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36화 (36/212)

8. 레일 서바이버 (3)

바닥에 쓰러진 플레이어들의 사체를 루팅하는 BJ천마를 보던 제로콜이 입을 열었다.

“어. 음. 운이 좀 안 좋았나 보네요. 방어구는 죄다 1티어인데 무기가 어떻게 광선검만···.”

[도방맨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그냥 총을 안 줍던데?]

“총을 안 줍는다고요? 왜요?”

> 그것이 천마thousand horse니까

> 모름 그냥 안 주움

> 못 본게 아니고?

> 그냥 안 주움

제로콜은 여러 고인물들의 플레이를 봐 왔다. 게임을 분석하고 해체하는 것이 취미였기 때문이다.

“···그런 컨셉 플레이인가 보네요.”

제로콜은 BJ천마의 플레이를 몇 분 전으로 돌렸다. 컨셉 플레이는 컨셉 플레이이고. 방금 전 BJ천마의 플레이를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꽤나 좁아져 있는 레드 존. 덕분에 컨테이너 창고 안에 플레이어들이 밀집해 있었다.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총 다섯 명. 장비는 다섯 명 다 괜찮아요.”

> 광선검 무기만 들고 있는데 괜찮은거임?

“보호구가 죄다 최상급이잖아요. 레드존 크기로 보면 이제 중반쯤인데 풀파밍을 했네. 운이 좋았나?”

> 아님 그냥 사람 보이는대로 잡아죽이면서 파밍한거임

그렇다는 건 지금 이전에도 멀티킬을 밥 먹듯이 했다는 뜻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튼 계속 보죠.”

영상 안에 보이는 플레이어들은 일종의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컨테이너 창고는 꽤 넓은 실내 구역이다. 먼저 움직이면 여러 명에게 일점사당하기 딱 좋은 지역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근접 무기를 들고 있는 BJ천마 입장에서는 다른 유저들의 움직임을 기다리는 게 좋은 상황.

“일단 여기서는 대기하겠네요.”

> ㅇㅇ

> 무기도 안 좋고 지금 움직일 이유가 없지

> ㅇㅈㅇㅈ

제로콜뿐만 아니라 누가 와도 여기에서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기다리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로콜은 BJ천마도 그렇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해야 할 플레이가 있고 아닌 플레이가 있는 법이니까.

지금은 기다리는 게 옳다.

하지만 BJ천마의 움직임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BJ천마는 자신이 장비하고 있던 헬멧을 벗기 시작했다.

딸깍. 스윽.

> 뭐?함??

> 헬멧은 갑자기 왜 벗음?

손에 든 헬멧을 들고 주변의 상황을 다시 한 번 확인한 BJ천마는. 망설임없이 헬멧을 공중으로 던졌다.

타아앙!

헬멧이 공중으로 던져지자마자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헬멧이 총에 맞아 바닥을 뒹굴었다.

“미친! 뭐야? 이게 무슨···!”

당황한 발포자의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타다다다당! 콰아앙!

첫 발포가 시작되자 살얼음판같던 교착 상태가 순식간에 전투로 이어진 것이다.

난장판같은 전투가 벌어지자, 가장 살판이 난 것은 BJ천마였다.

폭발물들이 터진 덕분에 생겨난 분진을 이용하며 적들이 숨은 곳을 향해 돌진한다.

첫 번째 희생양은 BJ천마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플레이어였다.

워낙 상황이 난장판이었던 탓에 적은 BJ천마가 뒤로 다가서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서걱!

“커허억!”

그 이후는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상황이 워낙에 난국인 데다가 은엄폐를 할 수 있는 분진과 연막탄이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BJ천마는 다른 플레이어를 농락이라도 하듯이 하나하나 사냥을 해 나갔다.

“후우. 후우.”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체력을 회복하려는 순간.

서걱!

죽어서 전광판을 보게 된다. 이 모습을 보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던 적은.

서걱!

