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37화 (37/212)

8. 레일 서바이버 (4)

[생존자가 7명 남았습니다!]

[레드 존이 좁아집니다!]

좁아진 레드 존은 낡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뒷골목이었다.

단천이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화르르륵!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크하하하하! 이게 화방이 뜨네!”

플레이어 한 명이 들고 있는 무기에서 끝없이 화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불꽃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떠오르는 킬 로그.

[불꽃남자가 엄마딱한판만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불꽃남자가 통큰통닭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남은 생존자 : 5명]

> 이번판 보급품이 화염방사기 떴나보네

> 화방 개꿀잼이긴 해 ㅋㅋㅋ

“보급품?”

> ㅇㅇ 보급품

보급품은 레일 서바이버의 후반부에 공중에서 보급되는 무기들이다. 나노 슈트, 점프 슈트, 레일건 등 강력하고 특색 있는 보급품들은 레일 서바이버의 아이덴티티인 동시에 하나하나가 게임의 판도를 바꿀 만큼의 사기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좁은 범위에서 특히나 강력해지는 아이템이 바로 저 화염방사기다.

넓은 방사형 범위에 일정 시간 타오르는 화염을 분사한다.

단순하기 그지없지만 은엄폐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전투 지역이 줄어드는 후반부에 특히 강해지는 무기다.

“저 무기가 그렇게 좋나?”

> ㅇㅇ 극후반 개사기템

“템빨 아래 무릎꿇으라! 미천한 존재들이여! 크롸롸롸!”

화염방사기를 쏘아대며 미친듯이 웃어대는 남자를 바라보던 단천이 입을 열었다.

“···혹시 저 아이템에 악령 같은 거라도 들려 있는 건가?”

> ㄴㄴ 걍 아이템 뽕맛에 취한거임

“그냥 이상한 사람이었군.”

> 니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불꽃남자가 헐록숌즈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불꽃남자가 다디트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남은 생존자 : 2명]

단천이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화염방사기를 들고 있는 불꽃남자는 추가로 남은 세 명을 모두 처치했다.

실로 무시무시한 성능.

남은 것은 단천과 불꽃남자. 단 두 명 뿐이다.

“크롸롸롸! 이거 오늘 치킨을 야무지게 먹겠군!”

“처리할 사람이 줄어서 손을 덜었군. 덕분에 편하게 1등을 하겠어.”

“1등? 1드으으응? 지금 상황파악이 안 되나? 니가 살아남은 건 그냥 운이 좋아서다!”

“본좌가 운이 좋기는 하지.”

“죽어라!”

화아아악! 불꽃이 단천을 향해 쏟아졌다. 단천은 몸을 바닥에 굴려 재빨리 불꽃을 피해냈다.

화르르륵! 단천이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서 맹렬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은 꺼질 기색이 없었다.

‘상대하기 껄끄럽군.’

레일 서바이버에서의 움직일 수 있는 속도는 제한되어 있다. 내공을 쓸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그 까닭에 검막劍幕을 시전할 수도 없다.

여러 모로 까다로운 상황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런 화염 공격은 연료를 함께 분사하지.’

화염공을 수련하는 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술을 매개로 쓸 때도 있고, 몸 안에 계속해서 타오르는 석유를 보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적을 상대하는 법은 단순하다. 쓸만한 크기의 물건만 있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딱 적당한 물건이 있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파밍하면서 몇 개를 들고 왔었는데. 이렇게 쓸 일이 생길 줄이야.

단천은 품에서 수류탄을 꺼내들었다.

> 수류탄 남은 거 있었음?

> 그러고 보니 줍기만 하고 안 썼었네 ㅋㅋㅋ

> 수류탄 던지는 법은 알지?

> 공부하고 왔다고 했으니 알겠지 ㅇㅇ

수류탄의 무게를 가늠한 단천은. 수류탄을 그대로 앞을 향해 던졌다. 물론 안전핀 제거 따위는 하지 않은 채로.

쉬이익!

> ?

> ???

채팅창에 터져나오는 갈고리들. 하지만 그 갈고리가 사라지는 데에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터업!

제비처럼 날아간 수류탄이 화염방사기의 구멍을 정확하게 막아 버렸기에.

