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43화 (43/212)

10. 레일 서바이버 - 1등런 (2)

단천의 몸이 건물 옥상을 도약했다.

“으아아아아!”

제트팩을 타고 공중에서 지상을 사격하던 플레이어가 총알을 마구 갈겨댔지만 단천의 검이 태반의 총알을 튕겨냈다.

푸욱!

단천의 광선검이 마지막 남은 플레이어의 목을 관통했다.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낙하하는 단천의 눈에.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메시지가 떠올랐다.

[생존자 : 1/100]

[우승하셨습니다!]

“쉽군.”

> 이게임 너무 쉽다

> 이 게임을 이렇게 쉽게 하는 것도 재능이다 ㄹㅇ

단천은 오늘 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5연승을 거뒀다. 이틀 전의 5연승을 합하면 총계 10연승.

100명이서 동시에 경쟁하는 게임에서 10번 연속으로 1위를 거둔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게임에서 총은 단 한 발도 쏘지 않았다. 실로 말이 나오지 않는 성과.

“그런데. 랭크 점수는 언제쯤 나오지?”

> 이제 배치 10판 다 했으니 나올거임

> ㄷㄱㄷㄱㄷㄱ

> 랭크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 같냐?

> 몰?루?

> 대충 플래 스타트 아닐까?

> 플래 나오겠지 100%

보통 레일 서바이버의 프로들이 부캐나 숨겨둔 아이디로 새 배치를 볼 때 나오는 랭크가 플래티넘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BJ천마는 레일 서바이버의 프로들과 적어도 동급의 취급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랭크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장엄한 노래와 함께 들려오는 수많은 기계음. 기계들이 짜맞춰지며 단천의 눈 앞에 커다란 스크린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크린에 떠오르는 글자들.

[배치 랭크 : 다이아몬드 V]

“다이아 5라. 아쉽군.”

> ??

> 배치에 다5가 나온다고?

>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ㅋㅋㅋㅋ

채팅창과 단천의 반응이 엇갈렸다. 배치고사는 원래 처음 온 플레이어들을 적절한 단계에 집어넣기 위한 과정.

그렇기 때문에 일정 랭크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게 만들어져 있다. 한 번의 배치로 높은 랭크를 받을 수 있다면 랭크 자체의 가치가 떨어지니까.

그렇기 때문에 난다긴다고 하는 프로들도 배치고사에서는 모두 플래티넘 등수를 기록했다.

이런저런 실험을 한 유저들이 내린 결론은, 이론상 배치고사로 받을 수 있는 랭크는 다이아5가 한계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이론상’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이론상의 이야기였을 뿐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한 입게임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배치점수를 받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유래없는 랭크를 달성한 상황. 그런데도 단천은 심드렁하게 팔을 꼬았다.

> 리액션이 왜케 심드렁해 ㅋㅋㅋ

> 다5가 아쉬우면 대체 어디쯤 배치되길 바란 건데?

>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듬?

“내 실력을 제대로 봤다면 처음부터 1등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기대 이하로군.”

> 오늘도 열일하는 패기샘

> 패기샘 적출수술 안 되냐?

> 패기가 아니라 사실적시입니다만??

[미션맨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히든미션 : 패기롭게 말하기 성공!]

> 미션 언제 걸렸냐

> 미션 쉽다고 쿠사리먹더니 드립러로 전직한듯

> 드립 한번에 100만원 ㄷㄷㄷ;;;

[짭션맨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히든짭션 : 게임 잘하기 성공!]

미션맨의 후원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후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게임 방송은 게임 중간보다는 이런 임팩트가 있는 순간에 후원이 많이 들어온다.

단천은 눈으로 대충 후원금을 계산하다 계산을 그만뒀다.

어련히 알아서 나오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설마 트인낭같은 대기업이 정산금을 사기칠 리도 없을 터.

만에 하나 사기를 치더라도 직접 찾아가서 해결해 버리면 되는 일이다.

돈에 연연하기보다는 시청자와 소통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새싹 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게임도 재밌어 보이네요! 천마님 따라하면 되죠?]

“그래. 나만 보고 따라한다면 금방 다이아정도는 올 수 있을 거다.”

> 사기ON

> 약팔이 미쳤냐고 ㅋㅋㅋㅋ

> 포브스 선정 뉴비에게 유해한 방송 1위

“쉴 시간 없으니 바로 다음 게임을 들어가도록 하지.”

