 반쪽짜리 무공은 초식을 얻고 나서 뇌명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뇌명공에 어울리는 초식을 만들어낸 자의 이름은 질풍신뢰 여연결.
혈귀단의 대원 중 한 명이자.
···혈교와의 전쟁에서 가장 처음 목숨을 잃었던 대원의 이름이다.
“내 워 썬더는 완벽하다! 스피드핵을 써도 적을 완벽하게 베어낼 수 있지! 스피드 핵을 쓰지도 못하는 네놈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말이다!”
“네 말은 틀렸다.”
“뭐?”
그 무공은 ‘워 썬더’ 따위가 아니라 뇌명검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공이다. 그리고 그 무공은 네놈의 것이 아니라 혈귀단의 단원인 여연결의 무공이다.
이런 말들은 굳이 입 밖에 뱉지 않았다. 놈에게 말해 봤자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타오르는 분노도 머릿속 안에 잠재웠다. 분노가 눈을 가리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무인의 기본이기에.
그저 깊게 침잠하며. 깊은 대양의 심해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유지할 뿐.
다만. 한 마디만은 해야 했다.
“고작 뇌명검 따위로 본좌와 겨루려 하는 건. 천만년은 이르다.”
“크하하! 이 병신새끼가! 넌 못 이겨!”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었다. 현실로 보여주면 그뿐이니까.
단천은 몸에 힐링팩을 박아넣었다. 출혈량이 너무 커서 힐링팩의 회복량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지경이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뇌명검은 극에 이른 쾌검식이다. 한 합 한 합에 목숨을 거는 쾌검식의 특성상 제대로 대처한다면 한 호흡으로도 결착을 낼 수 있다.
다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이 둔해 빠진 몸뚱아리로 뇌명검을 제압할 수 있는 무공이 무엇이 있는가.
상대는 빠르다. 상대는 자신보다 먼저 움직인다.
그런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
‘상대보다 느리게 움직이며, 상대보다 늦게 움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보다 앞서가 상대를 제압하는 무공.’
이러한 부조리를 조리로 만드는 무공은 중원천지에 단 하나뿐이다.
‘···금강부동신공.’
단천이 들고 있던 광선검의 전원이 꺼졌다. 단천은 빛을 잃은 광선검의 손잡이를 허리춤에 가져다 댔다.
검집도, 검날도 없었으나.
누가 봐도 감탄할 것이 틀림없는 깔끔한 발도發刀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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