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레일 서바이버 - 1등런 (3)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메시지. 전기화된 단천의 몸이 빠르게 바닥을 향해 낙하했다.
> 이번에도 가만히 있네
> 다 전략이라고 ㅋㅋ
레일 서바이버의 스폰 장소는 일정 범위 내에서 플레이어가 고를 수 있다. 게임이 시작되고 전기화가 풀리기 전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식인 것이다.
하지만 단천은 한 번도 기본 스폰 지역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맵에 몇 군데 정해져 있는 기본 스폰 지역은 상대적으로 스폰 아이템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망스럽게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다닐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다 죽이면 이기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파스스스!
전기화된 단천의 몸이 다시 사람의 몸으로 화했다. 여기까지는 이전과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오!”
“걸렸다!”
“천─하!”
“끼얏호우!”
단천 주변에서 인사를 건내는 예닐곱 명의 플레이어들. 바로 파밍을 시작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거의 10명이나 되는 숫자다.
평소의 기본 리스폰 지역에 두세 명이 있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들의 정체는 물론 저격러들이다.
“야! 빨리 파밍해!”
“고고고고고!”
> 극혐이네 진짜 ㅋㅋㅋㅋ
저격러들이라면 BJ천마의 컨트롤은 이미 질리도록 알고 있다. 맨몸으로 붙는다면 전혀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저격러들이 재빠르게 아이템 파밍을 하기 위해서 흩어졌다.
단천도 가장 가까운 보금품 상자를 향해 움직였다.
+
【청바지】
【AUG-샷건】
+
“쓸모있는 것 하나와 쓸모없는 것 하나. 꽤 좋은 시작이군.”
> 쓸모있는 것(청바지)
>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줌
> 하긴 인간으로서 빤쓰만 입고 다닐 수는 없지 풀창고도 아니고
더 이상 총을 안 줍는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 시청자들이었다. 반복된 학습은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법. 훌륭하게 사회화를 마친 시청자들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단천은 바로 다음 보금품 상자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남아 있는 박스는 없었다.
이미 저격러들의 파밍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려고!”
“히히힛! 못가!”
레일 서바이버의 최강급 방어구 ‘나노 수트’를 입고 있는 저격러와 기관단총 ‘AK-75’를 들고 있는 저격러.
AK-75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바로 저 ‘나노 수트’다.
아이템 박스에서 희귀한 확률로 나오는 나노 수트는 웬만한 공격들을 모두 방어해낸다. 공격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까닭에 총의 데미지도 거의 대부분 경감해낸다.
> 나노수트 맨몸으로 상대하긴 좀 빡센데
> 저거 사기템임 잡기도 어려운데 죽여봤자 파밍도 못하고
> 일단 ㅌㅌㅌ
앞에서 한 명이 달려드는 것을 견제하고 후방에서 원거리 사격을 지원하는 형태.
전형적인 합격진이다.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상대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는 조합.
원래라면 잠시 몸을 피해 대처할 수단을 강구하는 게 옳겠으나.
[미션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짜증나는 저격러들 죽이면 1인당 10만원.]
‘그럴 수는 없지.’
때마침 미션이 들어왔다. 물론 미션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도망칠 생각은 없었지만.
호흡을 고른 단천의 몸이 앞을 향해 돌진했다.
타다다당!
뒤에 있는 저격러의 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총알을 발사했다. 몇 발의 총알이 BJ천마의 몸에 박혀들었다. 몸에서 피가 튀겨나왔다.
하지만 박혀든 총알 중에 치명타는 없었다. 몸을 숙인채 십자로 가드를 올리기도 했거니와 총구의 방향을 보고 몸을 비튼 덕분이었다.
“뭔데 총알 맞고도 사냐?”
“계속 쏴!”
“알았어!”
앞에 서 있는 가드 역할의 저격러가 소리쳤다.
타다다당!
총격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이전만큼의 총알이 BJ천마에게 닿지는 않았다.
