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39화 (39/212)

9. 야방 - 게임사 (2)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천-하

> 천하가 아니라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해라

> 옆에는 제로콜 아님?

> 콜라-하이

“휴대폰 화면으로는 채팅창이 올라가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군. 채팅을 읽어 주기 힘들 테니 이해하도록.”

> 원래도 딱히 채팅창 많이 보진 않았잖아

> 오히려 좋아

> 채팅창 안 보면 악성채팅 쌉가능 ㅋㅋㅋ

> 근데 왜 갑자기 야방임?

> 여기 하인라인이네 몇번 와 본 적 있음

“오늘은 하인라인 사에 찾아왔다. 이유는 핵 사용으로 인한 계정 정지 때문이다.”

> 핵썼음?

> ?? 핵씀?

> ?????

채팅창이 ‘핵’이라는 말에 미친 듯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볼 수는 없지만 스트리머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오늘 하루. BJ천마라는 이름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사람들의 입에 무수히 오르내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핵 관련된 구설수에 한 번 휘말리고 나서 재생 불가의 피해를 입은 스트리머도 꽤 있다. 반면 해명 이후 떡상을 한 스트리머도 존재한다.

어떻게 제대로 증명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 회사에서 정지 줬으면 빼박 아님?

“나는 핵 사용을 하지 않았다. 하인라인 사에서 증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니. 충분히 증명하도록 하겠다.”

> 충분히면 얼마나?

“두 번 다시는 본좌가 핵이라 입을 열지 못할 때까지.”

> 패기 돌았냐고 ㅋㅋㅋ

> 오늘도 패기샘 열일중 ㅋㅋㅋ

결백을 증명하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당당함이다. 실제로 결백함을 증명할 때에는 사람들의 인식또한 중요하다.

기껏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는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뒷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천의 태도는 정답이었다. 오만할 정도의 당당함을 보여주는 스트리머를 본다면 저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신뢰를 얻게 될 테니까.

단천은 하인라인 사의 안으로 들어갔다. 단천이 온다는 것이 미리 확인되어 있었는지, 간단한 신분 증명만으로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근데 내부 촬영을 하게 해 주네

> 외부 개방된 부분중에 촬영 가능한 공간들이 있음

> 안에 들어가면 방송 못 하는 거 아님?

“요새는 게임사 관련해서 스트리머들이 촬영도 많이 오니까. 촬영 가능한 장소들이 좀 있죠. 저희가 있는 곳도 그렇고. 아마 검증도 회사 안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하게 될 거에요.”

“꽤 잘 알고 있군.”

“어··· 아는 사람이 물어봐서 조사해 볼 기회가 있었거든요.”

제로콜은 말을 흐렸다. 얼마 전까지 연락하던 파일로드가 물어봐서 관련된 조사를 했던 덕분이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은 제로콜의 말대로 VR기기가 있는 스튜디오였다.

“반갑습니다. 해당 업무 관련 팀장인 강한솔이라고 합니다.”

전형적인 비지니스식 미소를 지으며 강한솔이 인사를 건내왔다.

“그보다. 핵 사용자라고 정지를 주셨던데.”

“···그렇습니다. 실제로 증거도 꽤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빼박입니다. 그냥 인정하시고 돌아가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네요.”

“증거라.”

단천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중원에서도 이런 자들은 많았다.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다면 그저 사술이니 뭐니 하는 자들.

이런 인간들은 대부분 그렇다. 이기어검도 사술이라 그러고, 능공허도도 사술이라 그러고, 검강도 사술이라고 한다.

‘칼 조종하고 공중 좀 걸어다니는 게 뭐 큰 일이라고 그걸 사술로 몰아.’

능공허도가 가능해진 극마지경 이후로는 어딜 가서 무공을 시전하든 사술이란 소리가 함께 따라붙었었다. 이런 인간들을 닥치게 하는 법은 단순하다.

그저 보여주는 것 뿐.

단천은 주저 없이 VR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캡슐 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좀 더···.”

