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레일 서바이버 - 1등런 (4)
금강부동신공은 소림의 정종무학중 하나다. 금강부동신공은 금강金剛과 부동不動. 두 가지를 모두 손에 넣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금강과 부동 중 ‘금강’은 그 무엇보다도 강인한 외공. 즉 그 어떠한 무기보다도 단단한 신체를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상황만 맞아 떨어진다면 금강부동신공을 익힌 소림승은 무기로서 충분히 쓸만하다는 거다.
실제로도 단천이 백팔나한진을 부술 때 사용했던 무기가 바로 금강나한들이었으니. 그 실용성은 확실히 검증된 셈이다.
여기서 자그마한 응용력을 발휘하면 금강나한이 아니라 몸이 충분히 단단해진 사람도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와아아아!”
파바바바방!
단천은 난잡하게 쏘아지는 수많은 총알들을 ‘페리오’로 막아내며 마지막 저격러를 향해 접근했다.
쉬이익! 페리오의 몸이 공중을 날카롭게 가르고, 페리오의 머리통과 저격러의 머리통이 부딪혔다.
까아아앙!
“끄아아악!”
“크헥!”
머리가 깨지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마지막 저격러가 바닥으로 쓰러져내렸다.
“확실히 몇 번 써 봐도 나쁘지 않은 무기군.”
> 근데 왜 예전에도 써 본 것처럼 말하냐
> 그냥 드립이지 ㅋㅋㅋ
> 근데 임기응변 지렸다 어케 사람을 무기로 쓸 생각을 하냐
[미션맨 님이 6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게 사이다지 ㅋㅋㅋㅋㅋ]
고액의 미션금이 들어왔다. 아까의 미션금이다. 지금 누워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페리오’도 10만원짜리 황금고블린이라는 뜻.
“죽···여···줘···.”
“금방 죽여줄 테니 기다리도록.”
손에 들린 페리오가 신음을 내뱉었다. 팔다리를 부러뜨린 채 묶어놓은 탓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상황.
> 세상을 사는 사람한테는 인권이란 게 있는데요
> 저격러한테 인권이 어딨어!
> 방송 망치러 왔으면 이렇게 될 각오는 하고 왔어야지
> 저격 좀 했다고 저 꼬라지 될 각오를 해야되냐 ㄷㄷㄷ
불쌍하기 그지없는 페리오의 모습에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금방 제압당했지만.
단천은 페리오를 내버려둔 채 시체 파밍을 시작했다. 단천이 건물 밖에 나와서 죽인 유저수는 다섯 명.
등장 확률이 꽤 높은 광선검의 특성상. 아마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에서는 광선검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광선검은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광선검이 하나도 없냐.”
“그게. 광선검 나오면 다 숨겨 버리자고 약속했거든요. 천마님한테 들어가면 게임 터지니까.”
저격러들 입장에서는 BJ천마가 광선검만을 주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이 모두 알려져 있다.
광선검은 평범한 유저들 입장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아이템.
그러니 얻는 즉시 폐기해 버리기로 합의한 것이다.
> 쓰레기들이네 ㄹㅇ
> 근데 광선검 잡기만 하면 게임이 터지니까 문제는 맞지
> 광선검 너프 절실함
“아마 다른 지역에 떨어진 저격러들도 비슷할걸요? 광선검 줍는 대로 폐기하고 있을 거에요. 앞으론 광선검 줍기 좀 힘들어지실 겁니다.”
“저격에 성공한 놈들은 몇 놈 정도지?”
“대략 저희 포함하면 스물쯤 되지 않을까요?”
맵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저격수들이 많지는 않다. 레일 서바이버의 맵 크기를 생각한다면 광선검 몇 개 정도는 남아 있다는 뜻이다. 광선검은 크기도 작고 무게도 거의 나가지 않아서 플레이어들이 버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는 건···.
“저격수가 아닌 플레이어들에게서 광선검을 노려야 한다는 거겠군.”
“아마 그렇겠죠.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페리오가 아부를 시작했다. 저격러들은 다른 스트리머의 방송을 망치게 하는 데서 쾌감을 얻는 종자와 관심을 구걸하는 종자. 두 가지로 나뉜다. 페리오는 전자였다. 잘났다고 나대는 스트리머를 저격해서 죽이는 걸로 쾌감을 얻는 플레이어.
