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38화 (38/212)

9. 야방 - 게임사 (1)

“후우.”

VR캡슐을 나온 단천의 몸은 흠뻑 젖어 있었다. 몸 전체가 계속적으로 긴장을 한 까닭이다.

단시간의 방송이라면 모를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계속해서 게임만을 했다. 그러니 몸이 피로에 젖을만도 하다.

등줄기로 찌릿거리는 통증도 느껴진다. 조금 무리하게 플레이를 했다는 뜻.

레일 서바이버가 꽤 마음에 들었던 것과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던 탓에 다소간 무리를 한 모양이다.

‘뭐. 그래도 재밌었으니 괜찮지.’

단천은 선 채로 천단공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신체를 도는 내력이 상처입은 신경과 긴장한 몸을 풀어주도록 하기 위함이다.

단천이 가지고 있는 천단공은 2성의 성취에 올라 있었다. 이제는 걸으면서, 쉬면서, 자면서도 운공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뜻이다.

원래 단천이 2성의 성취에 올라가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괄목할 만한 성취속도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천단공 자체가 단천이 이미 한 번 걸어왔던 길이라는 점. 길을 한 번 가 본 사람은 헤메지 않고 올바른 길로 빠르게 갈 수 있다. 심지어 단천은 이 천단공을 기반으로 신화경까지 올라가 본 경험이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전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내력이 증진되는 것도 당연한 일.

두 번째는···.

‘아마 상단전의 도움이겠지.’

상단전은 신체가 아닌 영靈의 영역이다. 지금의 단천의 정신력은 이미 신화경에 도달해 있는 상태. 상단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힘이 내력의 성장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단천 자신의 의지대로 상단전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는 없기는 하지만.

‘천단공이 육 성의 성취에 오르고, 천마신공을 함께 익히기 시작하면 조금은 상단전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겠지.’

아직까지는 조금 먼 일이기는 하지만. 상단전을 조금이라도 쓸 수 있게 되면 몸을 더욱더 단련하고 신체를 무에 적합하게 만드는 환골탈태를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도 있게 된다.

조금 더 예전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공의 수위에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천단공을 운행하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던 직전에. 캡슐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터져나왔다.

[메시지가 2건 도착했습니다.]

“기가봇. 메시지 확인.”

[메시지를 확인합니다.]

며칠간 혹독한 수련을 한 덕분인지 이번에는 한번에 음성 인식에 성공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건 결국 노력을 하면 무엇이건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또다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메시지 1 : 핵 사용 관련 제재 공지]

[메시지 2 : 제로콜인데요, 오늘 방송 개쩔었어요 ㄷㄷ]

무슨 메시지가 왔는지를 확인하던 단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핵 사용?”

메시지가 온 곳은 레일 서바이버를 서비스하고 있는 ‘하인라인 컴퍼니’ 였다. 부적절한 플레이 정황이 포착되어 일주일간 계정을 정지하니 소명하고 싶다면 본사에 찾아오라는 내용이었다.

“···별 거 아니군.”

불쾌감은 있었지만 이런 일은 익숙했다. 단천은 다음 메시지를 열었다.

메시지를 열고 링크를 클릭하자 제로콜과의 음성통화가 연결됐다.

[와. 오늘 방송 미쳤어요.]

제로콜의 음성에는 경탄과 흥분이 가득했다. 단천 자신의 방송을 본 모양이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이와 같겠지.

채팅으로만 반응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육성으로 놀라워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

[내일도 레일 서바이버 하시는 거죠?]

“내일은 못 한다.”

[네? 왜요?]

“핵 사용 제재 메시지가 날아왔거든.”

[···네? 형. 핵 썼··· 아니. 썼을 리가 없지. 그보다 핵 제재를 했다고요? 하인라인 일 안하기로 엄청 유명한 덴데. 뭐래요?]

“소명 기회를 준다고 하더군. 내일 찾아가 볼 생각이다.”

[내일 하인라인 찾아가는 거네요? 그럼 야방 하시는 건가요?]

“왜?”

야방. 보통 실내에서 진행되는 스트리밍과 달리 야외에서 하는 방송을 통칭하는 말이다.

“굳이 야방을 할 필요 있나?”

[···형은 안 할 생각이었어요? 이게 얼마나 큰 기회인데.]

“기회라고?”

[네. 게임사에서 무고한 플레이어를 정지했죠. 실시간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걸 보여주면 어떻게 되겠어요?]

“내가 무고하단 걸 알게 되나?”

[···그건 당연한 거고. 엄청 이슈가 되겠죠. ‘핵으로 의심받을 정도로 게임을 잘 하는 플레이어’ 타이틀을 얻게 되는 거니까요. 실제로도 핵 의심받다가 증명하고 떡상한 스트리머가 몇 있어요. 프로게이머까지 된 경우도 있고.]

“그렇군.”

[게다가 스트리머가 야방 켜고 게임사 찾아가면 게임사 입장에서도 함부로 대하기가 엄청 껄끄러워지죠.]

확실히. 게임사 입장에서 스트리머의 시청자들은 잠재 고객이다. 수많은 잠재 고객이 보고 있는데도 유저를 문전박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스트리머가 환불 받겠다고 차 몰고 본사 찾아갔는데도 환불 거부하는 게임사도 있기는 하지만요.]

“망하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보군.”

[아뇨. 그러고서도 엄청 잘 나가는데요?]

“······.”

단천은 무슨 게임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게임사 게임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방송은 켜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네 말대로라면 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애초에 왜 방송을 안 켜려고 하신 거에요? 켜는 게 무조건 이득인데.]