“어···?”

채팅창의 채팅이 멎고, 불꽃남자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콰과과과광!

거대한 폭발이 주변을 쓸어올렸다.

[생존자 : 1/100]

[우승하셨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비도술이었는데. 나름대로 잘 먹혔군.’

> 와 방금 수류탄 뭐임??

> 뭔 유도탄처럼 날아가던데 ㅋㅋㅋ

> 순간 류현진인줄 ㄷㄷㄷ

“방금은 평범한 비도술이다. 평상시에는 검밖에 못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좌는 십팔반 무기 모두에 능하다. 천하에 이 몸이 쓰지 못하는 무기따위는 없다고 봐도 된다.”

비도와 같은 조그마한 무기들을 제외하고는 검만 써 왔고, 앞으로도 검 말고는 되도록 쓰지 않을 셈이었지만. 쓰지 않는다고 해서 못 쓴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마 시청자들도 자신의 비도술을 봤으니 단천이 다른 무기를 못 쓴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 총 못 쓰잖아ㅋㅋㅋㅋㅋㅋ

> 애초에 수류탄도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 조용히 하지 않으면 눈에 비도(수류탄형)을 먹여 버리겠다

[미션맨 님이 3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3등 미션 1등으로 끝내셨으니 화끈하게 30만 넣었습니다]

[시계추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게임 볼때마다 신기하게 하고 있네 ㅋㅋㅋ]

쉴새없이 올라가는 채팅창과 후원금. 원래라면 후원 하나하나에 리액션을 할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이 쪽이 정석이다.

여기서 반응을 좀 하고, 리플레이를 보면서 자신의 플레이를 해설하는 것은 좋은 컨텐츠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단천은 리액션을 하고 리플레이를 보는 대신.

[새 랭크 게임을 시작합니다.]

[랭크 게임을 검색합니다.]

바로 새 랭크 게임 검색을 시작했다.

“꽤 재밌군.”

단천은 지금 레일 서바이버의 재미에 격양되어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사람과 할 수 있는 PVP만의 재미.

그리고, 무림에서의 무공을 떠올리게 하는 ‘보급품’ 컨텐츠까지.

이런 상황은 신선하기 그지없는 경험들이었다.

이런 황금같은 시간을 리플레이 보겠다고 뒤로 미룰 수는 없는 노릇.

> 바로 랭크 돌리네 ㅋㅋㅋ

> 리딸 그런거 없다!!!

> 또 1등 가나?

> 당연히 목표는 1등이지 ㅋㅋㅋㅋ

BJ천마가 리플레이 재생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본 채팅창에서는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리플레이는 결국 리플레이에 불과하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고 해도 다시 보면 그 맛이 떨어지기 마련. 과정도 결과도 모조리 아는 게임을 다시 보는 것보다 새로운 게임에서 1등을 하는 것을 보는 게 재밌다.

물론 이 모든것은 다음 게임에서 1등을 한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

100명이나 참여하는 레일 서바이버에서 연속으로 1등을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기에. 대부분의 스트리머들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단천에게는 연속으로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만한 실력이 있었다.

“몸도 좀 풀리고.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도 익숙해졌으니. 제대로 가 보도록 하지.”

> 지금까지는 안 익숙했던 거냐

> 대체 어디가 안 익숙했던 건데?

> 수류탄 던져대는 거 보면 딱히 지금도 익숙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경악과 공포에 빠진 채팅창.

그리고 오늘. BJ천마는 5연속 1등이라는 경이적인 쾌거를 이룩했다.

***

레일 서바이버의 운영팀은 언제나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안 그래도 인기 게임이라 모니터링할 게 많은 와중에, 요새 중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헬퍼(helper)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팀원들은 며칠간 퇴근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선배. 이 로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살얼음판같은 곳에서. 한참 로그를 훑어보던 김진표 대리가 말을 꺼냈다.

“뭐. 이게 뭔데.”

“그··· 연속 1등 한 사람 게임 로그인데요.”

“근데? 연속 1등이야 가끔가다 나오는 거잖아. 프로 게이머 부캐인가 보지.”

“그게. 일단 5연속 1등입니다.”

“···프로가 운이 좋았나 보지.”

