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레일 서바이버 - 1등런 (5)
[코리안킬러가 피사체 처치!]
[코리안킬러가 홀럭셤즈 처치!]
[코리안킬러가 기어골렘 처치!]
[코리안킬러가 키위나무 처치!]
단천이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는 중에 빠르게 킬 로그가 올라갔다.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속도로 올라가는 킬 로그.
> ㅅㅂ 핵이네
> 킬로그 보면 1.5버전인가봄
> 저런 놈들은 대체 왜 사냐?
명백하기 그지 없는 핵 사용에 채팅창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게임 스트리밍의 시청자라고 해서 모두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레일 서바이버를 하건 하지 않건 핵 유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콜라는제로콜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진짜 뚜껑 따버리고 싶네 ㄹㅇ]
[뀽낑꺙낑꺙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만악의 근원인 ㅅㄲ들]
핵에 대한 불평불만이 섞인 후원들도 함께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천의 표정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렇든 저렇든 핵을 만나야 한다면 일찍 만나는 것이 좋았다.
“와. 진짜. 저렇게 비겁하게 게임하는 놈들은 왜 살지.”
단천의 손에 들려있는 페리오가 중얼거렸다.
> 니가 할 말이냐 ㅋㅋㅋㅋㅋ
> 양심 없음???
>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ㅋㅋㅋㅋ
단천도 물끄러미 페리오를 노려봤다.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의 의미를 꺠달았는지 페리오가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왜. 뭐요. 저는 저격은 했지만 그래도 핵은 안 썼다고요. 굳이 따져야 된다면 겨 묻은 개 정도잖아요. 선은 안 넘은 나쁜놈이랄까.”
[미션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격러 바닥에 내리치면 1회당 천원]
꽝!
“케흑!”
단천은 주저 없이 페리오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한 번으로 끝나면 안 된다. 연속해서 페리오의 머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쳐박히기 시작했다.
꽝! 꽝! 꽝! 꽝!
“켁! 케흑! 끄헥! 히엑!”
참혹한 목소리가 연속해서 울려퍼졌다. 그렇게 얼마나 바닥에 머리를 꽂혔을까.
“생각해보니 저는 그냥 죽일놈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안다니 다행이군.”
> ㅋㅋㅋㅋㅋㅋㅋ
> 더해 더 정신차릴때까지 맞아야지 ㅋㅋㅋㅋㅋ
[미션맨 님이 5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어휴 저 밉상]
뿌듯하게 수금을 완료한 단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정도라면 저격이 계속 들어와도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앞으로도 자주 저격 부탁한다.”
“절대. 절대. 절대 저격 안 하겠습니다.”
> 저격역전세계냐고 ㅋㅋㅋㅋㅋㅋ
> 스트리머가 저격해달라고 부탁하는건 살다살다 처음이네 ㅋㅋㅋ
핵 사용으로 불타오르던 채팅창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렸다. 분위기는 가벼운 게 좋다. 무겁거나 진지하게 분노하는 것은 방송에도, 시청자들에게도 좋지 않다.
결국 게임 방송은 즐겁기 위해서 보는 것이니까. 무공 수련과 똑같이 말이다.
단천의 리액션 덕분에 모두가 즐겁게 방송을 볼 수 있게 됐다.
꽝! 꽝!
“크흑흑···.”
사실 딱 한 명만 빼고 모두가 즐거웠지만, 사사오입을 한다면 1은 0인 법. 그러니 모두가 즐겁다고 하기에 충분했다.
[코리안킬러가 와썹맨 처치!]
계속해서 빠르게 올라가던 킬 로그가 한 순간 멈췄다.
[남은 플레이어 수 : 3/100]
“거의 다 죽었나 보군.”
핵 사용 플레이어인 ‘코리안킬러’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거의 모두 도살한 모양이다. 죽일 사람이 없으니 더 이상 킬 로그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게임을 시작한 지 몇 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 모양이라니.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필요는 없었다.
콰과과과!
저 멀리서, 거대한 모래폭풍과 함께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핵쟁이네
> 떴닼ㅋㅋㅋㅋ
> 1.5버전이 첫판부터 걸리냐 운도 없지
엄청난 속도로 단천을 향해 달려오는 핵 유저가 보였다.
저런 속도로 움직인다면 정상적인 유저는 눈으로 좇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확실히. 게임을 접는 사람이 늘어날만도 하군.’
게임 유저수가 확연하게 줄어들기 시작한 것도 이해가 됐다. 단순히 에임 핵이라면 상대가 엄청 잘한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저런 눈에 보이는 핵의 경우에는 다르다. 누가 봐도 게임을 망치는 게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행위.
저런 유저가 많아진다면 레일 서바이버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도 이태흠을 비롯한 하인라인 사의 사람들은 모두 저 핵을 잡는데 골머리를 썩고 있었으니.
‘···내가 해 줄 만한 것은 없지만.’