말을 마친 단천은 바로 다음 게임을 돌렸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게임은 빠르게 잡히지 않았다.

[현재 대기 시간 : 180초]

평소에는 몇 초, 길어도 몇십 초면 잡히던 게임 서칭이 이번에는 분 단위를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매칭이 오래 걸리는군.”

> 아무래도 다이아 매칭이니까.

레일 서바이버의 매칭 시스템은 다이아몬드를 기준으로 벽이 존재한다. 다이아몬드 이하의 유저들은 다이아몬드 이하의 유저끼리만, 다이아몬드 이상의 유저들은 다이아몬드 이상의 유저끼리만 만나게 하는 벽.

> 그래도 다이아 왔으니 계속 1등은 안되겠지?

> ㅇㅇ 다이아 구간은 또 이야기가 다르지

> 진짜 핵 언제잡냐고 ㅋㅋㅋ

이 벽은 레일 서바이버의 랭크게임을 전반적으로 쾌적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고일 대로 고인 유저들과 그 이하의 라이트 플레이어들을 나누는 동시에 승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핵 유저들까지도 갈라 놓는 덕분이다.

그 말은 다이아 이상의 랭크 게임은 이전보다 수준이 현격하게 올라간다는 뜻.

게다가 스트리머라면 한층 더 상황이 안 좋다.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으니까.

> 저격러들 드가자~~ 드가자~~

> 다이아면 사람 숫자 줄어들어서 저격 개쉬움

> 아 ㅋㅋㅋㅋ 이때 아니면 천마님 언제 만나보냐고

바로 저격이다.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고 같은 시간에 큐를 잡아 스트리머를 집요하게 방해하는 유저들.

플래티넘 큐까지가 잡히던 배치 동안은 이 저격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BJ천마의 시청자 수가 중형 스트리머 이상이 되기는 했지만 레일 서바이버의 플레이어 수가 워낙에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장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배치에서 플래티넘 구간. 이 구간에서 저격은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다이아 구간에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절대적인 유저 수가 작아지는 만큼 저격이 성공할 확률이 급등하는 것이다.

> 아 저격 극혐인데

> 왜 저렇게 하는거야 도대체;

채팅창에서 불만스러운 반응들이 튀어나왔다.

저격은 게임 방송. 그 중에서도 특히 실력 방송을 재미없게 만드는 커다란 요인이다.

실력 방송은 스트리머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려고 오는 방송이다.

스트리머의 상황을 다 보면서 게임을 하는 저격 유저들이 오면 스트리머의 실력이 제대로 보여지기가 더 힘들어진다.

> 화면 가리고 돌리자 ㅇㅇㅇ

> 진짜 더러워서 피하고 말지

> 좀 쉬는척 하면서 기습큐 ㄱㄱㄱ

채팅창에서 화면을 가리고 돌리자는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저격을 피하기 위해서 다이아 이상의 스트리머들은 화면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린 다음 매칭 큐를 돌린다.

시청자들도 저격을 피하기 위한 여러 수단들을 용인해 주는 편이다. 미리 준비한 큐 영상 보여주기, 잡담하는 척 하면서 큐 돌리기, 심지어는 다른 나라 서버의 큐를 돌리는 것까지도 용인해 주는 것이다.

> 가림막 설치하고 큐 ㄱㄱㄱ

그렇게 채팅창을 쭉 바라보던 단천의 입에서 단호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싫다.”

> 아니 싫으면 어쩌게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떳떳한 내가 뭘 숨겨야 된다는 말이냐.”

> 아니 똥이 더럽다니까? 똥 던지는걸 그냥 맞으려고?

단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적이 똥을 던지는데 그걸 왜 맞고 있는다는 말인가. 똥을 이화접목으로 막아낸 다음 던진놈을 지옥 끝까지 따라가 추살追殺을 하면 될 것을.

게다가.

“저격러들이 있으면 1등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했지.”

단천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슬슬 심심해지던 참인데. 오히려 좋은 일이지.”

> ‘그 표정’ 입장 ㅋㅋㅋㅋㅋ

> 오히려 좋아 ㅋㅋㅋ

[랭크 게임 검색이 완료되었습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BJ천마의 첫 다이아몬드 랭크 게임이 시작되었다.

***

BJ천마의 방송이 달아오르고 있을 그 시각.

레일 서바이버 어둠의 단톡방도 BJ천마의 단톡방만큼 달아올라 있었다.

익명1 : BJ천마 랭크 시작함

익명2 : 저격 성공한 놈 있냐?