“그쪽이 내가 핵이라고 그러니 더 할 이야기는 없지. 문답무용. 그저 가능하다는 걸 그 썩은 눈에 보여 줄 뿐.”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강한솔의 말에 소소한 노기가 감돌았다. 강한솔은 BJ천마를 거의 핵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보자면 핵쟁이가 건물에 들어와서는 뻔뻔하게 검증을 하겠다고 하는 상황.

그런데도 BJ천마가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는 이유는 뻔했다.

> 진짜 핵 아닌가?

> 핵이면 저렇게 당당할 수가 있냐?

> 그건 봐야 알지 ㅋㅋㅋ

> 팀장이랑 캐삭빵 드가자 ㅋㅋㅋㅋ

‘수많은 시청자들한테 내가 얼어붙기를 바라는 거지.’

지금 제로콜의 시청자에 BJ천마의 시청자까지 합치면 3만 명에 육박한다. 거기에 사건이 실시간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와중이니. 시청자는 3만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시청자의 수가 다수가 모이면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된다.

하지만 강한솔은 꼬리를 말고 협상을 할 만큼 강한솔은 강단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단순히 의심만으로 정지를 주면 안 된다.’

이것이 대원칙이다. 원래라면 강한솔도 핵 의심이 된다고 해서 정지를 먹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닷 헬퍼'가 없었다면. 이번에도 묵인했을 테고.

얼마 전에 파일로드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핵 프로그램. ‘닷 헬퍼’.

처음 핵을 탐지했을 때 강한솔은 파일로드의 닷 헬퍼 사용을 묵인했었다. 신규 핵 프로그램이라서 단정할 수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개 패착이었지.’

‘닷 헬퍼’에 관해 대내외적으로는 별 말이 없었지만 핵 판매자들 간에서는 ‘닷 헬퍼’를 사용해도 하인라인이 정지를 먹이지 못한다는 의견이 우세해졌다.

그리고 지금 레일 서바이버는 실시간으로 수백 개의 ‘짭퉁 닷 헬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 닷 헬퍼도 못 잡으면서 무슨 핵을 잡는대 ㅋㅋㅋ

> 애초에 얘들 그런 거 잡을 능력 없음 ㅋㅋㅋㅋㅋ

줄어드는 유저 수와 판매량. 덕분에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수천억원대의 손실.

이 모든 게 한 번의 방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핵 프로그램 사용과 프로그램 사용 방지는 보통 창과 방패로 비유되고는 한다. 어느 쪽이 우세를 잡느냐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지금은 창 쪽인 ‘닷 헬퍼’가 심각할 정도로 게임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원리원칙.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레일 서바이버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다.’

지금 레일 서바이버에 또다른 핵이 터지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수준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런 판단을 내린 강한솔은 BJ천마를 정지하는 초강수를 뒀다. 물론 독단적인 일이었다.

잘못하면 사직서를 내고 소송까지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만. 후회는 없었다.

때로는 원리원칙보다 우선시되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다. 한 청춘을 바쳐 개발하고, 운영해 왔던 게임을 위해서.

‘그리고. 확신도 있고.’

영상을 같이 보고 나면 BJ천마의 플레이 영상을 보면 보러 온 시청자들도 납득할 것이다.

이 사람의 플레이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핵 검증은 레일 서바이버가 아닌 반응 측정용 프로그램으로 하겠습니다. BJ천마님은 캡슐 최적화를 완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인라인-체커를 실행합니다.]

[캡슐의 반응 체크를 시작합니다.]

[플레이어는 VR 반응을 확인해 주십시오.]

단천은 캡슐의 반응을 확인했다. 확실히 회사의 기기라 그런가. 풀창고의 VR처럼 감도가 좋다. 뭔가 술수를 부려 놓지는 않은 모양이다.

“별 문제는 없군.”

[우선. 의심 영상부터 송출하겠습니다.]

화면이 전환되고 단천의 모습이 나왔다. 단천이 처음 레일 서바이버를 할 때의 화면이다.