위에서 떨어져내린 BJ천마에게 그대로 죽어 버렸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정신없이 이어지던 총격이 끝나고 컨테이너에 남은 건 단 두 명.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극도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만했다. 게임 중반이 다 됐는데도 광선검 하나 들고 설치고 있는 미친 놈에게 트리플 킬을 헌납했으니까.

“너, 너 뭐야! 이 새꺄!”

“본좌는 천마다.”

“이런 미친 새끼가!”

뚜벅. 뚜벅.

마지막 적만을 남겨둔 BJ천마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 오지마! 미친 놈아!”

“본좌는 본좌보다 약한 자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어떤 인간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뜻이지.”

‘진짜 미친놈인가.’

다행인 점은 살아남은 플레이어인 ‘버거타임’의 총이 저격총이라는 점이었다. 버거타임과 상대의 거리는 50m 가량.

충분한 거리인 데다가 엄폐물도 이제는 없다.

심지어 저 칼 들고 설치는 또라이가 헬멧을 던진 덕분에 머리에 보호구가 없는 상황.

버거타임은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대며 소리쳤다.

“뒈져!”

타아앙!

완벽한 조준이었다.

하지만.

뚜벅. 뚜벅.

또라이의 걸음걸이는 멈추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또라이의 손에 들려있던 광선검이 머리를 가드하듯 막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 뿐.

“뭐? 뭐야?”

탕!

타앙!

버거타임은 계속해서 총을 조준해서 쏴 봤지만 또라이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저벅. 저벅.

50m에 이르는 거리가 이제는 채 몇 걸음도 남지 않았다.

“개 쓰레기 버그게임 같으니라고···.”

서걱!

버거타임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영상을 일시 정지합니다.]

영상을 모두 본 제로콜이 BJ천마의 영상을 일시정지했다.

> ???

> 뭐고 진짜 ㅋㅋㅋㅋㅋ

> 보고도 뭘 한 건지 모르겠네 ㅅㅂ;;

> 저 정도는 흔한 입시 스트리머 수준 아니냐?

방금 뭘 한 건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시청자부터, 저 정도는 웬만한 스트리머라면 모두 한다는 평가까지.

시청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리고 제로콜은 경악하고 있었다.

“와. 진짜. 사람의 플레이가 아니네요.”

> 일단 기괴하게 게임하는 건 알겠음

> 마지막은 버그 아니냐?

>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버그 같은데

“일단··· 버그는 아닙니다. 일단 처음에 헬멧 던진 것부터 간단하게 설명할게요.”

> 그냥 티배깅 아님?

“아니요. 헬멧을 던져서 총을 쏘도록 유도하는 거죠. 총을 쏘면 쏜 사람의 위치가 노출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플레이어들의 화력이 쏟아질 테고. 교착상태가 풀리니까요.”

> 이런 판단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음

“그 다음도 놀랍죠. 주변에 있는 지형지물을 기가 막히게 활용을 해요. 상대가 총으로 저격할 수 없는 위치로 바로바로 이동을 해요. 주변에 4명이나 있는데.”

놀라운 것은 이 모든 판단이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볼 수 있는 것도, 들을 수 있는 것도, 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너무나도 많다.

그 가운데에서 무엇이 쓸모있고 무엇이 쓸모없는 정보인지를 알아채고 최적의 전략을 세우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그런데도 BJ천마가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다.

즉각적이나 다름없는 움직임인데도 완벽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이다.

수천 수만 번은 전장을 경험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게다가··· 마지막은 진짜 저도 보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네요.”

> 마지막 거 어케한 거임?

“이거. 광선검으로 총알 막은 겁니다.”

광선검은 레일 서바이버의 개발사 측에서 오마주격으로 넣은 물건이었다.

애초에 FPS에서 근접 무기가 활용할 여지는 거의 없다. 거기에 근미래 SF FPS인 레일 서바이버에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특이한 성능도 몇 가지 들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절대로 관통되지 않는 성질이었다.

원작의 광선검의 성능을 리스펙하며 넣은 일종의 이스터에그지만 실전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이스터에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 칼로 총알을 막아낼 시도를 실전에서 하는 미친놈이 없었으니까.

