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42화 (42/212)

10. 레일 서바이버 - 1등런

황금같은 주말 아침. 서유나는 일어나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주말은 시간이 많고, 서유나가 좋아하는 영상편집도 마음껏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넉넉하다는 건 아니지만. BJ천마의 영상을 업데이트하는 「천마튜브」의 조회수가 요새 부쩍 늘었다.

영상 업로드 주기도 빨라지고 있고, 편집해야 하는 것들도 넘쳐난다.

거기에 서유나는 BJ천마의 플레이를 주중에 모두 볼 수가 없다. 모니터 하나로는 BJ천마의 플레이를 배속으로 보면서 손으로는 작업을 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이슈도 엄청 크게 터졌던데.”

작업을 하던 서유나의 손이 인터넷 뉴스를 확인했다.

[말도 안 되는 실력으로 핵 논란을 종결시킨 BJ천마. 그의 피지컬은 어느 정도?]

[레일 서바이버의 치명적 제재 실수. 절차상의 문제로 제재실수 인정.]

[BJ천마. 실수 있을수 있는 일. 이 일로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

[하인라인사. 사과를 받아주신 BJ천마에게 감사인사 표해. 앞으로는 실수 없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우와.”

뉴스의 게임, 스트리밍 탭이 이번 제재오류 사건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 진짜 이걸 그냥 넘어가주네 ㅋㅋㅋ 대인배 그 자체

└ 나같으면 그냥 사옥 앞에 드러누웠다 ㅋㅋㅋㅋ

└ ㅉㅉ 호구도 아니고 나같으면 이벤트 우선 섭외권 같은 거 받아챙겼다

댓글창은 그냥 넘어가 준 BJ천마에 대한 찬양과 고구마라는 반응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왜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참교육 했습니다.’ 라거나 ‘이길 때까지 시위합니다.’ 같은 썸네일을 달면서 어그로를 끄는 게 보통인데. BJ천마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제재만 풀어달라고 한 게 전부.

그 덕분에 인터넷에서의 BJ천마에 대한 호의감은 맥시멈 수치를 찍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게 정답이었던 걸지도.”

결국 스트리머는 성공이 전부라고 할 수도 있다. 인성이 좋지 않아도 성공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런 ‘매운 맛’ 방송을 즐길 수 있는 시청자들의 총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반면 인성이 되어먹어 있다는 것이 어필이 된다면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방송에 호감을 가지게 된다.

BJ천마가 가지고 있는 ‘반말’이나 ‘오만함’같은 캐릭터성이 기믹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편하다.

방송에서 막말이나 남을 비하하는 게 일상인 연예인이 기부천사란 게 알려진 이후 좋아하는 팬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용서했다면 계산의 신. 진짜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인간으로서 완성된 사람.

어느쪽이건 BJ천마는 대단한 사람인 것이다.

잠시 BJ천마의 대단함을 생각하던 서유나는 BJ천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단천씨. 지금 바쁘세요? 뭐 하고 계세요?”

[뒷산 절벽에 매달려 있습니다. 딱히 바쁘진 않습니다. 통화하기엔 충분합니다.]

“등산 게임이라도 하고 계신 모양이네요.”

아침부터 이렇게 다음 게임을 물색하고 있다니. 역시 스트리머로서 된 사람이다. 절벽 오르는 게임이 그다지 재밌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아. 그보다 인터넷 보셨어요? 지금 사람들 반응 엄청 좋은데. 지금 말랑튜브 시청자 유입도 엄청나요.”

[잘 됐군요.]

“이렇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돼요. 근데 이렇게 물이 들어오는데. 저 혼자서는 노를 젓는데 한계가 있죠. 그래서 말인데···.”

[지난 번에 말씀한 편집자 추가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일정 규모 이상의 말랑튜브는 업로드 주기가 짧다. 게임 스트리머의 말랑튜브는 아무리 적어도 주 4회, 보통은 주 7회, 많게는 주 14회 이상씩도 업로드를 한다.

물론 이런 업로드를 하기 위해서는 편집자가 한 명으로는 안 된다.

지금 상황으로는 최소 두 명. 채널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몇 명은 더 필요한 것이다.