단천도 하인라인사의 엄연한 주주였다. 저런 인간들이 설쳐대서 게임사의 주가가 떨어진다면 단천 입장에서도 손해인 것이다.
허나 단천은 게임의 개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키보드를 열심히 놀려야 된다는 것과 개발자들이 우는 소리를 하는 게 일상이라는 것 정도뿐이었다.
그러니 핵을 어떻게 막아야 된다. 혹은 어떻게 처리하면 된다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게임 개발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 ‘핵쟁이’를 줄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일개 플레이어가 핵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공략은. ‘스핵’ 유저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이다.”
핵을 어떻게 ‘상대하는가’ 정도라면 알려줄 수 있다.
> 오오
> 가즈아ㅏㅏㅏ
> 핵유저 정의구현 간드아아아아아ㅏㅏㅏ!
콰과과과!
“[email protected]
*1*&!!”
핵 유저. ‘코리안킬러’가 BJ천마를 발견하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BJ천마는 침착하게 달려 가까운 엄폐물로 숨어들었다. BJ천마가 숨은 곳은 여러 컨테이너 박스와 차량 잔해들이 모여들어 있는 장소였다.
컨테이너 박스 사이로 들어간 단천의 눈이 빠르게 지형지물을 확인했다.
카가가강!
코리안킬러의 몸이 컨테이너 박스 여기저기에 부딪히며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멀리서 봤을 때와는 달리 전진속도가 확연하개 줄어들어 있었다.
> 왜 나오는게 느리냐?
> ㅁ?ㄹ
무림에서도 쾌快를 중심으로 하는 무공이 꽤 있었다. 그런 쾌검식중에서도 극한으로 빠름만을 추구하는 무공이 있었다.
뇌명공雷鳴功.
번개가 울부짖는 소리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는 이 무공은. 낮은 성취만으로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속도는 초절정의 벽에 이른 고수의 것과도 비견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이런 뇌명공들에도 약점이 있었다.
지금 스피드핵이 보여주게 될 약점과 동일한 약점들 말이다.
“스피드핵의 첫 번째 약점은 바로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면 스스로도 제어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속도를 마냥 올려서는 안 되던 이유와 비슷하다. 속도를 너무 올린 탓에 방향전환이 어려워지고, 방향전환이 어렵다면 골목을 계속 돌아야하는 지형지물에서는 진행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 확실히 스핵 쓰면 컨트롤 힘들긴 하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일반적인 플레이어의 속도보다는 빠르다. 벌려 놨던 거리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골목을 몇 번 돌던 BJ천마의 몸이. 한 순간 코리안킬러의 시야에 들어왔다.
시야에 먹잇감이 등장하자마자 코리안킬러의 몸이 앞으로 날아들었다.
뒤에서 코리안킬러가 날아드는 소리를 들은 BJ천마의 몸이 일순간 달리던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탕탕탕탕탕!
코리안킬러가 들고 있던 권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BJ천마의 몸에 쏟아졌다.
분명히 시야에 제대로 보였는데도 코리안킬러의 공격은 BJ천마의 몸을 겨우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심지어 스쳐지나간 곳도 BJ천마가 방어구를 착용한 장소.
실제적인 데미지는 0이었다.
> 뭐고
> ?? 어케한거임?
“스피드핵의 두 번째 약점은. 갑작스러운 적의 움직임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자신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기에, 순전히 ‘예측’으로만 상대를 공격하려 한다. 이런 예측은 보통은 들어맞는다. 사람의 움직임이라는 것이 원래 거기에서 거기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상대의 움직임에 예측불허한 부분이 섞여들어가 있다면?
아주 약간의 불규칙만으로도 공격은 크게 빗나가게 되는 법이다.
> 오
> 확실히 이리저리 몸 비틀면서 튀고 있을땐 공격 실패율이 높긴 했음
물론 이 상황에서도 코리안킬러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코리안킬러는 자신의 압도적인 상황을 알고 있었다. 공격이 한 번 실패해 봤자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하면 언젠가는 맞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바바바박!
단천의 주변에 코리안킬러가 만들어낸 모래폭풍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당!
모래폭풍 사이에서 날아오기 시작하는 무수한 총알들. 대부분은 빗나갔지만 몇 발은 BJ천마의 몸에 박혀들었다.
거리가 가까운 탓에 코리안킬러의 움직임을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
평범한 유저라면 게임을 욕하고 게임오버를 각오했을 상황이지만.
단천의 눈은 유심히. 상대의 움직임이 만들어나가는 궤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타다다당!
장전이 끝나고 다시 이어지는 일격. 이번에도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너무 많았다. 아마 다음 총격을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 망했네
> ㅅㅂ 핵 진짜 거지같네
> 레일 서바이버 접던지 해야지
“진짜 똥망겜. 천마형님. 그냥 이겜 접고 다른게임 합시다. 제가 좋은 겜 아는데···.”