“방송을 켜면 불의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증거가 남아 버리니까.”

[···말을 이상하게 하면 안 되죠. 그렇게 말하면 게임사 사람들을 두들겨 패겠다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그렇게 들리나.”

[그렇게 들려요.]

단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방송을 켜지 않았을때 할 수 있는 물리적 설득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스트리머로서의 성장과 시청자 수가 주는 압박감을 생각한다면 야방쪽의 장점이 훨씬 크다.

단천의 생각이 야방 쪽으로 기울었을 그때.

[야방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저도 같이 가도 돼요?]

“너도?”

[저도 겸사겸사 컨텐츠 생기면 좋죠. 어차피 레일 서바이버 팀도 짜야 되고.]

“언제는 내가 팀에 못 들어올 거라고 하더니.”

[그거야 방송 보기 전이고요.]

제로콜이 머쓱하게 웃었다. 단천의 플레이를 모두 보고나서 생각이 180도 바뀐 모양이다.

단천이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본 제로콜의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아무래도 단천이 자신을 데려가는 것을 그다지 탐탁찮아 하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저랑 같이 가면 형도 이득이 있어요. 오늘 형 방송 보면서 플레이 분석도 했으니까. 핵 아니라는 자료들 제시할 수도 있을 거고.]

“어차피 자료는 거기 다 있을 텐데.”

[어, 어. 그··· 천마 형. 야방 할줄 모르지 않나요? 장비는 있나요?]

“장비? 물론 있다.”

단천이 본 「컴시스」에 따르자면 야방을 위한 기본 장비로는 휴대폰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휴대폰이야 단천 자신도 가지고 있다.

어플리케이션 설치도 할 줄 안다. 얼마 전에는 웹소설을 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도 직접 설치하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이제 단천 자신도 당당한 첨단문명의 일원인 것이다.

[와. 벌써 짐벌이랑 삼각대, 광각렌즈, 녹음용 마이크를 다 사신 거에요? 장비값 꽤 들 텐데. 역시 준비가 철저하시네요. 하긴, 요새 스트리밍 한다는 사람들이면 다 이 정도는 준비하고 시작하지만.]

“···하지만 그렇게까지 장비가 좋지는 않다.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지.”

[아! 그러면 제가 바꾸기 전 장비 써 보시는 거 어때요? 지금은 좀 싸졌지만 얼마 전까지는 하이엔드 제품이었는데. 성능 좋은 걸로 방송하면 형 입장에서도 좋으니까요.]

단천의 말에 제로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

글자 그대로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

하인라인 사의 앞에 도착하자 제로콜이 단천을 반겼다. 뿔테 안경부터 시작해서 VR채팅에서의 모습 그대로였다.

스트리머들은 VR챗에서 보통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사용하는 편이다. 고양이 모습으로 방송을 한다거나, 성별을 바꿔서 방송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제로콜도 아마 평범하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방송에 비치는 스트리머인 모양이었다.

“보통은 VR게임에서의 모습이 더 나은데. 형은 실물이 좀 더 낫네요.”

제로콜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단천의 VR게임에서의 모습은 병원을 막 빠져나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반면 지금 단천의 모습은 매일 운동을 하고, 영양과 단약을 충분히 섭취하는 상태.

몸에 살도 붙고 적당히 근육도 붙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제로콜의 입에서 칭찬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맞다. 천마 형.”

“단천이라고 불러도 된다.”

“아, 네. 단천 형. 이거 어제 이야기했던 방송 장비들이에요. 야방은 처음이시죠? 그러면 장비들 제가 부착할게요.”

제로콜이 단천의 손에서 휴대폰을 받아들고 휴대폰에 가져온 장비들을 능숙한 손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단천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제로콜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이런 과정들도 스트리머라면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일 터. 무슨 장비들이 필요한지, 그 장비들을 어떻게 장착하는지 기억해 둬야 한다.

“풀창고 형이 말한 대로네요.”

“뭐가.”

“천마 형은 뭔가 새로운 걸 알려주려고 하면 뭐든지 다 진심으로 배우려고 한다고 그랬거든요.”

“나는 스트리머로서는 이제 갓 발을 뗐다. 알아야 할 것이 세상천지에 넘치지. 그러니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다 배워 둬야 한다.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저도 배우는 게 좋아요. 재능이 없어서 실력은 잘 안 늘지만.”

그러고 보니 제로콜의 게임 실력은 바닥을 긴다고 했었다. 풀창고의 말에 따르자면 재능이 없는 분야로 재능이 원톱인 사람이라고 했었다.

‘이런 놈이. 중원에도 있었지.’

“재능이 없어도 뭔가를 좋아하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언젠가는 꽃을 틔우는 법이다.”

“무협지에서나 나올 말을 하는 건 실제로 만나도 똑같네요.”

제로콜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제로콜이 게임을 시작한지도 거의 10년이다.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해도 실력이 안 는다는 것을. 세상사 벽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쓴웃음을 짓던 제로콜이 단천에게 장치 세팅을 끝낸 휴대폰을 건냈다. 방송 장비를 모두 세팅하자 휴대폰이라기보다는 커다란 무기처럼 보였다.

“면적이 넓어서 암기를 방어하기엔 꽤 편리하겠군.”

“···네?”

개조된 휴대폰을 들고 이리저리 만족스럽게 돌려보던 단천이 입을 열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줄 테니까.”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빈말이라 생각해도 되고.”

단천 자신은 말을 했다. 이걸 기억할 지 말지는 제로콜이 판단할 몫이었다.

단천은 가볍게 대답한 뒤, 휴대폰의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방송이 시작됩니다.]

폭풍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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