이렇게 묶여있는 채로 있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다른 저격러들은 이미 다른 방송 저격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반면 자신은 여기 묶인 채로 BJ천마가 자신을 죽이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러니 입 발린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헤헤. 저는 곧 죽겠네요. 다시는 천마님 방송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단천은 페리오를 바라봤다. 나노 수트가 모든 총알을 막아내지는 못한다. 실제로 지금 페리오의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출혈 데미지가 더 누적되면 곧 죽을 게 확실한 상황.
고민하던 단천은 힐링팩을 꺼내들었다. 불리한 상황에서 힐링팩은 아껴야 하는 물건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힐링팩은 왜 꺼내드십니까?”
BJ천마가 힐링팩을 꺼내들자 페리오의 두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
“그. 잇몸의 의사도 물어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왜?”
“아···안돼!”
“돼!”
페리오는 결사적으로 죽기 위해 바닥을 굴렀지만, 온 몸이 성치 않은 채로 단천을 피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푸욱! 힐링팩이 페리오의 몸에 박혀들었다. 페리오의 몸에 있던 상처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몇 초가 지나자 완벽하게 회복된 페리오의 몸.
“아악! 날 죽여! 죽이라고! 이 괴물! 악마! 악당! 천마!”
“시간이 되면 죽여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페리오는 묶인 채 어떻게든 죽기 위해 발악해 봤지만 허사였다.
단천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페리오의 팔다리를 부러트렸다.
“크흐흑. 흑흑.”
페리오의 눈에서 회개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내렸다. 자신이 어쩌자고 이 또라이의 방송을 저격할 생각을 했던가. 그냥 평범한 다른 방송을 저격해도 괜찮았을 것을.
> 저격러 참교육 미쳤다 ㅋㅋㅋㅋㅋ
> 아니 이딴식으로 참교육하는건 처음 보네 ㅋㅋㅋ
시청자들의 만족도는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소위 저격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얼마나 스트리머들이 시달려온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BJ의 게임 매칭을 느리게 만들고, 각종 악질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재미없게 하고, 게임 진행을 방해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저격러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BJ천마는 이 저격러들을 단순히 참교육하는 것을 넘어 회개하게 만들고 있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페리오만 해도 눈에서 회개의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고 있지 않은가.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저격 안하겠습니다···.”
“딱히 용서를 빌 필요는 없다. 하고 싶으면 저격을 하도록.”
“안 할게요. 다시는 저격 안 할테니까 죽여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돼.”
> 단호한거봐 ㅋㅋㅋㅋㅋㅋ
> 단호함이 거의 마법의 소라고동 ㅋㅋㅋㅋ
“약자는 강자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강호의 논리인 약육강식弱肉强食. 억울하다면 강해지도록.”
“으흑흑··· 흑흑···.”
페리오는 눈물을 질질 흘리며 앞으로 죽어도 BJ천마의 방송을 저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단천은 남의 회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렇게 방어구 파밍과 무기 수리를 끝낸 단천은 다음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이아몬드 이상 티어가 어렵다고 하더니.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군.”
> 니가 이상한거에요 ㅋㅋㅋㅋ
> 저격러들은 그저 다이아 헬게이트의 최약체일 뿐···!
> 저격한 놈들 아이디 보니까 죄다 한가닥씩 하는 놈들인데 그냥 잡아버리네;
BJ천마의 말에 채팅창에서 난리가 났다.
여기는 다이아몬드 티어다. 다이아몬드 티어에서의 저격러들도 당연히 다이아몬드 이상의 티어를 가지고 있는 유저들.
그 나름대로 레일 서바이버에서는 난다긴다하는 유저들인 것이다.
그런데 BJ천마는 그런 다이아몬드 저격 유저들에게 둘러쌓인 채로 시작해서 일방적인 도살을 끝내고. 지금 와서는 그 도살이 쉽다고 하는 지경.
> 재능 없는 사람들은 웁니다
> 근데 뭐 다이아는 1등 무조건 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
> 사실 좀 힘들긴 하지
> 시간 낭비도 많이 해서 템파밍도 못 했고, 아무래도 다이아가 지금 워낙 개판이라
채팅창에서 쏟아지는 찬양과 부러움 사이사이로. 여전히 걱정하는 채팅들도 올라오고 있었다.