서유나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단천에게 새 편집자가 필요하다고 미리 말해놨었다.

물론 능력 있는 편집자들을 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시일이 걸리긴 할 것이다. 최소한 1,2주 정도는 있어야 새 편집자를 구할 수 있다.

“당분간은 저 혼자 어떻게든 해 볼게요. 최대한 빨리 편집자를 구하면···.”

[구했습니다.]

“구했다고요? 벌써요?”

[네. 두 명 구했습니다. 연락처 드릴 테니 연락해 보도록 하세요.]

단천에게서 연락처를 받은 서유나는 바로 단톡방을 만들었다.

[강한솔, 김진표 님이 초대되었습니다.]

[유미 : 안녕하세요!]

[강한솔 : 안녕하세요]

[김진표 : ···반갑습니다]

[유미 :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강한솔 : 어제까지 하인라인사 팀장 근무를 했던 강한솔입니다.]

[김진표 : 어제까지 하인라인사 대리 근무를 했던 김진표입니다.]

“···하인라인에서 근무를 했다고?”

하인라인이라고 하면 주가가 하늘을 찌르는 대형 게임 기업이다. 그런 게임사에서 하루아침에 스트리머의 편집자를 지원하다니?

잠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던 서유나의 고개가 위아래로 크게 끄덕였다.

이 사람들도 자신처럼 BJ천마한테 매료된 게 분명했다.

아마 대기업에 다니면서 하루하루 살아있기만 한 느낌이었겠지. 확실히 BJ천마의 플레이를 보면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이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하루아침에 1티어 게임사를 관두고 편집자를 한다니. 대단한 결단력이다.

[유미 : 하인라인은 퇴직하신 건가요?]

[강한솔 : 퇴직은 아니고 휴직중입니다]

[유미 : 와. 회사에서 휴직을 받아 주던가요?]

[강한솔 : ···네. 사장님이 바로 수리해 주셨습니다]

“부럽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삼룡전자는 이유 없이 휴직하면 그 날로 바로 사무실 책상을 빼야 하는데.

역시 게임사라 그런지 휴직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문화인 모양이다.

“···그래도 질 수 없지.”

시간적 제약에 매여 있지만, 열정만큼은 자신도 지지 않는다. 서유나는 주먹을 꼭 쥐며 새로운 편집자들보다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

“잘 하고 있으려나.”

산악 훈련을 끝낸 뒤 집에 도착한 단천은 중얼거렸다. 이것저것 협상을 하면서 겸사겸사 데려온 강한솔과 김진표가 떠오른 탓이다.

이태흠의 말로는 둘 다 영상편집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니 기본 실력은 보장돼 있다. 걱정이 되는 건 열심히 하느냐인데···.

“뭐, 하인라인 돌아가려면 열심히 해야지.”

그 두 명의 생사여탈권은 단천에게 있다. 그러니 좋으나 싫어나 영상 편집 퀄리티는 최상으로 유지를 해야 할 터였다.

사실 지금 중요한 건 새로 생긴 편집자 두 명이 아니라 다른 부분들이었다.

가장 먼저, 게임사 「소드아트」에 대한 부분들.

“소드아트 사에 대한 정보는 천천히 모아서 보내준다고 했었지.”

물론 단천이 직접 움직여 정보를 모으는 부분도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의 정보력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노동력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단천의 스타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태흠이 보내준다고 한 스톡옵션 주식들.”

이 스톡옵션 주식들이 사실 메인이다. 혈맹 계약서를 마친 단천은 그 이후 약조한 사과의 표시로 이태흠의 주식을 일정 부분 받아왔다.

이면계약이라 주식의 정식 소유주는 이태흠의 것으로 돼 있긴 하지만, 이 이면계약서는 혈맹 계약서와 달리 터트리는 것 만으로도 이태흠을 CEO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만한 파급력이 존재한다.

그러니 이태흠은 어떻게 됐든 자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현금화하기에는 조금 곤란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여러 모로 운이 좋았다. 중원에서도 소위 꽌시라고 하는 인맥 문화가 정말 중요했다. 한국 사회도 다르지 않다. 결국 인맥은 어디서나 통한다.