익명3 : ㄲㅂ 일단 우리 팀에서는 없는듯

철저하게 익명으로 운영되는 이 ‘어둠의 단톡방’은 레일 서바이버의 더러운 단면들, 즉 대리, 저격, 핵 프로그램 개발 등의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다.

P04 : 천마 저새끼 핵써놓고 안 잡히는 것 봐 ㅋㅋ

익명5 : 저거 핵임? 검증 본사 가서 했는데

P04 : 본사도 짜고 친거지 ㅋㅋㅋㅋ 저게 핵이 아니냐?

익명6 : 진짜 더럽네 이새끼들 ㅋㅋ 하긴 핵 어차피 못잡는거 저렇게라도 가야지 ㅋㅋㅋ

어둠의 단톡방에서 굉장히 오래 머물러온 소위 네임드 유저 ‘P04’의 말에 수많은 유저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핵 쓰는 새끼가 당당하긴 더럽게 당당해.”

유저 P04. 파일로드는 의자에 드러눕듯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 BJ천마라는 인간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레일 서바이버의 시청자들을 무섭게 흡수해나가고 있었다.

“개 같은 거.”

파일로드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돈낳대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금부터가 레일 서바이버 시청자의 대목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의자에 앉아서 담배나 피우고 있는 꼴이라니.

저 자리는 원래 자신의 것이었는데.

“편집자 그 새끼가 영상만 안 올렸어도.”

으드득. 파일로드의 이가 거칠게 갈렸다. 입금일이 좀 밀리고, 영상 편집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편집자에게 손 좀 댄 걸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터졌다.

어차피 좀 자숙하고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방송을 볼 거면서 더럽게 까탈스럽다.

개돼지 새끼들이. 하고 중얼거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파일로드는 키보드를 세차게 두드렸다.

P04 : BJ천마 시청자 모아봤자 돈낳대도 안 열리니까 거품은 금방 꺼질듯?

익명4 : 돈낳대 열린다던데? 조건부이긴 하지만

“돈낳대가 열린다고?”

파일로드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빠진 탓에 올해의 돈낳대는 건너간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돈낳대가 어떻게 열린단 말인가.

익명5 : ㅇㅇ 저거 BJ천마가 파일로드 짤린 자리 대신해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

익명3 : 거피셜임. 그마인가 챌인가 찍고 들어가는 걸로 소문 도는 중

익명4 : 목표는 1등이라던데?

익명5 : 어그로지 ㅋㅋㅋㅋ 뉴비가 1등을 어케찍어 ㅋㅋㅋ 방송 하루이틀 보냐?

익명1 : 내 아는 스트리머도 들은 모양이더라

익명4 : 주최측에서 BJ천마가 레일 서바이버 시작하기 전에 대충 다 동의 구한 모양이더라고

우드득. 채팅창을 바라보던 파일로드의 주먹이 쥐어졌다. 주먹을 쥔 파일로드의 손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손에서 타고 있던 담배가 손을 지지는데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 이 새끼가.”

논리적으로는 BJ천마가 돈낳대에 들어온다는 것과 파일로드의 분노에는 연관성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파일로드에게 보이는 것은 그저 ‘BJ천마’라는 눈꼴시려운 놈이 원래 자신의 자리여야 할 돈낳대의 풀창고 팀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감히 남의 자리를 넘본다고?”

입술을 피가 나게 깨문 파일로드는 VR캡슐에 누웠다. 저격용으로 사용되는 듀얼 모니터를 실행한 파일로드는 충혈된 눈으로 BJ천마의 게임을 바라봤다.

첫 판은 이미 시작됐으니 저격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다음 판부터는 저격을 할 수 있다. 거기서 실패해도 다음 판이 있다. BJ천마의 등수는 계속해서 올라올 터.

다이아몬드 구간에서의 개인 저격 성공 확률은 비교적 낮다. 상위권 구간에서는 그래도 가장 유저수가 많은 구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일로드에게는 다이아몬드, 마스터, 그랜드마스터 계정이 점수대별로 모두 존재했다.

다른 티어는 몰라도 그랜드마스터 계정에서는 저격이 확실하게 성공할 터.

저격에 성공만 하면.

[닷 헬퍼 Ver 2.00]

얼마 전에 새롭게 받은 닷 헬퍼로 놈을 찢어발겨 주리라. 계속해서. 계속해서.

놈이 결고 바라는 등수를 찍지 못하게.

으드득.

파일로드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캡슐 안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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