BJ천마가 다이아몬드 이상 티어 유저조차 압도하는 실력이라는 것은 몇십 번은 증명됐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레일 서바이버는 압도적인 실력만으로는 1위를 차지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게 문제였다.
> 핵 유저 없기를 기도해야지 뭐
> 핵한테 지면 그래도 나중에 점수 돌려주니까 그거 믿고 가야지 뭐
핵 이야기가 채팅창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인라인의 사장인 이태흠에게도 들었던 이야기다.
레일 서바이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핵은 역시나 ‘에임 핵’이다. 상대의 몸을 무조건 맞출 수 있도록 신체를 강제적으로 조절하는 핵.
지금 가장 핫한 핵 프로그램인 ‘닷 헬퍼’의 첫 번째 버전이 바로 이 에임 핵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FPS 게임에서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맞도록 하게 하는 조준은 게임 자체가 거의 성립하지 않도록 할 정도로 커다란 문제다.
물론 레일 서바이버에서도 프로급의 실력자들은 자체적인 사격 실력만으로도 사실상의 에임 핵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은엄폐, 파밍경로, 심리전 등으로 헬퍼 유저들을 이기는 것이 가능했다.
이런 파훼법또한 찾아내는 것이 바로 게이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핵은 그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 ···에임 핵으로 끝나면 좋겠는데
> 1.5버전 본 적 없음?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 닷 헬퍼의 개선버전인 1.5버전.
이 버전에서는 기존에 있던 에임핵에 더해 ‘속도 핵’ 소위 ‘스핵’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속도가 정해져 있는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뛰어넘어 극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방을 유린하고 도살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 그나마 다행인 게 핵이 비싸서 ㅇㅇ
> 닷헬퍼 1.5가 천만원선에서 거래된다더라 ㅋㅋㅋ
> 괴담으로는 2.0 나왔다는 소문도 있던데
> ㅋㅋ 그건 개소리고
> 1.5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지옥임
채팅창에서 레일 서바이버에 대한 토로가 이어졌다.
> 아무튼 핵 사용자들 한판에 두세 명은 있으니까 걔들 있으면 우승은 물 건너가는 거임
> 그래도 게임 끝나고 제재하면 1등으로 쳐 주니까 1등은 가능하지
> ㅇㅇ 그거 생각하면 연속1등 쌉가능
“그런 건 1등이 아니다.”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던 단천의 입이 열렸다.
“천하제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 ? 뭔 갑자기 천하제일?
> 천마님이 천하제일인 이야기하는게 꼽냐?
“천하제일은. 상대가 사공을 쓰건, 마공을 쓰건, 사술을 쓰건 상관없이 모조리 이길 수 있기에 천하제일인 것이다.”
지금의 핵 사용은 일종의 마공이다. 중원으로 치자면 흡성대법이나 채음보양, 혹은 이성을 팔아 힘을 얻는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무공들.
단천은 상대가 무슨 무공을 쓰건 무슨 비열한 수를 쓰건 이겨왔다. 소림의 백팔나한이 백팔나한진을 쓰고 덤벼왔을 때도 한 마디도 비겁하다는 욕을 하지 않았다.
혈귀단 시절 자신의 부관인 서윤학이 자신의 반대파에게 납치되었을 때도. 단천은 그저 묵묵히 싸움을 걸어오는 자들을 베어넘겼을 따름이다.
─ 단주! 나는 상관말고 이 놈들을 베어버리시게!
─ 아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 분명 상관 말라고는 하긴 했는데. 그 말이 그 말이 아니잖소!
─ 비도를 왜 나에게 던지는 건가! 단주! 나는 인질이외다!
─ 인질이 죽으면 인질이 사라지니 괜찮다니! 혈귀단! 단주 따라 비도 던지지 마! 이 미친 자식들아아아!
서윤학의 죽음마저도 불사하던 충심忠心을 잠시 떠올리던 단천의 마음이 다시 확고해졌다.
그놈의 닷 핵인지 뭔지. 사이하고 옳지 않은 방법이지만. 천하제일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마저도 이길 수 있어야 하는 법.
“핵 유저 놈. 만나면 본좌가 찢어 버리도록 하지.”
당당한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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