반이 넘는 총알이 BJ천마가 아니라 나노수트를 입은 플레이어에게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단천은 교묘하게 나노수트를 입은 플레이어가 자신과 자동소총을 든 플레이어 사이에 위치하도록 움직이고 있었다.
실로 적절하기 그지없는 위치 선정.
“야! 뭐 해!”
“니가 지금 총 쏘는 걸 막고 있잖아!”
화가 나서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두 명. 터더덕! 하고 총알이 멎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장전이 필요하다는 의미.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단천의 몸이 나노수트를 입고 있는 저격러의 몸으로 달려들었다.
“뭐야! 덤비려고? 이거 방탄 수트야 이 새끼야!”
막무가내로 주먹을 날리는 저격러. 단천은 가벼운 몸짓으로 나노수트맨의 주먹을 받아냈다.
주먹을 받아낸 단천이 남자의 팔다리를 뱀처럼 꼬아올랐다.
“확실히. 지금 상태로는 처리하기 좀 까다롭긴 하지.”
“뭐, 뭐야!”
“장전 완료!”
“야! 쏴! 빨리!”
타다다다당!
다시 쏘아지는 자동소총의 발포음. 하지만 이번에는 단 한 발도 BJ천마에게 닿지 못했다.
카가가가강!
BJ천마가 나노수트맨의 관절을 움직여 막아낸 탓에 총알이 모두 나노수트맨의 몸에 박혀들었기 때문이다.
“끄에에엑!”
총알을 대신 뒤집어쓴 나노수트맨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올랐다.
“야! 빨리 떨궈! 뭐 해!”
“그러고 싶은데 팔이 안 움직여!”
“팔에 총알이 그리 박혀들었으니 안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지.”
나노수트의 방어력은 단천도 잘 알고 있다. 10번의 경기를 하면서 몇 번 봤으니까. 저 나노수트가 한 곳에 공격을 여러 번 당하면 약해진다는 것도. 나노수트는 재생되지만 그 안의 상처까지 재생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게 경험에서 배운다는 거지.”
단천은 나노수트맨의 몸을 밀어내며 총을 들고 있는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타다다다당!
발악하듯 총알이 계속해서 발포되었지만 모조리 나노수트에 막혀 BJ천마에게는 닿지 못했다.
“미, 밀지마! 밀지마!”
“오, 오지마! 내게 다가오지 말란 말이다아아앗!”
> 고기방패 성능 확실하네 ㅋㅋㅋㅋ
> 어허. 고기방패가 아니라 ‘전술적 임시 방어구’라고 불러라.
적당히 거리가 줄어들자 단천의 몸이 자동소총을 쏘던 남자의 몸을 덮쳤다.
“합격술이 서투르군.”
솔로 큐의 저격러들은 대부분 혼자서 저격을 실행한다. 게다가 보통은 스트리머와 1:1 상황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
그러니 함께 움직여서 한 명을 제압하는 합격술에 서투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 번에는 합격술을 더 갈고닦을 수 있도록.”
“안돼! 이렇게 끝날 순 없─!”
우드득!
총만 들고 달려와서 다른 아이템은 하나도 없던 저격러의 몸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와··· 진짜···.”
나노수트맨. 플레이어 ‘페리오’는 새삼 BJ천마의 실력에 새삼스럽게 감탄하고 있었다.
“뭘 감탄하고 있나.”
“천마님! 팬입니다. 영상으로 볼 때도 잘한다 싶었는데 실제로 당해보니 훨씬 더 잘하시네요.”
> 아부 ON ㅋㅋㅋㅋ
> 뭐 나도 천마님 겜 하다 돌리면 말 많아지긴 할 것 같음
> 반발 찍찍 싸더니 존댓말 술술 나오네 ㅋㅋㅋㅋㅋ
> 예절주입 대성공
단천은 무덤덤하게 쓰러진 저격러의 아이템을 확인했다.
+
【파워 건틀릿】
【힐 팩x2】
+
당연하게도 광선검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팔의 근육을 올려 주는 파워 건틀릿과 힐팩이 전부.
파워 건틀릿으로 올라가는 근력은 상당한 편이지만 방어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총을 막아낼 수단이 전혀 없는 상태.