등을 맡기지만 않으면 뭐든지 시킬 수 있는 값진 인맥이라는 것은 흔치 않은 법이다.

“거기에 방송도 잘 되고 있지.”

이제 곧 있으면 첫 달 정산금이 나올 것이다. 머릿속으로 자신이 벌어온 돈을 떠올리던 단천은 머리를 긁었다.

액수가 정확히 가늠이 되지 않는 탓이다.

“원래 이런건 죄다 윤학이 놈이 하던 건데.”

계산, 쇼핑, 잡무, 청소 등 뭔가 잡다한 일을 할 때면 항상 서윤학의 빈자리가 느껴지곤 했다.

하다못해 손이 심심할 때 때릴 뒤통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잠시 허전한 공중을 만지작거리던 단천은 다시 원래의 생각으로 돌아왔다.

얼추 계산을 해 봐도 금액이 적지는 않았다. 방송 자금과 하인라인에서 받은 금액을 합하면 지구에 돌아오고 처음 계획했던 선물을 단지은에게 해 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려면 열심히 벌어야겠지.”

돈은 중요하지만 집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천에게 있어서 돈이란 건 목표라기 보다는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던 것이었기에.

지금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자신은 스트리머. 결국 방송을 한다는 것이 메인이다. 지금의 목표는 아득히 멀리 있는 천하통일이나 고금제일이어서는 안 된다.

눈 앞에 있는 사소하고 자그마한 목표들부터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가 볼까.”

마음을 다잡은 단천은 VR캡슐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VR캡슐을 실행합니다.]

[방송을 시작합니다.]

“반갑다. BJ천마다.”

> 방송켰다ㅏㅏㅏㅏ

> 천마 미쳤냐고 ㅋㅋㅋㅋ

> 어제 방송 역대급이었다 ㄹㅇ

> 뉴스보고 왔습니다 여기가 대인배중의 대인배 방송인가요?

> 방송 3사에서도 취재 들어갔더라 ㅋㅋㅋㅋㅋ

단천은 가볍게 인사를 건냈다. 어제의 일에 대해서 물어오는 수많은 채팅들. 하지만 단천은 구태여 반응하지 않았다.

커다란 사건도 중요하다. 하지만 스트리머로서 중요한 것은 결국 하루 방송의 컨텐츠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천하제일이 되고 나서도 하루 수련을 반드시 해야 되는 것처럼.

천하제일이 되기 전에도 매일 이어진 대련을, 천하제일이 되고 나서도 매일같이 대련했던 것처럼.

─ 대련이요? 하루만 쉬면 안 됩니까? 어제 정사대전 끝났는데요. 재밌는 일이 끝났으니 더더욱 대련해야 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 지존. 저 지금 한 달 연속으로 야근중입니다.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대련입니까. 천마위 오르셨으면 좀 쉬엄쉬엄···아악! 천마대! 천마대! 지존을 막아라!

─ ···이렇게 쉽게 천마대와 싸울 수 있다니. 그게 무슨 의미이십니까?

천하제일이 되고서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천마대와 싸워 왔듯이. 스트리머로서의 단천도 오늘 방송, 오늘 하루에 집중한다.

그것이 전부다.

> 오뱅무?

> 오늘의 방송은 무엇?

가볍게 인사를 건낸 단천은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오늘 할 방송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오늘 방송의 목표또한 평소처럼 사소하고 자그맣다.

“오늘의 컨텐츠는 레일 서바이버 1위를 찍기 위해 모든 경기에서 1위를 하는 것이다.”

> 이사람 사건 터지더니 패기 ㅁㅊㄷ

> ? 평소대로의 천마님인데??

> 유입 인증 제대로하네 ㅋㅋㅋ

> 아 이 컨텐츠 발전이 없네 평균등수가 안오르네;

BJ천마의 패기에 순식간에 도배되는 수많은 채팅들.

하지만 며칠 전의 방송과 달리 더 이상 BJ천마가 레일 서바이버 1위를 찍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채팅은 없었다.

'BJ천마가 1위를 찍는 것은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모든 시청자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많은 채팅 뒤로 한 채.

시청자 모두가 고대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랭크 게임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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