화면 속의 단천은 골목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적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상대방이 오자마자 적을 베어냈다.

> 에이. 이걸로 핵 취급하는 건 오바지

> 생사람 잡네 ㅡㅡ

“이 정도면 범부凡夫도 다 할 수 있는 수준이지.”

뒤이어서 나온 것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단천이 귀를 벽에 대더니 검을 찍어넣어서 킬을 하는 장면.

“이것도 그리 어렵진 않고.”

> ???

> 이거 뭐 어케함?

여기서 채팅창에서 갈고리의 수가 더 늘어났다.

그리고 뒤이어서 나오는. 검으로 총알을 막아내는 장면에서는.

> ???????

> 미쳤다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이래놓고 핵 안쓴다고 우김?

> 이건 핵유저 할애비가 와도 핵이라고 하지 ㅋㅋㅋㅋ

> 양심이 좀 있어라 ㅋㅋㅋㅋ

> 이게 되면 인간이 아니지;;;

채팅창이 대폭발했다. 순식간에 채팅창에 원색적인 비난들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물론 비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이거 실시간으로 봤는데 딱히 이상한 거 못 느꼈는데?

> 진짜 신기하긴 한데 다키스트 에이지나 리드미컬 세이버 하는 거 보면 피지컬이 말이 안 되긴 함

> 애초에 천마님은 인간이 아니시다! 그분은 신이야!!

소수의 단천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옹호하는 의견 대부분은 BJ천마의 방송을 지금까지 꾸준히 시청해 온 아이디들이었다.

반면 채팅창에서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새롭게 유입된 시청자들이다.

물론 압도적으로 후자의 경우가 많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자신에게 쏠리자 강한솔의 위세가 등등해졌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많으면 당연한 일이다.

[기회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기에 소명 기회를 드리기는 했지만,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능하다.”

[···가능하다고요?]

“그걸 증명하러. 내가 여기에 온 것이다.”

하지만 단천의 표정에서는 여전히 자신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편이 몇명이건, 자신을 옹호하는 사람의 수가 몇명이건 상관없었기에.

하늘 위 하늘 아래에, 자신 한명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의 태도.

[자신만만하군요.]

“실제로 핵을 쓰지 않았고, 이를 언제든지 증명할 수 있다. 자신감이 없을 이유가 없지.”

단천은 자신을 옹호하는 사람이건 비난하는 사람이건 신경쓰지 않았다. 무언가에 대해서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말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봐 왔다. 저런 말들이 얼마나 무의미한것인지는 누구보다 단천이 잘 알았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여기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인간들을 납득시키는 것.

[이걸 보고도 시청자들을 납득시키겠다는 겁니까?]

단천의 고개가 주저 없이 끄덕였다. VR캡슐 너머로 쯧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나가서 혓바닥을 벽에 박아 버리고 싶지만 보는 눈이 심하게 많다.

'야방 하지 말 걸 그랬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단천은 호흡을 정돈하고 몸에 내력을 돌려 몸 상태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몸은 최상의 상태였다. 하늘을 가르고 바다라도 쪼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알겠습니다. 검증 방식은 어떤 걸로 하고 싶으십니까?]

“검증 방식이라면?”

[실제 상황을 재현해서 랜덤한 변수를 넣는 쪽과, 이 하인라인 체커에서 자체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플레이어 테스팅 프로그램. 두 가지가 있습니다. 원하시는 방식과 횟수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강한솔의 설명을 들은 단천의 손이 까딱였다. 요컨데 이런 말이다.

‘우리가 준비한 둘 중 하나만 선택해서 통과해도 인정해 줄게. 니가 한 짓을 보건데 어느 쪽이건 불가능할 테지만.’

사실상의 도발이다.

단천은 이런 도발에 단 한 번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단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다. 몇 번이건.”

[···네?]

“둘 다. 만족할 때까지 해 주지.”

단천의 눈이 짐승의 것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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