단천은 주변의 모든 반응을 무시한 채. 코리안킬러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궤적에만 집중했다.
다음 장전이 승부처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
코리안킬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아마 조롱의 말이겠지.
철컥.
그리고 기다리던 장전음. 장전음이 들리자마자 단천의 검. ‘페리오’가 위로 들려올랐다.
파바바바박!
다시 덮쳐드는 코리안킬러의 움직임.
동시에 단천의 검이 아래로 내리꽂혔다.
“!!!!!!”
코리안킬러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쾌속해서 눈으로 쫓을수조차 없는 코리안킬러의 몸을 향해서. 검이 내리꽂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선후의 표현이 잘못됐다. 검이 움직인 것은 분명 코리안킬러 자신이 움직인 것보다 먼저였으니까.
그러니 검이 내리꽂히는 곳을 향해. 코리안킬러 자신의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완벽하게 자신의 움직임이 예측당한 것이다.
“!! [email protected]
#!$!!”
“마지막 약점은.”
콰아아아앙!
코리안킬러의 몸이 페리오에게 부딪혀 거대한 충격음을 만들어냈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으니. 공격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읽기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BJ천마가 코리안킬러 처치!]
> 오늘도 미쳤다 ㅋㅋㅋㅋㅋㅋ
>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내가 레전드다
> 거기 하인라인사죠? 여기 플레이어 핵으로 신고하려고 하는데요? 핵 아니라고요? 뭔 개소리세요?
> 핵 vs 개잘핵··· 가슴이 웅장해진다 정말 ㅋㅋㅋㅋ
후우. 단천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상대가 단순히 ‘스핵’만을 사용하는 유저였다는 점이다.
속도를 기반으로 여러 초식을 곁들이는 뇌명공이었다면 겨우 이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터.
“그래도 우승을 했군.”
단천은 자리에 서서 우승 팡파레가 터져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꽤 오래 기다렸는데도 팡파레는 터져나오지 않았다.
“뭐지.”
> ? 뭐임 이거
> 버그인가
레드 존은 단천이 있는 지역에 걸려 있었다. 지금 단천이 있는 컨테이너 존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평지라 숨을 곳이 없는 장소.
단천의 눈이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했다. 살아남은 인간은 BJ천마 자신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우승이 안 뜨는 거지.”
“그러게요. 이상하네.”
“네가 생각해도 그런가.”
“네. 레드존 데미지도 커서 바깥에는 사람 없을 건데.”
[생존자 수 : 2/100]
그러고 보니. 아까의 생존자 수는 분명히 3명이었다. 1명이 죽었으니 남은 인원은 2명.
그런데 주변에는 아무 사람도 없다. 아무 사람도. 아무 사람도···.
“······.”
“왜 우승로그가 안 뜨지. 핵 썼다고 이러는 건가. 하여간 쓰레기 망겜이라니까.”
단천의 눈이 바닥에 누운 채 중얼거리는 페리오를 바라봤다.
> 아
> 쟤도 플레이어였지 ㅋㅋㅋㅋㅋㅋ
> 상상도 못한 정체 ㅋㅋㅋㅋㅋㅋ
하도 무기로 써 온 탓에 채팅창도, 단천도, 심지어는 페리오 자신조차 페리오가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팔다리가 부러진 채 몽둥이로 쓰이고 있다고 해도 시스템상 페리오도 분명한 플레이어다.
그러니 시스템상 남아 있는 인원은 2. 우승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단천은 말없이 페리오를 들어올렸다.
“···갑자기 절 왜 들어올리시는···아앗!”
그제서야 페리오도 자신이 플레이어였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 뭐가 감사한데 ㅋㅋㅋㅋㅋㅋ
> 하루종일 몽둥이로 휘두르고 다녔는데 감사하대 ㅋㅋㅋㅋ
> 가스라이팅의 표본 ㅋㅋㅋㅋㅋ
> 헤어지려니까 아쉽네 ㅋㅋㅋㅋ
단천은 페리오를 들고 레드존을 향해 걸어갔다. 끝이 다가와서일까. 페리오가 쉴 새 없이 입을 종알거렸다.
“그래도 핵쟁이 처리한거 완전 멋졌습니다!”
“방송 끝나면 후원할게요! 저격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단천도 한 때 에고 소드(ego sword)를 바란 적이 있었다.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주인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무기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써 보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징징거리고, 휘두를 때마다 비명을 내지르기나 하고. 영 별로다.
때로는 꿈일 때에만 아름다운 꿈도 있는 것이다.
레드존에 도착한 단천은 페리오를 바깥을 향해 주저없이 내던졌다.
“안녀어어엉!”
[페리오가 레드존에서 사망했습니다!]
[생존자 : 1/100]
[우승하셨습니다!]
페리오를 바깥에 내던지자 그제야 메시지가 떠올랐다.
BJ천마의 다이아몬드에서의 첫 우승이자. 파죽지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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