지금까지는 말이다.

> 대체 저걸 어케 막는 거임?

“일단 거리가 가깝고··· 총구가 향하는 방향을 먼저 보는 거죠.”

거리가 멀었다면 탄도의 궤적이 계산하기 어려워지지만 거리가 충분히 가깝다.

“거기에 방어구를 다 차고 있으니 노릴 거라고 예측할 수 있는 곳은 머리뿐이고.”

직전에 헬멧을 집어던진 덕분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상대는 당연히 머리를 노리게 된다.

역으로, 머리만 가드하면 총알을 막아낼 가능성이 대폭 올라간다.

“그리고··· 총을 쏘기 직전에 예측되는 궤도에 광선검을 놓는다.”

그게 끝이다.

“말로 하고 보니 참 쉽네요. 저도 할 수 있을듯?”

> 어디가 쉬워 ㅋㅋㅋㅋㅋ

> 또또또또 허세부린다 ㅋㅋㅋㅋ

말로는 자신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제로콜은 이미 BJ천마가 얼마나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다시 영상을 여러 번 돌려 보고 충분히 곱씹은 다음에야 할 수 있는 피지컬과 전황 판단을. 전장 한복판에서 몇 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해 낸다.

그리고 말이 안 되는 걸 실현해내는 피지컬까지.

그냥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니다.

“BJ천마라는 이 사람. 다른 게임 뭐 했어요?”

> 다키스트 에이지랑, 리드미컬 세이버, 런닝돌 3개

> 다 합쳐도 100시간 안됨 ㅋㅋㅋㅋ 진짜 천재임

제로콜은 풀창고가 틀어준 매드무비를 보기는 했었다. 플레이를 봤을 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매드무비는 매드무비일 뿐. 실제 실력을 완벽하게 대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컨트롤 좋은 유저 정도구나 싶었는데.’

플레이를 보니 알겠다. 왜 풀창고가 BJ천마를 그렇게 잡으려고 했는지. 이 정도 플레이라면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 ‘파일로드’를 대체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물론 파일로드의 기가 막힌 오더 능력이나 맵에 대한 이해도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 정도는 메우고도 남을 피지컬과 전투능력이 이 BJ천마에게는 있다.

‘어쩌면 진짜 2주 내에 그랜드마스터 찍을지도.’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BJ천마가 입으로 허언하던 챌린저 1등은 다른 문제지만. 풀창고가 컷으로 이야기했던 그랜드마스터는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다.

“아. 일단 전장 상황 끝났고요. 실시간 게임 방송으로 다시 돌아가보죠. 지금 생존자 몇 명이에요?”

> 생존자 7명 남음

“딱 좋게 게임이 종반부네요.”

제로콜은 뚫어져라 BJ천마의 게임 플레이를 바라봤다.

줄어든 레드존을 향해 남은 생존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원래 이런 배틀로얄류 게임은 후반부가 되면 될수록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올라간다. 혈투를 거치고 살아남은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유저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수준또한 폭발적으로 올라간다.

레일 서바이버의 후반부에 나오는 ‘보급품’들은 하나하나가 게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하니까.

무기와 장비 하나하나가 모두 종결급이 된다는 말이다.

반면 BJ천마의 방어구는 나쁘지 않았지만 무기는 여전히 광선검 한 자루뿐.

종결급 파밍을 완료한 플레이어가 있을 거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우승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와 첫판에 우승이네 ㅋㅋㅋㅋ

> 제로콜은 한달에 한번 먹을까말까한 치킨을 첫판에 먹네 ㅋㅋㅋㅋ

그런데도 불구하고. BJ천마가 우승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채팅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한 명 없는 특이한 광경.

이유는 단순했다.

BJ천마가 그걸 기대하게 할 만한 경기력을 실제로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소위 말하는 '흐름'상 우승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모두에게 흐르고 있었다.

기대 가득한 채팅창을 뒤로한 채.

첫 게임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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