단천은 파워 건틀릿을 장착한 채 힐팩 하나를 몸에 꽂아넣었다.
기분좋은 느낌과 함께 줄어들었던 체력이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군.”
“역시 상황 판단이 빠르십니다. 헤헤.”
지금 단천이 있는 곳은 건물 안. 두 놈을 상대한다고 시간을 지체했다. 건물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보니 나머지 저격러들이 입구를 에워싸고 자신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어느 구멍으로 나가시든 나가자마자 총알 세례가 쏟아질 겁니다. 저격러들 중에 모니터링 프로그램 돌리는 놈이 한 놈 있거든요. 아! 저는 모니터링 안 합니다! 저는 양심이 있는 저격러거든요!”
> 저격러한테 양심이 어딨어
> 자기합리화 오지네
쫑알쫑알거리는 페리오의 말을 들으며 단천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래도 천마님. 여기 무기가 아무것도 없는데 총을 쓰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막말로 총 실력도 보고 싶은데.”
파밍을 시작한 장소가 워낙 조그마한 건물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무기는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방금 죽인 저격러가 쓰던 자동소총 하나가 전부.
광선검이 없다면 맨몸으로 계속해서 싸워왔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새 무기를 쓰는 수밖에.”
> 드디어 처음으로 검 아닌 새 무기 쓰냐?
> 왜 전에 수류탄 썼었잖아
> 수류탄이 아니라 비도였음 ㅡㅡ
> 수류탄 언제 씀? 비도였는데??
단천은 자신의 앞에 있는 무기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무기는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예전에도 몇 번 써 본 적이 있는 무기라는 점이었다.
***
“대기대기대기!”
“파밍 다 끝났지?”
“언제 나오냐?”
저격러들은 BJ천마가 들어가 있는 집 앞을 에워싸고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화면 확인하고 있는 놈 있냐?”
“어 나 지금 보고 있는 중!”
“어디로 나오려고 하냐? 뒷문? 2층 창문?”
“···정문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정문? 야! 정문이랜다!”
“근데 뭔가 좀 이상···.”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쓰는 저격러가 말을 이어나가려는 그 순간.
타아앙!
건물의 문이 우렁차게 열렸다. 그리고 나타나는 사람의 형체.
“천마다!”
“쏴라! 쏴! 쏴라!”
순식간에 쏟아지는 수없이 많은 총알들. 거침없이 쏟아진 총알이 순식간에 희뿌연 먼지구름을 만들어냈다.
“그만!”
파밍해온 탄창을 두세개씩 비우고서야 총격이 멈췄다. 발포가 멈추자 희뿌연 먼지구름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킬로그 떴냐?”
“아직 안 뜬 것 같은데?”
“해치웠나?”
불길하기 그지없는 말을 누군가가 꺼낸 순간.
건물의 입구에서 무언가가 저격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 뭐야!”
당혹스러운 음성이 튀어나왔다. 가장 먼저 장전을 끝낸 저격러 ‘교회는영어로’는 바로 달려드는 인간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당!
아무리 날고긴다 해도 지금 BJ천마가 가진 무장은 보잘것없다. 방어구도, 그 사기적인 위용을 뽐내는 광선검도 없는 상황.
그러니 총알을 피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총알을 십수발을 박아넣었는데도 BJ천마의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달려오던 속도가 더 늘어나기까지 한 느낌이다.
‘근데. 저게 뭐지?’
BJ천마로 추정되는 인간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건물 안에 무기는 없었는데. 분명히 있는 거라고는 AK가 전부였는데.
뭔가가 들려 있었다. 커다란 무언가가.
저 무언가가 자신의 총알을 모두 막아낸 것이다.
교회는영어로가 BJ천마가 들고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가온 BJ천마가 손에 들고 있던 무기로 자신의 머리통을 후려갈겼기 때문이다.
뻐어억!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서. 교회는영어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BJ천마의 손에 들려 있는 무기는 바로···
“···인간?”
···인간이었다.
[BJ천마님이 교회는영어로 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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