강한솔 팀장은 짧게 대답했다. 그냥 연속으로 5번 1등을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온라인 게임에서 정지를 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선량한 유저가 억울하게 정지를 먹으면 그만큼 게임사 입장에서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5연승이 신기하기는 한데. 그냥 5연승 했다고 정지를 줄 수는 없어 임마.”

“일단 로그는 큰 문제 없는데···. 영상부터 보시죠. 이 사람. 핵이 아니면 말이 안 돼요.”

강한솔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짬밥 좀 찼다고 생각했는데. 버그 유저 찾는 것도 애매하다고 자신한테 물어봐서야.

그래도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강한솔은 모니터를 돌려 김진표가 보낸 유저의 플레이영상을 틀었다.

영상 하나, 둘, 셋, 넷···.

강한솔은 천천히 수십 개나 되는 영상을 모두 둘러봤다.

모든 영상을 본 강한솔의 입에서. 확신에 찬 말이 튀어나왔다.

“이거. 핵이네.”

“···그렇죠?”

“그렇지. 일단 로그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핵 감지 프로그램인 화이트 노이즈도 정상 판단을 내립니다.”

“아마 화이트 노이즈가 뚫린 모양이다. 로그도 정상으로 보이도록 변조를 하는 모양이고. 개발팀에 연락 넣어. 새 헬퍼 프로그램 나왔다고.”

새 헬퍼 프로그램이 나왔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헬퍼 프로그램이 새로 나왔다면 그대로 추가야근 확정이다.

“그러면. 이 BJ천마라는 유저는 어떻게 할까요?”

“일단 생각 좀 해 보자. 핵인 건 확실해 보이긴 하는데.”

“그게··· 이 사람. 스트리머던데요.”

“스트리머라고 핵 안 쓸것 같냐?”

“···그건 아니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실제로 실력도 있다고 해서 핵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도 얼마 전에 헬퍼 사용자로 의심되는 유저 한 명이 초대형 스트리머였다는 것은 운영팀의 공공연연한 비밀이었다. 워낙 교묘하게 사용을 해서 정지를 먹이진 못했지만.

“파일로드 그 자식은 운도 좋지.”

“그러게요. 하루나 이틀 정도만 더 했어도 바로 정지감이었는데.”

갑질 논란이 조금만 늦게 터졌다면 핵 사용자로 정지까지 먹었을 텐데. 갑질 논란이 터진 탓에 핵 사용의 결정적 증거는 찾지도 못한 채였다.

거의 확신범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BJ천마라는 플레이어는 다르다. 애매하게 선을 넘나들면서 핵 사용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봐도 이상한 플레이들을 한다.

로그도 정상적, 핵 감지 프로그램도 정상적.

하지만 핵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했다.

“으으음.”

강한솔은 장고에 빠졌다. 조그마한 구멍으로도 둑은 무너지는 법. 이런 초창기 핵 플레이어를 한 번 허용했다가 게임 전체가 핵 유저들로 넘쳐나게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끄으응.

안 그래도 적은 머리숱을 한참 쥐어뜯으며 고민하던 강한솔이 결론을 내렸다.

“일단 정지 먹여.”

“···괜찮을까요?”

“그래. 정지 먹이고. 따로 컨택 넣어. 소명할 수 있는 기회 주겠다고.”

이 BJ천마라는 인간의 플레이는 핵이 확실했다. 증명할 방법은 아직까지는 없지만.

그러니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해도 나타날 수 없다.

“혹시 정말로 핵이 아니면 어쩌죠?”

“와서 증명하겠지. 근데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이게?”

“그거야 그렇죠.”

강한솔은 계속해서 BJ천마의 플레이를 돌려봤다. 돌려보면 돌려볼수록 확신이 더욱 짙어진다. 로그와 반응 속도, 플레이, 모조리 다 말이 안 된다.

저런 플레이를 보여주는 인간이면 둘 중 하나다. 핵이거나, 아니면 게임의 신이거나.

혹시라도. 만에 하나 억울한 정지라면 시말서를 몇십 장은 제출해야 될 터였지만.

“뭐, 게임의 신 한 번 보는 값으로 치면 싸지.”

강한솔은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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